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은 언제 오는가?
성경의 답은 분명하게 모른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그 날과 그 때를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고, 제자들이 때를 물었을 때에도 알려 주지 않으셨습니다. 전쟁과 지진 같은 징조는 시간표가 아니라 깨어 있으라는 알림이며, 날짜를 계산한 사람은 지금까지 모두 틀렸습니다. 성경이 요구하는 것은 두려워하며 계산하는 것이 아니라 준비하고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성경의 답
부활하신 예수께 제자들이 마지막으로 물은 것은 때에 관한 질문이었습니다. "주께서 이스라엘 나라를 회복하심이 이 때니이까." 예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
행 1:7
예수는 감람산에서 이미 같은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이 말씀이 성경의 기준선입니다. 날짜를 알아내는 일은 성경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징조는 무엇을 위한 것일까요? 제자들이 "그분께서 올리브 산 위에 앉으셨을 때에 제자들이 은밀히 그분께 나아와 이르되, 우리에게 말씀해 주소서. 어느 때에 이런 일들이 있으리이까? 또 주께서 오시는 때의 표적과 세상 끝의 표적이 무엇이리이까? 하니" 하고 물었을 때 (마 24:3), 예수는 징조를 말씀하시기 전에 먼저 이렇게 경고하셨습니다.
또 너희가 전쟁들과 전쟁들의 소문을 들을 터이나 주의하여 불안해하지 말라. 이 모든 일들이 반드시 일어나야 하되 아직 끝은 아니니라. 민족이 민족을 왕국이 왕국을 대적하여 일어나고 곳곳에 기근과 역병과 지진이 있으리니 이 모든 것은 고통의 시작이니라.
마 24:6-8
전쟁과 기근과 지진은 끝의 증거가 아니라 "끝은 아직 아니니라"의 증거이고, "재난의 시작"일 뿐입니다. 예수께서는 많은 사람이 "나는 그리스도라" 하며 와서 미혹할 것이라고 미리 경고하셨습니다 (마 24:5). 바울도 데살로니가 교인들에게 "너희는 영으로나 말로나 혹은 우리에게서 왔다는 편지로나 그리스도의 날이 가까이 이르렀다 해서 쉽게 마음이 흔들리거나 불안해하지 말라." 것을 당부합니다 (살후 2:2).
그렇다면 징조는 왜 있을까요? 징조는 방향을 가리킬 뿐 날짜를 알려 주지는 않습니다. "왕국의 이 복음이 모든 민족들에게 증언되기 위해 온 세상에 선포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마 24:14). 끝은 복음이 땅끝까지 전해지는 일과 이어져 있고, 징조는 두려워하라는 뜻이 아니라 "이런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하거든 위를 보고 너희 머리를 들라. 너희의 구속이 가까이 오고 있느니라, 하시니라."는 소망의 신호입니다 (눅 21:28).
그러면 때를 모르는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할까요? 예수는 이렇게 가르치십니다.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 그러나 이것을 알라. 만일 집 주인이 도둑이 어느 경점에 올 줄 알았더라면 깨어 있어 자기 집이 뚫리지 않게 하였으리라.
마 24:42-43
베드로는 하나님의 시간이 사람의 시간과 다르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사랑하는 자들아, 주께는 하루가 천 년 같고 천 년이 하루 같다는 이 한 가지 사실에 대하여 무지한 자가 되지 말라." 분이시며 (벧후 3:8), "그러나 주의 날이 밤의 도둑같이 오리니 그 날에는 하늘들이 큰 소리와 함께 사라지고 원소들이 뜨거운 열에 녹으며 땅과 그 안에 있는 일들도 불태워지리라." (벧후 3:10) 때를 맞힐 수 없습니다. 바울도 같은 말을 합니다. 그는 "때와 시기에 관하여는 너희에게 쓸 것이 없"다고 하고, "너희는 다 빛의 아들이요 낮의 아들"이므로 자지 말고 깨어 근신하라고 합니다 (살전 5:1, 5-6절). 이 말씀은 두려움을 위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셨느니라." (살전 5:9).
교회의 증언
교회는 오래전부터 이 침묵을 지혜로 받아들였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예수께서 때를 숨기신 까닭을 이렇게 풀이합니다. "그분께서는 자신은 아시지만 사도들이 아는 것은 유익하지 않다는 것을 보이십니다. 자기들의 심판주께서 오실 때를 알지 못하는 불확실함 가운데 있어야, 그들이 날마다 바로 그날 심판받을 것처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히에로니무스. 모름은 형벌이 아니라 날마다 깨어 있게 하려는 배려라는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편지 199에서 재림의 때를 두고 동료 감독에게 답했습니다. 그는 복음서가 날과 때를 모른다고 하는데 해는 몰라도 몇 년이나 몇 십 년 단위는 알 수 있다고 하는 것은 모순이라고 지적하며, 그렇다면 "그것을 칠 년이든 십 년이든 백 년이든 혹은 그보다 많거나 적은 어떤 햇수로 정하거나 지정할 수 있는 것"처럼 말하는 셈이라고 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계산을 시도하는 일 자체가 말씀에 맞지 않다는 것입니다.
매튜 헨리는 사도행전 1장의 질문을 풀면서 이것이 "모든 시대의 그분의 교회에 금지된 지식을 바라는 마음을 조심하라는 경고"라고 합니다 매튜 헨리. 마태복음 24장의 "깨어 있으라"에 대해서는 이렇게 씁니다. "우리는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음을 압니다. 오래 살 것이라고는 알 수 없습니다. 하물며 심판을 위해 정해진 때는 더욱 알지 못합니다" 매튜 헨리. 한 사람의 삶에서도 끝은 아무 때나 올 수 있으니, 깨어 있음은 누구에게나 지금 필요한 일입니다.
마태복음 24장을 어떻게 읽을지에 대해서는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서로 다른 견해가 있습니다. 제자들의 질문은 성전이 무너지는 때와 세상 끝의 징조를 함께 물었기 때문에, 어떤 이들은 많은 말씀이 이미 주후 70년 예루살렘 멸망으로 이루어졌다고 보고, 어떤 이들은 대부분이 앞으로 있을 끝에 관한 것이라고 보며, 또 어떤 이들은 70년의 사건이 마지막 날의 예고였다고 봅니다. 이 논쟁에서도 합의된 점이 있습니다. 징조로는 때를 맞힐 수 없고, 그리스도께서 오시며, 우리는 깨어 있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오심 뒤의 순서에 대해서는 휴거와 천년왕국은 무엇인가?를 보십시오.
교회의 역사에는 빗나간 예언도 많았습니다. 2세기에 몬타누스를 따르던 이들은 새 예루살렘이 곧 소아시아의 한 마을에 내려오리라고 기대했습니다. 서기 1000년 무렵에도 끝이 온다는 기대가 있었다고 전해지지만, 그것이 얼마나 퍼졌는지는 역사가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루터처럼 위대한 교사도 마지막 날이 멀지 않았다고 생각했습니다. 1840년대 미국에서는 한 설교자의 계산을 믿은 많은 사람이 특정한 날을 기다렸다가 큰 실망을 겪었습니다. 한국에서도 1992년 가을 일부 신자들이 어느 날에 휴거가 있다고 믿었고, 어떤 이들은 직장과 재산을 정리했으며, 그 날은 아무 일 없이 지나갔습니다. 날짜를 정한 사람은 지금까지 한 사람도 맞히지 못했고, 그때마다 많은 사람이 상처를 입었습니다.
원어로 보기
사도행전 1:7의 "때와 기한"은 헬라어로 두 낱말입니다. 크로노스(χρόνος)는 흘러가는 시간, 곧 달력의 시간이고 카이로스(καιρός)는 알맞은 때, 하나님이 정하신 시점입니다. 예수께서는 달력의 시간도, 하나님이 정하신 때도 아버지께서 "자기의 권한"에 두셨다고 하셨습니다. 바울도 "때와 시기"에 관해 쓸 것이 없다고 합니다 (살전 5:1).
또 하나는 그레고레오(γρηγορέω), "깨어 있다"입니다. 문자적으로는 잠에서 깨어 있는 것이고, 마태복음 24:42의 "깨어 있으라"가 이 말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이것을 이렇게 풀이했습니다. 깨어 있다는 것은 눈을 뜨고 참 빛을 기다리며 자기가 믿는 바를 행하고 지키는 것이라고 합니다 그레고리우스. 곧 하늘만 바라보며 시간을 재는 일이 아니라 맡은 일을 지키는 일입니다.
에스카토스(ἔσχατος)는 "마지막의"라는 뜻입니다. 요한은 "어린 자녀들아, 지금은 마지막 때니라. 적그리스도가 오리라 함을 너희가 들은 것 같이 지금도 많은 적그리스도가 있나니 이로써 지금이 마지막 때인 줄 우리가 아느니라."고 쓰며 (요일 2:18), 신약은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이미 마지막 때가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그래서 "마지막 때"는 먼 미래만을 가리키지 않고, 그리스도의 초림과 재림 사이에 있는 우리의 시간도 가리킵니다.
흔한 반론과 답
"지금 일어나는 전쟁과 지진과 재난은 징조가 아닌가? 예수께서 징조를 주셨다면 읽어야 한다." 이 반론에는 무게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런즉 이와 같이 너희가 이 모든 일들을 볼 때에 그때가 가까이 곧 문들 앞에 이른 줄을 너희가 아느니라."고 하셨습니다 (마 24:33). 징조를 아예 무시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그러나 같은 말씀에서 그분은 이 모든 일이 "재난의 시작"이고 "끝은 아직 아니니라"고 하셨습니다. 전쟁과 기근과 지진은 모든 세대에 있었고, 모든 세대가 자기 때를 마지막이라고 생각할 만한 이유가 있었습니다. 징조를 읽는 올바른 방법은 가깝다는 사실에 깨어 있는 것이지 날을 계산하는 것이 아닙니다. 지나친 해석은 오히려 예수께서 경고하신 미혹의 길이 됩니다.
"날짜 예언이 계속 틀렸다. 그렇다면 재림 자체가 거짓 아닌가?" 사람의 계산이 틀렸다고 예수의 약속이 틀린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예수께서 아무도 모른다고 하셨으니, 날짜를 맞히겠다는 예언은 그 말씀에 맞서는 것입니다. 틀린 것은 예언자의 계산이지 약속이 아닙니다. 또한 약속이 아직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해서 거짓이라는 증거가 되지는 않습니다. 이 문제는 예수는 다시 오시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끝을 알 수 없다면 어차피 준비할 수 없고, 미래를 가꾸는 일도 의미 없지 않은가?" 성경은 반대로 말합니다. 예수는 주인이 올 때까지 맡은 일을 충실히 하는 종이 복되다고 하셨습니다 (마 24:45-47). 끝이 언제인지 모르는 것은 일을 놓을 이유가 아니라 지금 일을 제대로 할 이유입니다. 끝이 오기까지 맡겨진 일, 곧 이웃을 사랑하고 복음을 전하고 세상을 돌보는 일은 그대로 남습니다. 알 수 없다는 것은 그분께 맡기라는 초대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끝이 언제인지 알 수 없다는 사실은 불안의 이유가 되기도 하지만, 성경은 이것을 자유로 바꿉니다. 우리는 날짜를 계산할 필요가 없고, 징조를 해석해 남을 두렵게 할 필요도 없습니다. 우리에게 맡겨진 일은 오늘 충실하게 사는 것입니다. 예수의 오심을 기다리는 사람은 두려움에 사로잡힌 사람이 아니라 "빛의 아들"입니다. 만일 누군가가 날짜를 말하며 당신을 두렵게 한다면, 예수께서 "아무도 모르나니"라고 하셨다는 것을 기억하십시오. 그 사람은 성경의 기준선을 넘은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나는 끝에 대한 호기심과 끝을 맞이하는 준비 가운데 어느 쪽에 더 시간을 쓰고 있습니까? 오늘 주님이 오신다면 내가 하고 있는 일을 기쁘게 보여 드릴 수 있을까요? 두려움을 부추기는 말을 들었을 때 나는 무엇을 기준으로 분별합니까?
더 읽으려면 예수는 다시 오시는가?, 휴거와 천년왕국은 무엇인가?, 성경의 예언은 이루어졌는가?를 보십시오. 데살로니가전서 5장 1-11절을 천천히 읽는 것도 좋은 시작입니다.
관련 질문
- 예수는 다시 오시는가?교회는 처음부터 예수께서 다시 오실 것이라고 고백해 왔습니다. 성경은 그분이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몸으로, 눈에 보이게, 영광 가운데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날이 언제인지는 아무도 모르며, 이 약속은 두려움이 아니라 소망과 깨어 있음을 위해 주어졌습니다.
- 휴거와 천년왕국은 무엇인가?휴거는 재림 때 신자들이 공중으로 끌려 올라가 주를 맞이한다는 가르침(살전 4:17)이고, 천년왕국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 동안의 그리스도의 통치입니다. 이것을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 전천년설, 무천년설, 후천년설이 있고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이 서로 다르게 읽어 왔습니다. 이 글은 어느 편도 고르지 않고 각 견해를 공정하게 소개하며, 모두가 함께 고백하는 것을 분명히 합니다.
- 최후의 심판이란 무엇인가?최후의 심판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오셔서 모든 사람의 삶을 공의로 판단하시고 세상의 모든 일을 바로잡으시는 날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날을 두려움만이 아니라 소망으로도 기다립니다. 심판자가 곧 자기를 위해 죽고 살아나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 성경의 예언은 이루어졌는가?성경의 예언은 미래를 알아맞히는 일이기 이전에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일입니다. 신약은 구약의 많은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다고 가리키며,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을 믿음의 근거로 여깁니다. 다만 모든 인용이 똑같이 분명한 것은 아니고 연대에 대한 학문적 논쟁도 있으며, 오늘의 사건을 예언에 짜 맞추거나 때를 계산하는 일은 성경이 경계합니다.
관련 주제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