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 들지 않은 복음서는 무엇인가?
도마복음, 유다복음, 마리아복음 같은 글은 대부분 2~3세기에 쓰였고, 그 상당수는 물질세계를 낮추고 비밀스러운 지식으로 구원받는다고 가르치는 영지주의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교회는 사도들에게서 나왔는지, 일찍부터 널리 읽혔는지, 처음부터 받은 믿음과 일치하는지를 기준으로 네 복음서만 받아들였습니다. 일부 글이 훗날 억눌린 것은 사실이지만, 네 복음서가 더 이르고 더 확실한 증언이라는 것이 교회의 판단입니다.
성경의 답
성경에 들지 않은 복음서가 있다는 사실은 새로운 발견이 아닙니다. 누가는 자기 복음서를 시작하면서 이미 "붓을 든 사람이 많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자신이 글을 쓰는 방식을 밝힙니다.
처음부터 목격자 되고 말씀의 사역자 된 사람들이 우리에게 그것들을 전해 준 그대로 차례대로 제시해서 밝히 보이려고 손을 댄 사람들이 많으므로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나도 데오빌로 각하 당신에게 차례대로 써서 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으니 이것은 각하로 하여금 각하가 이미 설명 받은 그 일들이 확실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
눅 1:2-4
누가가 내세우는 근거는 목격자, 조사, 확실함입니다. 신약의 다른 저자들도 같은 방식으로 말합니다. 베드로는 "우리가 너희에게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권능과 오심을 알려 줄 때에 교묘히 꾸며 낸 이야기들을 따르지 아니하였으며 우리는 그분의 위엄을 눈으로 본 자들이니라."고 씁니다 (벧후 1:16). 요한은 이렇게 증언합니다.
처음부터 계셨던 그것 즉 생명의 말씀에 관하여는 그것을 우리가 들었고 우리 눈으로 보았으며 자세히 살펴보았고 우리 손으로 만졌노라.
요일 1:1
사도로 인정받는 일에도 기준이 있었습니다. 가룟 유다의 자리를 채울 때 사도들은 요한의 세례로부터 주께서 올려 가신 날까지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가운데서 부활의 증인을 세우려 했습니다 (행 1:21-22). 복음은 처음부터 눈으로 본 사람들에게서 받은 증언이었습니다.
또 하나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요한은 예수께서 하신 일을 모두 적지 않았다고 밝힙니다.
진실로 예수님께서 자기 제자들 앞에서 이 책에 기록되지 않은 다른 표적들도 많이 행하셨으나 이것들을 기록함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심을 너희가 믿게 하려 함이요, 또 믿고 그분의 이름을 통해 생명을 얻게 하려 함이니라.
요 20:30-31
그러므로 문제는 "복음서가 네 권뿐이어서 이상하다"가 아닙니다. 예수에 관한 이야기가 더 있었을 것이라는 점은 성경 스스로 인정합니다.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가운데 어느 글이 사도들의 증언을 믿을 만하게 전하는가.
교회의 증언
교회 밖에서 나중에 알려진 복음서들을 살펴보겠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것은 도마복음입니다. 예수의 말씀이라는 114개의 어록을 모은 글로, 1945년 이집트 나그함마디에서 콥트어 사본이 발견되었고, 그보다 앞서 옥시링쿠스에서 나온 그리스어 조각들(대략 200~250년경의 사본)도 알려져 있었습니다. 도마복음이 언제 쓰였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크게 갈립니다. 1세기의 오래된 전승이 그 안에 들어 있다고 보는 학자들도 있고, 지금의 모양으로 엮인 때를 2세기(대략 100~200년)로 보는 학자들도 많습니다. 유다복음은 1970년대에 발견된 사본이 2006년에 공개되어 큰 관심을 모았습니다. 이레나이우스가 180년경에 이미 이 복음서를 언급했으므로, 글 자체는 2세기 중반(대략 130~170년)에 쓰였다고 보는 견해가 일반적입니다. 마리아복음, 빌립복음, 베드로복음은 대개 2세기에서 3세기 사이의 글로 봅니다. 도마복음의 초기 층에 관한 논쟁을 빼면, 이 글들이 1세기 후반에 기록된 네 복음서만큼 이르다고 보는 학자는 드뭅니다.
내용도 다릅니다. 이 글들 가운데 상당수는 영지주의, 곧 "그노시스(지식)"를 강조하는 사상을 담고 있습니다. 물질세계는 열등한 신이 만든 것이고, 사람은 숨겨진 지식을 깨달아 몸에서 벗어남으로써 구원받는다는 가르침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육신을 입으셨다는 것을 받아들이기 어려워했습니다. 사도 요한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체로 오신 것을 시인하는 영"을 시험의 기준으로 삼은 것도 이런 흐름 때문이었다고 교회는 이해해 왔습니다 (요일 4:2). 교부들은 일찍부터 이런 글을 알고 있었습니다. 암브로시우스는 누가복음 1:1을 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많은 사람이 복음서를 쓰려고 시도했으나 "선량한 환전상은 그것들을 통과시키지 않습니다" 암브로시우스. 그는 열두 사도의 이름으로 된 복음서, 바실리데스가 쓴 복음서, 맛디아의 복음서를 예로 듭니다. 가짜 돈을 가려내는 환전상처럼 교회가 진짜를 가렸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교회는 어떤 기준으로 가렸습니까. 첫째는 사도적 기원입니다. 사도에게서 나왔거나 사도의 직접 증언에 닿아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둘째는 널리 오래 읽혔는가 하는 것입니다. 2세기 후반 이레나이우스는 복음서가 네 권이라고 분명히 말했고, 비슷한 시기인 170년 무렵 타티아노스는 네 복음서를 하나로 엮은 『디아테사론』을 만들었습니다. 셋째는 교회가 처음부터 받아 온 믿음과 일치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367년 아타나시우스는 부활절 서신에서 오늘의 신약 27권을 열거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제39 부활절 서신. 다만 이것은 새로운 결정이 아니라 이미 교회가 쓰고 있던 책을 확인한 것이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가 정경을 정했다는 이야기는 근거 없는 속설입니다. 정경이 어떻게 모였는지는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요한복음 20:30을 풀며 이렇게 말합니다. 다른 이들도 "모든 것을 기록한 것이 아니라 사람들을 확신시키는 데 충분한 것만 기록하였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매튜 헨리는 누가의 의도를 이렇게 읽습니다. 그는 "확실히 믿어지고 있고 또 믿어져야 하는 일들"을 기록하려 했다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
원어로 보기
"복음"은 유앙겔리온(εὐαγγέλιον)입니다. "좋은 소식"이라는 뜻으로, 고대 세계에서는 승전이나 황제의 즉위 같은 소식을 알리는 말이기도 했습니다. 신약은 이 말을 책 이름보다 먼저 "전해진 소식"으로 씁니다. 그래서 바울은 갈라디아 사람들에게 자기가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는 사람은 천사라도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 말합니다 (갈 1:8). 복음은 한 가지 소식이며, 네 권의 복음서는 그 하나의 소식을 네 사람이 전하는 형식입니다. 복음서 제목에 "~에 의한(κατά) 복음"이라는 형태가 쓰인 것도 이 때문입니다.
"외경"으로 옮기는 말의 뿌리는 아포크뤼포스(ἀπόκρυφος), 곧 "감추어진"입니다. 골로새서 2:3은 "지혜와 지식의 모든 보화가 감취어 있느니라"고 하는데, 감추어진 곳은 비밀 교훈이 아니라 "그 안", 곧 그리스도입니다. 영지주의 글은 선택된 소수에게만 열리는 숨은 지식을 약속했지만, 신약은 공개적으로 선포된 그리스도께 지혜의 보화가 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디모데에게 "거짓되이 일컫는 지식"을 피하라고 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딤전 6:20, 그노시스(γνῶσις)).
흔한 반론과 답
"교회가 이 글들을 억눌렀다. 이긴 쪽이 역사를 쓴 것이다." 이 반론에는 일부 옳은 면이 있습니다. 4세기 이후 교회가 국가의 힘을 얻은 뒤에는 이단으로 판정된 글을 소유하거나 필사하는 일이 어려워졌고, 사본이 불태워지거나 사라진 경우가 있습니다. 나그함마디 문서가 땅에 묻힌 것을 수도원이 그런 압력을 받은 결과로 보는 학자들도 있지만 이는 추측입니다. 이 점은 숨길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정경의 선택이 후대의 권력이 한 일이라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네 복음서는 공의회의 결정 훨씬 이전인 2세기에 이미 교회가 널리 읽던 책이었고, 영지주의 글들은 그때 이미 교회 안에서 거부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글들의 사본이 지금 우리 손에 있다는 사실이 보여 주듯, 교회는 그것들을 읽을 수 없게 지워 버리는 데는 성공하지 못했습니다.
"도마복음이나 마리아복음에는 여성과 몸을 더 존중하는 다른 기독교가 있었는데, 그것이 밀려난 것이다." 이런 주장은 진지하게 다룰 만합니다. 초기 기독교는 실제로 다양했고, 영지주의 문헌은 그 다양성을 보여 주는 귀한 자료입니다. 그러나 이 글들이 여성과 몸에 더 호의적인지는 읽어 보면 분명하지 않습니다. 도마복음의 마지막 어록은 여자도 남자가 되어야 하늘나라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합니다. 영지주의는 물질과 몸을 열등하게 보았으므로, 몸으로 오신 그리스도와 몸의 부활이라는 복음의 핵심과도 맞지 않습니다. 반대로 네 복음서는 여자들을 빈 무덤의 첫 증인으로 세웁니다 (막 16:6).
"복음서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는데, 왜 이 글들만 배제하는가." 네 복음서는 세부에서 서로 다르지만 같은 사건을 서로 다른 눈으로 전합니다. 갈릴리에서 가르치시고,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다시 사신 같은 예수입니다. 외경 복음서들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 대부분 예수의 이야기보다 비밀스러운 대화나 어록, 또는 훗날 쓰인 유년기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차이가 있다는 이유만으로 모두를 같은 무게로 놓을 수는 없습니다. 목격자에게 얼마나 가까운가가 기준입니다. 이 판단에는 신앙의 전제도 들어 있습니다. 교회는 성령께서 교회가 받을 책을 인도하셨다고 믿으며, 그 믿음 없이도 연대와 증언의 거리는 비교할 수 있습니다.
더 생각해 보기
외경 복음서를 읽는 것은 금지된 일이 아닙니다. 역사와 사상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고, 읽어 보면 네 복음서와의 차이가 더 선명해집니다. 다만 읽을 때 연대, 저자, 사상의 방향을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이 글들은 예수를 더 많이 알려 주는 새 자료라기보다 2~3세기 사람들이 예수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 주는 자료에 가깝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숨겨진 진리"라는 말에 끌리는 사람입니까, 공개된 증언을 따져 보는 사람입니까? 내가 예수를 믿거나 믿지 않는 이유는 어떤 증언을 근거로 합니까? 네 복음서를 한 권씩 천천히 읽어 본 적이 있습니까?
더 읽으려면 성경은 믿을 만한가?와 예수는 실존 인물인가?를 보십시오.
관련 질문
-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성경은 약 1,500년에 걸쳐 여러 저자가 쓴 책들의 모음입니다. 교회는 이 책들을 회의에서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히고 있던 책들을 알아보고 목록으로 확인했다고 고백합니다. 구약과 외경의 범위에 대해서는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의 입장이 다릅니다.
- 성경은 믿을 만한가?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책이라고 소개합니다. 필사본의 수와 이른 시기, 사해 사본 같은 발견은 오늘의 성경이 기록 당시의 본문을 매우 가깝게 전한다고 믿을 근거를 줍니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신뢰할 이유이며, 정직한 의문은 그 신뢰를 시험하는 일이 됩니다.
- 예수는 실존 인물인가?고대사를 연구하는 거의 모든 역사가는 예수가 실제로 살았고 본디오 빌라도 치하에서 십자가에 처형되었다고 봅니다. 이는 그리스도인이 아닌 학자들도 대체로 받아들이는 결론입니다. 가장 이른 신약의 증언과 로마·유대 쪽 기록이 같은 기본 사실을 가리키기 때문입니다.
- 예수는 누구인가?교회는 예수를 약속된 메시야요 하나님의 아들이며 주님이시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칼케돈 공의회의 말로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한 분입니다. 이것은 그분을 가장 가까이서 따른 사람들이 증언한 것이며, 예수께서 직접 던지신 질문 앞에서 지금도 모든 사람이 답해야 하는 문제입니다.
관련 주제
출처
- 아타나시우스, 제39 부활절 서신 367 — 오늘의 신약 27권을 정경으로 열거한 가장 이른 목록.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