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시는가?

짧은 답

성경은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신다고 말하면서도,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고 기록합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그 존재와 성품과 목적에서 변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해 왔고, 뜻을 돌이키심은 사람의 돌이킴에 응답하시는 그분의 행하심을 가리킨다고 읽어 왔습니다. 이 본문들을 어떻게 이해할지는 지금도 논의되지만, 어느 쪽이든 기도는 헛되지 않습니다.

성경의 답

한쪽에서 성경은 하나님의 변하지 않으심을 분명히 말합니다.

나는 주라 변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

말 3:6

모든 좋은 선물과 모든 완전한 선물은 위에서 오며 빛들의 아버지로부터 내려오거니와 그분께는 변함도 없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느니라.

약 1:17

민수기에서 발람은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므로 "하나님은 사람이 아니시니 거짓말하지 아니하시고 사람의 아들이 아니시니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는도다. 그분께서 말씀하셨은즉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리요? 그분께서 이르셨은즉 그것을 실행하지 아니하시리요?" 후회도 없으시다는 것입니다 (민 23:19). 사무엘상 15:29도 하나님은 "또한 이스라엘의 힘이신 이는 거짓말을 하거나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리니 그분은 사람이 아니므로 뜻을 돌이키지 아니하시나이다."이라고 말합니다 (삼상 15:29).

그런데 다른 쪽에서 성경은 하나님이 뜻을 돌이키셨다고도 말합니다. 이스라엘이 금송아지를 만들었을 때 하나님은 그들을 진멸하겠다고 하셨고, 모세는 간절히 중보합니다. 결과는 이렇습니다.

주께서 자신의 백성에게 내리려 하던 그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시니라.

출 32:14

요나가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고 외쳤을 때도 그렇습니다 (욘 3:4). 니느웨 사람들이 악한 길에서 돌이키자 어떻게 되었습니까?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일 곧 그들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재앙 즉 친히 그들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그 재앙에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욘 3:10

더 놀라운 구절도 있습니다. 같은 사무엘상 15장에서, 29절에 하나님은 변개치 않으신다고 하면서 11절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사울을 왕으로 삼은 것으로 인해 슬퍼하노니 그가 나를 따르는 것에서 돌이켜 내 명령을 수행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시니라. 그것으로 인해 사무엘이 근심하여 온밤을 주께 부르짖으니라." (삼상 15:11). 한 장 안에서 두 말씀이 나란히 있다는 것은 성경 기자들이 이것을 모순으로 여기지 않았다는 뜻으로 볼 수 있습니다.

예레미야 18장은 이 이치를 원리로 풀어 줍니다. 하나님이 어떤 나라에 재앙을 말씀하셨어도 "만일 내가 멸하리라고 선포한 그 민족이 자기들의 악에서 돌이키면 내가 그들에게 행하려고 생각했던 그 재앙에 대하여 뜻을 돌이키겠고" (렘 18:8), 반대로 복을 말씀하셨어도 그들이 악을 행하면 그 복에 대해서도 뜻을 돌이키신다는 것입니다 (렘 18:10). 곧 하나님의 경고와 약속에는 많은 경우 응답을 기다리는 조건이 들어 있습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가 가장 널리 가르쳐 온 대답은 하나님의 성품과 목적은 변하지 않으나, 사람의 응답에 따라 그분의 행하심이 달라지는 것이 "뜻을 돌이키심"이라는 설명입니다. 매튜 헨리는 민수기 23장에서 이렇게 씁니다. "사람은 마음을 바꾸고 말을 어기나, 하나님께서는 결코 마음을 바꾸지 않으시므로 약속을 거두지 않으십니다" 매튜 헨리. 그리고 곧이어 이렇게 덧붙입니다. "성경에서 그분이 뉘우치신다고 하는 것은 그분의 마음이 바뀐다는 뜻이 아니라 그분의 방식이 바뀐다는 뜻일 뿐입니다" 매튜 헨리. 출애굽기 32장에서는 모세의 기도에 응답하신 일을 두고 같은 설명을 합니다. "하나님의 뜻이 바깥으로 드러나는 모습이 바뀌는 것을 악을 뉘우치신다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칼뱅도 같은 방향으로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후회하신다는 표현은 우리의 이해 정도에 맞추어 하나님이 자신을 낮추어 말씀하시는 방식이라고 보았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1.17.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하나님을 존재와 지혜와 능력과 거룩과 공의와 선과 진리에서 변하지 않으시는 분으로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4문. 이를 하나님의 불변성이라고 부르며, 동방과 서방, 가톨릭과 개신교의 오랜 전통이 대체로 같은 입장입니다.

그러나 이 설명이 성경의 관계적 표현을 너무 가볍게 만든다고 느끼는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시간 속에서 사람에게 참으로 응답하신다는 점을 더 힘주어 말하는 신학자가 많고, 그 가운데 20세기 말 일부 복음주의 신학자들은 열린 신론이라는 견해를 내놓았습니다. 이 견해는 하나님이 사랑과 신실하심과 궁극적 목적에서는 변하지 않으시지만, 아직 일어나지 않은 자유로운 선택을 이미 정해진 일로 미리 아시지는 않으며, 사람의 응답에 따라 구체적인 계획을 실제로 바꾸신다고 봅니다. 그래야 기도와 관계가 참되다는 것입니다. 대다수 교회와 신학자들은 이 견해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종말을 처음부터 고하신다고 말하며 (사 46:10), 약속에 대한 신뢰는 그분이 변하지 않으심에 달려 있다고 보기 때문입니다. 모든 쪽이 하나님의 성품이 변하지 않는다는 점, 그분이 사람과 실제로 관계를 맺으신다는 점, 기도에 의미가 있다는 점에는 동의합니다. 열려 있는 물음은 뜻을 돌이키신다는 본문을 어떻게 읽느냐, 그리고 그것이 하나님의 앎에 대해 무엇을 뜻하느냐입니다.

원어로 보기

"뜻을 돌이키다" 또는 "후회하다"로 옮겨진 히브리어 동사는 나함(נָחַם)입니다. 이 동사는 문맥에 따라 "뉘우치다", "뜻을 돌이키다", "위로하다"로 쓰이는 말입니다. 같은 동사가 출애굽기 32:14에서는 하나님이 재앙을 거두신 것을, 민수기 23:19와 사무엘상 15:29에서는 하나님이 사람처럼 마음을 바꾸지 않으신다는 것을 나타냅니다. 사무엘상 15장에서는 11절과 29절이 같은 동사를 쓰면서 한쪽은 "그렇다", 한쪽은 "아니다"라고 말합니다. 같은 말이 서로 다른 뜻으로 쓰였다는 것입니다. 11절에서는 사울이 돌아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슬픔이고, 29절에서는 하나님이 변덕스럽지 않다는 선언입니다.

니느웨 사람들이 "돌이켜 떠난" 것은 슈브(שׁוּב)입니다. 니느웨 왕은 3장 9절에서 혹시 하나님이 돌이키시고 뜻을 돌이키실지 모른다고 말하는데, 여기서도 슈브가 사람과 하나님 양쪽에 쓰입니다. 하나님이 돌이키시는 까닭은 요나서 4:2가 이미 설명하고 있습니다. 요나는 "주께 기도하며 이르되, 오 주여, 간구하오니 내가 아직 내 나라에 있을 때에 내 말이 이러하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므로 내가 먼저 다시스로 도망하였사오니 이는 주께서 은혜로우시며 긍휼이 많으시고 분노하기를 더디 하시며 큰 친절을 베푸사 재앙에서 뜻을 돌이키시는 하나님이신 줄을 내가 알았기 때문이니이다."라고 불평합니다 (욘 4:2). 곧 하나님이 돌이키시는 것은 그분의 변덕이 아니라 그분의 변함없는 성품입니다.

야고보서 1:17의 "변함"은 파랄라게(παραλλαγή)이고 "회전하는 그림자"에는 트로페(τροπή), 곧 "돌이킴"이 나옵니다. 해와 달과 별은 위치를 바꾸며 그림자를 드리우지만, 빛들의 아버지에게는 그런 움직임이 없다는 그림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하나님이 정말 변하지 않으신다면 기도는 소용없다. 이미 정해진 일을 기도가 어떻게 바꾸는가?" 이 반론은 진지한 것입니다. 모든 것이 이미 정해졌다면 기도는 형식에 불과해 보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기도를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의 일부로 제시합니다. 히스기야가 죽게 되어 통곡하며 기도하자 하나님은 "되돌아가서 내 백성의 대장 히스기야에게 말하기를, 주 곧 네 조상 다윗의 하나님이 이같이 말하노라. 내가 네 기도를 들었고 네 눈물을 보았노라. 보라, 내가 너를 낫게 하리니 네가 셋째 날에 주의 집에 올라가리라."고 하시며 십오 년을 더하십니다 (왕하 20:5-6). 매튜 헨리는 이 본문에서 이렇게 씁니다. "하나님께서는 마음이 상한 자들의 기도를 항상 들으시고, 그들에게 진정 유익한 만큼 그리고 유익한 동안 건강과 장수와 현세의 구원을 주십니다" 매튜 헨리. 고전적 입장은 목적을 정하시는 하나님이 그 목적에 이르는 수단, 곧 우리의 기도도 함께 정하셨다고 답합니다. 열린 신론은 기도가 아직 열려 있는 미래에 실제로 영향을 준다고 답합니다. 어느 쪽이든 기도는 형식이 아닙니다. 야고보는 "너희 잘못들을 서로 고백하고 너희가 병 고침을 받도록 서로를 위해 기도하라. 의로운 자의 효력 있고 뜨거운 기도는 많은 유익이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약 5:16).

"하나님이 마음을 바꾸신다면 그분은 처음에 틀렸거나 믿을 수 없는 분이다." 이것도 강한 반론입니다. 마음을 바꾸는 존재는 이전이 부족했거나 이후가 부족한 것이 됩니다.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하나님의 경고에는 보통 "돌이키면"이라는 조건이 암묵적으로 들어 있고, 하나님이 돌이키시는 것은 사람이 돌이켰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 18장이 말하는 대로 그분은 "언제든지" 이 원리에 따라 행하십니다. 매튜 헨리는 그 본문에서 이렇게 씁니다. "죄의 악에서 참되게 돌이키면, 개인과 가정과 나라에 대하여 형벌의 재앙을 막을 것입니다" 매튜 헨리. 변하는 것은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의 위치이고, 같은 의로우심과 자비하심이 우리의 새로운 위치에 맞게 드러납니다. 말라기 3:6에 대해 매튜 헨리는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상대하는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시므로 우리가 진멸되지 아니하며, 그분의 긍휼이 무궁하시기 때문입니다" 매튜 헨리.

더 생각해 보기

하나님이 변하지 않으신다는 것은 차갑고 멀리 계신다는 뜻이 아닙니다. 그분의 변함없음은 사랑과 신실함의 변함없음입니다. 우리가 흔들릴 때에도 그분이 같은 분이시므로 우리는 소멸되지 않습니다. 또한 하나님이 기도에 응답하시고 회개를 받으신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그분 앞에서 가볍지 않다는 뜻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변덕스러운 분이라서 기도하기를 주저합니까, 아니면 이미 정해졌다고 생각해서 기도하지 않습니까? 그분이 내 삶에서 "돌이키라"고 하시는 것은 무엇입니까? 변하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믿는 것이 내 불안에 어떤 평안을 줍니까?

더 읽으려면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가?,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가?를 보십시오.

출처

  1.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2.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647 — 웨스트민스터 총회의 요리문답(107문). 제1문: 사람의 제일 되는 목적은 무엇인가. 하나님과 창조, 구원, 십계명, 성례와 기도를 가르친다.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