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성과 결혼에 대해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짧은 답

성경은 성과 결혼을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로 말하며, 그 자리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신실하게 결합하는 결혼으로 정합니다. 독신 또한 존귀한 부르심이며, 어떤 형태의 학대도 성경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역사 내내 가르쳐 온 바이며, 오늘날 일부 교회는 이 가르침의 범위를 두고 달리 판단합니다. 어느 쪽에서든 사람을 멸시할 이유는 없습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성에 대해 부끄러워하는 책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지으셨다는 데서 시작합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창 1:27

그리고 지으신 모든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고 하십니다 (창 1:31). 몸과 남녀의 구별과 함께 누리는 기쁨은 하나님의 선한 창조에 속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이 "좋지 못하다"고 하신 것이 하나 있었습니다.

주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남자가 홀로 있는 것이 좋지 못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합당한 조력자를 만들리라, 하시니라.

창 2:18

결혼은 이 외로움에 대한 하나님의 답입니다.

그러므로 남자가 자기 아버지와 어머니를 떠나 자기 아내와 연합하여 그들이 한 육체가 될지니라.

창 2:24

예수께서는 이혼에 대한 논쟁 가운데 이 말씀을 되짚으며 결혼의 뜻을 확정하십니다.

그분께서 대답하여 그들에게 이르시되, 처음에 그들을 만드신 분께서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만드시고

마 19:4

그런즉 그들이 더 이상 둘이 아니요, 한 육체이니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짝지어 주신 것을 사람이 나누지 못할지니라, 하시거늘

마 19:6

성경은 부부의 사랑을 기쁨과 몸의 사랑으로도 노래합니다. 아가서의 신부는 "나의 사랑하는 이는 내 것이며 나는 그분의 것이라. 그분은 백합 가운데서 양 떼를 먹이시는도다."라고 말하고 (아 2:16), 이렇게 고백합니다.

나를 도장같이 네 마음에 새기고 도장같이 네 팔에 새기라. 사랑은 죽음같이 강하고 질투는 무덤같이 잔인하니 그것의 숯은 극히 맹렬한 불꽃을 지닌 불붙은 숯이니라.

아 8:6

바울은 부부가 서로의 몸에 대해 같은 권리와 의무를 가진다고 말합니다 (고전 7:4). 어느 한쪽이 상대를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도 이렇게 요구합니다.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

엡 5:25

이 말씀은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에 이어집니다 (엡 5:21). 그리고 하나님은 결혼을 귀히 여기라고 하십니다 (히 13:4).

그러나 성경은 결혼만이 완전한 삶의 길이라고 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결혼하지 않으셨고, 천국을 위해 독신으로 사는 이들을 말씀하시며 "자기 어머니 태에서부터 그렇게 태어난 고자들도 더러 있고 사람들이 고자로 만든 고자들도 더러 있으며 하늘의 왕국을 위해 스스로 고자가 된 자들도 있나니 그것을 받을 수 있는 자는 받을지어다, 하시니라."라고 하셨습니다 (마 19:12). 바울도 이렇게 씁니다.

나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기를 원하노라. 그러나 사람마다 하나님께 받은 고유한 선물이 있어서 한 사람은 이러하고 다른 사람은 저러하니라.

고전 7:7

결혼도 독신도 은사이고 부르심입니다. 혼자 사는 이는 덜 온전한 사람이 아니며, 교회가 가족이 되어 주어야 합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가 오랫동안 가르쳐 온 성윤리를 먼저 분명히 말하겠습니다. 동방 교회와 가톨릭 교회와 종교개혁 이후의 개신교 교회는 모두 성적 관계가 한 남자와 한 여자의 평생에 걸친 신실한 결혼 안에 속한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래서 결혼 밖의 성관계(음행)와 간음을 죄로 보았고, 동성 사이의 성적 관계도 이 가르침에 포함되지 않는 것으로 이해했습니다. 이것은 교회의 역사에서 거의 모든 시대와 지역에 공통된 가르침이었습니다. 동시에 교회는 성을 악하게 보는 생각, 곧 몸을 하찮게 여기는 마니교 같은 견해를 이단으로 물리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결혼의 선을 신실함과 자녀와 결혼의 유대로 요약했고, 종교개혁자들은 성직자의 독신 의무를 거부하고, 결혼이 성직자에게도 열린 존귀한 부르심임을 강조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마태복음 19장의 예수께서 결혼을 어떻게 가르치셨는지를 이렇게 풀이합니다.

하나님이 본래 그들을 남자와 여자로 만드셨고, 단지 함께 두신 것이 아니라 부모를 떠나라고 명하셨으며, 남편에게 아내에게 가까이 가라고만 하신 것이 아니라 합하라고 하셨으니, 이러한 말씀 방식으로 끊을 수 없는 매임을 보이신 것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독신에 대해서는 히에로니무스가 마태복음 19:12를 풀며 이렇게 말합니다. 그는 이 부르심이 운명이나 우연이 아니라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께 구한 자들, 그것을 사모한 자들, 그것을 얻으려고 애쓴 자들에게 주어지기 때문입니다" 히에로니무스.

매튜 헨리는 에베소서 5장에서 남편에게 요구되는 사랑의 모범을 이렇게 말합니다. "교회에 대한 그리스도의 사랑은 교회의 실패에도 불구하고 진실하고 순수하며 변함없는 본보기입니다" 매튜 헨리.

교회들 사이에도 차이가 있습니다. 가톨릭과 동방 교회는 결혼을 성사(성례)로 보고,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는 하나님이 정하신 언약으로 봅니다. 이혼과 재혼에 대해서도 교회마다 가르침이 다릅니다. 에베소서 5장의 남편과 아내의 역할도 오늘까지 이어지는 논의입니다. 흔히 상호보완론이라 불리는 쪽은 남편의 머리됨을 그리스도처럼 자기를 내어주며 이끄는 책임으로 이해하고, 그것이 결코 지배가 아니라고 강조합니다. 평등론이라 불리는 쪽은 5:21의 피차 복종이 본문 전체의 틀이며 머리됨의 가르침은 당시 사회 질서를 향한 것이었다고 보아, 부부가 동등하게 서로 섬겨야 한다고 말합니다. 두 입장 모두 머리됨이 아내를 해칠 권리를 주지 않는다는 데 동의합니다.

원어로 보기

창세기 2:24의 "연합하여"는 다바크(דָּבַק)이며 "달라붙다, 결합하다"는 뜻입니다. 언약의 충성을 말할 때도 쓰이는 말입니다. "한 몸"의 "몸"은 바사르(בָּשָׂר), 곧 육체이지만 한 사람의 전체를 가리킬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한 몸"은 육체의 결합만을 뜻하지 않고, 삶 전체를 나누는 하나됨으로 이해되어 왔습니다.

신약에서 성적 죄를 가리키는 가장 흔한 말은 포르네이아(πορνεία), 곧 음행입니다. 이 말은 결혼 밖의 성적 관계를 폭넓게 가리키며, 바울은 이것을 몸에 대한 죄로 말하면서 "도대체 무슨 말이냐? 너희 몸이 너희가 하나님에게서 받은바 너희 안에 계신 성령님의 전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니"라고 묻습니다 (고전 6:19).

히브리서 13:4에서 "침소를 더럽히지 않게"의 "더럽히지 않게"는 아미안토스(ἀμίαντος)이며 "깨끗한, 더럽혀지지 않은"입니다. 부부의 잠자리는 성경이 직접 "깨끗하다"고 부르는 자리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성경의 성윤리는 사람을 억누르는 낡은 규범이다." 이 반론에는 부분적으로 옳은 점이 있습니다. 교회가 성을 수치와 침묵으로 가르쳤고, 상처 입은 사람을 정죄해 온 역사가 실제로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 자체는 성을 기뻐하는 책입니다. 그리고 성경의 금지는 사람을 억누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몸과 몸의 약속을 가볍게 여기지 않기 위한 것입니다. 성이 서로를 온전히 내어주는 자리에서 가장 깊어진다는 것이 성경의 생각입니다. 요한복음은 간음하다 붙잡힌 여자에게 예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고 전합니다. "그녀가 이르되, 주여, 아무도 하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매 예수님께서 그녀에게 이르시되,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짓지 말라, 하시니라." (요 8:11). 이 이야기는 요한복음의 가장 오래된 사본들에는 없어서 많은 학자가 후대에 들어간 것으로 보지만, 교회는 이를 예수의 마음을 보여 주는 말씀으로 오래 전해 왔습니다. 은혜와 진리가 함께 있습니다.

"동성 사이의 사랑을 인정하지 않는 것은 사람에게 상처를 준다." 이것은 가장 무겁게 들어야 할 반론입니다. 교회 안에서 자신의 성적 지향 때문에 조롱당하고 거절당한 사람들이 있고, 그들의 아픔은 실제입니다. 교회가 이들을 멸시하고 폭력을 정당화했다면 그것은 회개해야 할 죄입니다. 여기서 그리스도인들의 생각은 갈립니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그리고 한국의 주요 교단을 비롯한 세계 대부분의 개신교 교회는 역사적 가르침을 지킵니다. 이들은 창조의 질서(창 1-2장과 마 19:4-6)와 성경의 직접적 본문들에 근거해 결혼을 한 남자와 한 여자의 결합으로 보고, 동성 사이의 성적 관계는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이 입장을 지키는 이들 가운데는 독신과 교회 공동체의 우정 속에서 신실하게 사는 동성애 성향의 그리스도인들도 있습니다. 반면 주로 유럽과 북미의 일부 개신교 교단은, 성경 본문이 착취적인 관계를 다룬 것이라고 이해하거나, 사랑과 정의에 대한 성경 전체의 흐름과 성령의 인도에 따라 가르침을 새롭게 이해해야 한다고 보아 동성 결혼을 인정하고 축복하기도 합니다. 이 교회들도 대개 성경의 권위와 결혼의 신실함을 존중한다고 말합니다. 역사적 가르침은 지금도 세계 교회 대다수의 가르침입니다. 그리고 양쪽이 함께 붙들어야 할 것은 분명합니다. 모든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며, 누구도 멸시나 폭력의 대상이 될 수 없고, 교회는 어떤 사람에게도 문을 닫아서는 안 됩니다.

"결혼에 관한 성경 말씀이 학대를 정당화한다." 에베소서 5장의 '복종'이 아내를 억압하거나 폭력을 견디게 하는 데 쓰인 불행한 역사가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어떤 학대도 용납하지 않습니다. 말라기는 아내를 쫓아내며 폭력으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하나님이 미워하신다고 합니다 (말 2:16). 바울은 "남편들아, 너희 아내를 사랑하고 모질게 대하지 말라."고 하고 (골 3:19), 베드로는 아내를 "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그들과 동거하고 아내를 더 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고 합니다 (벧전 3:7). 그리스도의 사랑을 본으로 삼는 남편이 강요하고 때리고 억누를 수는 없습니다. 배우자나 가까운 사람에게서 폭력이나 강요를 겪고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며, 참고 견뎌야 할 일이 아닙니다. 안전한 곳으로 피하고 도움을 구하십시오. 한국에서는 여성긴급전화 1366이 있습니다. 위급하면 112에 연락하십시오.

더 생각해 보기

결혼과 성에 대한 성경의 말씀은 금지 목록이 아니라 사랑의 그림입니다.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서로에게 자신을 내어주는 신실함입니다. 결혼한 사람은 그 약속을 날마다 새롭게 지켜야 하고, 독신인 사람은 하나님이 주신 자기 부르심을 존귀하게 받아들이며 교회의 사랑 안에서 살아야 합니다. 이미 깨어진 관계나 부끄러운 과거가 있는 사람에게도, 그리스도는 정죄하지 않고 새로운 시작을 주십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성과 몸을 하나님의 선물로 보고 있습니까, 아니면 부끄러움과 두려움으로만 봅니까? 결혼했다면 내가 상대를 소유하려 하지는 않습니까? 이 문제로 아파하는 이웃에게 나는 멸시가 아니라 환대를 보이고 있습니까?

이어서 사랑이란 무엇인가?와 성경은 여성을 차별하는가?를 읽어 보십시오.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