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돈을 어떻게 대해야 하는가?

짧은 답

성경은 돈 자체를 악으로 보지 않고 돈을 사랑하고 섬기는 것을 경고합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의 것이고 우리는 맡은 사람이므로, 일하고 필요를 채우되 자족하며 넉넉히 나누는 것이 길입니다. 믿으면 반드시 부유해진다는 가르침은 성경 전체의 증언과 맞지 않지만, 하나님이 우리의 물질적 삶에도 관심을 가지신다는 점은 성경이 분명히 말합니다.

성경의 답

예수께서는 돈에 대해 자주, 그리고 직접 말씀하셨습니다. 산상수훈에서는 보물이 어디에 있는지가 곧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보여 준다고 하십니다.

너희 자신을 위해 보물을 땅에 쌓아 두지 말라. 거기서는 좀과 녹이 부패시키며 거기서는 도둑들이 뚫고 훔치느니라.

마 6:19

너희 보물이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 마음도 있으리라.

마 6:21

문제는 돈을 가지는 것보다 마음이 어디에 묶여 있느냐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선택을 요구하십니다.

아무도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나니 이는 그가 한 주인을 미워하고 다른 주인을 사랑하거나 혹은 한 주인을 떠받들고 다른 주인을 업신여길 것이기 때문이라. 너희가 하나님과 맘몬을 겸하여 섬길 수 없느니라.

마 6:24

재물은 종일 때는 좋지만 주인이 되면 하나님과 경쟁합니다. 누가복음 12장의 어리석은 부자는 풍년이 들자 곡간을 더 크게 지을 생각만 합니다. 하나님은 그에게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 어리석은 자여, 이 밤에 네게서 네 혼을 요구하리니 그러면 네가 예비한 그것들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라고 하십니다 (눅 12:20). 예수께서는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그들에게 이르시되, 탐욕을 주의하고 조심하라. 사람의 생명이 그의 풍부한 소유물에 있지 아니하니라, 하시니라." (눅 12:15).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씁니다.

돈을 사랑함이 모든 악의 뿌리이니 어떤 자들이 돈을 탐내다가 믿음에서 떠나 잘못하고 많은 고통으로 자기를 찔러 꿰뚫었도다.

딤전 6:10

여기서 악의 뿌리라고 한 것은 돈이 아니라 "돈을 사랑함"입니다. 또 바울은 같은 장에서 대안을 말합니다.

그러나 만족하면서 하나님을 따르는 것은 큰 이득이 되느니라.

딤전 6:6

자족은 가난을 예찬하는 것이 아닙니다.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내가 비천하게 되는 것도 알고 풍부하게 되는 것도 알아 어디에서나 모든 일에서 배부른 것과 배고픈 것, 풍부한 것과 궁핍당하는 것을 다 배웠노라."고 말합니다 (빌 4:12). 히브리서도 "돈을 사랑치 말고 있는 바를 족한 줄로 알라"고 하면서 이유를 덧붙입니다. "너희의 행실을 탐욕이 없게 하고 너희가 가진 것들로 만족하라. 그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리라, 하셨느니라." (히 13:5). 자족의 뿌리는 얼마나 가졌는가가 아니라 누가 함께하시는가입니다.

성경은 일하고 필요를 채우는 것을 좋게 봅니다. 도둑질하던 사람은 "제 손으로 수고하여 선한 일을 하라"고 권면받으며, 그 목적은 "도둑질을 한 자는 더 이상 도둑질을 하지 말고 오히려 노동을 하여 궁핍한 자에게 줄 수 있도록 자기 손으로 선한 것을 할지니라."입니다 (엡 4:28). 가족을 돌보는 일도 믿음의 일부입니다 (딤전 5:8). 그리고 부한 사람에게도 길이 있습니다. 바울은 부한 사람들에게 이렇게 명하라고 합니다.

이 세상에서 부유한 자들에게 명하여 그들이 마음을 높이지 말고 확실치 않은 재물을 신뢰하지도 말며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 곧 우리에게 모든 것을 풍성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분을 신뢰하게 하고

딤전 6:17

하나님은 모든 것을 "누리게" 주신다고 합니다. 문제는 누리는 것이 아니라 소망을 어디에 두느냐입니다. 이어서 "또 선을 행하게 하며 선한 일들에 부요하고 베풀기를 좋아하며 기꺼이 나누어 주게 하라."라고 합니다 (딤전 6:18).

나눔의 기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것이라는 고백입니다. "땅과 거기의 충만한 것이 주의 것이요, 세상과 그 안에 거하는 자들도 그러하니" (시 24:1). 고린도후서 8-9장은 이것이 어떻게 살아나는지 보여 줍니다. 마게도냐 교회는 "극한 가난"에도 "고난의 큰 시련 속에서도 그들의 넘치는 기쁨과 극심한 가난이 그들로 하여금 풍성하고 너그러운 선물을 넘치도록 하게 하였도다."를 넘치게 했고 (고후 8:2), 바울은 그 근거를 그리스도께 둡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너희가 알거니와 그분께서 부요하셨으나 너희를 위하여 가난하게 되심은 자신의 가난으로 말미암아 너희를 부요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8:9

그리고 나눔의 태도를 이렇게 가르칩니다.

저마다 자기 마음속에 정한 대로 낼 것이요, 마지못해 하거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거이 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고후 9:7

마지막으로 성경은 가난한 사람을 향한 정의를 돈의 문제로 다룹니다. "가난한 사람을 학대하는 자는 그를 만드신 분을 모욕하되 그분을 공경하는 자는 가난한 사람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 (잠 14:31). 요한일서는 "그러나 누가 이 세상의 좋은 것을 가지고 있으면서 자기 형제가 궁핍한 것을 보고도 동정하는 마음을 닫아 그를 피하면 어찌 하나님의 사랑이 그 속에 거하겠느냐?"라고 묻습니다 (요일 3:17).

교회의 증언

교부들은 부 자체와 부에 대한 태도를 구별했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맘몬"이 수리아어로 재물을 뜻한다고 설명한 뒤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그분은 재물을 가진 사람이라고 하지 않고 재물의 종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에로니무스. 그는 돈의 노예가 된 사람은 노예처럼 돈을 지키지만, 그 멍에를 벗은 사람은 주인으로서 그것을 나누어 준다고 덧붙입니다.

매튜 헨리는 디모데전서 6장을 풀며 이렇게 씁니다. "사람이 돈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을 사랑하지 않을 수 있으나, 사랑한다면 그것이 그를 온갖 악으로 몰아갈 것입니다" 매튜 헨리. 부한 사람에 대해서는 같은 서신 6:17을 풀며 이렇게 묻습니다. "가장 좋은 재산이라 한들 더 많은 선을 행할 기회를 주는 것 외에 무슨 가치가 있겠습니까?" 매튜 헨리. 또 빌립보서 4장에서는 형통의 유혹이 궁핍의 유혹보다 더 크다고 말합니다. "풍족함과 형통의 유혹이 고난과 궁핍의 유혹보다 더 크기 때문입니다" 매튜 헨리.

교회가 모든 소유를 버릴지에 대해서는 의견이 나뉩니다. 초대 예루살렘 교회는 필요를 따라 재산을 나누었고 (행 4:34-35), 수도회 전통은 자발적 청빈을 서원으로 택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교회는 사유 재산을 인정하면서 그것을 나눌 책임을 강조해 왔습니다. 방식은 달라도 가난한 이웃에 대한 의무는 모두가 인정합니다. 십일조에 대해서는 십일조는 꼭 해야 하는가?를 보십시오.

원어로 보기

디모데전서 6:10의 "돈을 사랑함"은 필라르귀리아(φιλαργυρία)입니다. "사랑"을 뜻하는 필로스와 "은"을 뜻하는 아르귀로스가 합쳐진 말로, 문자 그대로 은을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바울이 문제 삼는 것도 돈 자체가 아니라 그것을 향한 사랑입니다.

"자족"으로 옮겨진 아우타르케이아(αὐτάρκεια)는 "스스로 충분하다"는 뜻의 말입니다. 철학자들, 특히 스토아학파는 이것을 자기 안의 힘으로 이루는 독립된 상태로 이해했습니다. 그러나 비슷한 말(αὐτάρκης)로 자족을 말한 바울은 곧바로 이렇게 잇습니다. "나를 강하게 하시는 그리스도를 통해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빌 4:13). 이 구절은 흔히 무엇이든 이룬다는 뜻으로 인용되지만, 문맥은 풍부와 궁핍 어느 쪽에서도 자족하는 비결입니다. 바울의 자족은 내가 충분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충분하시기 때문에 얻는 자족입니다. "재물"로 옮겨진 맘모나스(μαμμωνᾶς)는 아람어에서 온 말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하나님은 자녀가 복 받고 부유하기를 원하신다. 믿음이 있으면 형통한다." 이 반론에는 진실이 있습니다. 성경은 물질의 복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주의 복, 그것은 사람을 부하게 하나니 그분께서는 그것에 슬픔을 더하지 아니하시느니라." (잠 10:22), 요한삼서의 저자는 "사랑하는 자여, 무엇보다도 네 혼이 형통하는 것같이 네가 형통하고 건강하기를 내가 바라노라."고 썼습니다 (요삼 1:2). 이스라엘의 언약에도 땅과 소출의 복이 있고, 말라기 3:10의 약속도 자주 인용됩니다. 하나님이 우리의 물질적 삶에 관심이 없으시다는 생각은 성경적이지 않습니다. 이 가르침을 전하는 이들은 하나님이 영혼만이 아니라 몸과 생계도 돌보신다는 소망을 가난한 사람에게 준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번영신학이라고 불리는 가르침, 곧 믿음과 헌금이 부와 건강을 보장한다는 가르침은 다음 이유로 성경 전체와 맞지 않는다고 많은 교회가 판단합니다. 첫째, 구약의 복 약속은 대개 이스라엘이라는 한 나라와 맺은 언약에 속하며, 요한삼서 1:2는 약속이 아니라 안부 인사입니다. 둘째, 예수께서는 백 배의 약속에 "지금 이 시대에서 집과 형제와 자매와 어머니와 자녀와 토지를 백 배나 받되 핍박과 함께 받고 오는 세상에서는 영원한 생명을 받으리라." 받는다고 덧붙이셨습니다 (막 10:30). 셋째, 성경에는 믿음이 있으나 가난하고 고난받은 이들이 가득합니다. 욥과 예수 자신, 바울의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며 아무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소유한 자로다." (고후 6:10), 그리고 히브리서 11장의 "돌로 맞기도 하고 톱으로 잘리기도 하며 시험을 받기도 하고 칼로 죽임을 당하기도 하며 양 가죽과 염소 가죽을 입고 떠돌아다니며 궁핍과 고난과 고통을 당하였으니" (히 11:37)라는 증언이 그렇습니다. 넷째, 바울은 경건을 "또 마음이 부패하고 진리가 없어 이득이 하나님을 따르는 것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비뚤어진 언쟁이 생기나니 너는 그러한 자들로부터 떠나라."로 삼는 태도를 경계합니다 (딤전 6:5). 형통을 하나님의 은혜로 감사하는 것과, 신앙을 형통의 수단으로 삼는 것은 다릅니다.

"예수께서 부자 청년에게 모든 소유를 팔라고 하셨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가난해져야 하는가?" 예수께서는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완전하게 되려거든 가서 네 소유를 팔아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매"고 하셨고 (마 19:21), 청년은 "그 청년이 많은 소유를 가졌으므로 그 말씀을 듣고 근심하며 가니라." 근심하며 떠났습니다 (마 19:22). 어떤 신자들은 이것을 모든 그리스도인에게 주어진 요구로 읽고, 어떤 신자들은 이 청년의 마음의 우상을 드러내신 개별적인 부르심으로 읽습니다. 신약에는 모든 소유를 판 사람들이 있으나 재산을 가진 채 교회를 섬긴 사람들도 있습니다. 두 읽기가 만나는 곳은 분명합니다. 누구도 재물을 하나님 자리에 둘 수 없고, 하나님이 "팔라" 하실 때는 순종해야 한다는 점입니다.

"가난한 사람은 게을러서 가난한 것이 아닌가? 일하기 싫으면 먹지도 말라고 하지 않았는가?" 성경에는 실제로 이 말씀이 있습니다 (살후 3:10). 이것은 일하지 않으면서 남에게 기대려는 사람에게 한 말씀이지, 일할 수 없거나 일자리가 없는 사람에게 한 말씀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경은 가난의 원인을 하나로 보지 않습니다. 잠언은 게으름이 가난에 이른다고 경고하지만, 억울한 가난이 있음도 압니다. 매튜 헨리는 잠언 14:31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가난한 자를 학대하는 것은 우리의 창조주를 모욕하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 그러므로 일하는 것과 가난한 이웃을 돕는 것은 서로 반대되지 않으며, 둘 다 성경의 명령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돈에 대한 성경의 가르침은 한 문장으로 모으면 이렇습니다. 돈은 하나님의 것이고 나는 맡은 사람이므로, 정직하게 일하고 감사히 쓰며 기쁘게 나눕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 돈이 어디에 쓰이는지가 내 마음이 어디에 있는지를 말해 준다면, 내 지출은 무엇이라고 말합니까? 지금 내 곁에서 도움이 필요한 이웃은 누구입니까? 돈에 관한 두려움이나 자랑 가운데 하나님께 맡기지 못한 것은 무엇입니까?

더 읽으려면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보십시오. 마태복음 6장 19-34절과 고린도후서 8-9장을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은 출발입니다.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