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는 왜 이렇게 많이 나뉘었는가?
교회가 나뉜 까닭은 하나가 아닙니다. 진리라고 믿는 것을 지키려는 신념도 있었고, 교만과 다툼과 정치와 문화의 차이 같은 죄도 있었습니다. 성경은 분열을 슬퍼하되, 그리스도 안의 하나 됨이 모든 점에서 똑같아지는 것은 아니라고 가르칩니다. 그리고 갈라진 교회들은 지금도 같은 신경으로 같은 주님을 고백합니다.
성경의 답
예수께서는 십자가에 달리시기 전날 밤, 제자들만이 아니라 앞으로 믿게 될 모든 사람을 위해 기도하십니다.
이것은 그들이 다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우리 안에서 하나가 되게 하사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세상이 믿게 하옵소서.
요 17:21
이 기도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신자들의 하나 됨은 세상이 예수를 알아보는 증거가 되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교회의 분열은 취향의 문제가 아니라 복음의 증언에 관한 문제입니다. 사도들도 이 하나 됨을 거듭 강조합니다.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너희를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너희가 부르심을 받은 것 같이 한 몸과 한 성령이 있고
엡 4:3-4
또한 에베소서는 "한 주와 한 믿음과 한 침례가 있으며 한 하나님이 계시니 곧 모든 것의 아버지시라. 그분께서는 모든 것 위에 계시고 모든 것에 두루 계시며 너희 모두 안에 계시느니라."라고 이어집니다 (엡 4:5-6).
그런데 이 하나 됨이 쉽지 않다는 것도 성경이 먼저 보여 줍니다. 신약 시대의 교회에도 갈등이 있었습니다. 고린도 교회에서는 이런 말이 오갔습니다.
이제 내가 이것을 말하노니 곧 너희가 각각 이르기를, 나는 바울에게, 나는 아볼로에게, 나는 게바에게, 나는 그리스도께 속하였다, 하는도다.
고전 1:12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나뉘셨느냐? 바울이 너희를 위해 십자가에 못 박혔느냐? 혹은 너희가 바울의 이름으로 침례를 받았느냐?"라고 되묻습니다 (고전 1:13). 바울과 바나바는 선교 여행의 동행을 두고 "그들 사이에 다툼이 격렬하여 그들이 서로 갈라져 떠나니 이처럼 바나바는 마가를 데리고 배 타고 키프로스로 가고" 했습니다 (행 15:39). 이 경우 두 사람은 각기 복음 사역을 계속했습니다. 분열이 언제나 죄라고 단정할 수는 없음을 보여 주지만, 그것이 아픔이었다는 사실도 지워지지 않습니다.
성경은 하나 됨이 모든 것을 같게 하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교회를 한 몸에 비유합니다.
몸은 하나이며 많은 지체를 가지고 있고 그 한 몸의 모든 지체가 많아도 한 몸인 것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시니라.
고전 12:12
또 믿음이 약한 이를 받아들이되 "믿음이 약한 자를 너희가 받아들이되 의심에 찬 논쟁은 하지 말라."고 권합니다 (롬 14:1). 하나 됨은 획일성이 아닙니다. 다만 모든 차이가 다 그렇게 가볍다는 뜻도 아닙니다. 어떤 것은 지켜야 할 진리이고, 어떤 것은 서로 참아 줄 일입니다. 어디에 선을 그을지가 교회가 늘 씨름해 온 문제입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의 분열은 한꺼번에 일어난 일이 아니라 긴 역사입니다. 몇 가지 큰 갈림길만 짚어 보겠습니다.
초기의 갈라섬. 5세기의 공의회들 이후 일부 교회는 그 결정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431년의 에베소 공의회 이후에는 페르시아의 동방교회(오늘의 아시리아 동방교회)가 점차 따로 섰고, 451년의 칼케돈 공의회 이후에는 콥트, 에티오피아, 아르메니아 교회 등이 따로 서게 되었습니다. 이 논쟁은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어떻게 말하느냐에 관한 것이었는데, 오늘날 일부 대화에서는 차이의 상당 부분이 용어에 관한 것이었다고 평가하기도 합니다. 이 평가에 모든 신학자가 동의하는 것은 아닙니다.
1054년, 동서 교회의 분열. 로마의 교황 사절과 콘스탄티노플의 총대주교가 서로를 파문했고, 흔히 이 해를 동방 정교회와 서방 가톨릭 교회가 갈라선 때로 말합니다. 그러나 역사가들은 이 사건이 갑자기 터진 것이 아니라 오래 쌓인 소원함의 결과였다고 봅니다. 쟁점은 교황의 권위와, 니케아 신경에서 성령이 "아들로부터도" 나오신다는 서방의 덧붙임(필리오케)이었습니다. 두 교회는 1965년에 서로에 대한 파문을 철회했지만 아직 성찬을 함께 나누지는 못합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 1517년 마르틴 루터가 면죄부에 항의하며 시작된 개혁은 칭의와 성경의 권위 같은 물음으로 나아갔습니다. 루터교는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으로 자신의 가르침을 밝혔고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가톨릭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그에 응답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칭의에 관한 교령. 개혁은 곧 루터교, 개혁교회(칼뱅 계통), 성공회, 재세례파 등으로 갈라졌습니다. 이 과정에는 신학만이 아니라 정치와 권력도 얽혀 있었습니다. 그것을 지우고 순수한 신념의 이야기로만 말할 수는 없습니다.
이후의 분화. 그 뒤 침례교회, 감리교회, 오순절 교회 등이 차례로 나타났습니다. 각각 세례를 누구에게 어떻게 줄 것인가, 교회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가, 성령의 은사를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같은 물음에서 갈라졌고, 거기에 언어와 문화와 지역의 차이가 더해졌습니다. 교단이 몇 개인지는 무엇을 교단으로 세느냐에 따라 달라서, 수만 개라는 숫자는 정확한 통계라기보다 어림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갈라진 교회들이 함께 고백하는 것은 많습니다. 가톨릭, 정교회,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같은 니케아 신경으로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성과 부활을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1999년에는 루터교 세계연맹과 가톨릭교회가 「칭의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에서 칭의의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하고, 16세기의 상호 정죄가 이 공동의 이해에는 해당하지 않는다고 선언했습니다 칭의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갈라선 사이에도 서로 가까워지려는 움직임이 있다는 뜻입니다.
매튜 헨리는 요한복음 17:21을 풀며 "그들이 사소한 일들에 대하여 더 많이 논쟁할수록 기독교에 더 많은 의심을 던지게 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고린도전서 1:10에 대해서는 이렇게 권합니다. "신앙의 중대한 일에서는 한마음이 되십시오. 견해의 일치가 없는 곳에서도 사랑의 연합만은 있게 하십시오" 매튜 헨리.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17장에서 예수께서 "우리 안에"라고 덧붙이신 것을 두고, 이는 "사랑으로 우리가 하나가 되는 것이 우리 자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은 것임을 보이시려는 것입니다"라고 풀이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원어로 보기
고린도전서 1:10의 "분쟁"은 헬라어 스키스마(σχίσμα)의 복수형입니다. 이 말은 본래 옷감을 찢는 것처럼 "갈라진 틈"을 뜻하며, 영어의 "schism"이 여기서 왔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교리가 달라진 문제로만이 아니라 한 몸에 찢김이 생기는 일로 봅니다.
요한복음 17:21의 "하나"는 헤이스(εἷς)입니다. 예수께서는 이 하나 됨을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에 비추어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구성원이 똑같아지는 일이 아니라, 서로 다른 분이 서로 안에 계시는 사랑의 일치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교회가 이렇게 갈라졌으니 아무도 진리를 알지 못하는 것 아닌가? 예수의 기도는 실패한 것 아닌가?" 이 반론은 가볍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 됨이 세상이 믿는 이유가 되리라고 하셨는데, 서로 다투는 교회는 그 반대의 증거가 되어 왔습니다. 이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두 가지를 말할 수 있습니다. 첫째, 의견이 갈린다고 해서 진리가 없는 것은 아닙니다. 과학자들이 논쟁한다고 자연의 법칙이 없다고 하지 않듯이, 그리스도인들이 갈린다고 해서 계시가 없다고 할 수는 없습니다. 둘째, 갈라진 교회들은 신경이 말하는 핵심에서 놀랄 만큼 일치합니다. 다만 이 대답이 분열의 죄를 가볍게 만들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의 참된 교회가 있어야 하지 않는가? 어느 쪽이 맞는가?" 이 물음에 대한 대답은 교회마다 다르며, 이 글이 어느 한쪽을 택하지는 않습니다. 가톨릭교회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로마의 교황과 일치하는 교회 안에 있다고 고백하면서도, 다른 교회에도 교회의 요소가 있음을 인정합니다 교회 헌장. 정교회는 자신이 사도들의 가르침과 공의회들의 전통을 변함없이 지켜 온 교회라고 이해합니다. 개신교회는 대체로 참된 교회를 그리스도와 복음 위에 서 있는 신자들의 몸으로 보며, 눈에 보이는 하나의 조직으로 한정하지 않습니다. 세 입장 모두 하나 됨이 눈에 보여야 한다는 소원에는 동의하지만 그 길을 달리 봅니다. 자세한 차이는 가톨릭과 개신교는 무엇이 다른가?에서 다룹니다.
"차이가 사소하다면 합치면 되지 않는가? 아니면 어차피 다 같은 것 아닌가?" 갈라선 사람들의 다수는 중요하다고 믿는 것을 위해 갈라섰습니다. 세례를 누구에게 줄 것인가, 성찬에서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임재하시는가 같은 물음은 당사자들에게 사소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차이를 지우고 합치면 어느 쪽의 확신도 존중받지 못합니다. 반대로 모든 분열이 신념 때문이었다고 말하는 것도 정직하지 않습니다. 교만과 권력욕과 사람 중심의 편 가르기, 문화와 인종의 장벽이 분열을 낳은 일도 많았습니다. 신념으로 갈라선 것과 죄로 갈라선 것을 가려내는 일은 쉽지 않으며, 그 판단을 겸손하게 해야 합니다.
더 생각해 보기
분열은 슬퍼할 일이지만 절망할 일은 아닙니다. 하나 됨은 우리가 만들어 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이 이미 주신 것이며, 우리는 그것을 "화평의 매는 띠로 성령이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는 부름을 받았습니다 (엡 4:3). 내가 속한 교회의 전통에 대한 확신을 지키면서도 다른 전통의 그리스도인을 형제로 대하는 것이 그 첫걸음일 수 있습니다. 하나 됨은 모든 점에서 같아지는 데 있지 않고, 같은 주님을 부르며 서로 사랑하는 데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요 13:35).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다른 교단 사람들에 대해 내가 가진 생각은 어디에서 왔습니까? 내 교회와 다른 전통에서 배울 점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내 교회 안에서 하나 됨을 해치는 일은 없습니까?
더 읽으려면 교회는 왜 필요한가?, 가톨릭과 개신교는 무엇이 다른가?, 이단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를 보십시오. 요한복음 17장을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관련 질문
- 교회는 왜 필요한가?성경은 교회를 건물이나 조직이기 전에 그리스도의 몸이며 하나님의 가족이라고 부릅니다. 믿음은 개인적이지만 혼자 하는 것이 아니어서, 말씀과 기도와 성례와 교제 속에서 자라도록 지어졌습니다. 교회는 상처와 실패를 남겨 왔으나 그 사실을 숨기지 않고도 교회가 필요하다는 증언은 이어집니다.
- 가톨릭과 개신교는 무엇이 다른가?가톨릭(천주교)과 개신교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그리스도의 신성, 십자가와 부활을 함께 고백하는 한 그리스도교입니다. 둘의 차이는 권위의 중심(성경과 전통, 교황), 구원의 설명(칭의), 성례의 수와 이해, 마리아와 성도에 대한 신앙, 교회의 구조에서 나타납니다. 이 글은 각 교회의 가르침을 가능한 한 그 교회의 말로 소개합니다.
- 이단은 어떻게 분별할 수 있는가?이단을 분별하는 기준은 사람의 인상이나 규모가 아니라 그리스도와 복음, 성경, 그리고 열매입니다. 예수가 누구이신지, 구원이 무엇으로 말미암는지, 성경 위에 다른 권위를 세우는지, 지도자가 자기를 높이는지, 사람을 묶고 고립시키는지를 살펴야 합니다.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의 견해 차이는 이단이 아니며, 분별은 정죄가 아니라 사람을 지키려는 사랑에서 나와야 합니다.
- 삼위일체란 무엇인가?삼위일체는 하나님이 한 분이시며, 그 한 분 하나님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 곧 세 위격으로 영원히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세 분의 신이 있다는 뜻도, 한 분이 세 가지 모습으로 나타나신다는 뜻도 아닙니다. 이 교리는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것을 모두 지키려는 교회의 오랜 노력이며,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사랑이시라는 고백으로 이어집니다.
관련 주제
출처
-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 루터교의 기본 신앙고백.
-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칭의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 가르침.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 루터교 세계연맹·가톨릭교회,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1999 — 칭의에 대한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한 문서.
-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교회 헌장(인류의 빛) 16 (1964) — 복음을 알지 못하는 이들의 구원 가능성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