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성경은 노예제를 인정하는가?

짧은 답

성경은 고대 사회에 있던 종살이를 그대로 전제하고 그 안에서 주인의 권한을 제한하지만, 노예제를 하나님의 이상으로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람을 납치하여 파는 일은 율법과 신약이 모두 중대한 죄로 정하며,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가르침과 그리스도 안에서 주인과 종이 형제라는 가르침은 노예제의 뿌리를 흔듭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들이 오랫동안 노예제를 변호했던 것도 사실이며, 노예제 폐지를 이끈 사람들 또한 그리스도인이었습니다.

성경의 답

이 질문은 가볍게 대답해서는 안 됩니다. 성경에는 종과 상전이 나오고, 이 말씀이 노예제를 옹호하는 데 쓰인 역사가 있습니다. 먼저 성경이 실제로 무엇을 말하는지부터 보겠습니다.

구약에서 "종"으로 옮겨지는 히브리어 에베드(עֶבֶד)는 폭넓게 쓰입니다. 빚 때문에 자기 몸을 팔아 일하는 사람, 전쟁 포로, 왕의 신하,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을 모두 가리킵니다. 모세의 율법은 이런 제도를 새로 만들지 않고, 이미 있던 관행을 다루면서 곳곳에서 제한을 둡니다. 히브리 종은 육 년 일하면 일곱째 해에 풀려나야 했습니다.

네가 히브리 사람 종을 사면 그는 여섯 해 동안 섬길 것이요, 일곱째 해에는 거저 나가 자유로운 몸이 될 것이며

출 21:2

신명기는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풀어 줄 때 빈손으로 보내지 말고 후히 주라고 하며, 그 까닭을 이스라엘의 기억에서 찾습니다.

네가 이집트 땅에서 노예였던 것과 주 네 하나님께서 너를 구속하신 것을 너는 기억할지니라. 그러므로 내가 오늘 이것을 네게 명령하노라.

신 15:15

레위기 25장은 동족이 가난하여 몸을 팔게 되었을 때 종처럼 부리지 말고 희년에 가족과 함께 돌려보내라고 합니다 (레 25:39-41). 또 사람을 훔치는 일은 사형에 해당하는 죄였습니다.

사람을 훔쳐서 팔거나 자기 손에 둔 자는 반드시 죽일지니라.

출 21:16

도망한 종에 대한 규정도 눈에 띕니다.

너는 자기 주인을 피해 네게로 도망한 종을 그의 주인에게 넘겨주지 말고 그가 네 성문들 중 하나에서 가장 좋아하는 곳을 택하는 대로 거기서 너와 함께 너희 가운데 거하게 하고 그를 학대하지 말지니라.

신 23:15-16

고대 법전들이 대체로 도망한 종을 돌려보내라고 요구했던 것과 대조되는 규정입니다.

신약에서 바울은 안드라포디스테스(ἀνδραποδιστής), 곧 사람을 잡아 파는 "인신매매자"를 율법이 정죄하는 죄인의 목록에 올립니다 (딤전 1:10). 사람을 강제로 잡아 종으로 삼는 일은 처음부터 죄였습니다. 빌레몬서는 더 구체적입니다. 전통적으로 도망한 종으로 이해되는 오네시모를 돌려보내며 바울은 주인 빌레몬에게 이렇게 부탁합니다.

이제는 종으로서가 아니요 오히려 종 이상의 사랑하는 형제로서니라. 특별히 내게 그러하거늘 하물며 네게는 육신 안에서나 주 안에서나 얼마나 더 많이 그러하랴?

몬 1:16

그리고 갈라디아서는 교회 안의 관계를 이렇게 선언합니다.

거기에는 유대인이나 그리스인이 없고 매인 자나 자유로운 자가 없으며 남자나 여자가 없나니 너희는 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하나이니라.

갈 3:28

이 모든 것의 뿌리에는 창세기 1:27이 있습니다.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욥은 자기 종들을 대하는 방식을 이 진리에 비추어 봅니다.

만일 내 남종이나 내 여종이 나와 다툴 때에 내가 그들의 사정을 멸시하였다면 하나님께서 일어나실 때에 내가 어떻게 하겠느냐? 그분께서 돌아보실 때에 내가 무어라 대답하겠느냐? 나를 태 속에 만드신 분이 그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한 분이 우리를 태 속에 짓지 아니하셨느냐?

욥 31:13-15

교회의 증언

교회가 이 말씀에서 길어 낸 가르침은 처음에는 조용하게, 나중에는 분명하게 노예제와 부딪혔습니다. 매튜 헨리는 출애굽기 21:16을 풀면서 이렇게 씁니다. 다른 사람을 강제로 노예로 만들려는 "사람 도적질"은 "신약에서 가장 큰 범죄들 중에 놓입니다" 매튜 헨리. 그리고 같은 곳에서 복음이 상전들에게 위협을 삼가라고 가르친다고 덧붙입니다. 빌레몬서를 풀면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오네시모는 가난한 종이었으나 바울은 자기를 위해 큰 것을 구하는 것처럼 그를 위해 간구하였습니다" 매튜 헨리. 종의 이름을 사도가 자기 일처럼 간구한 것입니다.

교부들 가운데 4세기의 닛사의 그레고리우스는 전도서 설교에서 사람을 사고파는 일 자체를 정면으로 비판했습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 받은 사람에게 값을 매길 수 있느냐고 물은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노예제를 이처럼 원칙적으로 비판한 가장 이른 사례 가운데 하나로 꼽힙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노예제가 죄의 결과이지 하나님이 원래 의도하신 질서가 아니라고 보았습니다. 다만 교회가 곧바로 노예제를 없애지는 못했고, 많은 신자와 교회가 오랫동안 종을 소유했습니다. 이 점은 숨기지 말아야 합니다.

특히 15~19세기의 대서양 노예무역은 아프리카 사람들을 납치하여 팔고, 평생 상속되는 재산으로 삼았으며, 인종을 근거로 정당화했습니다. 이때 많은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들어 노예제를 변호했습니다. 창세기 9:25의 가나안에 대한 저주를 흑인의 운명으로 풀이했고, 레위기 25:44-46과 에베소서 6:5, 도망한 오네시모를 돌려보낸 일을 근거로 삼았습니다. 미국에서는 이 문제로 침례교회와 감리교회가 남북으로 갈라지기도 했습니다. 한편 같은 성경을 읽고 노예제에 맞서 싸운 그리스도인들도 있었습니다. 영국의 윌버포스와 그의 동료들, 퀘이커 교도들, 노예선 선장이었다가 회개하고 노예무역 반대에 나선 존 뉴턴, 그리고 프레더릭 더글러스, 소저너 트루스, 해리엇 터브먼 같은 흑인 그리스도인들입니다. 더글러스는 노예 소유자들의 종교와 그리스도의 기독교를 구별하며 앞의 것을 날카롭게 비판했습니다.

한국 교회사에도 비슷한 물음이 있었습니다. 조선의 노비 제도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법적으로 폐지되었지만 신분의 벽은 오래 남았습니다. 초기 한국 교회에서는 양반과 천민 출신이 한자리에서 예배하는 일이 갈등을 빚으면서도 이루어졌고, 1890년대 서울의 곤당골교회에서 백정 출신 신자들을 받아들이자 양반 신자들이 떠나 따로 모인 일이 그 예로 알려져 있습니다.

원어로 보기

신약에서 "종"은 대개 둘로스(δοῦλος)입니다. 이 말은 문맥에 따라 노예를 뜻할 때도 있고, 더 넓게 섬기는 사람을 뜻할 때도 있습니다. 바울이 자신을 "그리스도 예수의 종(둘로스)"이라고 소개할 때는 주인에게 속한 사람이라는 뜻을 가져와 자신의 삶 전체를 그리스도께 드렸음을 말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노예제를 좋은 것으로 본다는 뜻이 아닙니다. 같은 서신에서 바울은 "주께서 값을 치르고 너희를 사셨으니 너희는 사람들의 종이 되지 말라."고도 말합니다 (고전 7:23).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은 다른 사람의 소유가 될 수 없다는 뜻입니다. 바로 앞 구절에서는 종이 자유를 얻을 수 있다면 "네가 종으로 있을 때에 부르심을 받았느냐? 그것을 염려하지 말라. 그러나 네가 자유롭게 될 수 있거든 오히려 그것을 사용하라."고 권합니다 (고전 7:21).

"인신매매자"로 옮긴 안드라포디스테스는 사람을 사로잡아 노예로 파는 자를 가리킵니다. 율법이 정죄하는 자의 목록에서 이 말은 살인자, 거짓말하는 자와 나란히 있습니다. 17~19세기의 폐지론자들은 노예무역이 정확히 이 죄에 해당한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흔한 반론과 답

"성경이 종을 재산이라 부르고 때리는 것도 허락하지 않는가." 이 반론은 옳은 부분이 있습니다. 레위기 25:44-46은 이방인 종을 "소유"로 삼아 자손에게 물려줄 수 있다고 하고, 출애굽기 21:20-21은 종이 하루나 이틀 뒤에 죽지 않으면 주인이 벌을 받지 않는다고 하며 그 까닭을 "그는 상전의 금전임이니라"고 적습니다. 이 구절들을 아름답게 바꾸어 읽을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같은 율법에서 종이 상처를 입으면 놓아주어야 했고 (출 21:26-27), 주인이 종을 죽이면 벌을 받았습니다. 많은 그리스도인은 이 율법이 이상적 질서를 선포한 것이 아니라 이미 있던 현실 안에서 이를 제한하고 방향을 바꾼 것으로 이해합니다. 이렇게 읽는 이들은 예수께서 모세의 이혼 규정이 "너희 마음의 완악함을 인하여" 허락된 것이며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모세가 너희 마음이 강퍅하므로 너희 아내를 버리도록 너희를 허락하였으나 처음부터 그것은 그렇지 아니하였느니라."고 하신 말씀을 근거로 듭니다 (마 19:8). 이런 이해가 모든 사람에게 만족스럽지는 않을 것입니다. 율법이 노예제를 폐지하라고 명하지 않았다는 점은 인정해야 합니다. 그러나 율법이 노예제를 하나님의 이상으로 가르쳤다는 결론도 성경 전체와 어긋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성경으로 노예제를 변호했다면, 성경 자체가 노예제를 지지하는 것이다." 역사적 사실은 분명합니다. 그러나 그 논증에는 결정적 약점이 있었습니다. 대서양 노예제는 납치로 시작되었고 인종을 이유로 사람을 평생의 재산으로 삼았습니다. 이는 출애굽기 21:16과 디모데전서 1:10이 정죄하는 죄였습니다. 또 빌레몬서에서 바울은 도망한 종을 형벌 아래 돌려보내라고 하지 않고 "형제로" 받으라고 합니다. 노예제 옹호자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구절을 골랐고, 폐지론자들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는 성경의 큰 줄기와 출애굽의 하나님이 종 된 자를 해방하시는 분이라는 증언에 호소했습니다 (출 20:2). 이 역사는 우리 자신의 이익과 관습이 성경 해석을 얼마나 쉽게 기울이는지 경고하는 거울이기도 합니다.

"바울이 도망한 종을 주인에게 돌려보냈으니 노예제를 인정한 것이다." 이것도 진지한 질문입니다. 바울은 오네시모를 돌려보냈고, 빌레몬서는 노예제를 폐지하라고 직접 명령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오네시모를 "내게 하듯" 영접하라고 하며 (몬 1:17), 이제 "종에서 뛰어나" 형제라고 합니다. 바울이 오네시모의 해방을 암시한다고 보는 해석이 많지만, 그것이 본문에 분명하게 쓰여 있지는 않아서 학자들의 의견이 갈립니다. 어느 쪽이든 확실한 것은 주인과 종이 그리스도 안에서 형제가 된 곳에서는 종살이가 그 속에서 무너지기 시작한다는 점입니다.

더 생각해 보기

성경이 노예제를 어떻게 다루었는가를 묻는 일은 곧 우리가 성경을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묻는 일입니다. 한 구절을 떼어 내어 자기 이익을 정당화할 수도 있고, 성경 전체의 흐름, 곧 하나님의 형상, 출애굽, 그리스도 안에서의 형제됨을 따라 읽을 수도 있습니다. 어느 쪽으로 읽을 것인가는 읽는 사람의 마음에 달려 있습니다.

노예제는 지나간 일이 아닙니다. 오늘도 인신매매와 강제 노동으로 고통받는 사람이 많습니다. 사람을 훔치는 죄를 정죄한 바울의 목록은 지금도 유효합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당연하게 여기는 어떤 관습이 누군가의 존엄을 가리고 있지는 않은가? 내 이익이 성경 해석을 기울게 하고 있지는 않은가? 모든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이라면 내가 오늘 대하는 사람들을 어떻게 달리 대해야 하는가?

더 읽으려면 인간이란 무엇인가?와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를 보십시오.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