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창세기는 역사인가?

짧은 답

창세기는 하나님이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사람이 타락했으며, 하나님이 구원을 약속하셨다고 증언하며, 모든 그리스도인이 이 점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1~11장을 어떤 종류의 역사로 읽을지, 곧 문자적 역사인지, 문학적 특징을 지닌 역사인지, 신학적 서술인지에 대해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견해가 갈립니다. 12~50장은 이스라엘 조상들의 이야기로 역사의 무대에 더 가까이 서 있습니다.

성경의 답

창세기는 한 가지 문체로 쓰인 책이 아닙니다. 1~11장은 천지창조, 사람의 타락, 가인과 아벨, 홍수, 바벨탑을 다루는데, 시간과 장소가 온 세상을 아우릅니다. 12장부터는 한 사람 아브라함이 부르심을 받고, 그의 가족 이야기가 이삭, 야곱, 요셉으로 이어집니다. 두 부분은 구별해서 읽는 것이 좋습니다.

먼저 모든 그리스도인이 한 목소리로 하는 말이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 1:1

둘째,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지으신 모든 것은 좋았습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창 1:27

셋째, 사람은 하나님을 거슬러 죄에 빠졌고 그 결과로 죽음과 깨어진 관계가 세상에 들어왔습니다 (창 3장). 넷째, 하나님은 그 자리에서 이미 구원을 약속하셨습니다.

내가 너와 여자 사이에 또 네 씨와 그녀의 씨 사이에 적개심을 두리니 그 씨는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

창 3:15

이 약속은 아브라함의 부르심에서 구체적인 모습을 얻습니다.

내가 너로부터 큰 민족을 만들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크게 하리니 네가 복이 되리라. 너를 축복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복을 주고 너를 저주하는 자에게는 저주를 내리리니 네 안에서 땅의 모든 가족들이 복을 받으리라, 하셨더라.

창 12:2-3

예수와 신약 저자들은 창세기를 권위 있는 말씀으로 인용합니다. 결혼에 대해 질문을 받으신 예수께서는 이렇게 답하십니다.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처음에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마 19:4

또 인자의 오심을 "노아의 때"에 비유하십니다 (마 24:37). 누가는 예수의 족보를 "게난은 에노스의 아들이요, 에노스는 셋의 아들이요, 셋은 아담의 아들이요, 아담은 하나님의 아들이었느니라."로 끝맺습니다 (눅 3:38). 바울은 아담과 그리스도를 마주 세웁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 죄가 세상에 들어오고 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들어왔나니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였느니라.

롬 5:12

이 말씀은 아담과 그리스도의 대응을 이루며,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은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삶을 얻으리라"는 고린도전서 15:22로 이어집니다. 신약이 창세기 첫 부분을 가볍게 다루지 않고 복음의 토대로 삼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처음부터 하나님이 하늘과 땅,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신 창조주이심을 고백해 왔습니다 니케아 신경. 이 고백이 교회의 기둥입니다. 창세기를 어떻게 읽을지는 이 기둥 위에서 다양하게 펼쳐졌습니다. 교부들 가운데 오리게네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조의 "엿새"를 하루 24시간으로만 읽는 데 신중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에서, 세상에 대해 잘 아는 사람들 앞에서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들어 터무니없는 말을 하는 것은 신앙에도 해가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반면 많은 교부와 후대의 신학자들은 창세기를 역사적 서술로 읽었고, 17세기에는 족보를 합산해 창조 연대를 계산한 학자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인들이 읽는 방식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습니다. 모두 성경에 충실하려는 마음에서 나왔습니다.

첫째는 역사적·문자적 읽기입니다. 창세기 1~11장은 실제로 일어난 일을 있는 그대로 기록했다고 봅니다. 아담과 하와는 최초의 부부이고, 창조의 엿새는 실제의 날이며(날을 긴 기간으로 읽는 이들도 있습니다), 홍수는 온 땅의 사건이었다는 것입니다. 이 입장은 예수와 바울이 아담과 노아를 실제 인물처럼 말한다는 점, 그리고 성경이 스스로 하나의 연속된 역사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둘째는 문학적 특징을 지닌 역사로 읽는 방식입니다. 아담이 실제 사람이었고 타락이 실제 사건이었음을 받아들이되, 이 이야기가 고대 근동의 글쓰기 방식, 곧 상징과 구조, 반복되는 수 같은 문학 기법으로 쓰였다고 봅니다. 창조의 엿새는 하나님의 일을 일주일 틀에 담은 서술일 수 있고, 족보는 모든 세대를 열거하기보다 중요한 이름을 이어 가는 방식일 수 있습니다. 이 입장은 창세기가 과학 교과서가 아니라 하나님과 세계에 대한 선언이라는 점을 강조합니다.

셋째는 신학적·문학적 읽기입니다. 창세기 1~11장은 하나님과 인간에 관한 근본 진리를 이야기 형태로 전하며, 아담은 인류를 대표하는 이름으로서 개인보다 인간의 보편적 처지를 가리킨다고 봅니다. 이 입장에 선 사람들도 창조, 타락, 죄의 실재, 그리스도의 구원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이 입장은 말하는 뱀이나 생명나무 같은 표현, 그리고 고대 근동 문헌과의 비교가 이 장들이 어떤 종류의 글인지 알려 준다고 강조합니다. 아담의 역사성을 둘러싼 물음은 아래 반론에서 다룹니다.

세 입장이 모두 합의하는 바를 놓치지 않기 바랍니다. 세상은 우연의 산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고, 사람은 존귀하되 타락했으며, 구원은 하나님이 먼저 약속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글은 어느 쪽이 맞다고 판정하지 않습니다. 12~50장에 대해서는 입장 차이가 훨씬 작습니다. 이름과 지명, 가족 관계가 구체적이어서 대부분의 신자는 이를 조상들의 역사로 읽습니다. 다만 아브라함을 직접 언급하는 성경 밖 기록은 없고, 족장 시대의 풍습이 어느 시대와 맞는지는 학자들이 계속 논의합니다.

매튜 헨리는 창세기 3:15에서 복음의 첫 소리를 듣습니다. "여기에 복음의 날의 동틈이 있었습니다. 상처가 생기자마자 치료책이 마련되고 계시되었습니다" 매튜 헨리. 또 창세기 1:27에 대해서는 "특별히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것은 사람의 영혼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원어로 보기

창세기 2:4은 "천지의 창조된 대략이 이러하니라"로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대략"으로 옮겨진 말은 톨레돗(תּוֹלֵדוֹת)입니다. "세대, 내력"이라는 뜻으로, 창세기는 이 말로 "이것이 ~의 내력이라"는 표현을 약 열 번 되풀이하며 책을 나눕니다. 천지, 아담, 노아, 데라, 이삭, 야곱 등이 내력의 주인공입니다. 창세기는 우주의 첫 순간부터 한 가족의 이야기까지를 하나의 이어진 "내력"으로 읽게 하며, 그래서 1~11장과 12~50장 사이에 선을 그을 때에도 그것은 한 책의 두 부분입니다.

"날"은 욤(יוֹם)입니다. 낮, 하루, 때, 시기 등을 가리킬 수 있는 말입니다. 창세기 1장에서는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표현이 붙어 있어 하루를 뜻한다고 읽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4의 "창조하신 때에"는 히브리어로 "…하신 날에"(베욤)이며, 창조의 전체 기간을 한 "날"로 부릅니다. 이 말이 어떤 뜻인가는 해석가들이 달리 보는 한 대목입니다.

"사람"은 아담(אָדָם)이며 "땅"을 뜻하는 아다마(אֲדָמָה)와 말소리가 닮았습니다. 사람이 흙으로 지음 받았다는 창세기 2:7의 표현과 이어집니다. 이 말은 일반적인 "사람"을 뜻하기도 하고 고유한 이름으로도 쓰입니다. 어느 쪽으로 읽는가가 위 세 입장이 갈리는 지점 가운데 하나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창세기는 고대 근동의 신화와 비슷하다. 그러니 신화일 뿐이다." 이 반론은 사실에 근거를 둡니다. 메소포타미아의 홍수 이야기, 곧 길가메시 서사시나 아트라하시스는 창세기 6~9장과 닮은 점이 있고, 창조 이야기에도 비슷한 요소가 있습니다. 다만 비슷함이 곧 같은 종류의 글이라는 뜻은 아닙니다. 창세기는 해와 달을 신이 아닌 하나님이 만드신 "광명"으로 말하고, 신들의 싸움이 아닌 한 분 하나님의 말씀으로 창조가 이루어진다고 하며, 사람 전체가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선언합니다. 많은 신앙인은 이것을 신화와의 공통 배경 위에서 그 세계관을 정면으로 뒤집은 글로 읽습니다.

"과학이 지구의 나이와 생물의 기원에 대해 다른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정직하게 답해야 할 질문입니다. 주류 과학은 우주와 지구가 수십억 년의 나이를 가졌다고 말하고, 생물의 역사도 길다고 말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여기서 서로 다르게 반응합니다. 어떤 이들은 과학의 해석이 틀렸다고 보고, 어떤 이들은 성경의 날을 긴 기간으로 읽으며, 어떤 이들은 하나님이 오랜 과정으로 일하셨다고 이해합니다. 이 질문은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여기서 말할 수 있는 것은 이것입니다. 어느 쪽에 서든 하나님이 창조주시라는 고백은 과학이 직접 판가름할 수 있는 영역이 아닙니다.

"아담이 실제 인물이 아니라면 바울의 논증은 무너지지 않는가." 이 질문은 가볍지 않습니다. 바울은 한 사람의 죄와 한 사람의 순종을 짝지어 말하기 때문입니다 (롬 5:19). 아담이 실제 인물이라고 믿는 이들은 이 구조가 아담의 역사성에 기대고 있다고 봅니다. 아담을 인류의 대표로 읽는 이들은 바울의 요점이 모든 사람이 죄에 속해 있고 그리스도 안에서만 새 인류가 시작된다는 데 있으며, 이것은 아담의 역사성과 무관하게 참이라고 답합니다. 어느 쪽도 그리스도의 구원이 필요 없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우리가 정직하게 인정할 것은, 이 부분이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서 여전히 논의 중이라는 사실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창세기를 읽는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얼마나 문자적인가"보다 "이 글이 무엇을 말하려 하는가"일 것입니다. 창세기는 세상이 우연이 아니라 선한 하나님의 뜻으로 존재하고, 나는 그분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으며, 그분을 떠난 인간은 깨어졌고, 그런데도 하나님은 먼저 구원을 약속하셨다고 말합니다. 어느 입장에 서든 이 메시지는 달라지지 않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를 읽을 때 나는 어떤 질문을 가지고 읽습니까? 나와 다르게 읽는 신앙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는 말은 나 자신과 이웃을 보는 눈을 어떻게 바꿉니까?

더 읽으려면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와 죄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출처

  1.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