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예언은 이루어졌는가?
성경의 예언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신약은 구약의 많은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가리키며,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믿음의 근거로 여깁니다. 다만 모든 인용이 똑같이 분명한 것은 아니고 연대에 대한 학문적 논쟁도 있으며, 오늘의 사건을 예언에 짜 맞추거나 때를 계산하는 일은 성경이 경계합니다.
성경의 답
성경에서 예언은 먼저 "말씀을 전하는 일"입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을 대신해 말하는 사람이며, 그 말은 대개 눈앞의 백성에게 회개와 정의, 신실함을 요구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러나 대언하는 자는 사람들에게 말하여 그들을 세우고 권면하며 위로하나니" (고전 14:3). 미래를 말하는 것도 예언의 한 부분이지만, 그것은 하나님이 일하시는 방식을 보여 주는 한 부분이었습니다. 아모스는 하나님이 자기 계획을 선지자들에게 알리지 않고는 행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암 3:7).
그렇다면 참된 예언은 어떻게 알아봅니까? 신명기는 기준을 줍니다.
만일 대언자가 주의 이름으로 말하는데 그 일이 뒤따라 일어나지도 아니하고 성취되지도 아니하면 그것은 주께서 말씀하지 아니하신 것이요, 오직 그 대언자가 자기 뜻대로 그것을 말하였나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
신 18:22
한 가지 짚어 둘 점이 있습니다. 심판의 예언은 조건이 붙은 경고일 수 있습니다. 요나는 "비로소 요나가 그 도시로 들어가 하루 동안 다니며 외쳐 이르되, 이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하였더라."고 외쳤지만 (욘 3:4), 백성이 악에서 돌이키자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행한 일 곧 그들이 자기들의 악한 길에서 돌이킨 것을 보시고 재앙 즉 친히 그들에게 행하리라고 말씀하신 그 재앙에서 하나님께서 뜻을 돌이키사 그것을 행하지 아니하시니라." 재앙을 내리지 않으셨습니다 (욘 3:10). 예레미야서는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시는 원칙임을 밝힙니다 (렘 18:7-8). 이루어지지 않은 경고가 곧 거짓 예언은 아닙니다.
신약은 구약의 많은 말씀이 예수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가리킵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예가 베들레헴입니다. 미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러나 너 베들레헴 에브라다야, 네가 유다의 수천 가운데서 작을지라도 이스라엘에서 치리자가 될 자가 네게서 내게로 나아오리라. 그의 나아감은 옛적부터 있었으며 영원부터 있었느니라.
미 5:2
헤롯이 그리스도가 어디서 나겠느냐고 묻자 대제사장과 서기관들은 곧바로 이 말씀을 인용해 "그들이 그에게 이르되, 유대의 베들레헴이니이다. 대언자를 통해 이렇게 기록하신바"이라고 답했습니다 (마 2:4-6). 미가는 기원전 8세기의 선지자입니다.
스가랴는 겸손한 왕이 "오 시온의 딸아, 크게 기뻐할지어다. 오 예루살렘의 딸아, 크게 외칠지어다. 보라, 네 왕이 네게 임하시느니라. 그분은 의로우시고 구원을 소유하시며 겸손하사 나귀를 타시되 나귀 새끼 곧 어린 수나귀를 타시느니라."고 했고 (슥 9:9), 마태는 예수께서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일에서 이 말씀을 보았습니다 (마 21:4-5). 시편 22편은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어찌하여 나를 돕는 일로부터 또 나의 울부짖는 말로부터 멀리 떨어져 계시나이까?"로 시작하는데 (시 22:1), 십자가 위의 예수께서 이 말씀을 외치셨습니다 (막 15:34). 같은 시편의 뒷부분은 처형 장면과 놀랍도록 닮았습니다.
자기들끼리 내 옷들을 나누고 내 겉옷을 놓고 제비를 뽑나이다.
시 22:18
요한은 군병들이 예수의 옷을 두고 제비 뽑은 일을 이 성경의 응함으로 봅니다 (요 19:23-24). 이사야 53장은 고난받는 종을 이렇게 그립니다.
그러나 그는 우리의 범법들로 인해 부상을 당하고 우리의 불법들로 인해 상하였노라. 그가 징벌을 받음으로 우리가 화평을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음으로 우리가 고침을 받았도다.
사 53:5
에티오피아 내시가 이 장을 읽으며 "내시가 빌립에게 응답하여 이르되, 원하노니 대언자는 누구를 가리키며 이것을 말하느냐? 자기를 가리키느냐, 아니면 어떤 다른 사람을 가리키느냐? 하매"라고 물었을 때 (행 8:34), 빌립은 바로 이 글에서 시작하여 예수에 관한 복음을 전했습니다 (행 8:35). 누가는 예수께서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고 전합니다 (눅 24:27).
교회의 증언
교회는 처음부터 구약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책으로 읽었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성경대로 사흘째에 살아나셨다고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크리소스토무스는 엠마오 길의 말씀을 풀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선지자들의 다른 글들에도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신비가 흩어져 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매튜 헨리는 같은 본문에서 이렇게 씁니다. "복음 은혜의 금실이 구약의 온 직물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습니다." 매튜 헨리
이 예언들은 그리스도인이 나중에 써 넣은 것이 아닙니다. 사해 근처에서 발견된 이사야서 전체 사본은 기원전 2세기경의 것으로, 천 년 뒤에 필사된 마소라 본문과 작은 차이를 빼면 매우 가깝습니다 사해 사본. 이사야 53장은 예수께서 오시기 전부터 유대인의 성경에 있었습니다.
교회는 또 예언을 조심스럽게 읽도록 가르쳐 왔습니다. 매튜 헨리는 신명기 18장에 대해 이렇게 경고합니다. "기록된 말씀의 분명한 뜻을 거스르거나 죄를 용인하거나 부추기는 것은 무엇이든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님을 우리는 확신할 수 있습니다." 매튜 헨리 예언은 두려움이나 호기심이 아니라 말씀으로 헤아려 받아야 합니다 (살전 5:20-21).
원어로 보기
구약에서 선지자를 가리키는 말은 나비(נָבִיא)입니다. 어원은 논의가 있지만 대체로 "부름 받은 자" 또는 "선포하는 자"로 이해합니다. 선지자는 사건을 미리 보는 사람이기 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맡아 전하는 사람입니다.
신약의 프로페테스(προφήτης)는 ‘드러내어 말하다’라는 뜻의 동사에서 온 말입니다. 접두어 ‘프로’에는 ‘미리’라는 뜻도 있지만, 이 말은 하나님의 뜻을 드러내어 전하는 사람을 가리킵니다. 그의 말이 꼭 미래만 다루는 것은 아닙니다.
"이루다"는 플레로오(πληρόω)입니다. "가득 채우다"라는 뜻입니다. 이 말은 한 문장이 예언된 대로 실현되었다는 의미로도 쓰이고, 어떤 이야기나 흐름이 완전한 뜻에 이르렀다는 의미로도 쓰입니다. 마태가 호세아 11:1의 "애굽에서 내 아들을 불렀다"를 예수께 적용한 것이 후자의 예입니다 (마 2:15). 호세아는 본래 출애굽한 이스라엘을 말했지만, 마태는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이스라엘의 참된 아들이신 예수 안에서 완성되었다고 읽습니다. 이것을 예표(모형) 방식의 읽기라고 합니다.
흔한 반론과 답
"예언은 나중에 예수께 맞춘 것이다. 복음서 기자들이 예수의 삶을 예언에 맞추어 썼거나 예수께서 일부러 예언대로 행동하셨고, 다니엘서 같은 책은 사건 뒤에 쓰였다." 이 반론에는 일리가 있습니다. 예수께서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들어가신 것은 스가랴 9장을 의식한 의도적인 행동이었을 가능성이 큽니다. 복음서 기자들이 구약의 본문을 골라 썼다는 점도 사실입니다. 그러나 베들레헴에서 태어나시는 일이나 처형 때 군병들이 제비 뽑는 일은 예수 자신이나 제자들이 꾸밀 수 없는 일이고, 그 본문들은 예수 이전부터 유대인의 성경에 있었습니다. 다니엘서에는 두 견해가 있습니다. 전통적인 견해는 바벨론 포로기에 다니엘이 이 책을 썼다고 보고, 예수께서도 "그런즉 대언자 다니엘을 통해 말씀하신바 황폐하게 하는 가증한 것이 거룩한 곳에 선 것을 너희가 보거든 (누구든지 읽는 자는 깨달을지어다.)"을 말씀하셨다고 지적합니다 (마 24:15). 많은 비평 학자들은 8장과 11장이 기원전 2세기 중반 안티오코스 4세 때의 일을 아주 자세히 다루므로 책이 그 무렵에 지금의 모습이 되었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책의 힘은 박해받는 백성에게 하나님의 나라가 끝내 이길 것이라는 소망을 준 데 있습니다 (단 7:13-14). 어느 쪽이든 신앙이 다니엘서의 연대에 달려 있지는 않습니다. 예언의 성취는 증명이라기보다 믿음의 이유가 되는 증거입니다.
"어떤 인용은 문맥을 무시한 억지다. 호세아 11장은 이스라엘 이야기이고, 이사야 7:14의 '처녀'는 히브리어로 '젊은 여자'일 뿐이며, 시편 22편은 다윗 자신의 고난이다." 이것은 학자들 사이에서도 다루어 온 진지한 반론입니다. 이사야 7:14의 히브리어 ‘알마’는 혼인할 나이의 젊은 여자를 가리키는 말로, 처녀임을 뜻하는지는 논쟁이 되어 왔습니다 (사 7:14). 헬라어 번역은 "처녀"로 옮겼고, 마태는 이를 인용합니다 (마 1:22-23).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 말씀이 아하스 왕 시대의 징조이면서 더 깊은 성취를 가졌다고 이해합니다. 시편 22:16의 "내 수족을 찔렀나이다"도 표준 히브리어 본문(마소라 본문)에는 ‘사자처럼 내 수족을’로 되어 있습니다. ‘찔렀다’는 칠십인역을 따른 읽기이고, 사해 사본 하나도 그 자리에 동사를 가진 것으로 보입니다. 신약은 이 구절을 인용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신약의 모든 인용을 똑같은 무게로 취급하지 않는 것이 정직합니다. 예언의 직접적인 선언, 시편처럼 다윗의 고난이 더 큰 다윗의 아들을 가리키는 모형, 이스라엘의 이야기가 반복되는 패턴이 서로 다릅니다. 신약은 이 모든 것을 한 이야기로 읽었고,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이 억지가 아니라 구약의 이야기가 가리키던 방향이라고 믿습니다. 다만 한 구절이 논쟁 중이라고 전체가 무너지는 것은 아니며, 한 구절이 인상적이라고 전체가 증명되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의 뉴스가 성경의 예언을 이루고 있지 않은가. 세상의 끝은 언제인가." 예수께서는 분명히 경고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또 난리와 난리 소문을 들어도 "또 너희가 전쟁들과 전쟁들의 소문을 들을 터이나 주의하여 불안해하지 말라. 이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마 24:4-6). 부활 후에도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하셨습니다 (행 1:7). 날짜를 계산해 재림을 선언했다가 빗나간 일이 역사에 거듭 있었고, 그때마다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1948년에 세워진 현대 이스라엘 국가를 예언의 성취로 보는 그리스도인도 있고, 그렇게 보지 않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마지막 때의 해석은 교회 안에서 여러 갈래이므로, 어느 한 시간표를 성경의 가르침처럼 말하는 사람 앞에서는 신중해야 합니다. 이 문제는 세상의 끝은 언제 오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더 생각해 보기
예언의 성취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고 이루신다"는 신뢰를 세워 줍니다. 베들레헴과 십자가에서 이루어진 일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약속을 지키시는 분임을 보여 줍니다. 그러나 예언을 읽는 목적은 날짜를 맞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알아보고 말씀 앞에서 깨어 있는 것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약속은 그분 안에서 예가 되고 그분 안에서 아멘이 되어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되느니라."라고 합니다 (고후 1:20).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예언을 미래의 정보로만 대하고 있지 않습니까, 지금 나에게 주시는 말씀으로도 듣고 있습니까? 어려운 인용 앞에서 한 구절만이 아니라 성경 전체의 흐름을 보려 합니까? 날짜에 대한 소문에 불안해질 때 나는 무엇을 붙잡습니까?
더 읽으려면 예수는 메시아인가?, 예수는 다시 오시는가?, 성경은 믿을 만한가?를 보십시오.
관련 질문
- 예수는 메시아인가?메시야와 그리스도는 같은 말로 "기름 부음 받은 자"라는 뜻이며, 예수의 제자들은 예수가 바로 약속된 그분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사도들은 이사야 53장, 미가 5:2, 시편 22편과 110편 같은 본문에서 그 근거를 찾았습니다. 유대인 편의 반론, 특히 세상에 아직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문제는 가볍지 않으며, 그리스도인은 이를 두 번의 오심으로 답합니다.
- 성경은 믿을 만한가?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책이라고 소개합니다. 필사본의 수와 이른 시기, 사해 사본 같은 발견은 오늘의 성경이 기록 당시의 본문을 매우 가깝게 전한다고 믿을 근거를 줍니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신뢰할 이유이며, 정직한 의문은 그 신뢰를 시험하는 일이 됩니다.
- 예수는 다시 오시는가?교회는 처음부터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몸으로, 눈에 보이게, 영광 가운데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며, 이 약속은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과 깨어 있음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 세상의 끝은 언제 오는가?성경의 답은 분명하게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날과 그 때를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고, 제자들이 때를 물었을 때에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전쟁과 지진 같은 징조는 시간표가 아니라 깨어 있으라는 알림이며, 날짜를 계산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틀렸습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두려워하며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관련 주제
출처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 쿰란 문서, 사해 사본 1QIsa^a — 기원전 2세기경의 이사야서 전체 사본. 천 년 뒤의 마소라 본문과 거의 같다.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