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하나님은 무엇이든 하실 수 있는가?

짧은 답

성경은 하나님께 능치 못한 일이 없다고 말하며, 교회는 이를 전능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전능은 자기 모순을 이루는 능력이 아니라 그분의 본성에 합당한 모든 일을 이루시는 능력이며,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다는 것은 약함이 아니라 온전하심입니다. 이 능력은 추상적인 교리가 아니라, 우리를 사랑하시는 분의 능력이라는 점에서 위로가 됩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하나님의 능력을 거듭해서 말합니다. 아브라함과 사라가 늙어 아이를 기대할 수 없게 되었을 때, 하나님은 이렇게 물으십니다.

주에게 너무 어려운 일이 있느냐? 생명의 때를 따라 내가 정한 때에 네게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한 아들이 있으리라, 하시니라.

창 18:14

예레미야는 바벨론의 포위 속에서 땅을 사라는 명령을 받고 혼란스러워하며 기도합니다. 그는 감정이 아니라 창조를 붙잡습니다.

아, 주 하나님이여! 보시옵소서. 주께서 주의 크신 권능과 뻗은 팔로 하늘과 땅을 만드셨사오니 주께는 너무 어려운 일이 없나이다.

렘 32:17

신약도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하나님께는 불가능한 일이 없느니라, 하니라."고 전합니다 (눅 1:37). 예수께서는 부자가 구원받기 어렵다는 말씀에 놀란 제자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을 보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들에게는 이것이 불가능하나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니라, 하시니라.

마 19:26

그러나 같은 성경이 하나님이 하실 수 없는 일도 말합니다. 바울은 영생이 "영원한 생명의 소망 안에서 사도가 되었는데 이 생명은 거짓말하실 수 없는 하나님께서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약속하셨으나"이라고 씁니다 (딛 1:2). 히브리서는 더 강하게 말합니다.

이것은 우리 앞에 놓인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난처로 도피한 우리가 하나님께서 거짓말하실 수 없는 두 가지 불변하는 것으로 말미암아 확고한 안위를 얻게 하려 하심이라.

히 6:18

또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믿지 아니하여도 그분은 항상 신실하시니 자신을 부인할 수 없느니라.

딤후 2:13

야고보도 하나님은 악에게 시험을 받지도 않으시고 아무도 시험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약 1:13). 그렇다면 성경은 서로 모순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그림을 그리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은 무한하지만 그것은 그분이 누구신지와 따로 떨어진 능력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자기 자신이 아닌 것이 되실 수 없습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사도신경에서 전능하신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신경. 눈여겨볼 점은 이 신조가 전능을 곧바로 아버지 되심과 묶는다는 것입니다. 능력이 먼저 나오고 사랑이 나중에 나오는 것이 아니라, 능력 있는 분이 아버지라는 것입니다.

누가복음 1:37에 대한 카테나에는 이 문제를 곧바로 다룬 아우구스티누스의 글이 있습니다. 누가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이미 이루어진 일들이 이루어지지 않은 것이 되게 하시라"고 한다면, 그것은 "참된 것들이 바로 참된 그 점에서 거짓이 되게 하시라"고 하는 것과 같다고 그는 말합니다. 그리고 이렇게 덧붙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죽으실 수도 있다고 가정하여 그분을 전능하다고 부르는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죽을 수 있다는 것은 능력의 표시가 아니라 약함의 표시라는 뜻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같은 구절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본성의 주인께서는 생명과 죽음의 고삐를 쥐고 모든 것을 이루시고 처리하시는 분이므로 모든 것을 뜻대로 하실 수 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마리아가 믿기 어려운 소식 앞에 섰을 때 교회는 이 말씀을 불가능한 것을 가능하게 하는 능력의 말씀으로 들어 왔습니다.

매튜 헨리는 히브리서 6장을 풀면서 하나님이 거짓말하실 수 없는 이유를 이렇게 설명합니다. 그것은 "그분의 뜻에 반할 뿐 아니라 그분의 본성에도 반합니다" 매튜 헨리. 예레미야 32장에 대해서는 이렇게 권합니다. "우리가 섭리의 방식에 대해 언제든 당혹스러울 때에는 첫째 원리들을 바라보는 것이 좋습니다" 매튜 헨리. 하나님은 모든 존재와 능력과 생명의 근원이시라는 첫째 원리입니다.

중세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점을 신학의 언어로 정리했습니다. 모순을 품은 것은 애초에 가능한 일의 범위에 들지 않으므로, 하나님이 그것을 하실 수 없다기보다 그런 일은 될 수 없다고 말하는 편이 옳다고 그는 보았습니다. 둥근 사각형처럼 말은 되지만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폭넓은 전통입니다. 다만 철학자 데카르트는 수학의 진리 같은 영원한 진리도 하나님이 자유롭게 정하신 것이라고 보았고, 이를 하나님의 능력이 논리의 규칙에까지 미친다는 뜻으로 읽는 해석이 있습니다. 이런 견해를 따르는 이들은 소수입니다. 대부분의 교회는 하나님의 자유가 자기 본성에 어긋나는 것을 하시는 자유가 아니라고 이해합니다.

원어로 보기

창세기 18:14의 "능치 못한 일"에 해당하는 히브리어 동사는 팔라(פָּלָא)입니다. 이 말은 "놀랍다, 너무 어렵다, 보통의 능력을 넘어선다"는 뜻을 함께 가집니다. 사라가 웃은 이유는 사람의 눈에는 그것이 팔라, 곧 감당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대답은 그런 일이 없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 32:17의 "능치 못한 일이 없으시니이다"에도 같은 동사가 쓰입니다.

하나님의 전능을 가리키는 칭호로 신약은 판토크라토르(παντοκράτωρ), "전능하신 이"를 씁니다. 이 말은 문자 그대로 "모든 것을 붙드시는 이, 모든 것을 다스리시는 이"라는 뜻입니다. 모든 일을 "할 수 있다"는 가능성보다 모든 것 위에 실제로 통치하신다는 뜻에 가깝습니다. 니케아 신경의 헬라어 본문도 전능하신 아버지를 고백할 때 이 낱말을 씁니다.

히브리서 6:18의 "할 수 없는"은 아뒤나톤(ἀδύνατον)입니다. 마태복음 19:26의 "사람으로는 할 수 없으되"에도 같은 말이 쓰였고, 누가복음 1:37의 "능치 못하심이 없느니라"에는 같은 어근의 동사가 나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같은 하나님에 대해 "하실 수 없는 것이 없다"와 "거짓말하실 수 없다"를 둘 다 같은 어휘로 말하는 셈입니다. 이 두 말은 서로 부딪치지 않습니다. 앞은 하나님이 외부의 어떤 힘에도 막히지 않으신다는 뜻이고, 뒤는 그분이 자기 자신에게 충실하시다는 뜻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하나님이 전능하시다면 자신이 들 수 없는 돌을 만들 수 있는가? 만들 수 있다면 못 드는 것이고, 못 만든다면 못 하는 것이다." 이것은 오래된 역설이고, 가볍게 넘길 수 없는 질문입니다. 겉보기에는 어느 쪽 대답도 하나님의 능력에 제한을 두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이 질문은 "전능한 존재가 전능하지 않게 되는 일을 할 수 있는가"를 묻는 질문입니다. 이것은 "둥근 사각형을 그려 보라"는 요구와 같은 종류입니다. 말은 문법적으로 정상이지만 뜻이 없습니다. 하나님이 이것을 못 하시는 것은 힘이 모자라서가 아니라 요구 자체가 아무것도 가리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떤 이들은 여기서 성육신을 떠올립니다. 하나님의 아들은 하나님이시기를 그치지 않으신 채 종의 형체를 가지시고 자기를 낮추셨습니다 (빌 2:6-7). 그것은 능력을 잃으신 것이 아니라 사랑을 위해 능력을 쓰신 방식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거짓말도 못 하시고 죄도 못 지으신다면 그것은 능력의 한계 아닌가? 전능이라는 말이 공허해진다." 이 반론은 강합니다. 정의상 무엇이든 할 수 있어야 전능이라고 부를 수 있다는 것이니까요. 그러나 성경이 말하는 하나님은 완전히 선하신 분입니다. 거짓말을 못 하는 것은 거짓말하는 능력이 없는 것이 아니라 거짓이 그분의 본성과 어울리지 않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비유하면 사랑하는 사람을 배신하지 못하는 사람을 약하다고 하지 않고 신실하다고 부릅니다. 악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은 능력이 아니라 결함이라는 것이 교회의 전통적인 대답입니다. 다만 이 대답에 모두가 만족하는 것은 아니며, 철학자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지금도 논의된다는 점은 정직하게 밝혀 둡니다.

"전능하고 선하신 하나님이 계신데 왜 세상에 악이 있는가?" 이것은 전능에 대한 가장 무거운 질문이며, 이 짧은 글에서 다 풀 수는 없습니다. 다만 전능이 "하나님은 하고 싶은 것은 모두 즉시 하신다"는 뜻이 아니라는 것은 말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자유로운 피조물을 만드셨고, 사랑은 강요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이에 대해서는 선하신 하나님이 왜 악을 허락하시는가?에서 더 살펴봅니다.

더 생각해 보기

하나님의 전능은 철학 시험문제로 끝나지 않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이 능력을 가장 큰 위로로 바꿉니다.

그런즉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1

이 장은 이렇게 끝납니다.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현재 있는 것들이나 장래 있을 것들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창조물이라도 능히 우리를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떼어 놓지 못하리라." (롬 8:38-39). 능력이 사랑과 함께 있을 때 위로가 됩니다. 능력만 있고 사랑이 없다면 두려움의 대상일 뿐이고, 사랑만 있고 능력이 없다면 안쓰러운 동정일 뿐입니다. 성경의 하나님은 둘 다이십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께 "이것은 너무 어렵습니다"라고 말하고 있는 일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모든 것을 하실 수 있다는 믿음과, 그분이 항상 내가 원하는 방식으로 하시지는 않는다는 사실 사이에서 나는 무엇을 붙잡고 있습니까? 힘을 가진 분의 신실하심이 내게 어떤 평안을 줍니까?

더 읽으려면 하나님은 어떤 분인가?, 하나님은 마음을 바꾸시는가?,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가?를 보십시오.

출처

  1.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