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짧은 답

삼위일체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 한 분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세 위격으로 영원히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세 분의 신이 있다는 뜻도, 한 분이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 교리는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모두 지키려는 교회의 오랜 노력이며,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사랑이시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성경의 답

삼위일체라는 낱말은 성경에 나오지 않습니다. 그러나 이 낱말이 지키려는 내용은 성경 곳곳에 있습니다. 출발점은 구약의 가장 기본적인 고백입니다.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신 6:4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이사야도 "나는 주니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으며 나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내가 네게 띠를 띠어 주었으니"고 말합니다 (사 45:5). 이 고백은 신약에서도 취소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신약은 이 한 분 하나님을 이야기하면서 세 이름을 함께 놓습니다. 예수께서는 부활 뒤에 제자들에게 이렇게 명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마 28:19

"이름들"이 아니라 "이름"이라고 단수로 쓴 것에 주목할 수 있습니다. 한 이름 안에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함께 놓여 있습니다. 바울의 편지도 이렇게 끝납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둘째 서신을 마케도니아의 도시 빌립보에서 써서 디도와 누가 편에 보내다.

고후 13:13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에도 세 분이 함께 나타납니다.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오고, 하늘에서 "보라, 하늘로부터 한 음성이 있어 이르시되, 이 사람은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그를 매우 기뻐하노라, 하시니라."는 소리가 납니다 (마 3:16-17).

그렇다면 아들은 누구십니까? 요한복음은 첫머리에서 말합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요 1:1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므로 아버지와 구별되시고, 동시에 "하나님이시니라"고 하므로 하나님이십니다. 이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요 1:14),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께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매"라고 고백합니다 (요 20:28).

성령은 어떻습니까? 그분은 어떤 힘이나 기운이 아니라 인격으로 소개됩니다. 예수께서는 떠나시기 전에 말씀하십니다.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

요 14:16

"또 다른" 보혜사라는 말은 예수 자신처럼 도우시는 분이라는 뜻입니다. 또 베드로는 아나니아에게 "성령을 속이고"라고 말한 다음 이어서 "땅이 남아 있었을 때에 네 것이 아니었느냐? 그것을 판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속에 품었느냐? 네가 사람들에게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였도다, 하니"라고 합니다 (행 5:3-4). 성령을 속이는 것이 곧 하나님께 거짓말하는 것입니다.

이 세 분이 사랑 안에서 영원히 함께 계시는 모습도 성경에 나타납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기도하십니다. "아버지여,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친히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 (요 17:24). 창조 이전에, 누구도 없었을 때에도 사랑이 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이 성경의 증언을 하나로 묶어 고백해야 했습니다. 초대 교회는 아주 이른 시기부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었고, 아버지와 함께 그리스도께 예배했습니다. 그러나 4세기에 아리우스가 아들은 창조된 존재라고 가르치자 큰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니케아 공의회(325년)는 아들이 아버지와 "한 본질"이시라고 선언했고,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년)는 성령에 대한 고백을 더해 오늘의 니케아 신경을 완성했습니다 니케아 신경. 사도신경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차례로 고백하는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사도신경.

한 가지 알아 둘 것이 있습니다. 서방 교회는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는 구절을 신경에 덧붙였고, 동방 교회는 아버지에게서 나오신다는 원래의 표현을 지켰습니다. 서방은 아들이 아버지와 온전히 동등하심을 지키려 했고, 동방은 아버지만이 하나님 안의 근원이시라는 점을 지키며, 공의회 없이 함께 고백하는 신경을 바꾼 것을 문제 삼습니다. 이 차이는 지금도 남아 있지만, 두 쪽 모두 같은 한 분 하나님, 세 위격을 고백합니다.

교부들은 마태복음 28:19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히에로니무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라 함은 "신성이 하나이신 이들을 한꺼번에 주셔야 하기 때문이며, 이 삼위를 말하는 것은 한 하나님을 말하는 것입니다"라고 합니다 히에로니무스. 한편 요한복음 1:1에 대해 테오필락투스는 "사벨리우스는 이 본문으로 무너집니다"라고 합니다. 사벨리우스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한 위격이 때에 따라 다르게 나타나신 것이라고 주장했는데, 본문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테오필락투스.

힐라리우스도 요한복음 14:9를 풀며 예수의 말씀이 "관계없이 홀로 계신 한 위격"을 가리키지 않는다고 합니다 힐라리우스. 매튜 헨리는 신명기 6:4를 풀며 "하나님의 이름이 세 번 언급되는 것"을 신성의 하나이심을 선언하는 중에도 삼위일체의 위격들을 암시하는 것으로 읽습니다 매튜 헨리. 그러나 구약이 삼위일체를 이만큼 분명히 가르친다고 보기는 어렵다는 신학자도 많습니다. 그들은 신약의 빛에서 되돌아볼 때 비로소 보이는 암시 정도로 말합니다.

원어로 보기

신명기 6:4의 "하나"는 히브리어 에하드(אֶחָד)입니다. 이 말은 "하나"를 뜻하는 평범한 낱말이므로, 이 말만으로 삼위일체가 증명되지는 않습니다. 다만 이 말은 여럿이 하나가 된 연합을 가리킬 때에도 쓰입니다. 창세기 2:24에서 남자와 여자가 "한 몸"을 이룬다고 할 때의 "한"이 같은 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표현 자체가 그분 안의 풍성함을 배제하지는 않습니다.

요한복음 1:1의 로고스(λόγος)는 "말씀"이면서 "이성"이나 "이치"라는 뜻도 가진 말입니다. 요한은 이 말을 가지고 하나님과 함께 계시면서 하나님이신 분을 소개합니다. 일부 그리스 철학자들에게 로고스는 세계의 질서를 가리키는 말이었고, 구약에서 하나님은 말씀으로 세상을 창조하십니다. 요한은 이 말씀이 사람이 되셨다고 말합니다.

또 하나는 프뉴마(πνεῦμα), "영"입니다. 이 말은 숨과 바람이라는 뜻도 가지며, 문법상 중성 명사입니다. 그래서 성령의 인격성은 낱말의 문법보다 성경이 그리는 그분의 일에서 드러납니다. 성령은 "위로자 곧 아버지께서 내 이름으로 보내실 성령님 그분께서 너희에게 모든 것을 가르치시고 내가 너희에게 무엇을 말하였든지 너희가 모든 것을 기억하게 하시리라." (요 14:26), 우리가 "근심하게" 할 수 있는 분입니다 (엡 4:30).

흔한 반론과 답

"성경에 없는 교리다." 이것은 정확한 지적입니다. "삼위일체"라는 낱말은 성경에 없고, 헬라어로는 2세기 말 안디옥의 테오필루스가, 라틴어로는 3세기 초 테르툴리아누스가 처음 썼습니다. 니케아 신경의 "본질"이라는 낱말도 성경의 말이 아닙니다. 그래서 이 교리가 후대에 만들어졌다고 결론짓는 사람들도 있고, 일부 교단은 이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교회의 답은 이렇습니다. 낱말은 후에 만들어졌지만 내용은 성경에 있다는 것입니다. 한 분 하나님을 고백하면서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에 대해 하나님께만 어울리는 말을 쓰는 것이 신약 곳곳에서 보이는 모습입니다. 그런데 이 증언을 잘못 읽는 길이 여럿 있었으므로, 교회는 잘못된 읽기를 막기 위해 새 낱말이 필요했습니다. 낱말이 새롭다는 것과 생각이 새롭다는 것은 다릅니다. 물론 이 판단은 성경을 어떻게 읽느냐에 달려 있고, 읽는 이가 직접 본문을 살펴보도록 권합니다.

"비논리적이다. 하나가 셋이라는 말이 아닌가?" 이 반론은 강력합니다. 만일 교회가 "하나님은 한 분이고 동시에 세 분이다"라고 말한다면 모순입니다. 하지만 교회는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교회는 하나님이 본질에서 하나이시고 위격에서 셋이라고 말합니다. 같은 뜻으로 하나이면서 셋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이 교리는 세 신(삼신론)이 아니며, 한 분이 세 가지 역할로 나타나신다는 생각(양태론)도 아닙니다. 둘 다 교회가 거부한 길입니다. 그렇다고 이 교리가 쉽다는 말은 아닙니다. 물, 해, 세 잎 클로버 같은 비유는 모두 어딘가에서 어긋나며, 교부들도 그것을 알았습니다. 하나님이 우리가 다 이해할 수 있는 분이라면 그분은 우리와 같은 크기의 존재일 것입니다. 이해할 수 없는 것과 모순되는 것은 다릅니다. 이해를 넘어서는 신비를 인정하는 것과, 말이 안 되는 것을 믿으라고 요구하는 것은 같지 않습니다.

더 생각해 보기

삼위일체는 신학 시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고백입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한 분의 고독한 위격이셨다면, 창조 이전에 사랑할 대상이 없으셨을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아버지가 아들을 창세 전부터 사랑하셨다고 말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사랑을 "하시는" 분이기 전에 사랑 "이신" 분입니다 (요일 4:8). 우리가 사랑받도록 창조되었다는 것, 그리고 십자가에서 사랑이 우리에게 흘러넘쳤다는 것이 이 하나님의 성품에서 나옵니다. 매튜 헨리는 고린도후서 13장을 풀며 이 은혜를 이렇게 요약합니다. 그리스도께서 값없는 은혜로 사 주시고, 아버지께서 값없는 사랑으로 정하시고, 성령께서 "적용하시고 베푸시는" 모든 유익이라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한 힘이나 한 존재로만 생각해 왔습니까, 아니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관계로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사랑이시라는 말은 나에게 무엇을 말해 줍니까? 이 교리를 이해하지 못한다고 해서 하나님을 믿지 못한다고 느낀 적이 있습니까?

더 읽으려면 예수는 하나님인가?와 성령은 누구신가?를 보십시오. 요한복음 14-17장을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은 출발입니다.

출처

  1.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2.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