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예배란 무엇인가?

짧은 답

예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고, 그분께 마땅한 영광과 감사와 순종으로 응답하는 일입니다. 함께 모여 드리는 모임에서 시작하여 일상 전체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배의 형식은 교회마다 다르지만,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한 분 하나님이시며, 아버지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성경의 답

예배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고 나서 터져 나오는 응답입니다. 성경에서 가장 선명한 장면 가운데 하나는 이사야가 성전에서 본 환상입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또한 내가 보니 주께서 높이 들린 왕좌에 앉으셨는데 그분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고

사 6:1

스랍들은 "하나가 다른 하나에게 외쳐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주여, 그분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라고 서로 화답합니다 (사 6:3). 이사야의 첫 반응은 찬양이 아니라 두려움이었습니다.

그때에 내가 이르기를, 내게 화가 있도다! 내가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또 입술이 부정한 백성의 한가운데 거하거니와 내 눈이 왕 곧 만군의 주를 보았도다, 하매

사 6:5

이 장면에는 예배의 기본 순서가 들어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뵙고, 자기의 죄를 깨닫고, 용서를 받고, 보내심에 응답합니다. 예배는 감정을 끌어올리는 일이 아니라 실재하시는 분 앞에 서는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사마리아 여인에게 예배가 어디에서 드려지느냐보다 어떻게 드려지느냐가 중요하다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니 그분께 경배하는 자들이 반드시 영과 진리로 그분께 경배할지니라, 하시니라.

요 4:24

앞 절에서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그러나 참되게 경배하는 자들이 영과 진리로 아버지께 경배할 때가 오나니 곧 지금이라. 이는 아버지께서 자기에게 그렇게 경배하는 자들을 찾으시기 때문이니라."고 하십니다 (요 4:23). 예배에서 먼저 움직이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이 예배자를 찾으십니다. 이제 예배는 특정한 산이나 성전에 매이지 않습니다. 성령 안에서, 그리고 진리이신 그리스도를 통하여 어디에서나 드릴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예배가 일요일 한 시간으로 끝나지는 않습니다. 바울은 이렇게 권합니다.

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긍휼을 힘입어 너희에게 간청하노니 너희는 너희 몸을 거룩하고 하나님께서 받으실 만한 살아 있는 희생물로 드리라. 그것이 너희의 합당한 섬김이니라.

롬 12:1

몸을 드린다는 것은 일터와 가정과 관계에서 사는 삶 전체를 드린다는 뜻입니다. 이 "예배"는 일상의 삶과 따로 떨어진 의식이 아니라 삶 자체입니다.

한편 성경은 함께 모이는 예배도 분명히 말합니다. 첫 교회는 이렇게 모였습니다.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

행 2:42

히브리서는 "어떤 사람들의 습관과 같이 우리의 함께 모이는 일을 폐하지 말고 서로 권면하되 그 날이 다가옴을 너희가 볼수록 더욱 그리하자." 서로 격려하라고 권하고 (히 10:25), 골로새서는 말씀이 풍성히 거하도록 함께 가르치고 노래하라고 합니다 (골 3:16). 개인의 경건과 함께 모이는 예배는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교회의 증언

처음 교회가 어떻게 예배했는지는 초기의 증거에서 단편적으로 볼 수 있습니다. 2세기 초 소(小) 플리니우스는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리스도인들이 정해진 날 동이 트기 전에 모여 그리스도께 신께 하듯 노래한다고 보고합니다 소 플리니우스, 서간집 10.96. 사도행전은 그들이 "주의 첫날에 제자들이 빵을 떼려고 함께 오니 바울이 이튿날 떠나려고 준비한 채 그들에게 말씀을 선포하며 계속해서 한밤중까지 말을 하니라." 떡을 떼려고 모였다고 전합니다 (행 20:7).

왜 일요일입니까? 복음서는 예수께서 "안식 후 첫날" 이른 아침에 부활하셨다고 기록하고 (요 20:1), 그날 저녁 제자들이 모인 곳에 나타나셨다고 합니다 (요 20:19). 요한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되었다고 쓰는데 (계 1:10), 많은 학자는 이것을 주일을 가리키는 말로 읽습니다. 다만 이 날의 의미에 대해 교회의 이해는 갈립니다. 개혁교회와 청교도 전통은 주일을 안식일 계명이 새롭게 된 날로 지키는 경향이 있습니다. 루터교를 비롯한 다른 전통은 주일을 안식일의 계명이 아니라 부활을 기념하여 모이는 자유로운 날로 이해합니다. 제칠일안식일예수재림교회처럼 토요일을 지키는 교회도 있습니다. 바울은 이 문제에서 서로 판단하지 말라고 합니다 (롬 14:5).

예배의 형식도 다릅니다. 성공회와 정교회, 가톨릭, 루터교는 오랜 전례를 따라 기도문과 성경 봉독, 성찬을 중심에 둡니다. 이 전통은 이스라엘이 정해진 시편으로 함께 노래했다는 점을 들며, 여러 세기 동안 교회가 함께 드려 온 기도에 자신을 맡기는 것이 겸손한 길이라고 말합니다. 침례교회와 오순절 계통의 교회를 비롯한 많은 개신교 교회는 비교적 자유로운 예배를 드리며 설교와 즉흥적인 기도, 찬양을 중심에 둡니다. 이 전통은 바울이 말한 "각각" 모임에 기여하는 모습(고전 14:26)을 들며 성령이 주시는 자유와 마음에서 우러난 응답을 강조합니다. 두 전통 모두 말씀과 기도와 찬양, 그리고 그리스도께 대한 응답이라는 같은 뼈대를 공유하며, 각각 형식이 비어 버릴 위험과 형식이 없어 흐트러질 위험을 안고 있습니다.

매튜 헨리는 사도행전 2:42를 풀면서, 그리스도교가 능력으로 받아들여질 때 영혼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도록 정하시고 우리를 만나시기로 약속하신 모든 방법으로 하나님과 교제하도록" 이끌린다고 설명합니다 매튜 헨리. 또 그는 이사야 6장을 풀며 "우리와 이 거룩하신 하나님 사이에 중보자가 없다면 우리는 망한 자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예배하는 사람은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다는 것이 교회의 변함없는 고백입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예배하다"로 가장 자주 옮겨지는 말은 프로스퀴네오(προσκυνέω)입니다. 구약에서 비슷한 뜻으로 쓰인 샤하(שָׁחָה)와 같이 "엎드려 절하다"는 몸의 동작을 가리킵니다. 시편 95:6은 "오 오라, 우리가 경배하고 절하며 우리를 만드신 분 곧 주 앞에 무릎을 꿇자."라고 초대합니다 (시 95:6). 예배에는 몸의 자세가 들어 있습니다.

또 하나는 라트류오(λατρεύω)로, "섬기다"라는 뜻입니다. 로마서 12:1의 "예배"는 이 말의 명사형입니다. 예배와 섬김이 한 낱말에 들어 있다는 것은, 성경이 예배를 노래 순서만이 아니라 하나님께 드리는 삶의 섬김으로 이해한다는 뜻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하나님이 정말 전능하시고 스스로 충분하시다면, 사람의 찬양을 받고 싶어 하는 것은 자기중심적이지 않은가?" 이것은 진지한 반론입니다. 우리는 칭찬을 요구하는 사람을 자기도취적이라 여기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의 예배를 필요로 하지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시편 50편에서 하나님은 "가령 내가 주린다 할지라도 네게 말하지 아니하리니 세상과 거기의 충만한 것이 내 것이로다."라고 하십니다 (시 50:12). 예배는 하나님의 결핍을 채우는 일이 아닙니다. 교회는 오히려 사람이 자기보다 크고 선한 것을 보고 경탄하는 것이 가장 사람다운 반응이라고 말합니다. 아름다운 산이나 음악 앞에서 우리는 그것을 칭찬하지 않으면 마음이 불완전하다고 느낍니다. 가장 선하신 분 앞에서 그것은 더 그러합니다. 그렇지만 이 대답이 모든 사람을 설득하지는 못하며, 예배가 하나님께 "받으시는" 일이 되려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먼저 믿어야 합니다.

"예배는 종교적 의식일 뿐 삶과 상관없는 형식이 아닌가?" 이 반론에 대해 성경은 반박하기보다 먼저 동의합니다. 아모스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너희의 명절날들을 미워하고 멸시하며 너희의 엄숙한 집회들에서 냄새를 맡지 아니하리라.

암 5:21

그 까닭은 예배 뒤에 정의가 따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오직 판단의 공의를 물같이, 의를 힘찬 시내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암 5:24). 삶과 분리된 예배는 하나님이 거부하신 예배입니다. 그렇다고 예배가 불필요하다는 결론이 나오지는 않습니다. 성경은 예배에서 삶으로, 삶에서 다시 예배로 이어지는 하나의 흐름을 말합니다.

"예배는 꼭 교회에 가야 하는가? 자연 속에서 혼자 드려도 되지 않는가?" 시편은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노래하므로 (시 19:1), 자연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경험은 실재합니다. 혼자 드리는 예배도 성경적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믿는 자를 한 몸으로 부르며 (고전 12:12), 함께 모이는 것을 권합니다. 그 이유는 우리가 서로의 믿음을 붙들어 주도록 지어졌기 때문입니다. 다만 모임에 나가기 어려운 병이나 박해 가운데 있는 사람, 교회에서 상처받은 사람을 정죄하는 것은 성경의 뜻이 아닙니다.

더 생각해 보기

예배는 하나님을 향한 나의 의무이기 전에, 하나님이 나를 찾으신다는 초대입니다. 그렇게 보면 예배의 무게는 내가 얼마나 잘 드리느냐에 있지 않고 누구 앞에 서느냐에 있습니다. 이사야처럼 부족한 사람도 용서를 받고 보내심을 받았습니다.

생각해 볼 질문이 있습니다. 나에게 예배는 의무입니까, 만남입니까? 일주일의 나머지 시간은 내가 드리는 "산 제사"와 어떻게 이어져 있습니까? 내가 속한 예배의 형식이 아닌 다른 전통의 예배에서 배울 것은 무엇이겠습니까?

더 읽으려면 교회는 왜 필요한가?, 세례와 성찬은 무엇인가?,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를 보십시오. 시편 95편과 100편을 소리 내어 읽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출처

  1. 소(小) 플리니우스, 서간집 10.96 — 112년경.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송한다고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고한다.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