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뜻은 어떻게 알 수 있는가?
하나님은 우리가 지켜야 할 뜻을 성경에 이미 밝히셨고, 그 뜻을 분별하도록 마음을 새롭게 하고 지혜와 조언을 구하라고 하십니다. 그러나 모든 선택마다 숨겨진 단 하나의 정답을 찾아내야 하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감추신 일은 맡기고 나타내신 일은 행하는 사람을 인도하십니다. 이 인도를 이해하는 방식은 전통마다 조금씩 다릅니다.
성경의 답
"하나님의 뜻이 무엇입니까?"라는 질문은 대개 진로, 결혼, 이사처럼 큰 선택 앞에서 나옵니다. 성경이 여기에 답하는 방식은 두 가지를 구별하는 것에서 시작합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합니다.
은밀한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 속하거니와 계시된 그 일들은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하나니 이것은 우리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29:29
하나님께는 우리에게 감추신 일이 있고, 나타내 보이신 일이 있습니다. 감추신 일은 그분의 것이고, 나타내신 일은 우리가 행하도록 주어진 것입니다. 우리는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을 모두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분이 우리에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는 이미 많이 알려 주셨습니다.
그 계시된 뜻은 구체적입니다. 바울은 이렇게 씁니다.
하나님의 뜻은 이것이니 곧 너희가 거룩히 구별되는 것이라. 너희는 음행을 삼가고
살전 4:3
그리고 다른 곳에서는 이렇게 씁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모든 일에서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너희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니라.
살전 5:16-18
미가는 선한 것이 무엇인지 이미 보여 주셨다고 합니다.
오 사람아, 그분께서 무엇이 선한 것인지 네게 보이셨나니 주께서 네게 요구하시는 것은 오직 의롭게 행하고 긍휼을 사랑하며 겸손하게 네 하나님과 함께 걷는 것이 아니냐?
미 6:8
거룩함, 기쁨, 기도, 감사, 공의, 사랑, 겸손. 이것은 직업이나 배우자를 정해 주는 말씀은 아니지만, 어떤 직업과 어떤 결혼에서든 하나님이 원하시는 모습입니다.
그다음 질문은 성경이 직접 답하지 않는 선택입니다. 여기서 성경은 분별력을 키우라고 말합니다.
너희는 이 세상에 동화되지 말고 오직 너희 생각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그 선하시고 받으실 만하며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입증하도록 하라.
롬 12:2
또 지혜가 부족하면 구하라고 합니다.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지혜가 부족하거든 모든 사람에게 너그러이 주시고 꾸짖지 아니하시는 하나님께 구하라. 그리하면 그것을 그에게 주시리라.
약 1:5
잠언은 조언을 구하라고 반복합니다. "조언이 없으면 백성이 넘어져도 조언자가 많으면 안전이 있느니라." (잠 11:14). 그리고 기본이 되는 태도를 말합니다.
네 마음을 다하여 주를 신뢰하고 네 자신의 명철을 의지하지 말지어다. 네 모든 길에서 그분을 인정하라. 그리하면 그분께서 네 행로들을 지도하시리라.
잠 3:5-6
성경 이야기에서 인도는 여러 방식으로 일어납니다. 사도행전 16장의 바울 일행은 아시아에서 말씀을 전하려다 성령께 막히고, 비두니아로 가려다 "예수의 영"이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다 드로아에서 마게도냐 사람의 환상을 봅니다. 그 뒤에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가 그 환상을 본 뒤에 주께서 그들에게 복음을 선포하라고 우리를 부르신 줄로 확신하였으므로 우리가 즉시 마케도니아로 들어가려고 힘쓰니라.
행 16:10
바울은 먼저 계획을 세우고 걸어갔고, 길이 막히면 다른 길로 갔으며, 환상을 본 뒤에는 일행과 함께 판단하여 "인정"했습니다. 잠언의 말씀 그대로입니다. "사람의 마음이 그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주께서 그의 걸음을 인도하시느니라." (잠 16:9).
교회의 증언
교회는 이 문제에 대해 먼저 순종을 가르쳐 왔습니다. 주기도문의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10)를 두고 크리소스토무스는, 우리가 하늘에 이르기 전에 주께서 "이 땅을 하늘로 만들라고" 크리소스토무스 명하신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일은 정보를 얻는 일이기 이전에, 그 뜻 안에서 사는 일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이 간구를 우리가 자기 뜻을 버리고 기꺼이 순종하게 해 달라는 기도로 풀이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4문.
매튜 헨리는 신명기 29:29를 풀며 이렇게 씁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밀한 뜻을 호기심으로 캐묻는 일을 금지받았지만, 하나님께서 알게 하신 것은 부지런히 탐구하라고 격려받는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에게 유익한 것은 하나도 감추지 않으셨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편이 좋은 것만 감추셨습니다" 매튜 헨리. 잠언 3:6에 대해서는 이렇게 권합니다. "아주 분명해 보이는 경우에도 모든 일에서 하나님께서 너를 지도해 주시기를 구하십시오" 매튜 헨리. 또 로마서 12:2를 풀며 성령의 일이 "먼저 지성에서 시작하여 의지와 정서와 행실로 이어져" 매튜 헨리 사람 전체가 변화되기까지 계속된다고 합니다.
교회 전통은 이 인도를 이해하는 방식에서 서로 다릅니다. 이것은 교회 안의 열린 논쟁이며, 한쪽만이 옳다고 하기 어렵습니다.
첫째는 개별적 인도를 강조하는 이해입니다. 하나님은 중요한 선택마다 한 사람을 향한 구체적인 계획을 가지고 계시며, 성경과 기도, 마음의 평안, 환경, 조언을 통해 그것을 알려 주신다고 봅니다. 많은 복음주의와 오순절·은사주의 교회가 이렇게 가르치며, 하나님이 지금도 인격적으로 인도하신다는 확신이 이 이해의 강점입니다 (참고 행 13:2). 비판하는 쪽은 이것이 불안과 주관적 확신을 낳기 쉽다고 지적합니다.
둘째는 지혜를 강조하는 이해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계시된 도덕적 뜻과 비밀한 섭리적 뜻이며, 성경이 명령하지 않은 선택에서는 우리가 지혜롭게 선택하면 되고 하나님은 그 선택도 그분의 뜻 안에서 이끄신다고 봅니다. 개혁주의 전통과 여러 복음주의 저자들이 이렇게 가르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장 6절)은 예배와 교회 운영의 몇몇 사정을 성경의 일반 원칙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신중함으로 정하라고 하는데, 이 견해는 같은 원리를 삶의 선택에도 적용합니다. 이 이해는 불안에서 자유롭게 합니다. 비판하는 쪽은 이것이 성령의 개인적 인도를 지나치게 좁힌다고 우려합니다.
셋째는 분별의 훈련을 강조하는 이해입니다. 가톨릭의 이냐시오 영성처럼, 마음에 일어나는 위로와 황폐를 살피고 영성 지도자나 공동체와 함께 기도하며 분별합니다. 퀘이커 전통의 분별 위원회도 비슷하게 공동체가 함께 기다립니다.
이 전통들은 중요한 점에서 만납니다.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인도하신다는 것, 성경이 으뜸이라는 것, 기도와 겸손과 조언이 필요하다는 것, 그리고 순종이 인도의 전제라는 것입니다.
원어로 보기
사도행전 16:10에서 "인정함이러라"로 옮긴 헬라어 숨비바조(συμβιβάζω)는 "함께 결합하다"라는 뜻입니다. 바울 일행은 막힌 길, 환상, 동료의 증언을 함께 놓고 하나의 결론으로 맞추었습니다. 하나님의 인도는 한 가지 신호가 아니라 여러 증거를 맞추어 판단하는 과정으로 그려집니다.
로마서 12:2의 "분별하도록"은 도키마조(δοκιμάζω)입니다. 금속이나 동전을 시험해 보고 진짜임을 인정한다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시험하고 입증할 수 있는 것이며, 그 일은 변화된 마음이 합니다.
"뜻"으로 옮기는 델레마(θέλημα)는 "원함"이나 "소원"이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은 풀어야 할 암호가 아니라 하나님의 소원입니다. 신명기 29:29에서 "오묘한 일"과 "나타난 일"로 대비되는 말은 각각 "숨기다"를 뜻하는 사타르(סָתַר)와 "드러내다"를 뜻하는 갈라(גָּלָה)에서 나온 말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하나님이 나를 위한 완벽한 계획을 가지고 계시다면, 내가 한 번 잘못 선택하면 그 계획은 망가진 것이 아닌가? 그 생각 때문에 아무것도 정하지 못하겠다." 이것은 많은 사람이 겪는 불안이며, 개별적 인도를 강조하는 가르침이 때로 이 불안을 키웠다는 지적도 정당합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뜻이 우리의 실수에 의해 깨지는 약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사람의 마음에 많은 계획이 있을지라도 주의 뜻, 그것만 서리라." (잠 19:21). 요셉은 형들의 악한 행위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당신들로 말하건대 당신들은 내게 악을 행하려고 생각하였으나 오히려 하나님은 그 일을 선이 되도록 계획하시고 이루셔서 이 날과 같이 많은 사람을 살려 두게 하셨나니" (창 50:20). 이것이 우리의 잘못된 선택이 무해하다는 말은 아닙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선택 위에서도 일하십니다. 성경은 찾아내야 할 숨겨진 한 점이 아니라 그분을 신뢰하며 걸어갈 길을 보여 줍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은 결국 상식을 따르는 것일 뿐이다. 반대로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사람들은 자기 생각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하는 것이 아닌가?" 두 쪽 모두에 경계할 점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다는 확신은 자기 소원과 혼동되기 쉽고, 때로는 해로운 결정을 정당화하는 데 쓰였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사랑하는 자들아, 영을 다 믿지 말고 오직 그 영들이 하나님께 속하였는지 그것들을 시험하라. 이는 많은 거짓 대언자들이 나와서 세상에 들어왔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요일 4:1). 마음의 느낌이 성경과 지혜로운 조언에 비추어 검증되어야 한다는 뜻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의 인도를 상식으로 환원하는 것도 성경의 그림은 아닙니다. 지혜 자체가 구하여 받는 선물이며 (약 1:5), 하나님은 마음의 소원도 일으키시는 분입니다 (빌 2:13). 둘 다 필요합니다. 기도하며 구하고, 구한 것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기도해도 아무 응답이 없다. 하나님은 침묵하시는 것이 아닌가?" 응답이 없다는 느낌은 실제로 힘든 경험입니다. 성경에도 하나님이 오래 침묵하시는 것처럼 보이는 때가 나옵니다. 그럴 때 교회가 권하는 것은 이미 알려 주신 뜻을 먼저 행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어떤 사람이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하면 그 교리가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혹은 내가 스스로 말하는지 알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7:17). 아는 것은 행하려는 마음 안에서 자랍니다.
더 생각해 보기
하나님의 뜻을 아는 일은 정보를 얻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걷는 일입니다. 바울이 로마서 12장에서 먼저 "너희 몸을 산 제사로 드리라"고 한 뒤에 뜻의 분별을 말한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롬 12:1). 하나님께 자신을 드린 마음이 그분의 뜻을 분별합니다. 시편 기자의 기도는 이를 잘 보여 줍니다. "주는 나의 하나님이시오니 나를 가르쳐 주의 뜻을 행하게 하소서. 주의 영은 선하시오니 나를 곧바른 땅으로 인도하소서." (시 143:10).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성경이 이미 분명히 말하는 하나님의 뜻 가운데 내가 아직 행하지 않은 것은 무엇입니까? 지금 내가 겪는 선택에서 믿을 만한 조언을 구할 사람은 누구입니까? 틀릴까 봐 두려워서 멈춰 있다면, 그 두려움을 하나님께 어떻게 맡길 수 있겠습니까?
더 읽으려면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와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를 보십시오. 불안이 커서 선택하기 어렵다면 염려와 불안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도 도움이 됩니다.
관련 질문
-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오늘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중심으로, 창조와 성령과 교회의 분별 속에서 들립니다. 성령이 지금도 개인을 인도하시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내세우는 어떤 말도 성경과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고 말하지만, 응답이 언제나 우리가 구한 그대로라고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구하라고 가르치셨고, 겟세마네의 예수와 바울의 가시는 거절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도 응답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혼잣말이 아니라 살아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말이며, 그 응답을 시험관에서처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참새 한 마리와 우리의 모든 걸음까지 돌보시며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이끄신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사람의 선택과 책임도 진지하게 다룹니다. 교회는 이 둘을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강조를 두어 왔지만, 선하신 하나님의 손에 우리가 있다는 위로에는 한마음입니다.
- 염려와 불안을 어떻게 이길 수 있는가?성경은 염려하는 사람을 꾸짖기보다 염려를 맡길 분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시며, 기도는 불안을 그분께 가져가는 길이고, 그분의 평강은 느낌이 아니라 지켜 주심으로 주어집니다. 불안장애는 몸의 병처럼 치료받을 수 있는 병이므로 기도와 함께 의사와 상담자의 도움을 구하는 것은 믿음이 없다는 표시가 아닙니다.
관련 주제
출처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129문).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죄와 구원과 감사의 세 부분으로 신경, 성례, 십계명, 주기도문을 가르친다.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