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

짧은 답

성경은 약 1,500년에 걸쳐 여러 저자가 쓴 책들의 모음입니다. 교회는 이 책들을 회의에서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히고 있던 책들을 알아보고 목록으로 확인했다고 고백합니다. 구약과 외경의 범위에 대해서는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의 입장이 다릅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한 권의 책이 한 번에 쓰인 것이 아닙니다. 전통적인 계산으로는 모세 시대로부터 신약의 마지막 책에 이르기까지 대략 1,500년 동안, 왕과 목자와 어부와 의사와 학자를 포함한 여러 사람이 서로 다른 장소와 언어와 장르로 썼습니다. 구약의 많은 책이 더 늦게 쓰이거나 편집되었다고 보는 학자도 많지만, 이 책들이 여러 세기에 걸쳐 모였다는 데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성경 자신은 이 책들이 단지 사람의 생각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베드로는 같은 생각을 이렇게 풀어 줍니다.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

벧후 1:21

사람이 쓰되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뜻입니다. 저자의 성격과 문체는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누가는 자기가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나도 데오빌로 각하 당신에게 차례대로 써서 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으니" 뒤에 썼다고 밝힙니다 (눅 1:3). 그래도 그리스도인들은 그 과정 전체 안에 하나님의 인도가 있었다고 믿습니다.

구약의 범위에 대해서는 예수께서 직접 말씀하신 것이 있습니다. 부활하신 뒤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 하시고

눅 24:44

율법과 선지자와 시편은 흔히 유대인의 성경을 이루는 세 부분을 가리킨다고 이해됩니다. 시편은 셋째 부분인 성문서에서 가장 큰 책입니다. 다만 그 셋째 부분이 당시 얼마나 확정되어 있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예수께서는 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으셨고, 자기를 가리키는 책으로 읽으셨습니다. 바울도 유대인의 가장 큰 유익이 "모든 면에서 많으니 주된 이유는 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들이 맡겨졌다는 것이라."이라고 말합니다 (롬 3:2).

신약은 그 뒤에 쓰였습니다. 사도들의 편지는 돌려 읽도록 쓰였고, 바울은 골로새 교회에 편지를 읽은 뒤 라오디게아 교회에서도 읽게 하라고 부탁합니다 (골 4:16). 베드로후서는 더 나아가 바울의 편지들을 "다른 성경"과 나란히 놓습니다.

또 그의 모든 서신에서도 이것들에 관해 그 안에서 말하였으되 그 안에 깨닫기 어려운 것이 더러 있으므로 배우지 못하여 불안정한 자들이 다른 성경 기록들과 같이 그것들도 왜곡하다가 스스로 파멸에 이르느니라.

벧후 3:16

아주 이른 시기에 이미 일부 사도의 글이 구약과 같은 무게로 읽히기 시작했다는 증거입니다. 히브리서의 말씀은 이 흐름 전체를 요약합니다. 옛적에 선지자들로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마지막 날들에는 자신의 아들을 통하여 우리에게 말씀하셨으며 그분을 모든 것의 상속자로 정하시고 또 그분으로 말미암아 세상들을 만드셨느니라."라는 것입니다 (히 1:1-2).

교회의 증언

그렇다면 어떤 책이 성경에 들어가는지는 누가, 어떻게 정했을까요? 먼저 분명히 할 것이 있습니다. 교회는 성경의 목록을 한 번의 회의에서 만들어 내지 않았습니다. 복음서들과 바울의 편지들은 2세기 중반에 이미 여러 교회에서 예배 때 읽히고 있었고, 어느 책이 믿을 만한지에 대한 판단은 오랜 사용 속에서 자랐습니다. 고대 교회가 책을 받아들일 때 물은 것은 대체로 세 가지입니다. 사도에게서, 또는 사도의 증언에 가까운 사람에게서 나온 책인가. 교회가 처음부터 받은 믿음과 맞는가. 여러 교회가 널리 사용해 왔는가.

이 질문을 절실하게 만든 사람 가운데 하나가 2세기의 마르키온입니다. 그는 구약을 버리고, 손질한 누가복음과 바울 서신 일부만으로 자기 성경을 만들었습니다. 교회는 이것을 오류로 판단했고, 그 일은 교회가 무엇을 성경으로 받아 왔는지 분명히 말해야 하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주후 367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는 부활절 서신에서 오늘의 신약 27권을 하나도 더하거나 빼지 않고 열거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제39 부활절 서신. 이것이 그런 목록으로 남아 있는 가장 이른 것입니다. 이후 4세기 말 북아프리카의 히포(393년)와 카르타고(397년) 교회 회의도 같은 신약 목록을 확인했습니다.

신약의 모든 책이 처음부터 같은 확신을 얻은 것은 아닙니다. 히브리서, 야고보서, 베드로후서, 요한이서와 삼서, 유다서, 요한계시록은 일부 지역에서 오랫동안 논의되었습니다. 이 점은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교회가 신중하게 따져 보았다는 뜻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을 두고 교회가 책에 권위를 ‘부여했다’고 보는 비판자도 있지만, 교회들 자신은 책이 이미 가진 권위를 ‘알아보았다’고 말합니다. 다만 강조점이 다릅니다. 개신교는 성경이 스스로 하나님의 말씀임을 증거하고 성령이 그것을 확증하신다고 강조합니다. 가톨릭과 정교회는 성경과 교회의 살아 있는 전승이 함께 간다고 보면서, 성령의 인도 아래 교회가 목록을 분별하여 권위 있게 확정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쪽도 교회가 성경 위에 서서 마음대로 정했다고 보지 않습니다.

구약의 범위는 더 어려운 문제입니다. 개신교의 구약은 39권으로, 유대교가 24권으로 세는 히브리 성경과 내용이 같습니다. 가톨릭 구약에는 토빗기, 유딧기, 지혜서, 집회서, 바룩서, 마카베오기 상·하권이 더해져 46권이고, 정교회는 그보다 몇 권을 더 받아들입니다. 개신교는 이 책들을 외경이라 부르고, 가톨릭은 제2경전이라 부릅니다. 이 책들은 초기 교회가 쓰던 그리스어 구약(70인역)에 들어 있었으므로 많은 교부가 읽고 인용했고, 아우구스티누스와 앞의 북아프리카 회의들도 이 책들을 정경 목록에 넣었습니다. 반면 히에로니무스는 이 책들이 교회에서 읽기에는 유익하지만 교리를 세우는 데는 쓰지 않는다고 구분했습니다. 개신교는 대체로 이 구분을 따르고, 가톨릭은 피렌체 공의회(1442년)의 목록을 이어 1546년 트렌트 공의회에서 이 책들을 정경으로 확정했습니다. 어느 쪽이 맞는지는 이 글이 정할 수 없습니다. 다만 세 전통이 기독교의 핵심, 곧 하나님과 그리스도와 구원에 대해서는 같은 성경으로 같은 복음을 읽고 있다는 점은 기억할 만합니다.

매튜 헨리는 성경의 가치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성경은 영생에 이르는 확실한 안내자입니다" 매튜 헨리. 니케아 신경도 성령이 선지자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고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원어로 보기

디모데후서 3:16의 "감동으로 된"은 헬라어 테오프뉴스토스(θεόπνευστος)입니다. 문자 그대로는 ‘하나님이 숨을 내쉬신’이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성경이 하나님의 숨결에서 나온 것임을 말합니다. 사람이 하나님에 대해 쓴 책일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서 나온 책이라는 고백입니다. 하지만 이 말은 저자가 받아쓰기만 했다는 뜻으로 쓰이지는 않았고, 위에서 보았듯이 저자의 개성은 그대로 남아 있습니다.

‘성경’으로 옮긴 말은 그라페(γραφή)로, 본래 ‘쓴 것, 글’이라는 뜻입니다. 신약에서는 대개 구약을 가리킵니다. 베드로가 바울의 편지를 "다른 성경"과 함께 말한 것은 이 말이 신약의 글에까지 넓어지고 있었다는 흔적입니다. ‘정경’은 헬라어 카논(κανών)을 옮긴 말이고, 카논은 본래 ‘자, 기준’이라는 뜻입니다. 교회가 책들을 심판한 것이 아니라, 책들이 신앙의 기준이 되어 왔다는 뜻으로 읽는 이들이 많습니다.

흔한 반론과 답

"성경의 목록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와 교회 권력자들이 정치적으로 정한 것이다." 이 반론에는 일리가 있는 부분이 있습니다. 교회 회의에는 실제로 정치가 있었고, 책의 승인 과정이 오래 걸리고 논쟁적이었다는 사실도 맞습니다. 그러나 325년의 니케아 공의회는 성경의 목록을 정하지 않았습니다. 그 회의가 다룬 것은 그리스도의 신성 문제였습니다. 복음서들은 그보다 150년 이상 앞서서 널리 읽히고 있었고, 목록은 여러 지역에서 오랜 시간에 걸쳐 거의 같은 결론으로 모였습니다. 황제의 명령 하나로 이런 일치가 생겼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다른 복음서들도 있었는데 교회가 일부러 감추었다." 도마복음이나 유다복음 같은 글이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학자들은 이 글들의 지금 형태를 대체로 2세기 이후의 것으로 봅니다(도마복음에 더 이른 말씀이 일부 남아 있다고 보는 학자도 있습니다). 이 글들은 사도들의 증언에서 멀고 그리스도에 대해 다른 가르침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 글들을 정경으로 받지 않은 것은 사도적 기원과 처음부터 받은 믿음이라는 기준에 비추어서였습니다. 물론 이 기준을 받아들이지 않는 사람에게는 이 판단이 만족스럽지 않을 수 있습니다. 어떤 교회 지도자들이 이런 글을 읽지 말라고 경고했고 사본이 사라진 경우도 있었던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글들은 누구나 읽을 수 있고, 학자들이 널리 연구합니다.

"수천 년 동안 손으로 베끼는 사이에 본문이 다 달라졌을 것이다." 필사본에 차이가 있는 것은 사실입니다. 신약은 5,000개가 넘는 그리스어 필사본이 있고, 그 사이에 철자와 낱말 순서 같은 사소한 차이가 많이 있습니다. 하지만 이 많은 사본이 있기에 비교해서 원래 본문을 가려낼 수 있습니다. 구약에서는 사해 사본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전체 두루마리가 약 천 년 뒤의 마소라 본문과 거의 같습니다 사해 사본, 이사야 두루마리. 본문이 의심스러운 몇몇 대목은 번역 성경의 난외주에도 밝혀져 있고, 이 가운데 어느 것도 중심 교리를 바꾸지 않는다고 학자들은 대체로 평가합니다. 더 자세한 문제는 성경은 믿을 만한가?에서 다룹니다.

더 생각해 보기

우리가 읽는 한글 성경도 이 긴 전달의 한 부분입니다. 한글 성경은 19세기 말 만주와 일본에서 번역된 복음서로 시작했고, 1911년에 구약과 신약이 하나로 묶인 『셩경젼셔』가 나왔습니다. 이 앱이 인용하는 개역한글판은 1961년에 나왔고, 오늘 많은 교회는 이를 다시 손본 개역개정판(1998년)을 씁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번역을 거쳐도 여전히 말씀으로 사람에게 이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사람들이 사도의 말을 "이런 까닭에 우리가 또한 하나님께 끊임없이 감사를 드림은 너희가 우리에게서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받을 때에 그것을 사람들의 말로 받지 아니하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기 때문이니 진실로 그러하도다. 그 말씀이 또한 믿는 너희 안에서 효력 있게 일하느니라." 받았다고 감사합니다 (살전 2:13).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졌는지를 알면 이 책을 더 가까이할 수 있을까요? 성경이 사람의 글이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말은 나에게 어떻게 들립니까? 베뢰아 사람들처럼 "이들은 데살로니가에 있던 자들보다 더 고귀하여 온전히 준비된 마음으로 말씀을 받아들이고 그것들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므로"해 본 적이 있습니까 (행 17:11)?

더 읽으려면 성경은 믿을 만한가?와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보십시오.

출처

  1. 아타나시우스, 제39 부활절 서신 367 — 오늘의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열거한 가장 이른 목록.
  2.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3. 쿰란 문서, 사해 사본 1QIsa^a — 기원전 2세기경의 이사야서 전체 사본. 천 년 뒤의 마소라 본문과 거의 같다.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