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천국과 지옥은 실재하는가?

짧은 답

성경은 하나님과 함께 누릴 새 하늘과 새 땅의 기쁨, 그리고 하나님을 떠난 자리의 무서운 실재를 모두 말합니다. 천국은 구름 위의 휴양지가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사는 삶이며, 지옥은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이자 생명이신 하나님을 잃는 것입니다. 지옥의 본성에 대해서는 영원한 형벌, 소멸설 등 서로 다른 견해가 있어, 이 글은 그것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의 답

신약에서 지옥에 대해 가장 많이 말씀하신 분은 예수이십니다. 동시에 천국에 대해 가장 따뜻하게 말씀하신 분도 예수이십니다. 그분은 최후의 심판을 이렇게 그리십니다. 임금이 모든 민족을 목자가 양과 염소를 가르듯이 나누고, 오른편에 선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그때에 왕이 자기 오른편에 있는 자들에게 이르되, 오라, 내 아버지께 복 받은 자들아, 너희는 세상의 창건 이후로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왕국을 상속받으라.

마 25:34

왼편에 선 사람들에게는 이렇게 말합니다.

그때에 그가 왼편에 있는 자들에게도 이르되, 저주를 받은 자들아, 너희는 내게서 떠나 마귀와 그의 천사들을 위하여 예비된 영존하는 불에 들어가라.

마 25:41

주목할 것이 있습니다. 천국은 "창세로부터 너희를 위하여 예비된" 곳이고, 불은 "마귀와 그 사자들을 위하여 예비된" 곳입니다. 사람을 위해 처음부터 마련된 것은 나라이고, 지옥은 본래 사람의 자리로 지어지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장면은 이렇게 끝납니다. "그리하여 이들은 영존하는 형벌에 들어가되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 (마 25:46).

누가복음 16장의 부자와 나사로 이야기는 죽음 직후의 모습을 보여 줍니다. 거지 나사로는 "천사들에게 받들려 아브라함의 품에" 들어가고, 부자는 음부에서 고통을 받습니다. 둘 사이에는 "큰 구렁"이 있어 건널 수 없습니다 (눅 16:22-26). 세부가 얼마나 문자적인지에 대해서는 해석이 갈리지만, 말하려는 바는 분명합니다. 이생의 선택이 영원한 결과를 낳는다는 것입니다.

천국에 대해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근심하던 밤에 이렇게 약속하셨습니다.

내 아버지 집에 거할 곳이 많도다. 그렇지 않으면 내가 너희에게 말해 주었으리라. 내가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러 가노니 가서 너희를 위해 처소를 예비하면 내가 다시 와서 너희를 내게로 받아들여 내가 있는 곳에, 거기에 너희도 있게 하리라.

요 14:2-3

요한계시록은 이 약속이 어디로 이어지는지를 보여 줍니다. 그것은 영혼이 구름 위로 사라지는 그림이 아니라 새 하늘과 새 땅입니다.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

계 21:4

이사야도 같은 소망을 예언했습니다 (사 65:17). 그 중심에는 "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계 21:3) 그분의 얼굴을 보는 일이 있습니다 (계 22:4).

성경은 심판이 공정하다고 말합니다. 아브라함은 "주께서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죽이시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처럼 여기시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나이다.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롭게 행하여야 하지 아니하리이까? 하매"라고 물었고 (창 18:25), 바울은 하나님께서 "그분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되" 외모를 취하지 않으신다고 합니다 (롬 2:6, 11절). 지옥이 무엇인지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들은 주의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으리로다.

살후 1:9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은 지옥을 무엇보다 하나님을 떠난 상태로 이해해 왔습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오랫동안 천국과 지옥을 모두 고백해 왔습니다. 사도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시고, 우리가 몸의 부활과 영생을 믿는다고 고백합니다 사도신경. 천국의 중심은 하나님 자신입니다. 매튜 헨리는 이렇게 씁니다. "천국의 으뜸가는 행복은 주와 함께 있고 그분을 뵈며 그분과 함께 살고 영원히 그분을 누리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

지옥에 대해서도 교회는 말을 아끼지 않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마태복음 25:46을 풀면서, 이 말씀을 피해 가려는 시도가 이미 있었음을 알려 주고 바로잡습니다. "어떤 이들은 불은 영원하다고 하나 형벌은 영원하다고 하지 않는다 하며 스스로를 속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매튜 헨리는 이 세상에서는 "우리는 죄에서 하나님께로 넘어갈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죄 중에 죽으면 나올 길이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그러나 지옥의 본성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이 한 목소리로 말하지는 않았습니다. 주요한 견해는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영원한 의식적 형벌입니다. 이것이 교회 역사에서 가장 널리 받아들여진 견해입니다. 이 견해는 무엇보다 같은 ‘영원한’이 형벌과 생명에 함께 쓰인 마태복음 25:46과 "그들의 고통의 연기가 영원무궁토록 올라가는도다.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는 자들과 그의 이름의 표를 받는 자는 누구든지 낮이나 밤이나 안식을 얻지 못하는도다." 같은 말씀을 (계 14:11) 가장 자연스럽게 읽으면 형벌이 끝없이 이어진다고 봅니다. 또 사람들이 들어가는 불이 마귀를 위하여 예비된 불이며 (마 25:41), 마귀는 거기서 "또 그들을 속인 마귀가 불과 유황 호수에 곧 그 짐승과 거짓 대언자가 있는 곳에 던져져서 영원무궁토록 밤낮으로 고통을 받으리라."고 한 점도 듭니다 (계 20:10).

둘째는 소멸설(조건적 불멸설)입니다. 이 견해는 영혼이 본래 불멸하지 않고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봅니다. 성경이 죄의 삯을 "사망"이라 하고 (롬 6:23), 하나님이 몸과 영혼을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 분이라 하며 (마 10:28), 형벌을 "그들은 주의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으리로다."이라 부른다는 점이 (살후 1:9) 근거입니다. 이 견해는 이 말들을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 심판 뒤에 끝내 존재하지 않게 된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그러면서도 형벌이 실제이고 그 결과가 영원히 돌이킬 수 없다는 점에서는 첫째 견해와 같습니다. 이 견해는 일부 복음주의 신학자들이 받아들였지만, 교회 역사의 주류는 아니었습니다.

셋째는 모든 사람이 결국 구원받기를 바라는 견해입니다. 오리게네스와 닛사의 그레고리우스 같은 이들이 이런 소망을 말했고, 이 입장은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을 (딤전 2:4)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6세기에 오리게네스 계열의 만물 회복 가르침이 정죄되었고, 교회는 이것을 가르침으로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형벌에 관한 예수의 말씀이 너무 분명하다고 보았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이것을 확신이 아닌 소망으로만 말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세 견해는 서로 다르지만 같은 것을 말합니다. 심판은 실제이고, 하나님은 의로우시며,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께 있고, 지옥을 가볍게 말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한편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죽었으나 아직 온전히 정결하지 않은 이들이 죽음 뒤에 거치는 정화, 곧 연옥을 가르칩니다. 연옥은 지옥의 일부도 두 번째 기회도 아닙니다. 정교회는 죽은 이를 위해 기도하지만 연옥 교리는 받아들이지 않으며, 개신교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에 대해서는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를 보십시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지옥"으로 옮겨진 말은 하나가 아닙니다. 게헨나(γέεννα)는 예루살렘 남쪽 힌놈의 골짜기에서 온 이름입니다. 이 골짜기는 한때 우상에게 아이를 바치던 곳이었고, 이사야 66:24의 "그 벌레가 죽지 아니하며 그 불이 꺼지지 아니하여"의 이미지와 이어집니다. 예수께서는 이 말로 최종 심판의 자리를 가리키셨습니다. 반면 하데스(ᾍδης)는 히브리어 스올에 해당하는, 죽은 자의 거처를 가리킵니다. 누가복음 16:23의 "음부"가 이것입니다.

또 하나는 아이오니오스(αἰώνιος), "영원한"입니다. "영생"과 "영벌" 모두에 같은 말이 쓰입니다 (마 25:46). 이 말이 "다가올 세대에 속한"이라는 성질을 가리킨다고 보는 해석도 있습니다. 그러나 전통적으로 교회는 끝이 없다는 뜻으로 읽었습니다. 소멸설을 지지하는 이들은 "염소와 송아지의 피가 아니라 자기 피를 힘입어 단 한 번 거룩한 곳에 들어가사 우리를 위하여 영원한 구속을 얻으셨느니라."처럼 (히 9:12) 이 말이 끝없는 과정이 아니라 영원히 남는 결과를 가리킬 수 있다고 답합니다.

흔한 반론과 답

"사랑의 하나님이 사람을 지옥에 보내실 리 없다." 이 반론은 가장 진지하게 들어야 합니다. 사랑이시라면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바라실 것이고, 유한한 인생의 죄에 끝없는 형벌이 따르는 것은 균형이 맞지 않아 보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르기를, 주 하나님이 말하노라. 내가 살아 있음을 두고 맹세하노니 사악한 자가 죽는 것을 내가 기뻐하지 아니하며 오히려 그 사악한 자가 자기 길에서 돌이켜 사는 것을 기뻐하노라. 오 이스라엘의 집아, 너희는 돌이키라. 너희는 너희의 악한 길들에서 돌이키라. 너희가 어찌하여 죽고자 하느냐? 하라."시고 돌이키라고 간절히 부르십니다 (겔 33:11). 그러나 몇 가지를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첫째, 악이 정말 악이라면 심판이 없는 사랑은 피해자에게 무정한 것입니다. 모든 악을 그냥 넘기는 하나님이라면 억울하게 짓밟힌 사람들에게는 좋은 소식이 아닙니다. 둘째, 성경은 지옥을 죄에 대한 하나님의 의로운 심판으로 말하면서 (롬 2:5), 빛보다 어두움을 더 사랑한 사람의 선택으로도 말합니다 (요 3:19). 그래서 많은 그리스도인은 지옥을 하나님 없이 살겠다는 선택이 끝까지 존중된 결과로도 이해합니다. 셋째, 복음의 중심에는 심판을 피할 길을 하나님이 친히 여셨다는 소식, 곧 그리스도께서 우리 죄를 위하여 죽으셨다는 소식이 있습니다. 형벌의 길이와 성질에 대해서는 신실한 사람들 사이에 정말로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전통적 견해는 죄의 무게를 거스른 분의 거룩하심으로 잰다고 답하고, 다른 이들은 같은 고민 때문에 소멸설을 택합니다.

"천국은 소망 사항일 뿐이다." 죽음의 고통을 달래려는 인간의 소원이 만든 이야기라는 반론은 오래되었고 가볍지 않습니다. 소원이 있다고 해서 소원의 대상이 없다는 것이 되지는 않습니다. 또 성경의 천국은 먼저 나의 만족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있음이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그 보증입니다. 그 근거에 대해서는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를 보십시오.

"불과 벌레는 상징일 뿐이다. 그렇다면 지옥은 상징일 뿐 아닌가?" 불과 벌레와 어둠이 이미지임은 많은 사람이 인정합니다. 문자적으로 읽으면 서로 충돌하는 그림이 함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상징은 가리키는 것이 있고, 상징이 실재보다 가볍다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 그림들의 핵심은 하나님과 그분의 선하심에서 끊어짐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천국과 지옥에 대한 성경의 말씀은 호기심을 채워 주려는 지도가 아니라 지금의 삶을 향한 초대입니다. 예수께서 가장 엄한 말씀을 하셨을 때에도 그것은 위협이 아니라 구하려는 경고였습니다. 누가복음의 부자가 구한 것은 자기 형제들이 같은 곳에 오지 않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눅 16:27-28). 하나님은 그보다 더 간절히 우리가 돌아오기를 바라십니다. 지옥이 두려워 이 글을 읽고 있다면 이 약속을 붙드십시오.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 (롬 8:1).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하나님과 함께 있는 것이 천국의 중심이라면, 지금 나는 그분과 함께 있는 것을 얼마나 원합니까? 내가 지옥을 생각할 때 두려움 말고 어떤 마음이 올라옵니까? 이 문제에서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대해야 할까요?

더 읽으려면 죽음 뒤에는 무엇이 있는가?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를 보십시오. 요한계시록 21-22장을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출처

  1.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