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은 여성을 차별하는가?
성경은 남자와 여자가 똑같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다고 말하며, 예수께서는 당시의 관습을 넘어 여자들을 제자와 증인으로 대하셨습니다. 다만 몇몇 본문이 교회와 가정에서 여자의 역할에 제한을 두는지를 두고는 성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 해석이 갈립니다. 어느 쪽 해석에서든 성경은 여자를 업신여기거나 학대하는 일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성경의 답
성경은 사람 이야기를 시작하면서 남자와 여자를 함께 세웁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창 1:27
하나님의 형상을 지닌 쪽은 남자만이 아닙니다. 여자도 같은 형상으로, 같은 창조의 날에 지음 받았습니다. 고대 근동에서는 왕을 신의 형상이라 부르기도 했다고 많은 학자가 지적합니다. 창세기는 그 존엄을 모든 사람에게,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줍니다. 구약에도 여자들이 두드러지게 나타납니다. 드보라는 "여선지"로서 이스라엘의 사사가 되었고 (삿 4:4), 룻과 에스더는 한 권의 책을 이룰 만큼 큰 자리를 차지합니다.
복음서에서는 예수께서 여자들을 대하신 방식이 눈에 띕니다. 누가는 예수를 따라 다닌 여자들의 이름을 적고, 그들이 "헤롯의 청지기 구사의 아내 요안나와 또 수산나와 다른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재물로 그분을 섬겼더라."고 전합니다 (눅 8:3). 베다니의 마리아는 "그녀에게 마리아라 하는 동생이 있었는데 그녀도 예수님의 발 앞에 앉아 그분의 말씀을 듣더라." 그 말씀을 들었는데 (눅 10:39), 이는 흔히 제자의 자리로 이해됩니다. 마르다가 불평하자 예수께서는 "한 가지가 필요하니라. 마리아는 그 좋은 부분을 택하였으니 그것을 빼앗기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눅 10:42). 사마리아의 한 여자와 우물가에서 오래 말씀을 나누시자 제자들은 "이때에 그분의 제자들이 와서 그분께서 그 여자와 말씀하시는 것을 보고 이상히 여겼으나 아무도, 무엇을 구하시나이까? 어찌하여 그녀와 말씀하시나이까? 하고 말하지 아니하더라." (요 4:27), 그 여자의 증언으로 많은 사람이 믿게 되었습니다 (요 4:39).
가장 중요한 순간에도 여자들이 있었습니다. 십자가 곁에 있었고, 빈 무덤을 처음 보았으며, 부활하신 주님을 처음 만났습니다. 그리고 주님은 그 소식을 전하는 일을 마리아에게 맡기셨습니다.
막달라 마리아가 가서 제자들에게 자기가 주를 보았으며 또 그분께서 자기에게 이것들을 말씀하셨다고 말하니라.
요 20:18
사도 바울도 교회의 근본을 이렇게 선언합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이 말씀이 성별의 차이를 지운다는 뜻인지, 구원과 하나님 앞의 자리에서 모두가 같다는 뜻인지는 뒤에서 다시 다루겠습니다. 적어도 구원과 성령의 선물, 하나님의 상속에서 남자와 여자가 똑같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베드로도 남편들에게 아내를 "남편들아, 이와 같이 너희도 지식에 따라 그들과 동거하고 아내를 더 약한 그릇이요 또 생명의 은혜를 함께 상속받을 자로 여기고 존중하라. 그리하여야 너희 기도가 방해를 받지 아니하리라."로 귀히 여기라고 말합니다 (벧전 3:7).
교회의 증언
부활의 첫 증인이 여자들이었다는 점은 고대 교회에서 자주 묵상된 주제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요한복음 20장을 풀면서 창세기를 떠올립니다. "낙원에서는 여자가 남자에게 죽음의 열매를 주었으나, 무덤에서는 한 여자가 사람들에게 생명을 알렸습니다." 그레고리우스 처음 죄로 이끈 이야기가 여자를 통해 시작되었다면, 새 생명의 소식도 여자를 통해 시작되었다는 것입니다. 교회 전통이 막달라 마리아를 "사도들의 사도"라고 불러 온 것도 이 때문입니다.
매튜 헨리는 디모데전서 2장을 풀이하면서 가르치는 직분은 교회에서 남자에게 맡겨진 권위의 직분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러면서도 이렇게 덧붙입니다. "여자들은 권위를 찬탈해서는 안 되지만, 구원에 필요한 것을 배우는 일에서 자기가 면제된다고 생각해서는 안 됩니다." 매튜 헨리 부부에 관해서는 아내의 복종과 남편의 사랑을 함께 말하며 "결혼의 모든 의무는 일치와 사랑에 포함되어 있습니다"라고 정리합니다 매튜 헨리.
정직하게 덧붙여야 할 것이 있습니다. 교부와 후대의 신학자들은 대체로 당대 사회의 가정을 공유했습니다. 여자의 본성이나 능력에 대해 오늘 우리가 받아들일 수 없는 말을 한 사람도 있습니다. 교회의 증언이 곧 성경 자체는 아니며, 교회도 때로 성경이 가르친 것보다 사회의 편견을 더 따랐다는 점을 숨길 이유가 없습니다.
원어로 보기
창세기 2:18에서 하나님은 남자를 위해 "돕는 배필"을 지으시겠다고 하십니다. 여기서 "돕는"에 해당하는 말이 에제르(עֵזֶר)입니다. 이 말이 열등함을 뜻한다고 읽는 사람들이 있지만, 구약에서 에제르는 하나님 자신에게도 자주 쓰입니다. 시편은 "우리의 혼이 주를 기다리나니 그분은 우리의 도움과 우리의 방패시로다."라고 노래합니다 (시 33:20). 도움을 준다는 말이 낮은 신분을 뜻하지 않는다는 점은 분명합니다. 이어지는 "배필"은 ‘마주 선 자, 그에게 걸맞은 자’라는 뜻에 가깝습니다.
에베소서 5:23의 "머리"는 케팔레(κεφαλή)입니다. 이 말이 은유로 쓰일 때 무슨 뜻인지는 학자들 사이에서 논쟁이 계속됩니다. 보완주의 학자들은 대체로 ‘권위를 가진 지도자’로 보고, 평등주의 학자들은 흔히 ‘근원’이나 ‘으뜸’으로 봅니다. 본문은 곧바로 그리스도가 "몸의 구주"이시라고 덧붙이며, 그 머리 됨을 자기를 내어 주는 사랑으로 설명합니다 (엡 5:25).
디모데전서 2:12의 "주관하다"는 아우텐테오(αὐθεντέω)입니다. 신약에서 이 한 곳에만 나오는 말이라 뜻을 확정하기 어렵습니다. 보완주의 쪽은 대개 ‘권위를 행사하다’라는 중립적인 뜻으로, 평등주의 쪽은 흔히 ‘독단적으로 지배하다’라는 부정적인 뜻으로 읽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느냐가 이 구절을 어떻게 적용할지를 크게 좌우합니다.
흔한 반론과 답
"바울이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고 했고 가르치지도 말라고 했다. 이것은 분명한 차별이다." 이 반론은 가볍지 않습니다. 본문은 실제로 이렇게 쓰여 있습니다.
오직 나는 여자가 가르치거나 남자에게 권위를 행사하는 것을 허락하지 아니하노니 다만 조용할지니라.
딤전 2:12
고린도전서 14:34에도 "여자는 교회에서 잠잠하라"는 말이 있습니다. 성실한 그리스도인들은 이 본문을 크게 두 방식으로 읽어 왔습니다. 보완주의 견해는 남자와 여자가 하나님 앞에서 가치와 존엄이 똑같되, 교회와 가정에서 맡은 역할이 다르다고 봅니다. 바울이 디모데전서 2:13에서 창조의 순서를 근거로 든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 제한이 한 시대의 풍습이 아니라 창조 질서에 뿌리를 둔다고 이해합니다. 이 견해에서 남편의 머리 됨은 군림이 아니라, 그리스도가 교회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신 것처럼 아내를 위해 자신을 내어 주는 책임입니다. 평등주의 견해는 같은 본문들이 특정한 상황을 향한 말이라고 봅니다. 에베소 교회에는 잘못된 가르침이 퍼져 있었고, 고린도 교회는 예배의 질서가 무너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또 에베소서 5장을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가운데 서로에게 복종하라."는 말씀 (엡 5:21) 아래에서 읽습니다. 보완주의 쪽은 이 구절이 뒤따르는 구체적인 복종의 관계를 여는 말이라고 답합니다. 바울은 고린도전서에서 여자가 교회에서 기도하고 예언하는 것을 전제하고 (고전 11:5), 뵈뵈를 겐그레아 교회의 "일꾼"이라 부릅니다 (롬 16:1). 브리스길라는 아굴라와 함께 아볼로에게 하나님의 도를 더 자세히 풀어 주었습니다 (행 18:26). 로마서 16:7의 유니아가 여자라는 데는 오늘날 대부분의 학자가 동의하지만, 개역한글처럼 "사도에게 유명히 여김을 받고"로 읽을지 (롬 16:7), ‘사도들 가운데 뛰어난’ 사람으로 읽을지는 논쟁이 있습니다. 두 견해는 이 점에서는 같은 곳에 서 있습니다. 여자는 배워야 하고, 하나님의 은사를 받았으며, 교회에서 귀한 일을 합니다. 어디까지 허용되는가는 이 글이 정할 수 없는 문제이며, 어느 교단에 속하는가에 따라 답이 다릅니다.
"성경은 가부장적 사회에서 쓰였고, 그 구절들은 여자를 억압하는 데 쓰여 왔다." 이 말에는 사실이 담겨 있습니다. 성경의 세계는 남자가 가장인 사회였고, 구약의 법과 이야기에는 오늘 읽기 불편한 대목이 있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남편에게 복종하라"는 말씀을 학대와 폭력을 참으라는 뜻으로 휘둘러 온 일도 있습니다. 이것은 말씀에 대한 왜곡이며, 어느 해석에서든 정당화할 수 없는 잘못입니다. 학대는 복종이 아닙니다. 폭력을 겪고 있다면 참지 말고 112나 여성긴급전화 1366에 도움을 청하십시오. 에베소서의 남편에게 요구되는 것은 "남편들아, 너희 아내 사랑하기를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사랑하사 교회를 위하여 자신을 주신 것 같이 하라." 하는 사랑입니다 (엡 5:25). 다만 성경이 어떤 일을 기록했다고 해서 그것을 옳다고 한 것은 아닙니다. 사사기에 기록된 여자들에 대한 끔찍한 일들은 인간의 악을 보여 주는 이야기이며 본받을 모범이 아닙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여자들을 대하신 모습은 그 사회의 관습을 거슬러 가는 방향을 가리킵니다.
"하와가 먼저 죄를 지었고 하나님이 여자에게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라고 하셨으니 여자는 저주 아래 있다." 창세기 3:16의 "너는 남편을 사모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는 하나님의 명령이 아니라 타락이 낳은 깨어진 관계에 대한 선언이라고 보는 해석이 널리 받아들여집니다. 이 말씀은 창조의 이상이 아니라 죄가 들어온 뒤의 세상을 묘사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은 그것을 고착시킬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하도록 부름 받습니다. 사도 바울이 죄가 세상에 들어온 것을 "한 사람으로 말미암아"라고 말한다는 점도 눈여겨볼 만합니다 (롬 5:12). 아담도 책임을 면하지 못합니다. 그는 "남자가 이르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있으라고 주신 여자 곧 그녀가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내게 주므로 내가 먹었나이다, 하매" 주었다고 변명했습니다 (창 3:12).
더 생각해 보기
성경은 여자의 존엄을 가장 높은 곳에 놓습니다. 하나님의 형상, 은혜의 상속자, 부활의 첫 증인이라는 자리입니다. 그러면서도 몇몇 본문이 역할을 어떻게 나누는지에 관한 질문은 진지한 신자들 사이에서 열려 있습니다. 읽는 이는 자기가 속한 교회의 입장을 존중하면서도, 본문과 논거를 직접 살펴보는 것이 좋습니다. 어떤 결론에 이르든 지켜야 할 것이 있습니다. 여자를 두려움으로 누르거나 무시하는 일은 어디서도 성경의 이름으로 정당화될 수 없습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아는 "성경이 여자에 대해 말한다"는 이야기는 성경에서 직접 읽은 것입니까, 누군가에게 들은 것입니까? 어려운 본문을 만났을 때 나는 그 말씀의 맥락과 전체 가르침을 함께 살펴보았습니까? 내 곁의 여자들이 존중받고 있는지, 나는 그것을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습니까?
더 읽으려면 하나님은 남성인가?, 성과 결혼에 대해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보십시오.
관련 질문
- 하나님은 남성인가?아닙니다. 하나님은 영이시며, 사람의 몸이나 성(性)을 가지신 분이 아닙니다. 남자와 여자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았고, 성경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면서도 어머니의 사랑에 빗대어 말하기도 합니다. 교회가 "아버지"라는 이름을 지켜 온 것은 하나님을 남성으로 보아서가 아니라, 예수께서 알려 주신 관계의 이름이기 때문입니다.
- 성과 결혼에 대해 성경은 무엇을 말하는가?성경은 성과 결혼을 하나님이 주신 좋은 선물로 말하며, 그 자리를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평생 신실하게 결합하는 결혼으로 정합니다. 독신 또한 존귀한 부르심이며, 어떤 형태의 학대도 성경은 용납하지 않습니다. 이것은 교회가 역사 내내 가르쳐 온 바이며, 오늘날 일부 교회는 이 가르침의 범위를 두고 달리 판단합니다. 어느 쪽에서든 사람을 멸시할 이유는 없습니다.
-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하나의 이야기로 읽을 때 가장 잘 읽힙니다. 문맥과 문학 양식을 살피고, 묵상하고 순종하며, 기도하는 마음으로 교회와 함께 읽으십시오. 해석이 다양하다는 사실은 읽기를 포기할 이유가 아니라 더 겸손하고 성실하게 읽어야 할 이유입니다.
- 성경은 노예제를 인정하는가?성경은 고대 사회에 있던 종살이를 그대로 전제하고 그 안에서 주인의 권한을 제한하지만, 노예제를 하나님의 이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을 납치하여 파는 일은 율법과 신약이 모두 중대한 죄로 정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가르침과 그리스도 안에서 주인과 종이 형제라는 가르침은 노예제의 뿌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오랫동안 노예제를 변호했던 것도 사실이며, 노예제 폐지를 이끈 사람들 또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관련 주제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