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정이란 무엇인가?
예정은 우리의 구원이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은혜에서 비롯되며, 그분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 백성을 택하셨다는 성경의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그 택하심이 무엇에 근거하고 인간의 자유와 어떻게 만나는지에 대해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오랜 견해 차이가 있습니다. 모든 전통이 함께 고백하는 것은, 구원은 값없는 선물이고, 그리스도께 나아오는 사람은 결코 쫓겨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답
예정은 두려움을 주려는 교리가 아니라, 성경이 구원을 감사의 자리에서 바라볼 때 쓰는 말입니다. 바울은 로마서 8장에서 고난 가운데 있는 성도들을 위로하며 이렇게 씁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뿐만 아니라 그분께서는 자신이 예정하신 그들을 또한 부르시고 자신이 부르신 그들을 또한 의롭다 하시고 자신이 의롭다 하신 그들을 또한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롬 8:29-30
미리 정하신 목적은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는" 것, 곧 그리스도를 닮은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것입니다. 에베소서도 같은 방향으로 말합니다.
곧 우리가 사랑 안에서 자신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세상의 창건 이전에 그분 안에서 우리를 택하셨으며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엡 1:4-5
택하심은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 안에서" 이루어집니다. 예수께서도 말씀하십니다.
아버지께서 내게 주시는 모든 자는 내게로 올 것이요, 내게 오는 자는 내가 결코 내쫓지 아니하리라.
요 6:37
그러나 같은 성경은 하나님의 구원 의지가 모든 사람을 향한다고도 말합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베드로도 하나님이 "주께서는 자신의 약속에 대해 어떤 사람들이 더디다고 생각하는 것 같이 더디지 아니하시며 오직 우리를 향하여 오래 참으사 아무도 멸망하지 아니하고 모두 회개에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원하신다고 합니다 (벧후 3:9). 요한복음 3:16의 "세상"도 같은 방향을 가리킵니다 (요 3:16).
한편 로마서 9장은 가장 무거운 본문입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모세에게 하신 말씀을 인용한 뒤 구원이 "그런즉 이와 같이 그것은 원하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고 달리는 자에게서 나지도 아니하며 오직 긍휼을 베푸시는 하나님에게서 나느니라."이라고 말합니다 (롬 9:15-16). 그리고 예상되는 질문을 던집니다.
그러면 네가 내게 말하기를, 어찌하여 그분께서 여전히 허물을 찾으시느냐? 누가 그분의 뜻을 거역하였느냐? 하리니
롬 9:19
바울은 철학적 설명 대신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를 가리킵니다 (롬 9:20-21). 같은 편지의 끝에서는 이렇게 외칩니다. "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부요함이여! 그분의 판단들은 헤아릴 수 없으며 그분의 길들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롬 11:33). 성경은 하나님의 주권과 모든 사람을 향한 사랑을 함께 말하며, 그 둘을 한 문장의 공식으로 묶어 주지는 않습니다.
교회의 증언
이 본문들을 어떻게 함께 읽을 것인가에 따라 교회는 여러 길로 나뉘었습니다. 먼저 공유하는 바탕이 있습니다. 구원은 은혜의 선물이며, 사람의 믿음은 실제이고 책임이 따르며, 하나님의 뜻 앞에서는 교만이 아니라 겸손과 감사가 나와야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와 개혁파. 아우구스티누스는 펠라기우스와 논쟁하며 은혜가 인간의 선택보다 앞선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는 요한복음 6:37을 풀며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의 섭리로 미리 아시고 예정되고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은 "이미 하나님의 자녀이며 결코 멸망할 수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칼뱅은 이 흐름을 이어 하나님이 영원 전부터 어떤 사람들을 구원으로 택하셨으며, 그 택하심은 그들 안에 미리 보신 어떤 공로나 믿음에 근거하지 않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이것이 무조건적 선택이며, 도르트 총회(1618-19년)와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이 이를 고백합니다. 두 문서는 하나님이 다른 이들을 지나치신다고도 말하지만, 불신앙의 책임은 하나님이 아니라 죄인에게 있다고 강조합니다. 이 입장의 강점은 구원의 확실함과 하나님께만 영광을 돌리는 데 있습니다.
루터교. 루터교의 일치신조(1577년)는 하나님이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믿는 이들을 택하셨음을 고백하지만, 구원으로의 예정만 말하고 멸망으로의 예정은 말하지 않습니다. 구원은 오로지 하나님의 일이고 멸망은 오로지 인간의 불신앙 때문이라고 합니다. 왜 어떤 이는 믿고 어떤 이는 믿지 않는지는 신비로 남겨 둡니다. 이것을 흔히 단일 예정이라고 부릅니다.
알미니우스파와 웨슬리 계통. 이 전통은 하나님의 택하심이 그분의 미리 아심에 근거한다고 이해합니다. 하나님은 누가 은혜에 응답할지 미리 아시고, 그 믿음을 보고 택하십니다. 다만 사람이 스스로 믿음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먼저 주시는 은혜(선행은총)가 그 응답을 가능하게 한다고 강조합니다. 디모데전서 2:4 같은 본문이 하나님의 보편적 구원 의지를 보여 준다고 봅니다. 강점은 하나님의 사랑이 모든 사람을 향한다는 점과 인간의 책임에 있습니다.
가톨릭과 동방 정교회. 가톨릭 교회는 하나님이 사람들을 영원한 생명으로 예정하셨다고 가르치지만, 아무도 지옥으로 예정되었다고 가르치지 않으며, 은혜가 먼저이고 사람이 자유롭게 그 은혜에 협력한다고 말합니다. 은혜와 자유의 관계를 두고 도미니코회의 토마스주의자들과 예수회의 몰리나주의자들이 오래 논쟁했으나, 1607년 교황은 어느 쪽도 정죄하지 않고 논쟁을 끝냈습니다. 정교회는 하나님이 미리 아시는 것이 사건을 일으키는 것이 아니라고 보며, 구원을 하나님과 사람의 협력으로 이해합니다.
매튜 헨리는 로마서 8:30을 풀며 "끊어질 수 없는 황금 사슬"이라고 부르고 매튜 헨리, 에베소서 1:4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목적으로서의 행복에 이르도록 택함을 받은 모든 사람은 수단으로서의 거룩함에 이르도록 택함을 받았습니다" 매튜 헨리. 택하심은 게으름이 아니라 거룩함으로 부릅니다.
원어로 보기
로마서와 에베소서의 "미리 정하다"는 헬라어 프로호리조(προορίζω)입니다. "경계를 정하다"는 뜻의 낱말 앞에 "미리"가 붙은 것으로, 신약에서 여섯 번 나옵니다. 그 대상은 대개 목적지입니다. 우리는 "자신의 크게 기뻐하시는 뜻에 따라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아이로 입양하심으로써" 하는 입양으로 (엡 1:5), "그 아들의 형상을 본받게" 하는 것으로 정해졌습니다.
로마서 8:29의 "미리 아신"은 프로기노스코(προγινώσκω)입니다. 성경에서 "알다"는 사실을 아는 것을 넘어 관계 속에서 아는 것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하나님은 아모스를 통해 "내가 땅의 모든 가족 중에서 너희만을 알았나니 그런즉 내가 너희의 모든 불법으로 인하여 너희를 벌하리라."라고 하십니다 (암 3:2). 개혁파는 이 점을 들어 "미리 아신"을 미리 사랑하여 택하심이라고 읽습니다. 알미니우스파와 많은 동방 교부는 이 말을 미리 내다보심으로 읽습니다. 낱말만으로는 이 논쟁이 끝나지 않습니다.
에베소서 1:4의 "택하사"는 에클레고(ἐκλέγω)입니다. 신약에서 이 말은 개인뿐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가리킬 때도 많아서, 어떤 신학자들은 선택의 중심을 선택받은 한 분 그리스도로 읽습니다.
흔한 반론과 답
"하나님이 어떤 사람은 택하고 어떤 사람은 택하지 않으신다면 불공평하지 않은가?" 가장 강력한 반론이며, 바울도 로마서 9:19에서 스스로 던진 질문입니다. 개혁파는 이렇게 답합니다. 모든 사람이 죄 아래 있어 심판받아 마땅하므로 하나님이 누구에게든 긍휼을 베푸시는 것은 빚이 아니라 은혜이며, 긍휼을 입지 못한 사람도 부당한 일을 당한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매튜 헨리는 구원받는 사람은 "하나님께만 감사해야 하고 멸망하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만을 탓해야 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알미니우스파는 로마서 9장이 개인의 영원한 운명보다 하나님이 역사에서 이스라엘과 이방인을 다루시는 방식을 말하고 있다고 읽으며, 바로도 스스로 마음을 완강하게 했다고 성경이 말한다는 점을 지적합니다 (출 8:15). 두 읽기 모두 본문에 근거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의 공의에 대해 마지막으로 의지하는 것은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은 "자신의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두를 위해 그분을 내주신 분께서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또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값없이 주지 아니하시겠느냐?" 분입니다 (롬 8:32).
"그렇다면 인간의 자유와 책임은 환상이고, 전도도 기도도 필요 없지 않은가?" 성경은 이런 결론을 내리지 않습니다. 사도행전 13:48은 "영생을 주시기로 작정된 자는 다 믿더라"고 말하는데, 그것은 바울과 바나바가 복음을 전한 현장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인들에게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고 권한 뒤,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라고 덧붙입니다 (빌 2:12-13). 목적과 수단을 함께 정하신다고 보는 개혁파에게 전도는 택한 이들을 부르시는 수단이고, 알미니우스파에게는 모든 사람을 향한 참된 초대입니다. 어느 쪽에서도 초대는 진지합니다.
"하나님이 미리 아시고 택하신다면, 결국 구원은 내 믿음에 달린 것이 아닌가?" 개혁파가 알미니우스파에게 묻는 반론입니다. 믿음이 결정적이라면 구원의 영광이 일부 사람에게 돌아가지 않느냐는 것입니다. 알미니우스파는 믿음이 선물을 받아들이는 빈손일 뿐 공로가 아니며, 그 믿음마저 하나님의 은혜가 가능하게 했다고 답합니다. 어느 쪽이든 바울의 말처럼 구원은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거룩한 부르심으로 부르신 것은 우리의 행위에 따른 것이 아니요 자신의 목적과 은혜에 따른 것이니라. 그 은혜는 세상이 시작되기 전에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졌으나"입니다 (딤후 1:9).
더 생각해 보기
예정의 가르침은 성경에서 사변의 주제가 아니라 위로의 자리에서 나옵니다. 로마서 8장의 사슬은 그 뒤에 이렇게 이어집니다. "그런즉 이 일들에 대하여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롬 8:31). 하나님이 감추신 일은 하나님께 속하고 계시된 일은 우리에게 속한다는 말씀도 기억할 만합니다 (신 29:29). 칼뱅은 자기가 택함을 받았는지 알려면 숨은 작정을 들여다보려 하지 말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했습니다. 그분은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고 부르시는 분입니다 (마 11:28). 아직 믿지 못하는 사람에게도 초대는 열려 있습니다. "성령과 신부가 말씀하시기를, 오라, 하시는도다. 듣는 자도, 오라, 할 것이요, 목마른 자도 올 것이요, 또 누구든지 원하는 자는 값없이 생명수를 취하라." (계 22:17).
스스로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을 믿게 된 과정을 돌아볼 때, 나는 그것을 나의 성취로 여깁니까 아니면 선물로 여깁니까? 하나님의 주권과 사랑 가운데 내가 더 쉽게 붙드는 것은 무엇이고, 나는 다른 쪽을 놓치고 있지 않습니까? 나와 다른 견해를 가진 그리스도인을 어떻게 대하고 있습니까?
더 읽으려면 은혜란 무엇인가?,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가?, 구원은 잃을 수 있는가?를 보십시오. 로마서 8장과 9장을 이어서 천천히 읽는 것이 좋은 출발입니다.
관련 질문
- 은혜란 무엇인가?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값없이 베푸시는 호의와 선물이며, 그 선물은 우리를 용서하고 또 변화시킵니다. 성경은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가장 분명하게 나타났다고 말합니다. 은혜는 죄를 가볍게 만드는 면허가 아니라 새 삶을 가르치고 이루는 힘입니다.
- 하나님은 모든 일을 주관하시는가?성경은 하나님이 참새 한 마리와 우리의 모든 걸음까지 돌보시며 만물을 당신의 뜻대로 이끄신다고 말합니다. 동시에 사람의 선택과 책임도 진지하게 다룹니다. 교회는 이 둘을 어떻게 이어야 하는지에 대해 서로 다른 강조를 두어 왔지만, 선하신 하나님의 손에 우리가 있다는 위로에는 한마음입니다.
- 구원은 잃을 수 있는가?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이 전적으로 그리스도께 달려 있다는 점, 그리고 성경의 경고가 실제라는 점에는 뜻을 같이합니다. 그러나 참으로 믿는 사람이 끝내 떨어져 나갈 수 있는지에 대해서는 개혁파, 루터파,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 가톨릭과 정교회가 서로 다르게 답해 왔습니다. 이 글은 각 입장을 가장 좋은 모습으로 소개하고, 불안한 사람에게 성경이 주는 위로를 함께 살핍니다.
- 믿음이란 무엇인가?성경이 말하는 믿음은 눈을 감고 어둠 속으로 뛰어드는 일이 아니라, 신실하신 분을 신뢰하고 그분께 자신을 맡기는 일입니다. 그 믿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에서 나고, 선한 삶으로 열매를 맺으며, 의심 속에서도 도움을 구하는 마음으로 이어집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믿음 자체가 우리를 구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 향하는 분, 곧 그리스도께 구원이 있다고 고백해 왔습니다.
관련 주제
출처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