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기도해야 하는가?
기도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그분께 말씀드리는 관계의 대화입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은 찬양과 간구, 용서와 보호를 담은 기도의 본보기이고, 성령께서는 무엇을 구해야 할지 모르는 우리를 도우십니다. 정해진 공식이 응답을 보장하지는 않지만, 하나님은 솔직하게 나아오는 사람을 반기십니다.
성경의 답
제자들이 예수께 가장 먼저 청한 것 가운데 하나는 기도를 가르쳐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눅 11:1). 예수께서는 기도의 태도부터 말씀하십니다.
오직 너는 기도할 때에 네 골방으로 들어가 네 문을 닫고 은밀한 가운데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라. 그리하면 은밀한 가운데 보시는 네 아버지께서 네게 드러나게 갚아 주시리라.
마 6:6
기도는 사람에게 보이려는 연기가 아니라 아버지와의 만남입니다. 또 예수께서는 "오직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교도들과 같이 헛된 반복의 말을 사용하지 말라. 그들은 자기들이 말을 많이 하여야 아버지께서 들으실 줄로 생각하느니라."고 하시며 (마 6:7), 그 까닭을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과 같이 되지 말라. 너희가 너희 아버지께 구하기 전에 그분께서 너희에게 필요한 것들을 아시느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마 6:8). 그러면서 이렇게 기도하라고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이런 식으로 기도하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이 거룩히 여겨지게 하옵시며 아버지의 왕국이 임하옵시며 아버지의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
마 6:9-10
이 기도는 순서에 뜻이 있습니다. 먼저 아버지를 부르고, 하나님의 이름과 나라와 뜻을 구합니다. 그다음에 우리 자신의 일, 곧 일용할 양식과 죄 용서와 시험에서의 보호를 구합니다 (마 6:11-13). 하나님의 일이 먼저이고 우리의 필요가 이어지지만, 필요도 결코 하찮지 않습니다. 빵 한 조각까지 아버지께 구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바울은 같은 마음을 이렇게 풀어 줍니다.
아무것도 염려하지 말고 오직 모든 일에서 기도와 간구로 너희가 요청할 것들을 감사와 더불어 하나님께 알리라.
빌 4:6
여기서 기도의 여러 요소가 보입니다. 찬양, 죄의 고백, 감사, 간구입니다. 시편은 이 모두의 학교입니다. 시편 51편은 "오 하나님이여, 주의 인자하심에 따라 내게 긍휼을 베푸시며 주의 친절한 긍휼의 풍성함에 따라 내 범법들을 지워 주소서."로 시작하는 고백의 기도이고 (시 51:1), 시편 130편은 "오 주여, 내가 깊음들 속에서 주께 부르짖었나이다."라는 절망 속의 기도입니다 (시 130:1). 시편에는 불평과 탄식도 있습니다. 시편 88편은 어둠으로 끝납니다. 하나님은 정돈된 말만 받으시는 분이 아닙니다.
무엇을 말해야 할지 모를 때에도 길이 있습니다.
이와 같이 성령께서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가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성령께서 말로 할 수 없는 신음으로 친히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롬 8:26
기도는 혼자 애쓰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이 우리 안에서 함께 기도하십니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기도와 간구로 성령 안에서 항상 기도하되 모든 성도를 위해 모든 인내와 간구로 그 일에 깨어 있고" 항상 기도하라고 권합니다 (엡 6:18). 그리고 이 모든 것의 바탕에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사실이 있습니다. 우리는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 (롬 8:15).
교회의 증언
교회는 처음부터 주기도문으로 기도했고, 어떻게 기도해야 하는지를 가장 먼저 이 기도에서 배웠습니다. 매튜 헨리는 마태복음 6:9를 풀며 이렇게 말합니다. "우리가 이 기도만을 사용하도록, 혹은 항상 이것만 사용하도록 매여 있다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을 사용하는 것이 매우 좋다는 데는 의심이 없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주기도문은 외워서 암송하는 기도문이기도 하고, 우리 자신의 기도를 빚는 본이기도 합니다.
키프리아누스는 "우리 아버지"라는 첫 낱말에 주목합니다. 그는 "평화의 교사이시며 일치의 스승이신 분은 사람들이 각각 따로따로 기도하기를 원하지 않으시기 때문입니다"라고 씁니다 키프리아누스. 그리스도인은 홀로 골방에서 기도할 때에도 "우리"라고 부릅니다. 기도는 언제나 한 가족의 기도입니다.
성령의 도우심에 관하여 매튜 헨리는 로마서 8:26을 풀며 이렇게 말합니다. "성령은 하나님을 향한 모든 열망의 샘이시니, 그 열망은 흔히 말로 다 할 수 없습니다" 매튜 헨리. 말이 막힐 때에도 기도는 끝나지 않았다는 위로입니다.
기도의 형식에 대해서는 교회 안에 서로 다른 전통이 있습니다. 정교회와 가톨릭, 성공회, 루터교는 정해진 기도문과 시간에 따른 기도, 곧 시편과 기도문을 정해진 때에 드리는 전통을 소중히 여깁니다. 이 전통은 우리의 마음이 흔들릴 때에도 교회가 대신 기도해 준다고 말합니다. 많은 개신교 교회는 즉흥적으로 자기 말로 하는 기도를 강조하며, 이는 마음을 쏟아 놓으라는 시편 62:8의 초대에 기댑니다. 예수께서 주기도문을 정해 주셨다는 점과 자기 말로 기도하셨다는 점은 모두 성경에 있고, 두 전통은 서로를 필요로 합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기도를 뜻하는 가장 흔한 말은 프로슈케(προσευχή)이고, 동사는 프로슈코마이(προσεύχομαι)입니다. 이 말은 "~를 향하여"라는 뜻의 전치사와 "빌다, 바라다"라는 뜻의 동사 유코마이(εὔχομαι)가 합쳐진 말입니다. 신약에서 이 말은 사람에게 무엇을 청할 때에는 쓰이지 않고 기도에만 쓰입니다. 기도의 방향은 처음부터 정해져 있습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겟세마네에서 부르신 아바(ἀββά)는 가정에서 쓰던 아람어의 "아버지"입니다 (막 14:36). 이 말을 흔히 어린아이가 부르는 "아빠"로 풀이하고, 우리말 소리까지 비슷해 더 친근하게 들립니다. 그러나 이것은 널리 퍼진 설명일 뿐이고, 제임스 바(James Barr) 같은 학자들은 다 자란 자녀도 아버지를 이렇게 불렀다는 점을 들어 "아빠"라는 풀이가 지나치다고 반박했습니다. 분명한 점은 이 말이 친밀하고 신뢰하는 가족의 호칭이며, 바울이 이 말을 신자들의 입에도 놓았다는 것입니다 (롬 8:15).
흔한 반론과 답
"하나님이 이미 모든 것을 아신다면 왜 기도해야 하는가?" 예수께서도 아버지께서 구하기 전에 아신다고 하셨으니, 이 반론은 성경이 먼저 말한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기도의 목적은 하나님께 정보를 알려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기도는 관계입니다. 부모가 자녀의 필요를 이미 안다고 해서 자녀가 말하지 않아도 된다고 하지 않습니다. 말하고 듣는 그 일이 관계를 이룹니다. 또한 야고보는 "너희가 욕심을 내도 갖지 못하고 죽여서 갖고자 해도 얻지 못하나니 너희가 다투고 싸워도 갖지 못함은 너희가 구하지 아니하기 때문이요"라고 말합니다 (약 4:2). 하나님이 자신의 뜻과 우리의 간구가 어떻게 만나는지를 어떻게 정하셨는지는 우리가 다 설명하지 못합니다. 신비가 남는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기도해도 응답이 없다. 기도는 아무 소용이 없는 것 아닌가?" 이것은 많은 신자도 겪는 고통스러운 질문입니다. 성경은 간구가 늘 그대로 이루어진다고 약속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도 겟세마네에서 "조금 멀리 가사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는"라고 기도하셨고 (마 26:39), 바울은 육체의 가시를 거두어 달라고 세 번 간구했으나 "그분께서 내게 이르시되,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나의 강한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해지느니라, 하셨느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히려 크게 기뻐하며 나의 연약한 것들을 자랑하리니 이것은 그리스도의 권능이 내 위에 머무르게 하려 함이라."라는 답을 받았습니다 (고후 12:9). 매튜 헨리는 이를 풀며 "하나님께서 믿음의 기도를 받으시지만 구한 것을 언제나 주시는 것은 아닙니다. 때로는 진노 중에 허락하시고, 때로는 사랑으로 거절하십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침묵의 시간이 있다는 것을 성경은 숨기지 않습니다. 이 주제는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나는 기도하는 법을 모른다. 느껴지는 것도 없다." 기도에 정해진 공식이나 특별한 말솜씨는 필요하지 않습니다. 느낌이 없을 때에도 기도는 계속될 수 있습니다. 시편에는 마음이 마른 땅 같다고 말하는 기도가 있습니다 (시 63:1). 중요한 것은 감정의 고조가 아니라 하나님께 나아가는 일입니다. 히브리서는 "그러므로 우리가 긍휼을 얻고 필요한 때에 도우시는 은혜를 얻기 위해 은혜의 왕좌로 담대히 갈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히 4:16).
더 생각해 보기
실제로 시작하는 방법은 단순할 수 있습니다. 정해진 시간과 조용한 곳을 정합니다. 주기도문을 천천히 한 구절씩 자기 말로 풀어 기도해 봅니다. 시편 한 편을 소리 내어 읽고 그 말을 자기 기도로 삼습니다. 감사할 것 몇 가지와 고백할 것, 구할 것을 하나님께 말씀드립니다. 때로는 아무 말 없이 잠잠히 머무르기도 합니다. 예수께서도 "그분께서 광야로 물러가사 기도하시더라."하셨습니다 (눅 5:16). 한꺼번에 오래 하려 하지 말고 짧게라도 꾸준히 하는 편이 낫습니다. 어떤 방법도 응답을 보장하는 주문이 아닙니다. 기도는 기계가 아니라 아버지와의 관계이기 때문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하나님을 어떤 분으로 생각하며 기도합니까? 말하기 어려워서 피해 온 이야기는 없습니까? 오늘 한 가지만 하나님께 솔직하게 말씀드린다면 무엇이겠습니까?
더 읽으려면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 성령은 누구신가?, 예배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마태복음 6장과 시편 23편, 130편을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관련 질문
- 하나님은 기도에 응답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고 말하지만, 응답이 언제나 우리가 구한 그대로라고 약속하지는 않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 구하라고 가르치셨고, 겟세마네의 예수와 바울의 가시는 거절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라는 말씀도 응답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기도는 혼잣말이 아니라 살아 계신 아버지께 드리는 말이며, 그 응답을 시험관에서처럼 증명할 수는 없습니다.
- 예배란 무엇인가?예배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알아보고, 그분께 마땅한 영광과 감사와 순종으로 응답하는 일입니다. 함께 모여 드리는 모임에서 시작하여 일상 전체의 삶으로 이어집니다. 예배의 형식은 교회마다 다르지만, 예배를 받으시는 분은 성부와 성자와 성령 한 분 하나님이시며, 아버지께서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하는 자들을 찾으십니다.
- 성령은 누구신가?교회는 성령이 하나님의 막연한 힘이 아니라 성부, 성자와 함께 한 하나님이신 위격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성령은 창조 때부터 일하셨고, 예수께서 약속하신 보혜사로서 사람을 거듭나게 하고 그리스도를 알게 하며 성품을 빚으십니다. 오늘날 은사가 어떻게 나타나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서로 다른 이해가 있습니다.
- 하나님은 어떻게 말씀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해, 마지막에는 아들을 통해 말씀하셨다고 증언합니다. 오늘 그분의 말씀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기록된 성경을 중심으로, 창조와 성령과 교회의 분별 속에서 들립니다. 성령이 지금도 개인을 인도하시는 방식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내세우는 어떤 말도 성경과 어긋나서는 안 된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관련 주제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