성경과 교회의 오랜 증언으로 답하는 큰 질문들
하나님
- 하나님은 존재하는가?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논증으로 증명하려 하지 않고, 창조 세계와 사람의 양심이 그분을 가리킨다고 말합니다. 세계의 존재와 질서, 우리 안의 도덕 감각은 하나님을 가리키는 이정표이지 수학 같은 증명은 아닙니다. 그래서 신앙은 증거 없는 도약이 아니라, 찾는 사람에게 만나 주시겠다는 약속을 신뢰하며 계속 찾는 일입니다.
-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성경은 하나님을 철학의 개념으로 그리지 않고, 스스로 자기를 알리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그분은 영원하고 변하지 않으시며, 거룩하시고,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창조주요 아버지이십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나셨다고 믿습니다.
- 삼위일체란 무엇인가?삼위일체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 한 분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세 위격으로 영원히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세 분의 신이 있다는 뜻도, 한 분이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 교리는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모두 지키려는 교회의 오랜 노력이며,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사랑이시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 하나님은 왜 보이지 않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영이시므로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하면서도, 창조와 성경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을 통해 자신을 알리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숨어 계신 듯한 때가 있다는 것도 성경은 숨기지 않고, 탄식의 시편으로 그 아픔을 기도의 말로 삼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숨어 계심이 강요하지 않고 사랑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방식과 이어져 있다고 믿습니다.
-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성경은 세계를 질서 있게 지으신 하나님을 말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을 탐구하는 일이 그 지혜를 살피는 일이라고 보아 왔습니다. 과학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묻고, 성경은 거기에 더해 누가 왜 지으셨는지를 묻습니다.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있지만, 모두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데에는 하나입니다.
-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오늘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중심으로, 창조와 성령과 교회의 분별 속에서 들립니다. 성령이 지금도 개인을 인도하시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내세우는 어떤 말도 성경과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 기적은 가능한가?하나님이 계시고 그분이 자연을 만드셨다면, 그분이 자연 안에서 특별하게 일하시는 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성경은 이적을 자연법칙을 깨뜨리는 사건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가리키는 표적으로 읽습니다. 흄의 반론은 진지하게 받을 만하지만, 그 힘은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다는 전제를 얼마나 미리 받아들이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가?성경은 하나님께 능치 못한 일이 없다고 말하며, 교회는 이를 전능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전능은 자기 모순을 이루는 능력이 아니라 그분의 본성에 합당한 모든 일을 이루시는 능력이며,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다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온전하심입니다. 이 능력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의 능력이라는 점에서 위로가 됩니다.
-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고 기록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그 존재와 성품과 목적에서 변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해 왔고, 뜻을 돌이키심은 사람의 돌이킴에 응답하시는 그분의 행하심을 가리킨다고 읽어 왔습니다. 이 본문들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지금도 논의되지만, 어느 쪽이든 기도는 헛되지 않습니다.
- 하나님은 남성인가?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사람의 몸이나 성(性)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성경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도 어머니의 사랑에 빗대어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아버지"라는 이름을 지켜 온 것은 하나님을 남성으로 보아서가 아니라, 예수께서 알려 주신 관계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 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하나님은 우리가 지켜야 할 뜻을 성경에 이미 밝히셨고, 그 뜻을 분별하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지혜와 조언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선택마다 숨겨진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감추신 일은 맡기고 나타내신 일은 행하는 사람을 인도하십니다. 이 인도를 이해하는 방식은 전통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 하나님도 감정이 있으신가?성경은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고 슬퍼하시고 노하신다고 말합니다. 교회는 이 말씀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면서도, 하나님은 사람처럼 감정에 휘둘리거나 바깥의 일에 압도되는 분이 아니라고 가르쳐 왔습니다. 하나님이 고난을 겪으시는지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서 지금도 논의가 계속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시다는 점에는 모두가 뜻을 같이합니다.
예수
- 예수는 누구인가?교회는 예수를 약속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님이시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칼케돈 공의회의 말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한 분입니다. 이것은 그분을 가장 가까이서 따른 사람들이 증언한 것이며, 예수께서 직접 던지신 질문 앞에서 지금도 모든 사람이 답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 예수는 실존 인물인가?고대사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역사가는 예수가 실제로 살았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고 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학자들도 대체로 받아들이는 결론입니다. 가장 이른 신약의 증언과 로마·유대 쪽 기록이 같은 기본 사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교회는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장사된 뒤 사흘째에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이것은 수학처럼 증명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 증거를 저울질하는 문제입니다. 빈 무덤, 여러 사람이 만난 부활하신 주님, 두려워 숨었던 제자들의 변화는 부활이 가장 자연스럽게 설명한다고 그리스도인들은 믿습니다.
- 예수는 왜 죽어야 했는가?교회는 예수께서 우리를 위하여, 우리의 죄 때문에 죽으셨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그 죽음은 하나님이 죄를 가볍게 보지 않으신다는 표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이 죄인을 얼마나 사랑하시는지 보여 주는 표입니다. 십자가가 어떻게 구원하는지에 대해서는 몸값, 승리, 희생 제사, 대신 받으신 형벌, 사랑의 계시 같은 여러 그림이 있지만, 그것이 우리를 위한 일이며 하나님의 사랑에서 나왔다는 데에는 모두 한 목소리입니다.
-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한 분의 은혜에서 온다는 고백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 예수는 하나님인가?교회는 예수 그리스도가 참 하나님이시며 동시에 참 사람이시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교회는 이것이 후대에 덧붙인 교리가 아니라 신약의 증언을 따라 니케아 공의회가 정리한 것이라고 봅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고, 아들은 아버지와 구별되면서도 같은 본질을 가지신다는 것이 그 뜻입니다.
- 예수는 정말 동정녀에게서 나셨는가?교회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각각 이것을 전하며, 이사야 7:14의 낱말 문제는 정직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고백은 예수의 시작이 하나님의 먼저 하신 일이었다는 뜻이며, 성경은 그것을 증명하기보다 선포합니다.
- 하나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교회는 영원하신 아들께서 사람이 되셨다고 고백합니다. 그 이유로 성경은 하나님을 알리시려는 것, 우리와 같은 사람으로서 우리를 구원하시려는 것, 우리의 자비로운 대제사장이 되시려는 것을 말합니다. 크리스마스는 하나님이 멀리서 구경하지 않으시고 우리 곁으로 오셨다는 사실을 기념하는 날입니다.
- 예수는 메시아인가?메시야와 그리스도는 같은 말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며,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바로 약속된 그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들은 이사야 53장, 미가 5:2, 시편 22편과 110편 같은 본문에서 그 근거를 찾았습니다. 유대인 편의 반론, 특히 세상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문제는 가볍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은 이를 두 번의 오심으로 답합니다.
- 예수는 무엇을 가르치셨는가?예수의 가르침의 중심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는 선포입니다. 그분은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셨고,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라고 가르치셨으며, 율법의 겉모양이 아니라 마음을 요구하셨습니다. 그러나 이 가르침은 가르치신 분과 떼어 놓을 수 없습니다. 예수는 자신을 따르고 자신께 오라고 부르셨기 때문입니다.
- 예수는 왜 비유로 말씀하셨는가?비유는 일상의 이야기를 빌려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는 말하기입니다. 이야기는 듣는 사람을 안으로 끌어들여 스스로 판단하게 하고, 그래서 마음을 여는 사람에게는 진리를 환히 비추고 마음을 닫은 사람에게는 오히려 가려 줍니다. 복음서는 이 두 면을 모두 말하며, 예수께서도 그렇게 의도하셨다고 교회는 이해해 왔습니다.
- 예수는 정말 죄가 없으셨는가?신약은 일관되게 예수께서 우리와 같은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다고 증언하며, 교회는 이를 칼케돈 신조의 고백으로 이어 왔습니다. 성전에서의 분노나 가나안 여자와의 대화처럼 처음 읽으면 걸리는 장면들도 있지만, 본문을 찬찬히 살피면 죄라고 부를 근거가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분의 무죄는 우리의 구원이 서 있는 자리와 맞닿아 있습니다.
- 예수는 왜 기적을 행하셨는가?복음서는 예수의 이적을 세 가지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이미 왔다는 표이고, 고통받는 사람을 향한 긍휼의 행동이며, 예수가 누구신지를 드러내는 표적입니다. 그러나 예수는 사람들의 호기심을 채우거나 요구에 따라 자신을 증명해 보이려고 이적을 행하지 않으셨습니다. 반대자들조차 그분이 놀라운 일을 행한다는 것은 부인하지 않고 그 출처를 문제 삼았습니다.
- 예수는 죽으신 뒤 사흘 동안 어디 계셨는가?성경은 이 질문에 길게 답하지 않습니다. 분명한 것은 예수께서 참으로 죽으셨다는 것, 십자가 위의 강도에게 "오늘 낙원에" 있으리라 약속하셨다는 것, 그리고 죽음의 세력이 그분을 붙잡아 두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사도신경 표준 본문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고백은 승리의 선포, 죽은 자의 거처에 이르심, 십자가의 고통이라는 서로 다른 방식으로 이해되어 왔고, 교회는 이 점에서 다양한 해석을 허용해 왔습니다.
성경
- 성경은 믿을 만한가?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책이라고 소개합니다. 필사본의 수와 이른 시기, 사해 사본 같은 발견은 오늘의 성경이 기록 당시의 본문을 매우 가깝게 전한다고 믿을 근거를 줍니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신뢰할 이유이며, 정직한 의문은 그 신뢰를 시험하는 일이 됩니다.
-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성경은 약 1,500년에 걸쳐 여러 저자가 쓴 책들의 모음입니다. 교회는 이 책들을 회의에서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히고 있던 책들을 알아보고 목록으로 확인했다고 고백합니다. 구약과 외경의 범위에 대해서는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의 입장이 다릅니다.
-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은 다른가?교회는 구약의 하나님과 신약의 하나님이 같은 한 분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구약에도 자비가 있고 신약에도 심판이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는 이 하나님을 가장 분명히 드러내신 분입니다. 가나안 정복 같은 어려운 본문은 정직하게 마주해야 하며,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도 그 해석은 하나로 모이지 않습니다.
-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때 가장 잘 읽힙니다. 문맥과 문학 양식을 살피고, 묵상하고 순종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교회와 함께 읽으십시오. 해석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읽기를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더 겸손하고 성실하게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 성경에는 모순이 있는가?성경에는 서로 달라 보이는 대목이 분명히 있습니다. 교회는 이를 증언자들의 시각 차이, 요약과 어림수, 필사 과정의 변이, 글의 종류로 설명해 왔습니다. 다만 어떤 설명은 가능성에 머문다는 점도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모든 세부가 맞추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견해가 갈리지만, 증언이 가리키는 사건과 그 중심 메시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 성경에 들지 않은 복음서는 무엇인가?도마복음, 유다복음, 마리아복음 같은 글은 대부분 2~3세기에 쓰였고, 그 상당수는 물질세계를 낮추고 비밀스러운 지식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영지주의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에게서 나왔는지, 일찍부터 널리 읽혔는지, 처음부터 받은 믿음과 일치하는지를 기준으로 네 복음서만 받아들였습니다. 일부 글이 훗날 억눌린 것은 사실이지만, 네 복음서가 더 이르고 더 확실한 증언이라는 것이 교회의 판단입니다.
- 창세기는 역사인가?창세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사람이 타락했으며, 하나님이 구원을 약속하셨다고 증언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점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1~11장을 어떤 종류의 역사로 읽을지, 곧 문자적 역사인지, 문학적 특징을 지닌 역사인지, 신학적 서술인지에 대해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견해가 갈립니다. 12~50장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로 역사의 무대에 더 가까이 서 있습니다.
- 성경은 노예제를 인정하는가?성경은 고대 사회에 있던 종살이를 그대로 전제하고 그 안에서 주인의 권한을 제한하지만, 노예제를 하나님의 이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을 납치하여 파는 일은 율법과 신약이 모두 중대한 죄로 정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가르침과 그리스도 안에서 주인과 종이 형제라는 가르침은 노예제의 뿌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오랫동안 노예제를 변호했던 것도 사실이며, 노예제 폐지를 이끈 사람들 또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 성경은 여성을 차별하는가?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말하며, 예수께서는 당시의 관습을 넘어 여자들을 제자와 증인으로 대하셨습니다. 다만 몇몇 본문이 교회와 가정에서 여자의 역할에 제한을 두는지를 두고는 성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해석이 갈립니다. 어느 쪽 해석에서든 성경은 여자를 업신여기거나 학대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 구약의 율법은 지금도 지켜야 하는가?그리스도인은 구원을 얻으려고 율법을 지키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어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그렇다고 율법이 버려진 것은 아닙니다. 율법은 거룩하며, 죄를 드러내고 하나님의 성품을 보여 주고,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어떤 명령이 오늘 어떻게 적용되는지는 교회가 오래 고민해 온 문제이며, 신실한 신자들 사이에 이해가 조금씩 다릅니다.
- 성경의 예언은 이루어졌는가?성경의 예언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신약은 구약의 많은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가리키며,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믿음의 근거로 여깁니다. 다만 모든 인용이 똑같이 분명한 것은 아니고 연대에 대한 학문적 논쟁도 있으며, 오늘의 사건을 예언에 짜 맞추거나 때를 계산하는 일은 성경이 경계합니다.
- 어떤 성경 번역을 읽어야 하는가?하나님을 알기 위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읽히도록 주어졌습니다. 번역은 원문에 충실한 쪽과 뜻을 쉽게 전하는 쪽으로 나뉘는데, 둘 다 장점과 한계가 있으므로 하나를 주로 읽으면서 다른 번역을 곁에 두고 견주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구원
- 죄란 무엇인가?성경이 말하는 죄는 단순히 나쁜 행동 몇 가지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에서 벗어나 그분을 거스르고 스스로 주인이 되려는 마음의 상태이며, 그 뿌리는 마음에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이 문제 아래 있어 죄는 우리를 얽매고 하나님과 이웃과 우리 자신을 갈라놓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죄를 말하는 것으로 끝나지 않고, 죄의 삯 곁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을 함께 놓습니다.
- 은혜란 무엇인가?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와 선물이며, 그 선물은 우리를 용서하고 또 변화시킵니다. 성경은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은혜는 죄를 가볍게 만드는 면허가 아니라 새 삶을 가르치고 이루는 힘입니다.
- 믿음이란 무엇인가?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눈을 감고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 아니라, 신실하신 분을 신뢰하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고, 선한 삶으로 열매를 맺으며, 의심 속에서도 도움을 구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향하는 분, 곧 그리스도께 구원이 있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 구원이란 무엇인가?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죄와 죄책과 죽음에서 건져 내시어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으로 데려가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이미 얻은 것이면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고 장차 완성될 것이며,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 구원은 잃을 수 있는가?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이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달려 있다는 점, 그리고 성경의 경고가 실제라는 점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믿는 사람이 끝내 떨어져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혁파, 루터파,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 가톨릭과 정교회가 서로 다르게 답해 왔습니다. 이 글은 각 입장을 가장 좋은 모습으로 소개하고, 불안한 사람에게 성경이 주는 위로를 함께 살핍니다.
- 회개란 무엇인가?회개는 죄를 두고 마음과 생각을 바꾸어 하나님께로 방향을 돌이키는 일입니다. 그것은 후회나 죄책감에 빠져 있는 것과 다르고, 하나님께서 기다리고 계신 집으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성경은 회개를 사람이 해야 할 응답이자 하나님이 주시는 선물로 말하며, 한 사람이 돌아올 때 하늘이 기뻐한다고 가르칩니다.
- 복음이란 무엇인가?복음은 ‘기쁜 소식’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예수 안에서 왔고, 그리스도가 우리 죄를 위해 죽으시고 사흘째 다시 살아나셨으며, 그래서 누구든지 돌이켜 그분을 믿고 용서와 새 삶을 받을 수 있다는 소식입니다. 복음은 따라야 할 충고가 아니라 이미 일어난 사건에 대한 소식이며, 사람은 그것을 받아들입니다.
- 칭의란 무엇인가?칭의는 하나님이 죄인을 그리스도 때문에 의롭다고 받아 주시는 일입니다. 모든 교회는 이것이 우리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믿음을 통해 온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칭의가 법정의 선언인지, 사람을 실제로 새롭게 하는 일까지 포함하는지, 믿음과 행함은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종교개혁 이후 교회들이 다르게 설명해 왔고, 오늘은 상당 부분 서로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성화란 무엇인가?성화는 하나님이 성령으로 신자를 그리스도를 닮은 모습으로 변화시켜 가시는 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일이면서 신자가 순종으로 응답하는 일이고, 말씀과 기도와 성례와 교제 같은 은혜의 수단을 통해 자라며, 이 세상에서는 싸움과 실패 속에서 이루어집니다. 이 변화가 어디까지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개혁교회, 웨슬리 전통, 동방 정교회의 강조가 다릅니다.
- 예정이란 무엇인가?예정은 우리의 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며, 그분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 택하심이 무엇에 근거하고 인간의 자유와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오랜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전통이 함께 고백하는 것은, 구원은 값없는 선물이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사람은 결코 쫓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 용서받지 못할 죄란 무엇인가?예수께서 말씀하신 성령을 훼방하는 죄는, 성령께서 분명히 하시는 하나님의 일을 알면서도 마귀의 일이라 고집하며 그 용서의 길 자체를 거부하는 것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한순간의 실수나 의심, 떠오르는 불경한 생각과 구별해 왔습니다. 이 죄가 아닐까 두려워하는 마음은 하나님이 아직 그 사람 안에서 일하고 계신다는 표로 읽혀 왔습니다.
- 어려서 죽은 아이는 어떻게 되는가?성경은 어려서 죽은 아이의 운명을 직접 말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소망, 아이들을 품으신 예수, 세상을 심판하시는 분의 공의와 사랑은 그리스도인들이 크고 깊은 소망을 품도록 이끌어 왔습니다. 교회는 이 소망을 어떻게 표현할지에서 서로 다르지만, 하나님이 이 아이들을 외면하시리라고 보는 전통은 오늘날 거의 없습니다. 이 글은 확답할 수 없는 곳에서는 확답하지 않고, 슬픔 가운데 있는 부모에게 줄 수 있는 소망을 말합니다.
- 자살한 사람은 구원받을 수 있는가?성경은 자살을 용서받지 못할 죄라고 부르지 않습니다. 구원은 생애의 마지막 행동이 아니라 그리스도께 달려 있으며, 한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아시고 판단하시는 분은 하나님뿐입니다. 동시에 생명은 하나님의 선물이며, 지금 죽음을 생각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가 살아서 도움을 받는 것입니다.
고난과 악
- 선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성경은 이 질문을 피하지 않지만 모든 것을 설명하는 이론도 주지 않습니다. 세상은 선하게 창조되었으나 죄로 망가졌고, 하나님은 악 가운데서도 선을 이루시며, 욥에게는 설명 대신 당신 자신을 보이셨고, 십자가에서는 고난 속으로 직접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악이 끝나는 날을 약속하십니다.
- 고난에도 의미가 있는가?성경은 모든 고난에 이유를 붙이지 않으며, 고난이 언제나 벌이라고도 말하지 않습니다. 대신 탄식을 믿음의 말로 받아 주시고, 우리의 연약함을 아시는 그리스도가 고난 속에 함께하시며, 고난받은 사람이 같은 처지의 사람을 위로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의미는 설명이 아니라 함께하심과 소망 안에서 주어집니다.
-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고 말하지만, 응답이 언제나 우리가 구한 그대로라고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구하라고 가르치셨고, 겟세마네의 예수와 바울의 가시는 거절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도 응답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혼잣말이 아니라 살아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말이며, 그 응답을 시험관에서처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참새 한 마리와 우리의 모든 걸음까지 돌보시며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이끄신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사람의 선택과 책임도 진지하게 다룹니다. 교회는 이 둘을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강조를 두어 왔지만, 선하신 하나님의 손에 우리가 있다는 위로에는 한마음입니다.
- 왜 아이들이 고통받는가?성경은 아이들의 고통에 대해 모든 것을 설명해 주는 답을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그 고통을 보고 계시며, 아이들을 해치는 일을 악으로 규정하시고, 그 일을 한 사람들을 심판하실 것이며, 예수께서 아이들을 품에 안으신 분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아이들이 더는 울지 않을 날을 약속합니다. 이 글은 그 약속이 지금의 고통을 지워 주지는 않는다는 점도 정직하게 인정합니다.
- 자연재해는 왜 일어나는가?성경은 지진과 폭풍으로 죽은 사람들이 다른 사람보다 죄가 더 많아서 그렇게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피조 세계 전체가 아직 온전히 회복되지 않은 채 탄식하고 있으며, 하나님은 그 속에서 고난받는 사람들 곁에 계시고 새 창조를 약속하신다고 말합니다. 재난의 이유를 모두 아는 척하지 않는 것이 이 질문에 대한 가장 정직한 시작입니다.
- 병은 죄의 벌인가?성경은 병든 사람을 죄인으로 판단하는 일을 분명히 막습니다. 예수께서는 날 때부터 눈먼 사람이 누구의 죄 때문이냐는 물음을 물리치셨고, 욥의 친구들은 하나님께 책망을 받았습니다. 어떤 병이 죄와 이어진 경우가 있다고 성경이 말하는 곳도 있지만, 그것을 규칙으로 삼거나 다른 사람의 병에 대입하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병든 사람을 고치시고 용서하시는 분이십니다.
- 하나님은 왜 고쳐 주시지 않는가?하나님은 병을 고치실 수 있고 지금도 고치시며, 우리는 낫기를 구하라는 권면을 받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병이 이 세상에서 낫는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바울의 가시와 디모데의 잦은 병이 보여 주듯 낫지 않는 고난 속에서도 은혜는 족하며, 몸의 완전한 고침은 부활 때에 이루어집니다. 낫지 않는 것은 누구의 믿음이 모자란 탓이 아닙니다.
- 슬픔을 어떻게 견딜 수 있는가?슬픔은 믿음이 없다는 표시가 아니라 사랑의 다른 얼굴입니다. 예수께서도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 우셨고, 성경은 소망 없는 사람처럼 슬퍼하지 말라고 할 뿐 슬퍼하지 말라고 하지 않습니다. 슬픔에는 시간이 걸리며, 하나님은 마음이 상한 사람 가까이 계시고, 교회는 우는 사람과 함께 웁니다.
- 우울증은 믿음이 부족해서인가?아닙니다. 우울증은 몸과 마음이 함께 앓는 병이지, 믿음에 대한 판결이 아닙니다. 엘리야와 시편 기자와 예레미야도 깊은 어둠을 지났고, 하나님은 그들을 꾸짖기보다 먼저 돌보셨습니다. 기도와 교회와 함께 의사와 상담의 도움을 받는 것은 믿음이 없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이 주신 길을 따르는 것입니다.
삶과 의미
- 사랑이란 무엇인가?성경은 사랑을 감정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성품과 그분이 하신 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은 사랑이시라"는 말씀은 십자가에서 가장 분명하게 드러났고, 그 사랑은 우리에게 하나님과 이웃, 심지어 원수까지 사랑하라는 부르심으로 이어집니다. 사랑에는 감정과 몸의 반응도 있지만, 성경이 말하는 사랑의 핵심은 상대의 유익을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데 있습니다.
- 인간은 왜 존재하는가?성경은 사람이 우연히 생겨난 존재가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셨고 하나님을 위해 지으신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 목적은 하나님을 알고 사랑하며 그분의 영광을 드러내는 것이고, 이웃을 사랑하는 삶이 그 안에서 나옵니다. 스스로 의미를 만든다는 반론은 진지하게 들어야 하지만, 성경은 의미가 만들어 내는 것이기 이전에 선물로 받는 것이라고 답합니다.
- 인간이란 무엇인가?성경은 사람을 흙으로 지음 받은 피조물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존재라고 말합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은 같은 존엄을 가지지만, 그 형상은 죄로 훼손되었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워집니다. 사람이 동물이나 물질일 뿐이라는 반론에 대해 교회는 사람의 몸과 흙의 뿌리를 부인하지 않으면서도 그것이 전부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 용서는 어떻게 가능한가?성경은 용서를 먼저 받은 사람이 베푸는 것으로 설명합니다.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의 갚을 수 없는 빚을 탕감하셨기에, 우리도 상처 준 사람을 놓아 줄 수 있습니다. 용서는 아무 일도 없었던 척하는 것도, 잘못을 변명하는 것도 아니며, 정의를 포기하는 것이 아니라 심판을 하나님께 맡기는 일입니다.
- 소망이란 무엇인가?성경이 말하는 소망은 ‘잘되겠지’ 하는 바람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과 그리스도의 부활에 근거한 확신 있는 기대입니다. 소망은 아직 보이지 않는 것을 인내로 기다리게 하고, 무너진 자리에서도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붙잡게 합니다. 그 끝에는 눈물이 씻기고 만물이 새로워지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있습니다.
-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성경은 삶의 방식을 규칙 목록이 아니라 사랑으로 요약합니다. 공의를 행하고 인자를 사랑하며 하나님과 겸손히 동행하는 삶이며, 이것은 구원을 얻기 위한 노력이 아니라 이미 받은 은혜에 대한 응답입니다. 그리스도인이 위선적이라는 반론은 아프지만 정당한 면이 있고, 예수께서 먼저 위선을 꾸짖으셨습니다.
- 행복이란 무엇인가?성경은 행복을 기분 좋은 상태가 아니라 하나님과 바른 관계 안에서 누리는 복됨과 기쁨으로 말합니다. 이 기쁨은 형편이 좋을 때만이 아니라 어려움 속에서도 이어질 수 있다고 약속됩니다. 그리고 행복은 직접 붙잡으려 할 때보다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는 삶에서 따라오는 선물로 그려집니다.
- 참된 자유란 무엇인가?성경이 말하는 자유는 아무것에도 매이지 않는 상태가 아니라 죄의 종살이에서 풀려나 사랑으로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 이 자유는 사람이 스스로 얻는 것이 아니라 아들이 값을 치르고 주시는 것이며, 방종과는 반대편에 있습니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일이 자유를 빼앗는다는 반론은 진지하게 다룰 만하지만, 성경은 누구도 주인 없이 살지 않는다고 답합니다.
- 진리란 무엇인가?성경에서 진리는 먼저 믿을 수 있고 신실한 것을 가리키며, 신약은 그 진리가 한 사람, 곧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진리가 있다는 것과 우리가 그것을 모두 안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이므로, 그리스도인은 진리를 말하되 사랑과 겸손으로 말하도록 부름받습니다. 모든 것이 상대적이라는 주장도 진지하게 들을 만하지만, 예외 없이 말하면 스스로를 무너뜨립니다.
- 선과 악은 누가 정하는가?성경은 선의 기준이 사람들의 합의나 하나님의 기분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의 선하신 성품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은 그 기준을 사람의 양심에 새기셨고, 율법으로 밝히셨으며, 사랑으로 요약하셨습니다. 도덕 감각이 어떻게 생겨났는지 설명할 수 있다고 해서 그 도덕이 참인지 아닌지가 저절로 가려지는 것은 아니라고 그리스도인들은 봅니다.
- 염려와 불안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성경은 염려하는 사람을 꾸짖기보다 염려를 맡길 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며, 기도는 불안을 그분께 가져가는 길이고, 그분의 평강은 느낌이 아니라 지켜 주심으로 주어집니다. 불안장애는 몸의 병처럼 치료받을 수 있는 병이므로 기도와 함께 의사와 상담자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표시가 아닙니다.
- 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성경은 돈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고 돈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경고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맡은 사람이므로, 일하고 필요를 채우되 자족하며 넉넉히 나누는 것이 길입니다. 믿으면 반드시 부유해진다는 가르침은 성경 전체의 증언과 맞지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물질적 삶에도 관심을 가지신다는 점은 성경이 분명히 말합니다.
- 일은 어떤 의미가 있는가?성경에서 일은 타락 이후에 생긴 형벌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맡기신 처음의 소명입니다. 타락 이후에 달라진 것은 일 자체가 아니라 일에 따라붙는 수고와 헛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일을 구원의 수단이나 존재의 증명으로 삼지 않고, 주께 하듯 이웃을 섬기는 길로 받으며, 쉼과 은혜 안에서 일의 한계를 배웁니다.
- 성과 결혼에 대해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성경은 성과 결혼을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로 말하며, 그 자리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신실하게 결합하는 결혼으로 정합니다. 독신 또한 존귀한 부르심이며, 어떤 형태의 학대도 성경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역사 내내 가르쳐 온 바이며, 오늘날 일부 교회는 이 가르침의 범위를 두고 달리 판단합니다. 어느 쪽에서든 사람을 멸시할 이유는 없습니다.
- 의심해도 괜찮은가?성경은 의심하는 사람을 내치지 않습니다. 도마와 세례 요한과 시편 기자들은 정직하게 물었고, 하나님은 그들을 받아 주셨습니다. 다만 믿음을 포기하려는 마음으로 굳어진 불신앙과, 이해를 구하며 하나님께 묻는 의심은 다릅니다. 의심은 공동체와 말씀과 기도 안에서 인내하며 풀어 갈 수 있는 길입니다.
- 왜 쉬어야 하는가?성경에서 쉼은 게으름이 아니라 하나님이 창조 때 복 주신 리듬이며, 종 되었던 백성을 위한 자유의 선물입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의 주인이시며 수고하는 자를 쉬게 하겠다고 약속하십니다. 쉬는 것은 내 수고가 세상을 붙들고 있지 않다고 인정하고 하나님을 신뢰하는 일입니다. 안식일과 주일을 어떻게 지킬지에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교회와 실천
- 성령은 누구신가?교회는 성령이 하나님의 막연한 힘이 아니라 성부, 성자와 함께 한 하나님이신 위격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성령은 창조 때부터 일하셨고,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로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성품을 빚으십니다. 오늘날 은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이해가 있습니다.
- 교회는 왜 필요한가?성경은 교회를 건물이나 조직이기 전에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은 개인적이지만 혼자 하는 것이 아니어서, 말씀과 기도와 성례와 교제 속에서 자라도록 지어졌습니다. 교회는 상처와 실패를 남겨 왔으나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도 교회가 필요하다는 증언은 이어집니다.
- 세례와 성찬은 무엇인가?세례와 성찬은 예수께서 직접 명하신 두 가지 거룩한 예식으로,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생명을 시작하는 일을, 성찬은 그분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에 모두 동의하지만, 누구에게 세례를 줄 것인가와 성찬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계신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르게 이해해 왔습니다. 이 글은 그 차이를 가능한 한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 왜 다른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인가?기독교는 사람이 하나님께 올라가는 길이 아니라 하나님이 사람에게 내려오신 이야기라고 주장합니다. 행위가 아니라 은혜로 용서받고, 예수 안에서 하나님을 만나며, 부활이라는 역사적 주장을 누구나 따져 볼 수 있다는 점이 기독교의 독특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다른 종교 안의 참된 것을 존중하며, 기독교 자신의 실패도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의로운 재판장이시며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고 말하고, 동시에 구원은 그리스도께만 있다고 말합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의 운명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있고, 성경이 이 질문에 얼마나 직접 답하는지에 대해서도 생각이 갈립니다. 분명한 것은 하나님이 불의하지 않으시다는 것과, 우리가 복음을 전하도록 부름받았다는 것입니다.
- 어떻게 믿음을 시작할 수 있는가?성경은 믿음의 시작을 어려운 자격 시험이 아니라 초대로 그립니다. 예수께서 부르시고, 사람은 돌이켜 그분을 신뢰하며,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녀를 달려 나가 맞으십니다. 확신이 없어도, 의심이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두를 필요도, 누구에게 떠밀릴 필요도 없습니다.
- 예배란 무엇인가?예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고, 그분께 마땅한 영광과 감사와 순종으로 응답하는 일입니다. 함께 모여 드리는 모임에서 시작하여 일상 전체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배의 형식은 교회마다 다르지만,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한 분 하나님이시며, 아버지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그분께 말씀드리는 관계의 대화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은 찬양과 간구, 용서와 보호를 담은 기도의 본보기이고, 성령께서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정해진 공식이 응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솔직하게 나아오는 사람을 반기십니다.
- 교회는 왜 이렇게 많이 나뉘었는가?교회가 나뉜 까닭은 하나가 아닙니다. 진리라고 믿는 것을 지키려는 신념도 있었고, 교만과 다툼과 정치와 문화의 차이 같은 죄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분열을 슬퍼하되, 그리스도 안의 하나 됨이 모든 점에서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갈라진 교회들은 지금도 같은 신경으로 같은 주님을 고백합니다.
- 가톨릭과 개신교는 무엇이 다른가?가톨릭(천주교)과 개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성,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고백하는 한 그리스도교입니다. 둘의 차이는 권위의 중심(성경과 전통, 교황), 구원의 설명(칭의), 성례의 수와 이해, 마리아와 성도에 대한 신앙, 교회의 구조에서 나타납니다. 이 글은 각 교회의 가르침을 가능한 한 그 교회의 말로 소개합니다.
- 천사와 귀신은 실재하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지으신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들, 곧 하나님을 섬기는 천사와 하나님께 맞선 사단과 귀신이 실재한다고 전제하고 가르칩니다. 교회는 이를 늘 고백해 왔지만, 그들은 하나님과 맞먹는 존재가 아니라 피조물이며 그리스도께서 이미 십자가에서 이기셨습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이 문제를 부정하지도, 여기에 사로잡히지도 않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깨어 살아갑니다.
- 십일조는 꼭 해야 하는가?십일조는 구약 율법에서 수확의 십분의 일을 하나님께 드리게 한 규정입니다. 신약은 그리스도인에게 이 비율을 율법으로 명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형편에 따라, 넉넉하게 드리라고 가르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십일조를 지금도 지켜야 할 기준으로 보는 쪽과 자유로운 헌신의 출발점으로 보는 쪽으로 나뉘지만, 억지로나 두려움으로 드리지 말아야 하고 가난한 이를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에는 모두 동의합니다.
- 이단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이단을 분별하는 기준은 사람의 인상이나 규모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 성경, 그리고 열매입니다. 예수가 누구이신지, 구원이 무엇으로 말미암는지, 성경 위에 다른 권위를 세우는지, 지도자가 자기를 높이는지, 사람을 묶고 고립시키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견해 차이는 이단이 아니며, 분별은 정죄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려는 사랑에서 나와야 합니다.
- 기독교는 서양 종교인가?기독교는 서양에서 시작되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는 아시아의 유대 땅에서 나셨고, 복음은 처음 몇 세기 동안 아시아와 아프리카로도 널리 퍼졌으며, 오늘 그리스도인의 대다수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에 삽니다. 서양 선교와 제국이 얽힌 아픈 역사는 사실이지만, 복음은 어느 한 문화의 소유가 아니라 모든 민족을 향한 것입니다.
- 그리스도인은 제사를 지내도 되는가?성경은 부모를 공경하라고 명하고, 우상 숭배와 귀신과의 교제를 금합니다. 두 명령 모두 분명하지만 제사가 그 둘 가운데 어디에 해당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의 판단이 나뉩니다. 한국 가톨릭은 고쳐진 예절을 효도와 공경의 표현으로 허락하고, 대부분의 개신교는 제사 대신 추도예배를 드립니다. 어느 쪽이든 가족에 대한 사랑과 양심, 그리고 제사를 지내는 이들에 대한 존중이 함께 가야 합니다.
마지막 일
-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성경은 그리스도 안에서 죽은 사람이 주와 함께 있고, 마지막 날에 몸이 다시 살아나며, 그 뒤에 심판이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소망의 근거는 죽음을 이기신 그리스도의 부활입니다. 죽음과 부활 사이의 상태를 어떻게 설명할지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서로 다르지만, 죽음이 끝이 아니라는 점은 한결같이 고백해 왔습니다.
- 천국과 지옥은 실재하는가?성경은 하나님과 함께 누릴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쁨,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자리의 무서운 실재를 모두 말합니다. 천국은 구름 위의 휴양지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며, 지옥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자 생명이신 하나님을 잃는 것입니다. 지옥의 본성에 대해서는 영원한 형벌, 소멸설 등 서로 다른 견해가 있어, 이 글은 그것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 예수는 다시 오시는가?교회는 처음부터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몸으로, 눈에 보이게, 영광 가운데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며, 이 약속은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과 깨어 있음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 휴거와 천년왕국은 무엇인가?휴거는 재림 때 신자들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 주를 맞이한다는 가르침(살전 4:17)이고, 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 동안의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 전천년설, 무천년설, 후천년설이 있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르게 읽어 왔습니다. 이 글은 어느 편도 고르지 않고 각 견해를 공정하게 소개하며, 모두가 함께 고백하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 세상의 끝은 언제 오는가?성경의 답은 분명하게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날과 그 때를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고, 제자들이 때를 물었을 때에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전쟁과 지진 같은 징조는 시간표가 아니라 깨어 있으라는 알림이며, 날짜를 계산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틀렸습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두려워하며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 영생이란 무엇인가?성경이 말하는 영생은 끝없이 이어지는 시간만이 아니라, 참 하나님과 그분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생명입니다. 이 생명은 믿는 사람에게 지금 시작되고, 몸의 부활과 새 창조 안에서 완성됩니다. 그것은 얻어 내는 보상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받는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 최후의 심판이란 무엇인가?최후의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사람의 삶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세상의 모든 일을 바로잡으시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날을 두려움만이 아니라 소망으로도 기다립니다. 심판자가 곧 자기를 위해 죽고 살아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 천국에서 서로 알아볼 수 있는가?성경은 부활한 사람이 이 땅의 삶과 이어진 자기 자신으로 다시 살아난다고 가르치므로, 서로를 알아볼 것이라는 소망에는 든든한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그 모습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며, 알지 못하는 부분은 정직하게 열어 두어야 합니다. 모든 관계는 주와 함께 있음 안에서 완성됩니다.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