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성경 번역을 읽어야 하는가?
하나님을 알기 위해 히브리어나 그리스어를 읽을 필요는 없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로 읽히도록 주어졌습니다. 번역은 원문에 충실한 쪽과 뜻을 쉽게 전하는 쪽으로 나뉘는데, 둘 다 장점과 한계가 있으므로 하나를 주로 읽으면서 다른 번역을 곁에 두고 견주어 보는 것이 좋습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번역으로 읽어도 되는 책일까요? 성경 자체가 그렇다고 답합니다. 느헤미야 시대에 에스라와 레위 사람들은 율법책을 읽어 주면서 백성이 알아듣게 하는 일에 마음을 썼습니다.
이와 같이 그들이 하나님의 율법에서 책에서 명료하게 낭독하고 의미를 알려 주어 그들로 하여금 그 낭독하는 것을 깨닫게 하니라.
느 8:8
오순절에는 갈릴리 사람들의 말을 각 나라에서 온 사람들이 자기 나라 말로 알아들었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우리 각 사람이 우리가 태어난 곳의 우리 언어로 듣느냐?
행 2:8
바울도 같은 원칙을 말합니다. 교회에서는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마디 말을 하는 것이" 알아듣지 못할 만 마디보다 낫다고 합니다 (고전 14:19). 하나님은 말씀이 이해되기를 바라십니다.
더 놀라운 것은 신약 자체가 번역된 형태로 전해진다는 점입니다. 예수께서는 주로 아람어로 말씀하셨지만 복음서는 그리스어로 기록되었습니다. 마가는 예수의 아람어를 그대로 적은 뒤 뜻을 풀어 줍니다. "소녀의 손을 잡고 그녀에게 이르시되, 달리다굼, 하시니 이것을 번역하면, 소녀야, 내가 네게 이르노니, 일어나라, 는 뜻이라." (막 5:41). 신약 저자들이 구약을 인용할 때에도 흔히 그리스어로 옮겨진 구약을 사용했습니다. 처음부터 말씀은 번역을 통해서도 전해졌습니다.
성경이 읽히는 목적도 분명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렇게 씁니다.
또 어린아이 때부터 네가 거룩한 성경 기록들을 알았나니 그것들은 능히 너를 지혜롭게 하여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을 통해 구원에 이르게 하느니라.
딤후 3:15
구원에 이르는 지혜는 번역된 성경에도 담겨 있습니다. 그렇다고 번역을 아무렇게나 골라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베뢰아 사람들은 "간절한 마음으로 말씀을 받고 이것이 그러한가 하여 날마다 성경을 상고하므로" 더 신사적이라는 칭찬을 들었습니다 (행 17:11). 읽는 사람이 주의 깊게 살피는 일은 성경이 권하는 태도입니다.
번역에는 크게 두 방식이 있습니다. 하나는 원문의 단어와 문장 구조를 가능한 한 그대로 옮기는 '형식 일치' 방식입니다. 원문에 가깝다는 장점이 있지만 우리말로 읽기에는 낯설 수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원문의 뜻을 오늘의 자연스러운 말로 옮기는 '의미 전달' 방식입니다. 읽기는 쉬우나 번역자의 해석이 더 많이 들어갑니다. 대부분의 번역은 이 두 방식 사이 어디쯤에 있습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처음부터 성경을 번역했습니다. 주전 3~2세기 알렉산드리아에서 구약이 그리스어로 번역되었고(칠십인역), 이어 시리아어와 콥트어, 라틴어 번역이 나왔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4세기 말 히브리어 원문에서 라틴어 성경을 옮겼는데,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리스어 번역을 오래 읽어 온 교회에 혼란이 올까 걱정하기도 했습니다. 오늘도 교회마다 구약 번역의 기준이 조금씩 다릅니다. 정교회는 칠십인역을 중시하고, 가톨릭은 오랫동안 라틴어 불가타를 공식 본문으로 삼았으며, 개신교는 히브리어 본문을 번역의 기준으로 삼습니다. 종교개혁기에는 루터가 독일어로, 틴데일이 영어로 신약을 옮겨 평범한 사람들이 직접 읽게 하려 했고, 틴데일은 그 일로 목숨을 잃었습니다.
매튜 헨리는 느헤미야 8:8을 풀며 이렇게 씁니다. "말씀을 듣는 사람들은 그것을 깨달아야 하며, 그렇지 않으면 그들에게는 말의 공허한 소리에 불과합니다" 매튜 헨리. 시편 119:130에서는 성경이 "철학자들이 여러 세대 동안 구하여도 얻지 못한 그 일들에 대한 깨달음을 단순한 사람들에게 며칠 만에 줍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베뢰아 사람들 이야기에서는 "그리스도의 교훈은 탐구를 두려워하지 않습니다"라고 합니다 매튜 헨리. 비교하고 살피는 읽기를 환영한다는 뜻입니다.
한국 교회의 성경 역사는 비교적 짧지만 흥미롭습니다. 스코틀랜드 선교사 존 로스와 한국인 동역자들이 만주에서 번역해 1882년에 펴낸 누가복음이 한글 성경의 출발점이었고, 1887년에는 신약 전체가 나왔습니다. 국내에서는 1900년에 신약이, 1911년에 구약과 신약을 합친 성경전서가 나왔고, 1938년에 이를 고친 개역판이 나왔습니다. 이것을 새 맞춤법에 맞춰 다듬은 것이 1961년의 개역한글판입니다. 이 앱의 한국어 성경도 개역한글입니다. 1998년의 개역개정판은 개역한글의 문체를 이으면서 어휘와 표기를 손본 것입니다. 더 쉬운 우리말을 지향한 표준새번역은 1993년에 나왔고, 2001년에 개정되어 지금의 새번역으로 이어졌습니다. 1977년에는 가톨릭과 개신교 학자들이 함께 만든 공동번역성서가 나왔습니다. 공동번역은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옮겼고, 제2경전(개신교에서 말하는 외경)을 함께 실은 판도 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2005년부터 주교회의가 펴낸 『성경』을 씁니다. 영어권에는 흠정역(KJV, 1611)과 NASB, ESV처럼 형식 일치 쪽에 가까운 번역, NIV처럼 중간에 서는 번역, 그리고 이 앱의 영어 성경인 BSB 같은 번역이 있습니다. 이 번역들 사이에 순위를 매기는 것은 이 글의 일이 아닙니다. 각 번역은 서로 다른 독자를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원어로 보기
번역자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 보여 주는 단어가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입니다. 요한복음 3:16의 '독생자'로 옮겨지는 이 말은 전통적으로 '하나님에게서 나신 외아들'이라는 뜻으로 읽혀 왔습니다. 성자께서 지음받지 않고 나셨다는 니케아 신경의 고백도 여기에 닿아 있습니다. 한편 많은 사전은 이 낱말이 본래 '유일한, 하나뿐인'이라는 뜻이라고 보며, 그래서 어떤 번역은 '외아들'이나 '하나뿐인 아들'로 옮깁니다. 두 선택 모두 번역자가 뜻을 판단한 결과이고, 그 차이를 알면 한 번역만 읽을 때 보이지 않는 점이 보입니다.
또 하나는 아델포스(ἀδελφός)입니다. '형제'를 뜻하지만 복수형은 남녀가 섞인 공동체를 가리킬 때도 쓰입니다. 그래서 편지의 첫머리를 '형제들'로 옮길지 '형제자매'로 옮길지는 번역마다 갈립니다. 원문의 형식을 지킬지 오늘의 독자에게 뜻을 밝혀 줄지 하는 번역 철학의 차이가 그대로 드러나는 자리입니다. 이 앱에서는 본문의 낱말을 눌러 원어 설명을 볼 수 있어서 이런 차이를 스스로 확인해 볼 수 있습니다.
흔한 반론과 답
"번역은 모두 원문을 왜곡한다. 원문이 아니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다." 가장 강한 형태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번역은 해석이고, 히브리어의 말놀이와 어감은 우리말로 옮기면 사라지며, 번역자의 신학이 스며든다는 것입니다. 이 지적은 옳은 부분이 많습니다. 어떤 번역도 원문을 완벽하게 옮기지 못합니다. 그러나 앞서 본 것처럼 신약 자체가 예수의 아람어 말씀을 그리스어로 옮긴 것이고, 사도들은 번역된 구약을 말씀으로 인용했습니다. 또 우리가 가진 원문조차 사본으로 전해진 것이어서, 원문을 읽는 일에도 판단이 필요합니다. 번역의 한계는 여러 번역을 견주어 읽고 원어 설명을 곁들임으로써 상당히 보완됩니다.
"현대 번역은 구절을 빼고 성경을 약화시키며, 어떤 번역만이 옳다." 이것은 일부 그리스도인이 진지하게 품은 우려입니다. 몇몇 구절이 현대 번역에서 괄호 안에 있거나 각주로 밀려난 것은 사실입니다. 예를 들어 마가복음 16:9-20은 가장 오래된 일부 사본에 없어서 많은 번역이 따로 표시합니다. 흠정역이 근거한 그리스어 본문은 그 뒤에 발견되거나 연구된 더 오래된 사본들을 반영하지 못했기 때문에 차이가 생겼습니다. 흠정역 계통의 본문이 더 믿을 만하다고 보는 그리스도인도 있습니다. 한편 이 사본 차이는 대부분 철자나 어순 같은 사소한 것이고, 그리스도교의 핵심 교리가 어느 쪽 읽기에 달려 있는 경우는 없다는 것이 널리 받아들여지는 평가입니다. 그러나 어느 본문이 더 원문에 가까운지에 대해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의견이 다르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번역마다, 교회마다 쓰는 성경이 다르니 어느 것이 진짜인지 모르겠다." 이 혼란은 이해할 만합니다. 그러나 번역 사이의 차이는 대부분 표현의 차이이지 복음의 차이가 아닙니다. 다만 한 가지 실제적인 차이는 정경의 범위입니다. 가톨릭과 정교회의 성경에는 개신교가 정경으로 인정하지 않는 책들이 더 들어 있습니다. 이것은 번역의 문제가 아니라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에서 다루는 정경의 문제입니다. 어느 교회의 선택이 더 낫다고 말하기보다, 내가 속한 공동체가 쓰는 성경을 알고 그 이유를 물어보는 것이 좋습니다.
더 생각해 보기
그러면 무엇을 읽어야 할까요? 정답은 하나가 아니지만 몇 가지 지혜는 있습니다. 하나, 이해하며 읽을 수 있는 번역을 주된 성경으로 삼으십시오. 읽기 어려운 번역보다 읽기 쉬운 번역이 대개 더 많은 말씀을 마음에 남깁니다. 둘, 중요한 구절은 성격이 다른 번역을 하나 더 열어 견주어 보십시오. 형식 일치 번역과 의미 전달 번역을 함께 보면 서로의 빈 곳이 채워집니다. 셋, 이 앱의 원어 설명을 곁들이면 번역자가 어디서 선택했는지 볼 수 있습니다. 처음 읽는다면 복음서 한 권부터 시작해도 좋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지금 이해하면서 읽고 있습니까, 아니면 익숙한 문체가 주는 안정감만 누리고 있습니까? 아직 성경을 읽지 않은 이유가 번역이 어려워서라면, 오늘 어떤 번역을 열어 볼 수 있겠습니까?
더 읽으려면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와 성경은 믿을 만한가?를 보십시오.
관련 질문
-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때 가장 잘 읽힙니다. 문맥과 문학 양식을 살피고, 묵상하고 순종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교회와 함께 읽으십시오. 해석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읽기를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더 겸손하고 성실하게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 성경은 믿을 만한가?성경은 스스로를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말씀이며 목격자들의 증언에 기초한 책이라고 소개합니다. 필사본의 수와 이른 시기, 사해 사본 같은 발견은 오늘의 성경이 기록 당시의 본문을 매우 가깝게 전한다고 믿을 근거를 줍니다. 이것은 증명이 아니라 신뢰할 이유이며, 정직한 의문은 그 신뢰를 시험하는 일이 됩니다.
- 성경은 어떻게 만들어졌는가?성경은 약 1,500년에 걸쳐 여러 저자가 쓴 책들의 모음입니다. 교회는 이 책들을 회의에서 새로 만든 것이 아니라, 이미 하나님의 말씀으로 읽히고 있던 책들을 알아보고 목록으로 확인했다고 고백합니다. 구약과 외경의 범위에 대해서는 개신교, 가톨릭, 정교회의 입장이 다릅니다.
- 성경에는 모순이 있는가?성경에는 서로 달라 보이는 대목이 분명히 있습니다. 교회는 이를 증언자들의 시각 차이, 요약과 어림수, 필사 과정의 변이, 글의 종류로 설명해 왔습니다. 다만 어떤 설명은 가능성에 머문다는 점도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모든 세부가 맞추어지는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의 견해가 갈리지만, 증언이 가리키는 사건과 그 중심 메시지가 가장 중요하다는 데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관련 주제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