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음이란 무엇인가?
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눈을 감고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 아니라, 신실하신 분을 신뢰하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고, 선한 삶으로 열매를 맺으며, 의심 속에서도 도움을 구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향하는 분, 곧 그리스도께 구원이 있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성경의 답
히브리서 11장은 믿음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이제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히 11:1
여기서 눈여겨볼 말은 "실상"과 "증거"입니다. 믿음은 막연한 기분이나 소원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것을 확실한 것으로 붙드는 마음의 자세입니다. 그리고 성경에서 믿음은 언제나 어떤 분을 향합니다. 같은 장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사람이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 한다고 말합니다 (히 11:6). 믿음은 어떤 주장에 고개를 끄덕이는 데서 멈추지 않습니다. 그분이 어떤 분인지를 믿고 그분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믿음의 첫 본보기는 아브라함입니다.
아브람이 주를 믿으니 그분께서 그것을 그에게 의로 여기시고
창 15:6
당시 아브람은 늙었고 자식이 없었습니다. 수백 년 뒤 바울은 그 장면을 이렇게 되돌아봅니다.
그가 백 세쯤 되었을 때에도 믿음이 약해지지 아니하여 이제는 죽은 자기 몸을 고려하지 아니하고 또 사라의 태가 죽은 것도 고려하지 아니하였으며 믿지 아니함으로써 하나님의 약속에 관하여 흔들리지 아니하고 오히려 믿음이 강해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그분께서 약속하신 것을 그분께서 또한 능히 이행하실 줄로 온전히 확신하였으니
롬 4:19-21
아브라함이 현실을 외면하지 않았다는 점에 주목하십시오. 자기 몸이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었습니다. 그는 눈을 감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한계를 똑바로 보면서, 약속하신 분이 그 한계보다 크시다고 믿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믿음은 어디서 오는가. 바울은 이렇게 답합니다. "그런즉 이와 같이 믿음은 들음에 의해 오며 들음은 하나님의 말씀에 의해 오느니라." (롬 10:17). 먼저 누군가가 말씀하시고, 우리가 그 말씀을 듣고, 그 말씀하신 분을 신뢰하게 됩니다. 믿음은 허공을 향한 도약이 아니라 말씀에 대한 응답입니다.
또 성경은 믿음이 공로가 아니라고 분명히 말합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엡 2:8-9
믿음은 선물을 받는 빈손과 같습니다. 그러나 바로 이어서 바울은 우리가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말합니다 (엡 2:10). 야고보도 같은 이야기를 다른 쪽에서 합니다. "이와 같이 믿음도 행위가 없으면 그것만으로는 죽은 것이니라." (약 2:17). 마지막으로, 믿음은 의심이 하나도 없는 상태가 아닙니다. 아들을 고쳐 달라고 온 아버지는 예수께 이렇게 외쳤습니다.
즉시 그 아이의 아버지가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막 9:24
교회의 증언
교회는 믿음을 머리의 동의 이상으로 이해해 왔습니다. 사도신경은 "나는 믿습니다"로 시작하는데, 이것은 어떤 사실의 목록을 인정하는 말이기 전에 성부, 성자, 성령께 자신을 맡기는 고백입니다 사도신경.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참된 믿음을 하나님의 말씀이 참되다는 지식일 뿐 아니라 복음이 약속하신 것을 나에게도 주신다는 마음 깊은 신뢰라고 풀이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1문.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도 구원하는 믿음을 복음 안에 제시된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오직 그분께 의지하는 은혜로 설명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86문.
매튜 헨리는 야고보서를 풀면서 이렇게 씁니다. "믿음에는 동의(assent)뿐 아니라 승낙(consent)이 있어야 합니다" 매튜 헨리. 진리가 맞다고 인정하는 것과 그리스도를 모시겠다고 승낙하는 것은 다르다는 뜻입니다. 그는 아브라함의 믿음에 대해서는 "믿음은 다른 모든 것 중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은혜입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그레고리우스는 도마 이야기를 풀며 이렇게 말합니다. "믿는 것을 행하는 사람만이 참으로 믿기 때문입니다" 그레고리우스.
의심에 대해서도 교회는 따뜻하게 말했습니다. 마가복음 9장의 아버지는 이미 "내가 믿나이다"라고 하고서 왜 곧이어 믿음 없는 것을 도와 달라고 했을까요. 베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아직 완전히 믿지 못한 이 사람은 믿는 자인 동시에 믿지 않는 자였습니다" 베다. 믿음에는 자라는 단계가 있고, 그 시작이 작아도 주님은 받으신다는 것입니다.
한 가지는 교회 안에서도 견해가 갈립니다. 에베소서 2:8에서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이것’이 믿음을 가리키는지, 은혜로 믿음을 통해 받는 구원 전체를 가리키는지입니다. 헬라어에서 ‘이것’은 중성이고 ‘믿음’은 여성이어서, 여러 전통의 많은 해석자는 구원 전체로 읽습니다. 더 깊은 물음은 하나님의 은혜와 사람의 응답이 어떻게 만나는지입니다. 개혁 전통은 믿음조차 성령께서 택하신 이들에게 주시는 선물이라고 강조하고,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은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응답할 힘을 주고 사람이 자유로이 응답한다고 말합니다. 가톨릭도 믿음을 하나님의 선물로 가르치며, 동방 교회와 함께 갈라디아서 5:6의 "사랑으로써 역사하는 믿음"을 따라 믿음이 사랑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고 봅니다. 그러나 모든 전통은 사람이 믿음이나 행위로 구원을 벌어 낼 수 없다는 점에서 한목소리입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믿음을 뜻하는 말은 피스티스(πίστις)입니다. 이 말은 "믿음"과 함께 "신실함"으로도 옮겨지는데(피스티스), 신뢰하는 쪽과 신뢰받는 쪽이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을 보여 줍니다. 동사 피스튜오(πιστεύω)는 ‘믿다’인데, 특히 ‘~안으로’ 같은 전치사와 함께 쓰일 때에는 단순히 사실로 여기는 것을 넘어 인격적으로 신뢰하고 의지한다는 뜻이 두드러집니다. 그래서 '예수를 믿는다'는 말은 예수에 관한 정보를 맞다고 여긴다는 데서 더 나아가 그분께 의지한다는 뜻을 품고 있습니다.
히브리어 뿌리는 아만(אָמַן)입니다. '견고하다, 믿을 만하다'는 뜻으로, 우리가 기도 끝에 하는 "아멘"과 같은 뿌리에서 나왔습니다. 창세기 15:6에서 아브람이 "믿으니"라는 말이 이 동사입니다. 이 말은 어떤 것을 견고한 것으로 여기고 그 위에 기대는 모습을 그립니다. 같은 뿌리의 명사 에무나(אֱמוּנָה)는 '신실함'입니다. 성경의 믿음은 처음부터 신실하신 분 위에 서는 일이었습니다.
흔한 반론과 답
"믿음이란 증거 없이 믿는 것이다." 가장 흔한 반론이며 무겁게 받아들여야 합니다. 일상의 말에서 "믿음으로 받아들인다"는 말은 실제로 근거가 부족한 것을 그냥 받아들인다는 뜻으로 쓰입니다. 어떤 종교적 말투는 질문하지 않는 것을 미덕으로 삼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성경의 용례는 다릅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내 손과 내 발을 보라. 바로 나니라. 나를 만지고 또 보아라. 영은 살과 뼈가 없으되 너희가 보는 바와 같이 나는 있느니라, 하시니라."고 하셨고 (눅 24:39), 바울은 아직 살아 있는 증인들을 내세웁니다. 히브리서 11장의 믿음도 하나님이 이미 하신 일을 근거로 삼습니다. 사람이 의사나 친구를 믿는 것처럼, 신뢰는 증거에서 시작하지만 증거를 넘어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데로 나아갑니다. 정직하게 덧붙일 것이 있습니다. 믿음은 수학적 증명이 아니므로, 증거를 저울질한 뒤에도 마지막에는 맡김이라는 위험이 남습니다. 그러나 이 위험은 근거 없는 것이 아닙니다. 이 문제는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에서 더 이야기합니다.
"나는 의심이 많은데, 그러면 믿음이 없는 것인가?" 성경은 그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도마는 직접 만져 보고 싶어 했지만 주님은 그를 물리치지 않으셨습니다. 마가복음 9장의 아버지는 믿음과 불신이 한 마음에 섞여 있다고 솔직하게 말했고, 예수께서는 그 기도에 응답하셨습니다. 제자들도 "사도들이 주께 이르되, 우리의 믿음을 증대시켜 주옵소서, 하니"라고 구했습니다 (눅 17:5). 의심을 숨기고 믿는 척하기보다 의심을 가지고 예수께 나아가는 것이 성경이 보여 주는 길입니다. 다만 의심이 질문으로 끝나지 않고 하나님을 피하는 핑계가 될 때에는 스스로를 돌아볼 필요가 있습니다.
"바울은 믿음만으로, 야고보는 행함으로 의롭다 한다. 서로 모순 아닌가?" 야고보 2:24은 "사람이 행함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믿음으로만 아니니라"고 말하니 처음 읽으면 정말 부딪히는 듯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사람이 자기 행위로 하나님 앞에 의를 벌 수 있다는 생각과 맞서고, 야고보는 입으로만 하는 믿음, 귀신들도 가진 지적 동의와 맞섭니다 (약 2:19).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적을 상대하고 있습니다. 개신교 전통은 사람이 믿음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고 행위는 그 믿음의 열매라고 말하고, 가톨릭과 동방 교회는 믿음이 사랑으로 살아 있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합니다. 어느 쪽이든 행함 없는 믿음은 죽은 것이며, 행함으로 구원을 벌 수는 없다는 점은 같습니다.
더 생각해 보기
믿음은 성적표처럼 점수를 매기는 것이 아니라, 신뢰하는 관계입니다. 아이는 부모의 설명을 다 이해해서가 아니라 부모를 알기에 그 손을 잡습니다. 아직 확신이 서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겨자씨만 한 믿음이라도 믿는 대상이 크시면 충분하다고 예수께서는 가르치셨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믿음을 어떤 이론에 대한 동의로만 생각해 오지 않았습니까? 내가 의지하는 것들 가운데, 정말 신실한 분께 맡기고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의심을 하나님 앞에 솔직하게 내놓은 적이 있습니까?
더 읽으려면 은혜란 무엇인가?와 구원이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처음 걸음을 떼고 싶다면 어떻게 믿음을 시작할 수 있는가?도 도움이 될 것입니다. 마가복음 9장 14-29절을 천천히 읽어 보시기를 권합니다.
관련 질문
- 은혜란 무엇인가?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와 선물이며, 그 선물은 우리를 용서하고 또 변화시킵니다. 성경은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은혜는 죄를 가볍게 만드는 면허가 아니라 새 삶을 가르치고 이루는 힘입니다.
-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성경은 세계를 질서 있게 지으신 하나님을 말하므로, 그리스도인들은 자연을 탐구하는 일이 그 지혜를 살피는 일이라고 보아 왔습니다. 과학은 세계가 어떻게 움직이는지를 묻고, 성경은 거기에 더해 누가 왜 지으셨는지를 묻습니다. 창세기 1장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있지만, 모두 하나님이 창조주이시라는 데에는 하나입니다.
- 구원이란 무엇인가?성경이 말하는 구원은 죄와 죄책과 죽음에서 건져 내시어 하나님과 함께하는 생명으로 데려가시는 일입니다. 그것은 이미 얻은 것이면서 지금 이루어지고 있고 장차 완성될 것이며, 사람의 공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믿음으로 받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 구원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어진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 어떻게 믿음을 시작할 수 있는가?성경은 믿음의 시작을 어려운 자격 시험이 아니라 초대로 그립니다. 예수께서 부르시고, 사람은 돌이켜 그분을 신뢰하며,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녀를 달려 나가 맞으십니다. 확신이 없어도, 의심이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두를 필요도, 누구에게 떠밀릴 필요도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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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