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어떻게 믿음을 시작할 수 있는가?

짧은 답

성경은 믿음의 시작을 어려운 자격 시험이 아니라 초대로 그립니다. 예수께서 부르시고, 사람은 돌이켜 그분을 신뢰하며, 하나님은 돌아오는 자녀를 달려 나가 맞으십니다. 확신이 없어도, 의심이 있어도, 부족하다고 느껴도 시작할 수 있습니다. 서두를 필요도, 누구에게 떠밀릴 필요도 없습니다.

성경의 답

이 질문을 여기까지 읽어 오셨다면 먼저 한 가지를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글은 누구도 재촉하지 않습니다. 믿음은 마감일이 있는 계약이 아니고, 서두른다고 깊어지지 않습니다. 이 글은 길이 어떻게 생겼는지 보여 드릴 뿐이고, 걸을지는 읽는 분이 정합니다.

성경은 시작을 초대로 그립니다. 예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마 11:28

조건이 붙어 있지 않습니다. 착한 사람이나 확신이 있는 사람이 아니라 지치고 무거운 짐을 진 사람을 부르십니다. 요한계시록에는 이런 장면도 있습니다. 본래 미지근해진 라오디게아 교회에 하신 말씀이지만, 그리스도께서 사람에게 오시는 방식을 보여 줍니다. 그분은 문을 부수고 들어오지 않고 밖에 서서 두드리십니다.

보라, 내가 문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함께 만찬을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으리라.

계 3:20

문은 안에서만 열립니다. 그리고 자기에게 오는 사람에게는 이렇게 약속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

그러면 ‘온다’는 것은 구체적으로 무엇입니까? 마가복음에서 예수께서 처음 선포하신 말씀이 그 대답입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왕국이 가까이 왔으니 너희는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 1:15

두 가지 움직임입니다. 하나는 돌이킴, 곧 내 방식대로 살던 자리에서 방향을 바꾸는 것입니다. 다른 하나는 신뢰, 곧 예수께서 누구이시며 무엇을 하셨는지를 믿고 그분께 맡기는 것입니다. 빌립보 간수가 "내가 어떻게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 하고 물었을 때 바울의 대답은 짧았습니다.

그들이 이르되,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으라. 그리하면 네가 구원을 받고 네 집이 받으리라, 하며

행 16:31

로마서는 이 믿음을 이렇게 풀어 줍니다.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 (롬 10:9). 그리고 이어서 "누구든지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는 구원을 받으리라." (롬 10:13)고 약속합니다. 여기에는 마법의 주문이 없습니다. 어떤 정해진 문장도 요구되지 않습니다. 세리는 멀리 서서 "하나님이여 불쌍히 여기옵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고만 했고, 예수께서는 그가 의롭다 하심을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고 하셨습니다 (눅 18:13-14).

돌아오는 사람을 하나님이 어떻게 맞으시는지는 탕자의 비유가 가장 잘 보여 줍니다.

일어나서 자기 아버지께로 가니라. 그러나 그가 아직 멀리 떨어져 있을 때에 그의 아버지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달려가 그의 목을 껴안고 그에게 입을 맞추매

눅 15:20

아들은 준비한 사과 연설을 다 마치기도 전에 이미 받아들여졌습니다. 그 아버지는 문 앞에서 아들이 완벽해지기를 기다리지 않았습니다.

의심이 있어도 괜찮다는 것도 성경이 직접 보여 줍니다. 귀신 들린 아들의 아버지는 이렇게 외쳤습니다.

즉시 그 아이의 아버지가 부르짖고 눈물을 흘리며 이르되,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지 아니함을 도와주소서, 하더라.

막 9:24

예수께서는 이 말을 꾸짖지 않으셨고 아들을 고치셨습니다. 도마에게도 직접 와서 보고 만지라고 하셨습니다 (요 20:27). 정직한 의심은 믿음의 적이 아니라 믿음이 자라는 자리일 수 있습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처음부터 이 초대를 이어 받아 왔습니다. 사도신경은 본래 세례를 받으려는 사람이 믿음을 고백하던 문장에서 자라났다고 합니다 사도신경. 믿음의 시작은 늘 공동체 안에서, 누군가 곁에서 함께 고백해 주는 일이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마태복음 11:28을 풀면서 예수께서 왜 부르시는지를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이 부르시는 것은 "내가 너희에게서 벌을 요구하려는 것이 아니라 너희 죄를 사하려는 것이며" 크리소스토무스라는 것입니다. 두려움을 가지고 나아오려는 사람에게는 위로가 되는 말입니다.

탕자의 비유에 대해서 같은 크리소스토무스는 아버지가 "그의 고백의 말을 받으려고 기다리지 않고 그의 간구를 앞질렀으며" 크리소스토무스라고 풀이합니다. 또 돌아오는 길에 대해서는 이렇게 권합니다. "우리가 원하기만 하면, 우리를 아버지 집에서 나가게 한 죄를 버리기만 하면 돌아오는 길은 빠르고 쉬워질 것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매튜 헨리도 같은 비유에서 이렇게 씁니다. "주께서는 뜻밖의 용서하시는 사랑의 표로 그를 맞으십니다" 매튜 헨리. 믿음이 약한 사람에게는 마가복음 9장의 아버지를 두고 이렇게 위로합니다. "불신앙을 호소하는 사람들은 그리스도를 우러러보며 그것을 이기도록 도와줄 은혜를 구해야 하며, 그분의 은혜가 그들에게 족할 것입니다" 매튜 헨리. 의심을 숨기지 말고 그대로 가져가라는 뜻입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회개로 옮겨진 말은 메타노에오(μετανοέω)이고 명사형은 메타노이아(μετάνοια)입니다. "마음을 바꾸다", 곧 생각과 방향이 달라진다는 뜻입니다. 감정적으로 자책하는 일이 아니라 방향을 바꾸는 일입니다. 구약에서 같은 움직임을 가리키는 말은 슈브(שׁוּב)로, "돌아오다, 돌이키다"라는 뜻입니다. 탕자가 아버지 집으로 돌아선 그림이 그것입니다.

믿는다는 동사 피스튜오(πιστεύω)는 사실에 동의하는 것을 넘어 "신뢰하다, 맡기다"라는 뜻을 가집니다. 의자가 나를 지탱한다는 지식이 있는 것과 실제로 그 의자에 앉는 것의 차이와 같습니다. 믿음을 시작한다는 것은 모든 질문의 답을 가지는 것이 아니라, 아직 모르는 채로 그분께 몸을 맡기기 시작한다는 뜻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나는 아직 준비가 안 되었다. 그럴 만한 사람이 아니다." 많은 사람이 이렇게 느낍니다. 삶을 어느 정도 정리한 뒤에야 하나님께 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성경이 말하는 순서는 반대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이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를 향한 자신의 사랑을 당당히 제시하시느니라."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 (롬 5:8). 병원에 가려고 먼저 건강해질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의인이 아니라 죄인을 부르러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막 2:17). 다만 한 가지는 인정해야 합니다. 믿음을 시작한다고 삶이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으며, 변화는 대개 천천히 옵니다. 그리고 바울은 "너희 안에서 선한 일을 시작하신 분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날까지 그 일을 이루실 것 바로 이것을 나는 확신하노라." 확신한다고 말합니다 (빌 1:6).

"나는 아직 의심이 많다. 믿어지지 않는데 어떻게 시작하는가?" 믿음은 먼저 느낌이 생겨야만 시작되는 것이 아닙니다. 마가복음의 아버지는 믿음과 불신을 함께 가지고 왔고, 그대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많습니다. 복음서 하나를 처음부터 읽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마가복음이 가장 짧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런 약속도 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그분의 뜻을 행하려 하면 그 교리가 하나님에게서 왔는지 혹은 내가 스스로 말하는지 알리라." (요 7:17). 정직한 마음으로 읽고 물어보는 사람을 하나님이 모른 척하지 않으신다는 약속입니다. 누구에게나 의심이 때로는 문을 닫아 두는 방패가 되기도 하는데, 그것은 탓할 일이 아니라 조용히 살펴볼 일입니다.

"믿으면 포기해야 할 것이 많고, 주변 사람들과 멀어질까 두렵다." 이것은 진짜 두려움이고 가볍게 넘길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도 따르는 일에는 대가가 있다고 숨기지 않으셨습니다. 어떤 사람은 가족과 갈등을 겪고, 어떤 사람은 생활 방식을 바꿔야 합니다. 그래서 천천히 생각해 보는 것이 지혜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 멍에가 쉽고 짐이 가볍다고도 하셨습니다 (마 11:30). 그리고 홀로 걷게 하지 않으십니다. 신자들은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서로의 짐을 나누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더 생각해 보기

실제로 시작하는 방법은 소박합니다. 복음서를 한 권 천천히 읽어 보십시오. 예수가 어떤 분인지 그분의 말과 행동에서 직접 만나는 것이 가장 좋은 출발입니다. 기도는 거창할 필요가 없습니다. ‘하나님, 계시다면 저에게 알려 주십시오’도 기도입니다. 믿음을 가진 사람이 가까이 있다면 그에게 물어보십시오. 교회를 찾는 것도 좋습니다. 믿음은 혼자 키우기에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시간이 지나 마음이 정해지면 세례를 받습니다 (행 2:38). 세례를 어릴 때 받는 것이 옳은지, 믿음을 고백한 뒤에 받는 것이 옳은지, 어떤 방식으로 베푸는지에 관해서는 교회마다 의견이 다르지만, 세례가 그리스도께 속하게 되었음을 보여 주는 표라는 점에서는 거의 모든 교회가 한마음입니다. 어릴 때 이미 세례를 받았다면, 함께할 교회와 그다음 걸음을 이야기해 보면 됩니다.

이 모든 것은 서두르지 않아도 됩니다. 오늘 시작하지 않는다고 문이 닫히는 것은 아닙니다. 지금은 ‘아직’이라고 답하셔도 괜찮습니다. 이 초대는 그대로 열려 있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무엇을 가장 두려워하고 있는가? 예수라는 분에 대해 내가 정말 알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오늘 할 수 있는 가장 작은 한 걸음은 무엇인가?

더 읽으려면 믿음이란 무엇인가?와 회개란 무엇인가?, 예수는 누구인가?를 보십시오. 이 질문 모음의 다른 글들도 이 길 위에서 만나는 질문에 하나씩 답하려고 쓰였습니다.

출처

  1.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