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톨릭과 개신교는 무엇이 다른가?
성경의 답
먼저 같은 점입니다. 가톨릭과 개신교는 모두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을 고백합니다. 한 분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으로 계시고, 예수께서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으로 우리의 죄를 위해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몸으로 부활하셨으며, 다시 오실 것을 믿습니다. 성경은 이 일치를 이렇게 부릅니다.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엡 4:4-5
그런데도 갈라진 이유는 몇 가지 물음에서 답이 다르기 때문입니다.
권위는 어디에 있는가. 개신교는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으로서 믿음과 삶의 최종 기준이라고 봅니다(오직 성경). 근거로 이런 말씀을 듭니다.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딤후 3:16
가톨릭은 성경과 거룩한 전통이 하나의 계시에서 나온 것이며 이를 바르게 해석할 책임이 교황과 주교들의 교도권에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가르침은 "그러므로 형제들아, 굳게 서서 말로나 우리의 서신으로 너희가 가르침을 받은 전통들을 붙들라."는 말씀 (살후 2:15)과, 교회를 "그러나 내가 오랫동안 지체하면 네가 하나님의 집에서 어떻게 처신해야 할지 네가 알게 하려 하노니 이 집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교회요 진리의 기둥과 터니라."라고 부른 말씀 (딤전 3:15)에 기댑니다. 정경의 범위도 다릅니다. 가톨릭 성경은 구약에 제2경전을 더해 73권이고, 개신교는 66권입니다.
교황은 누구인가. 가톨릭은 로마의 주교가 베드로의 후계자로서 온 교회의 으뜸이라고 믿고,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는 교황이 신앙과 도덕에 관해 공식으로 선언할 때 오류가 없다고 정의했습니다. 근거는 이 말씀입니다.
또 내가 네게 이르노니, 너는 베드로라. 이 반석 위에 내가 내 교회를 세우리니 지옥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
개신교는 전통적으로 반석을 베드로가 고백한 믿음, 곧 그리스도로 읽어 왔습니다. 오늘의 많은 개신교 학자는 반석이 베드로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그 자리가 로마 주교에게 이어진다고 보지는 않습니다.
구원은 어떻게 이루어지는가. 개신교는 사람이 하나님 앞에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오직 믿음으로,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강조합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엡 2:8-9
가톨릭도 구원이 은혜의 선물임을 가르치지만, 칭의를 죄 사함과 함께 속사람이 새로워지는 일로 설명하며, 믿는 이가 은혜에 협력하여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을 말합니다. 야고보서의 이 말씀이 자주 인용됩니다.
그런즉 너희가 보거니와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되고 단지 믿음만으로 되지 아니하느니라.
약 2:24
개신교는 야고보가 살아 있는 믿음에는 행함이 따른다는 것을 말했다고 읽습니다.
성례는 몇 가지인가. 가톨릭과 정교회는 세례, 견진, 성찬, 고해, 병자성사, 성품, 혼인의 일곱 성사를 말하고, 개신교 대부분은 예수께서 직접 제정하신 세례와 성찬 둘을 성례로 지킵니다. 성찬에서 가톨릭은 빵과 포도주가 실체에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변한다고 가르치고, 루터교는 빵과 포도주 안에 그리스도께서 실제로 계신다고 보며, 개혁교회는 성령으로 영적으로 임하신다고, 많은 침례교회와 복음주의 교회는 기념으로 이해합니다. 이 차이는 세례와 성찬은 무엇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마리아와 성도. 두 교회 모두 마리아를 "복이 있는 자"로 존경합니다. 마리아 자신이 "이는 그분께서 자신의 여종의 낮은 처지에 관심을 두셨기 때문이라. 보라, 이제부터 모든 세대가 나를 가리켜 복이 있다 하리로다."라고 말했기 때문입니다 (눅 1:48). 가톨릭은 여기에 더해 무염시태(1854)와 승천(1950) 교리를 가르치고 마리아와 성도들에게 중보 기도를 청합니다. 개신교는 이 교리들이 성경에 분명한 근거가 없고, 청하는 기도가 그리스도의 중보 자리를 흐리게 할까 염려합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딤전 2:5
가톨릭은 이를 부정하지 않고, 성도에게 청하는 것은 살아 있는 형제에게 기도를 부탁하는 일과 같으며 "그러므로 증인들이 이렇게 큰 구름을 이루며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우리가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이 우리를 둘러싸고 있다는 말씀 (히 12:1)에 이어진다고 설명합니다. 또 마리아에 대한 존경은 하나님께 드리는 경배와 구별된다고 가르칩니다.
교회의 증언
1054년에 동방과 서방 교회가 갈라졌고, 1517년 루터의 항의로 서방 교회 안에서 종교개혁이 시작되었습니다. 루터교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1530)은 사람이 그리스도 때문에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고백했고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트리엔트 공의회(1545-63)는 칭의 교령(1547)에서 칭의가 죄 사함뿐 아니라 내적 새로워짐을 포함한다고 가르치며 반대편의 교리를 정죄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칭의 교령.
400여 년이 지난 1999년에 루터교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는 칭의론 공동선언문에 서명했습니다. 이 문서는 우리가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께 받아들여지고 성령을 받으며, 우리 공로 때문이 아님을 함께 고백합니다. 또 16세기의 상호 정죄가 이 공동선언문이 제시하는 가르침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밝혔습니다. 이후 세계감리교협의회(2006년)와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2017년)이 이 선언에 동참했고, 성공회도 그 내용을 지지했습니다. 아직 강조점과 표현의 차이는 남아 있습니다 칭의론 공동선언문(1999). 제2차 바티칸 공의회(1962-65)도 세례받은 개신교인을 그리스도인이며 형제자매로 인정했습니다.
마태복음 16:18에 대해 교부들의 풀이는 갈립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곧 이 믿음과 고백 위에 내 교회를 세우겠다는 뜻입니다"라고 풀이합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아우구스티누스는 한때 베드로를 반석으로 풀었다가 나중에는 베드로가 고백한 그리스도를 반석으로 풀었다고 말하고, 이렇게 맺습니다. "이 두 의견 중 어느 쪽이 더 그럴듯한지는 독자가 선택하십시오" 아우구스티누스. 한편 중세의 주해는 베드로가 사도들의 머리로 세워진 것이 "교회가 한 명의 으뜸가는 그리스도의 대리자를 가져" 분쟁이 생길 때 그에게 호소하게 하시려는 것이라고 풉니다 주해 (안셀무스에서).
매튜 헨리는 로마서 3:28을 풀면서 개신교의 입장을 이렇게 말합니다.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길은 자랑을 영원히 배제합니다." 그러나 "믿음은 법이며, 참으로 있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일하는 은혜입니다"라고 덧붙입니다 매튜 헨리.
원어로 보기
마태복음 16:18에서 "베드로"는 페트로스(Πέτρος), "반석"은 페트라(πέτρα)입니다. 두 낱말은 서로 다른 형태이며, 이를 근거로 어떤 이들은 반석이 베드로가 아니라고 하고, 다른 이들은 예수께서 쓰셨을 아람어에서는 두 낱말이 같은 말(게바)이었다고 답합니다 (요 1:42).
"의롭다 하다"는 디카이오오(δικαιόω)입니다. 이 동사는 법정의 뜻으로 "의롭다고 선언하다"는 쪽으로 쓰이는 일이 많은데 개신교는 이 점에 무게를 둡니다. 가톨릭은 성경이 하나님의 선언과 그분이 새롭게 하시는 일을 떼어 놓지 않는다고 봅니다 (딛 3:5-7). "전통"은 파라도시스(παράδοσις)로, 바울은 사도들이 전한 가르침을 이렇게 부르며 지키라고 했고 (살후 2:15), 예수께서는 사람의 전통이 하나님의 말씀을 폐한다고 책망하셨습니다 (막 7:13).
흔한 반론과 답
"가톨릭은 성경에 없는 것을 더하고 마리아를 숭배한다." 무염시태나 승천 같은 교리가 성경에 분명히 쓰여 있지 않다는 점은 사실입니다. 가톨릭은 이 교리들이 성경과 전통으로 전해진 하나의 계시에 속한다고 답합니다. 또 공식 가르침은 마리아를 경배하지 않고 존경하며 그리스도께로 이끄는 분으로 말합니다. 다만 대중적 신앙 안에서 그 구별이 흐려진다는 지적은 가톨릭 안에서도 나옵니다. 상대의 가르침은 그 교회의 공식 가르침으로 판단하는 것이 공정합니다.
"개신교는 개인이 성경을 제멋대로 풀어 수없이 갈라졌다." 개신교가 많이 나뉜 것은 사실이고 큰 아픔입니다. 개신교는 오직 성경이 전통과 공동체의 해석을 버린다는 뜻은 아니라고 답합니다. 신경과 신앙고백을 존중하며 성경을 읽어 왔기 때문입니다. 갈라진 이유와 역사는 교회는 왜 이렇게 많이 나뉘었는가?에서 다룹니다.
"가톨릭은 행위로, 개신교는 믿음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친다." 이 말은 양쪽을 모두 단순하게 만듭니다. 공동선언문이 보여 주듯 두 교회는 구원이 은혜에서 시작된다는 데 일치합니다. 개신교는 참된 믿음이 선한 행실의 열매를 낳는다고 하며 (엡 2:10), 가톨릭은 선한 행실이 하나님의 은혜가 낳은 응답이라고 말합니다. 칭의와 속사람의 새로워짐의 관계, 공로와 구원의 확신을 어떻게 말할지에서는 차이가 남아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보기
한국에서는 가톨릭을 천주교, 개신교를 흔히 "기독교"라 불러 둘이 다른 종교처럼 들리기도 합니다. 하느님과 하나님, 성당과 교회, 미사와 예배, 신부와 목사처럼 쓰는 말도 다릅니다. 그러나 둘 다 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는 그리스도교입니다. 한국 가톨릭은 18세기 말 선비들이 책을 읽고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1784년 이승훈의 세례로 시작되었고, 여러 차례의 박해에서 많은 이가 순교했습니다. 개신교는 1880년대에 만주에서 번역된 한글 성경과 선교사들의 입국으로 뿌리를 내렸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하나가 되기를 기도하셨습니다.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요 17:21
차이를 가볍게 여길 필요는 없지만, 상대를 단정하지 않고 상대가 스스로 믿는 바를 먼저 듣는 것은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될 수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다른 교회의 가르침을 그 교회의 말로 들어 본 적이 있습니까? 나에게 신앙의 최종 권위는 무엇이며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차이를 넘어 함께 고백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더 읽으려면 칭의란 무엇인가?와 교회는 왜 필요한가?를 보십시오.
관련 질문
- 교회는 왜 이렇게 많이 나뉘었는가?교회가 나뉜 까닭은 하나가 아닙니다. 진리라고 믿는 것을 지키려는 신념도 있었고, 교만과 다툼과 정치와 문화의 차이 같은 죄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분열을 슬퍼하되, 그리스도 안의 하나 됨이 모든 점에서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갈라진 교회들은 지금도 같은 신경으로 같은 주님을 고백합니다.
- 칭의란 무엇인가?칭의는 하나님이 죄인을 그리스도 때문에 의롭다고 받아 주시는 일입니다. 모든 교회는 이것이 우리 공로가 아니라 은혜로 믿음을 통해 온다고 고백합니다. 다만 칭의가 법정의 선언인지, 사람을 실제로 새롭게 하는 일까지 포함하는지, 믿음과 행함은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서는 종교개혁 이후 교회들이 다르게 설명해 왔고, 오늘은 상당 부분 서로의 뜻을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 세례와 성찬은 무엇인가?세례와 성찬은 예수께서 직접 명하신 두 가지 거룩한 예식으로, 세례는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새 생명을 시작하는 일을, 성찬은 그분의 죽으심을 기억하고 그분과 교제하는 일을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점에 모두 동의하지만, 누구에게 세례를 줄 것인가와 성찬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계신가에 대해서는 서로 다르게 이해해 왔습니다. 이 글은 그 차이를 가능한 한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 교회는 왜 필요한가?성경은 교회를 건물이나 조직이기 전에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은 개인적이지만 혼자 하는 것이 아니어서, 말씀과 기도와 성례와 교제 속에서 자라도록 지어졌습니다. 교회는 상처와 실패를 남겨 왔으나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도 교회가 필요하다는 증언은 이어집니다.
관련 주제
출처
-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 루터교의 기본 신앙고백.
-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칭의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 가르침.
- 루터교 세계연맹·가톨릭교회,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1999 — 칭의에 대한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한 문서.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