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예수는 정말 동정녀에게서 나셨는가?

짧은 답

교회는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이 각각 이것을 전하며, 이사야 7:14의 낱말 문제는 정직하게 따져 볼 필요가 있습니다. 이 고백은 예수의 시작이 하나님의 먼저 하신 일이었다는 뜻이며, 성경은 그것을 증명하기보다 선포합니다.

성경의 답

예수의 동정녀 탄생을 직접 이야기하는 책은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입니다. 두 복음서는 서로 다른 쪽에서 이야기를 시작합니다. 마태는 요셉의 눈으로 봅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의 태어나심은 이러하니라. 그분의 어머니 마리아가 요셉과 정혼하였을 때에 그들이 함께하기 전에 그녀가 성령님으로 말미암아 아이를 밴 것이 드러나매

마 1:18

요셉은 의로운 사람이어서 마리아를 드러내지 않고 조용히 끊으려 했습니다. 그때 천사가 꿈에 나타나 "그가 이 일들을 생각할 때에, 보라, 주의 천사가 꿈에 그에게 나타나 이르되, 너 다윗의 자손 요셉아, 네 아내 마리아 취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 그녀 안에 수태된 그것은 성령님으로 말미암았느니라."고 알려 줍니다 (마 1:20). 마태는 이 일을 선지자의 말씀이 이루어진 것으로 읽습니다.

보라, 처녀가 아이를 배어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들이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것을 번역하면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뜻이라.

마 1:23

누가는 마리아의 눈으로 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갈릴리 나사렛의 마리아를 찾아가 아들을 낳으리라고 하자, 마리아는 묻습니다.

이에 마리아가 천사에게 이르되,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어찌 이 일이 있으리이까? 하매 천사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님께서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이의 권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눅 1:34-35

마리아의 응답은 이렇게 끝납니다. 설명을 다 들어서가 아니라 말씀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마리아가 이르되, 주의 여종을 보소서. 당신의 말씀대로 그 일이 내게 이루어지리이다, 하매 천사가 그녀에게서 떠나니라.

눅 1:38

눈여겨볼 점이 있습니다. 두 이야기는 이름, 천사, 장소, 인물이 많이 다르면서도 같은 핵심을 말합니다. 마리아는 아직 요셉과 동거하지 않았고, 요셉은 다윗의 집안 사람이며, 아이는 성령으로 잉태되었고, 이름은 예수입니다. 많은 학자는 두 복음서가 서로의 글을 보고 쓰지 않았다고 봅니다. 그렇다면 이 핵심은 두 갈래의 전승이 함께 간직한 것이 됩니다. 물론 이것이 사건 자체를 증명하지는 않습니다. 다만 한 사람이 지어낸 이야기와는 결이 다릅니다.

마태는 마리아의 임신이 요셉에게 스캔들이었다는 점도 숨기지 않습니다. 신화를 꾸미는 사람이라면 주인공의 출생을 이렇게 불편하게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이 일을 일찍부터 신앙의 기본으로 고백했습니다. 사도신경은 예수께서 성령으로 잉태되어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나셨다고 말합니다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도 성령으로 말미암아 동정녀 마리아에게서 육신을 취하여 사람이 되셨다고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동방과 서방의 교회가 함께 간직한 고백입니다.

교부들은 이사야 7:14의 낱말을 알고 있었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이렇게 묻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의 주장대로 젊은 여자나 소녀가 낳는 것이고 처녀가 아니라면, 이것이 무슨 놀라운 일입니까?" 히에로니무스 그는 하나님이 "징조"를 주신다는 본문의 말을 근거로, 평범한 출산이라면 징조가 될 수 없다고 본 것입니다. 이 논증은 힘이 있지만 다툼의 여지도 있습니다. 아래 "원어로 보기"에서 이 문제를 다룹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마리아의 물음에 대한 천사의 답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본성을 뛰어넘고 압도하는 일들에서 본성의 질서를 찾지 말라." 크리소스토무스 하나님이 계시고 만물의 창조주이시라면, 그분이 새 시작을 여시는 일을 자연의 규칙만으로 미리 막을 수는 없다는 말입니다.

매튜 헨리는 이 신비 앞에서 겸손을 권합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이 되신 신비는 경배해야 할 것이지 호기심으로 캐물을 것이 아닙니다." 매튜 헨리 아울러 그는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성품에 참여하시되 아담의 모든 후손에게 전해진 죄의 더러움에서는 순결하셨다고 말합니다. 아타나시우스와 바실리우스는 마리아에게서 취하신 몸이 우리와 같은 참된 사람의 몸이었음을 강조했습니다 아타나시우스. 바울이 ‘여자를 통하여’가 아니라 ‘여자에게서’ 나셨다고 쓴 것은 어머니와 아들이 본성을 나눈다는 뜻이라는 것입니다 (갈 4:4). 동정녀 탄생은 예수께서 사람이 아니셨다는 뜻이 아니라, 참 사람이시면서 동시에 새 시작이셨다는 뜻입니다.

한 가지 짚어 둘 것이 있습니다. 마리아가 예수를 낳은 뒤에도 평생 동정이었는가에 대해서는 교회의 의견이 갈립니다. 동방 정교회와 가톨릭교회는 그렇다고 가르치고, 오늘날 대부분의 개신교인은 성경이 그렇게 말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예수의 탄생 때 마리아가 동정녀였다는 점에서는 모두가 같은 고백을 합니다.

원어로 보기

가장 많이 거론되는 말은 이사야 7:14의 알마(עַלְמָה)입니다. 개역한글은 "처녀"로 옮겼습니다. 그러나 이 히브리어는 혼인할 나이가 된 젊은 여자를 뜻하며, 순결을 직접 말하는 낱말이 아니라고 많은 학자는 지적합니다. 순결을 더 분명히 가리키는 히브리어로는 베툴라가 따로 있습니다. 이것은 정직하게 인정해야 합니다. 이 낱말만으로 이사야가 동정녀 탄생을 예언했다고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그런데 이 구절을 기원전 몇 세기에 그리스어로 옮긴 유대인 번역자들은 알마를 파르테노스(παρθένος)로 옮겼습니다. 이 낱말은 흔히 "처녀"를 뜻하지만 젊은 여자에게도 쓰일 수 있었습니다. 마태는 이 그리스어 번역에 가까운 말로 이사야를 인용합니다. 다시 말해 마태의 독서는 기독교인이 처음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유대인들의 번역에 기댄 것입니다. 한편 이사야 7장의 원래 상황은 아하스 왕에게 주어진 징조였고, 아이는 당대에 태어나는 것으로 읽혔습니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는 마태가 이 말씀을 더 큰 성취,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 온전히 드러나는 사건으로 읽었다고 봅니다. 이것을 두 번 이루어진 예언이라고 설명하는 사람도 있고, 모형과 성취로 설명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핵심은 이사야 한 구절이 아닙니다. 마태는 이사야를 근거로 사건을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전해진 사건을 이사야의 말씀으로 풀이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누가는 이사야를 인용하지 않고도 같은 사건을 전합니다. 마리아의 말 "사내를 알지 못하니"에서 "알다"는 부부의 관계를 가리키는 성경의 표현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고대 신화에도 신이 낳은 영웅 이야기가 많다. 이것도 그런 신화다." 고대 세계에는 영웅이나 왕이 신의 아들이라는 이야기가 실제로 많았습니다. 이 점은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신이 인간 여자와 육체적으로 관계하는 이야기입니다. 복음서의 이야기는 다릅니다. 이 이야기에는 그런 관계가 없고, 성령은 어떤 신의 짝도 아닙니다. 또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창조된 세계와 철저히 구별했기 때문에, 신이 여자와 짝을 이룬다는 생각은 그들에게 불경스러웠습니다. 또 이 이야기는 영웅의 위대함을 높이려는 투가 아니라 가난한 시골 처녀의 순종을 중심에 둡니다. 영향 관계가 전혀 없었다고 단정할 수는 없지만, 빌려 온 이야기로 설명하기에는 모양이 많이 다릅니다.

"마가, 바울, 요한은 동정녀 탄생을 말하지 않는다. 후대에 덧붙인 것 아닌가?" 이것은 사실입니다. 마가복음은 세례 요한에서 시작하고, 바울은 예수가 ‘여자에게서’ 나셨다고만 씁니다 (갈 4:4). 그러나 침묵이 부정은 아닙니다. 그들은 다른 목적으로 글을 썼습니다. 바울은 예수의 탄생 이야기를 거의 하지 않으며, 그것은 동정녀 탄생을 몰랐다는 증거가 아니라 쓸 일이 없었다는 정도로 읽을 수도 있습니다. 반면 마태와 누가는 1세기 후반에 쓰였고, 두 복음서가 아마도 서로 독립적으로 쓰였는데도 같은 핵심을 전한다는 점은 그것이 뒤늦게 한 사람이 지어낸 것이 아니라는 쪽을 가리킵니다. 정직하게 말하면 역사가는 이 사건을 같은 방식으로 검증할 수 없습니다. 증거는 두 증언과 초기 교회의 일관된 고백이며, 그것을 받아들이는 일에는 하나님이 계신다면 이런 일도 하실 수 있다는 믿음이 함께 들어 있습니다.

"예수가 사생아였다는 말이 당시에 있지 않았는가?" 그런 소문이 있었다고 보는 사람들은 사람들이 예수를 아버지가 아니라 "이 사람은 마리아의 아들 목수가 아니냐, 야고보와 요세와 유다와 시몬의 형이 아니냐? 그의 누이들이 우리와 함께 여기 있지 아니하냐? 하고 그분으로 인해 실족하니라."이라 부른 일 (막 6:3)이나, 예수께 "너희는 너희 아비가 행하는 일들을 하는도다, 하시매 이에 그들이 그분께 이르되, 우리는 음행을 통해 나지 아니하였고 우리에게는 한 아버지가 계시니 곧 하나님이시로다, 하거늘"라고 맞선 말 (요 8:41)을 가리킵니다. 이 구절들이 정말 그런 뜻인지는 해석이 갈립니다. 오리게네스가 전하는 바에 따르면, 2세기 후반의 비판자 켈소스는 예수가 군인의 사생아라는 이야기를 퍼뜨렸습니다. 이 사실은 양쪽으로 읽힙니다. 회의적인 사람에게는 동정녀 탄생이 그런 소문을 덮으려는 이야기로 보입니다. 그러나 마태는 소문이 나올 만한 상황, 곧 약혼한 여자의 임신과 요셉의 고민을 숨기지 않고 먼저 적습니다. 덮으려는 사람은 이렇게 쓰지 않습니다. 어느 쪽 해석이든 이 질문은 증거만으로 닫히지 않으며, 읽는 이는 복음서 전체의 신뢰도와 함께 판단하게 됩니다.

더 생각해 보기

동정녀 탄생은 성경이 말하는 예수의 시작이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먼저 하신 일이라는 표지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를 믿는 이들이 "이들은 혈통으로나 육신의 뜻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자들이니라."이라고 말합니다 (요 1:13). 구원은 우리가 이루어 내는 것이 아니라 받는 것이라는 뜻과 이어집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는 뜻이며, 이 약속은 이 탄생에서 시작됩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이 먼저 행하시는 일을 받아들이는 사람인가, 아니면 모든 것을 내가 설명할 수 있어야 믿는 사람인가? 이 이야기가 어렵게 느껴진다면 그 어려움은 무엇에서 오는가? 마리아처럼 "말씀대로 내게 이루어지이다" 하고 말할 수 있는 자리는 어디인가?

더 읽으려면 예수는 누구인가?, 예수는 하나님인가?, 하나님은 왜 사람이 되셨는가?를 보십시오. 마태복음 1장과 누가복음 1장을 차례로 읽어 보는 것도 좋습니다.

출처

  1.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읽기
  2.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