질문

예수만이 유일한 길인가?

짧은 답

그리스도인은 예수께서 하나님께로 가는 유일한 길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러나 이 고백은 그리스도인이 다른 사람보다 낫다는 주장이 아니라, 구원이 우리의 노력이 아니라 한 분의 은혜에서 온다는 고백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들이 어떻게 되는지에 대해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도 여러 견해가 있습니다.

성경의 답

신약은 이 질문에 매우 분명하게 말합니다. 마지막 만찬에서 도마가 길을 묻자 예수께서는 이렇게 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를 통하지 않고는 아무도 아버지께 오지 못하느니라.

요 14:6

그리고 사도들이 공회 앞에서 담대하게 외친 말도 같은 뜻입니다.

다른 사람 안에는 구원이 없나니 하늘 아래에서 우리를 구원할 다른 이름을 사람들 가운데 주지 아니하셨느니라, 하였더라.

행 4:12

바울도 편지에서 같은 점을 짚습니다.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

딤전 2:5

이 구절들을 따로 떼어 읽으면 날카롭게 들립니다. 그러나 앞뒤를 함께 읽으면 중요한 점이 드러납니다. 첫째, 이 말씀의 주어는 그리스도인이 아니라 예수입니다. "내가 곧 길이요"라고 하셨지, "우리 종교가 가장 낫다"고 하신 것이 아닙니다. 주장의 내용은 어떤 사람들이 더 훌륭하다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이르는 문이 한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도 그 길을 걸을 자격이 있어서가 아니라 값없이 받아서 걷습니다.

둘째, 이 문은 모두를 향해 열려 있습니다. 같은 바울의 글에서 바로 앞 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

딤전 2:4

그리고 5-6절은 이어서 그 중보자가 "그분께서 정하신 때에 증언을 받기 위해 모든 사람을 위한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딤전 2:6). 길이 하나라는 것과 모든 사람이 그 길로 초대받는다는 것은 서로 부딪히지 않고 같은 복음의 두 면입니다. 예수께서는 또 이렇게 부르십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모든 자들아, 너희는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에게 안식을 주리라.

마 11:28

셋째, 이 말씀은 자랑이 아니라 대답하는 태도와 함께 주어집니다. 베드로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사람에게 대답할 것을 예비하되 "오직 너희 마음속에서 주 하나님을 거룩히 구별하고 너희에게 너희 속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모든 사람에게 온유함과 두려움으로 대답할 것을 항상 예비하며 선한 양심을 가지라. 이것은 그들이 너희를 가리켜 악을 행하는 자라고 비방하다가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너희의 선한 행실을 거짓으로 비난하는 자들이 부끄러움을 당하게 하려 함이라."고 가르칩니다 (벧전 3:15-16). 곧 확신과 겸손은 함께 가야 합니다.

교회의 증언

교회는 처음부터 그리스도를 유일한 중보자로 고백했습니다. 니케아 신경은 한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하고, 그분이 우리 인간과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오셨다고 말합니다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는 이 한 중보자가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라고 고백합니다. 그분 안에서 하나님과 사람이 만납니다 칼케돈 신앙정의.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14:6을 풀면서 길이 되신 그리스도의 인성에 주목합니다. 그는 이렇게 권합니다. "그 사람을 통해 걸어가십시오. 그러면 하나님께 이를 것입니다." 그리고 덧붙입니다. "잘못된 길을 아무리 힘차게 걷는 것보다 바른 길을 절뚝거리며 걷는 것이 낫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힘이나 열심이 아니라 방향이 문제라는 말입니다. 힐라리우스는 길이신 분이 우리를 길에서 벗어난 굽은 길로 이끄시지 않는다고 말합니다 힐라리우스.

매튜 헨리는 사도행전 4:12를 풀면서 이 이름이 유일하다는 것과 모든 사람에게 주어졌다는 것을 함께 말합니다. 그는 "예수의 이름은 모든 시대와 모든 민족의 사람들에게 주어져, 그 이름으로만 신자들이 장차 올 진노에서 구원받게 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디모데전서 2장에서는 이 길이 열려 있는 폭을 이렇게 말합니다. 그것은 "원하는 모든 사람이 이 길로 용서하시는 하나님의 시은소로 나아와 그분과의 화목을 구할 수 있게 하려는 것"이라고 합니다 매튜 헨리.

여기서 한 가지는 정직하게 구분해야 합니다. 그리스도가 유일한 구주이시라는 데에는 교회가 일치하지만, 복음을 한 번도 듣지 못한 사람들에게 그 구원이 어떻게 닿는지에 대해서는 견해가 갈립니다. 어떤 이들은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알고 믿어야 구원받는다고 봅니다. 로마서 10:14의 "듣지도 못한 이를 어찌 믿으리요"가 선교의 절박함을 보여 준다고 합니다. 다른 이들은 구원은 오직 그리스도의 사역에 근거하지만, 하나님이 자기가 받은 빛에 정직하게 응답한 사람에게 그 은혜를 베풀 수 있다고 봅니다. 그들은 이방인의 양심을 말하는 로마서 2:14-15나 "모든 민족 중에서 자신을 두려워하며 의를 행하는 사람을 받아 주시는 줄을 깨달았도다."을 받으신다는 말씀(행 10:35)을 근거로 듭니다. 또 소수의 그리스도인은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는 말씀(고전 15:22) 같은 본문에 기대어 하나님이 마침내 모든 이를 구원하시기를 소망합니다. 대다수 교회는 이 소망이 성경의 경고와 맞지 않는다고 판단해 왔습니다. 이 글은 어느 한쪽을 고르지 않습니다. 이 문제는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세 견해 모두 의로운 재판장이신 하나님을 신뢰한다는 점에서는 같습니다. 아브라함의 질문처럼 "주께서 이런 식으로 행하여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과 함께 죽이시는 것은 결코 있을 수 없으며 의로운 자들을 사악한 자들처럼 여기시는 것도 결코 있을 수 없나이다. 온 땅의 심판자께서 의롭게 행하여야 하지 아니하리이까? 하매" (창 18:25).

원어로 보기

‘길’로 번역된 호도스(ὁδός)는 걸어 다니는 실제의 길을 뜻합니다. 초기 그리스도인들은 자기들의 신앙을 ‘그 도(길)’라고 불렀습니다. 바울이 교회를 핍박하러 다메섹으로 갈 때 찾던 사람들이 "다마스쿠스의 회당들에 가져갈 편지를 그에게 요청하니 이것은 그가 이 길에 속한 사람을 만나면 남자와 여자를 막론하고 그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려 함이더라."이었습니다 (행 9:2). 이 신앙은 하나의 이론이 아니라 따라 걷는 길이었고, 그 길의 처음과 끝에 한 사람이 계십니다.

또 하나는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 ‘진리’입니다. 예수께서는 진리를 가르치실 뿐 아니라 자신이 곧 진리라고 하십니다. 이 낱말은 어원으로 ‘숨겨지지 않음’이라고 풀이되기도 하는데, 일상 헬라어에서 그 뜻이 얼마나 살아 있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갈립니다. 다만 요한복음은 진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왔고 그분이 아버지를 나타내셨다고 말합니다 (요 1:17-18). 그래서 하나님이 누구신지가 한 사람의 얼굴로 드러났다는 뜻으로 읽는 이가 많습니다. 이 점에서 이 주장은 어떤 이론이 옳다는 선언이 아니라 한 분을 소개하는 말입니다.

흔한 반론과 답

"한 길만 있다는 것은 오만하지 않은가?" 이 반론은 가볍지 않습니다. 역사에서 자기 신앙이 유일하다는 이름으로 남을 멸시하고 억압한 일이 실제로 있었고, 그리스도인들은 그것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그러나 오만은 주장의 내용이 아니라 태도의 문제입니다. 모든 길이 같은 곳에 이른다는 주장도 사실은 하나의 주장이어서, 그렇지 않다고 믿는 사람들에게 오만으로 들릴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이 주장의 성격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자기가 길을 찾아냈다고 말하지 않고, 길이 자기를 찾아오셨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구원이 선물이라면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엡 2:8-9). 예수를 따르는 사람은 바로 이 점에서 겸손하도록 부름받았습니다.

"모든 종교는 결국 같은 이야기를 하지 않는가?" 종교들 사이에 비슷한 윤리 가르침이 있는 것은 사실이고, 진선미의 흔적을 다른 곳에서도 발견하는 것을 그리스도인은 부인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사람마다 가까이 계시다는 바울의 말도 그것을 뒷받침합니다 (행 17:27). 그러나 핵심 질문에서는 종교마다 서로 다른 대답을 합니다. 하나님은 인격적인 분인가, 아니면 비인격적인 실재인가? 인간의 문제는 무지인가, 죄인가? 구원은 스스로 이루는 것인가, 받는 것인가? 이 물음에 서로 다르게 대답하는 이들이 모두 같은 말을 한다고 하는 것은 어느 쪽도 진지하게 대하지 않는 일일 수 있습니다. 서로 다른 점을 정직하게 인정해야 진지한 대화가 시작됩니다. 더 알려면 왜 다른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인가?를 보십시오.

"어디서 태어났는지가 믿음을 좌우하는데, 그것이 공정한가?" 이것은 가장 무거운 물음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가정에서 태어난 사람과 복음을 거의 들을 수 없는 곳에서 태어난 사람은 복음을 들을 기회가 다릅니다. 이 불공평함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성경의 대답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서 멀리 계시지 않고 (행 17:27), "그러나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게 하지 못하나니 그분께 가는 자는 반드시 그분께서 계시는 것과 또 그분께서 부지런히 자신을 찾는 자들에게 보상해 주시는 분이심을 믿어야 하느니라."라는 것입니다 (히 11:6). 다른 하나는 심판이 하나님의 몫이며, 그분이 사람의 외모를 취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행 10:34). 이 대답이 모든 의문을 지우지는 못합니다. 다만 그리스도인이 확신하는 것은 하나님이 우리보다 덜 공의로우시거나 덜 사랑하시지 않는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같은 믿음이 우리에게 선교의 책임도 지웁니다.

더 생각해 보기

예수께서 길이시라는 말은 닫는 말이기보다 초대입니다. 많은 사람이 떠나간 뒤에 베드로는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그때에 시몬 베드로가 그분께 대답하되, 주여, 영원한 생명의 말씀들이 주께 있사온대 우리가 누구에게로 가리이까?" (요 6:68). 이 질문은 다른 길을 비난하는 말이 아니라, 자기가 어디서 쉼을 얻었는지에 대한 증언입니다.

스스로에게 물어볼 수 있습니다. 내가 이 주장에서 불편한 것은 내용입니까, 아니면 그것을 말하는 사람들의 태도입니까? 나는 하나님께 이르는 길을 내 힘으로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른 신앙을 가진 사람에게 나는 어떻게 존중과 확신을 함께 보일 수 있을까요?

더 읽으려면 예수는 누구인가?와 예수는 하나님인가?를 보십시오.

출처

  1.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2. 칼케돈 공의회, 칼케돈 신앙정의 451 — 그리스도는 참 하나님이시며 참 사람이시다. 읽기

성경과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역사적 기독교 신앙(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의 관점에서 쓴 글입니다.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