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전 읽기

기독교 강요

장 칼뱅 · 1559년(최종판)

영어 본문: H. 베버리지 영역(1845) · CCEL · 우리말은 이 영어 본문에서 옮겼습니다.

해설

『기독교 강요』는 장 칼뱅이 1536년에 처음 내고 1559년까지 고쳐 쓴 기독교 가르침의 요약으로, 하나님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에서 출발해 그리스도의 구속과 그 은혜를 받는 길, 그리고 교회를 차례로 풀어 개혁교회의 신앙을 빚은 책입니다.

망명자가 쓴 교본

장 칼뱅은 1509년 프랑스 북부 피카르디의 누아용에서 태어났습니다. 파리에서 인문학을, 오를레앙과 부르주에서 법학을 공부한 그는 훗날 시편 주석의 서문에서, 하나님이 ‘갑작스러운 회심’으로 굳은 마음을 꺾어 가르침을 받을 만한 마음이 되게 하셨다고 회고했습니다. 그 일이 언제였는지는 그도 밝히지 않아, 학자들은 대개 1530년대 초로 짐작합니다. 1534년 가을 프랑스에서 개신교인에 대한 박해가 거세지자 그는 나라를 떠나 바젤에 몸을 숨겼고, 1536년 그곳에서 작은 라틴어 책 한 권을 냈습니다. 『기독교 강요』의 초판입니다.

초판은 여섯 장으로 된 신앙 교본이었습니다. 많은 학자가 지적하듯 루터의 요리문답과 비슷하게 율법과 사도신경과 주기도문과 성례를 차례로 풀고, 그리스도인의 자유와 교회와 국가의 권세를 다루었습니다. 책머리에는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에게 바치는 편지를 붙여, 박해받는 프랑스의 복음주의자들은 반역자가 아니며 그들의 가르침은 옛 교회의 신앙이라고 변호했습니다. 라틴어 제목의 ‘인스티투티오’(institutio)는 제도가 아니라 가르침이나 교본을 뜻하고, 우리말 제목의 ‘강요’는 큰 줄기를 간추렸다는 뜻입니다.

그해 여름 스트라스부르로 가는 길에 하룻밤 묵으려고 제네바에 들른 그를 기욤 파렐이 붙잡았습니다. 칼뱅의 회고에 따르면, 파렐은 그가 거절하면 하나님이 그의 조용한 학문 생활을 저주하시리라고 말했습니다. 1538년 제네바에서 쫓겨난 그는 스트라스부르에서 마르틴 부처와 함께 일하며 프랑스 피난민 교회를 섬기다가, 1541년 돌아와 1564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제네바 교회를 섬겼습니다.

그동안 그는 이 책을 1539년, 1543년, 1550년에 거듭 고쳐 늘렸고, 1541년에는 프랑스어로도 옮겼습니다. 1559년 네 권 여든 장으로 된 최종 라틴어판을 내면서, 그는 책이 지금의 순서로 정리되기까지 한 번도 만족하지 못했다고 말하고 이 책이 성경을 읽으려는 이들에게 길잡이가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의 생애와, 제네바의 아픈 대목인 세르베투스의 처형은 신학 과정의 츠빙글리, 칼뱅, 개혁파 신학 과에서 볼 수 있습니다.

네 권, 여든 장

1559년판의 네 권은 저마다 큰 물음 하나를 맡습니다. 1권은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2권은 율법 아래 조상들에게 먼저, 그리고 복음 안에서 우리에게 나타나신 구속주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다룹니다. 3권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은혜를 어떻게 받는지와 그 은혜가 맺는 열매를, 4권은 하나님이 우리를 그리스도와의 사귐으로 부르시고 그 안에 붙드시는 외적 방편, 곧 교회와 성례와 국가를 다룹니다. 이 뼈대는 대체로 사도신경의 흐름을 따르며, 칼뱅도 2권 16장 끝에서 지금까지 사도신경의 순서를 따랐다고 밝힙니다 2.16.18. 각 장은 번호가 붙은 절로 나뉘어 있어서, 3권 11장 2절은 3.11.2로 적습니다.

여기에는 여든 장 가운데 열한 장이 실려 있습니다. 1권에서는 책의 문을 여는 1권 1장과 2장, 사람 마음에 심긴 하나님 지식을 말하는 3장, 성경을 다루는 6장과 7장을 실었습니다. 2권에서는 율법의 쓰임을 다룬 2권 7장과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과 승천을 풀이한 16장을, 3권에서는 믿음을 정의하는 3권 2장, 칭의를 다루는 11장, 선택을 다루는 21장을, 4권에서는 참된 교회를 다룬 4권 1장을 실었습니다. 하나님과 성경, 율법과 그리스도의 구속, 믿음과 칭의, 선택, 교회라는 칼뱅 가르침의 큰 마디마다 그 중심이 되는 장을 고른 것입니다.

빠진 장도 많습니다. 1권에서는 삼위일체를 다룬 13장과 창조와 섭리를 다룬 14–18장 등이, 2권에서는 타락과 의지의 속박(1–5장), 십계명 해설(8장), 구약과 신약의 관계(9–11장), 중보자의 두 본성과 세 직분(12–15장)이 빠졌습니다. 3권에서는 성령께서 우리를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하신다는 1장, 회개와 그리스도인의 삶을 다룬 3–10장, 그리스도인의 자유(19장), 책에서 가장 긴 장 가운데 하나인 기도의 장(20장), 선택론의 나머지(22–24장)와 마지막 부활(25장)이 빠졌고, 4권에서는 교회의 직분과 권징, 세례와 성찬, 국가 통치를 다룬 2–20장이 빠졌습니다. 특히 3권 1장과 24장은 실린 장들을 읽을 때 함께 기억하면 좋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에서 그리스도의 구속까지

책은 참되고 건전한 지혜가 거의 모두 하나님을 아는 지식과 우리 자신을 아는 지식, 두 부분으로 이루어진다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1.1.1. 두 지식은 서로 얽혀 있습니다. 자기의 가난과 비참을 아는 사람은 하나님을 찾게 되고, 땅만 볼 때는 눈이 밝다고 여기던 사람이 해를 쳐다보고서야 제 눈이 약한 줄 알듯 하나님의 얼굴을 바라본 사람만이 자기를 바로 압니다 1.1.2. 그러나 이 지식은 머리의 사색이 아닙니다. 칼뱅은 경건이 없는 곳에서는 하나님이 알려졌다고 할 수 없다고 하면서, 경건을 하나님의 은혜를 앎으로 생겨나는 경외와 사랑의 결합이라고 정의합니다 1.2.1.

모든 사람의 마음에는 ‘신성에 대한 감각’이 새겨져 있어서, 우상 숭배조차 그 증거가 됩니다 1.3.1. 시편 기자는 "하늘들이 하나님의 영광을 밝히 드러내고 궁창이 그분의 손으로 행하신 일을 나타내는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시 19:1). 그러나 죄로 어두워진 사람은 그 빛을 바로 읽지 못하므로 하나님은 말씀을 더하셨습니다.

칼뱅은 성경을 안경에 견줍니다. 눈이 어두운 노인이 안경을 쓰면 책을 또렷이 읽듯, 성경은 우리 마음에 흐릿하게 흩어져 있던 하나님 지식을 모아 참 하나님을 분명히 보여 준다는 것입니다 1.6.1. 말씀을 벗어나면 미궁에서 길을 잃으니, 길 밖에서 빨리 달리기보다 길 위에서 절뚝이며 가는 편이 낫다고 그는 말합니다 1.6.3.

그러면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임을 무엇으로 확신할 수 있습니까? 칼뱅은 성경의 권위가 교회의 승인에 달려 있다는 생각을 반박합니다. 교회가 "또 사도들과 대언자들의 기초 위에 세워진 자들이니라.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으뜸 모퉁잇돌이 되시나니" 세워졌다면 (엡 2:20) 그 가르침은 교회보다 먼저 확실했다는 것입니다 1.7.2. 그리고 그 확신은 논증이 아니라, 선지자들의 입으로 말씀하신 같은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주시는 은밀한 증거에서 온다고 말합니다 1.7.4.

가톨릭 교회도 교도권이 하나님의 말씀 위에 있지 않고 말씀을 섬긴다고 가르치지만, 성경과 거룩한 전승이 함께 하나의 말씀의 보고를 이루며 교회가 이를 해석한다고 말합니다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 교회의 권위가 아니었다면 복음을 믿지 않았으리라는 아우구스티누스의 말을 칼뱅이 길게 풀이하는 1.7.3은 지금도 양편이 저마다 읽는 대목입니다.

2권에서 칼뱅은 율법이 이스라엘을 그리스도에게서 멀어지게 하려고가 아니라 그분이 오시기까지 소망을 살려 두려고 주어졌다고 말합니다 2.7.1. 그는 도덕법의 쓰임을 셋으로 나눕니다. 율법은 거울처럼 우리의 무력함과 죄와 그 저주를 비추어 긍휼로 피하게 하고 2.7.7, 굴레처럼 악한 이들을 벌의 두려움으로 억제하여 사회의 평화를 지킵니다 2.7.10. 셋째이자 가장 중요한 쓰임은 성령께서 이미 마음을 다스리시는 신자들을 위한 것으로, 율법은 그들에게 날마다 하나님의 뜻을 더 분명히 가르치고 게으른 육신을 깨워 순종으로 이끕니다 2.7.12. 칼뱅은 여기서 시편 19편을 인용합니다.

주의 율법은 완전하여 혼을 회심시키고 주의 증언은 확실하여 단순한 자를 지혜롭게 하며

시 19:7

루터교회도 거듭난 이들에게 율법이 삶의 규범으로 필요하다고 고백하지만 일치신조 6조,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는 데 더 무게를 두어 율법이 죄를 드러내고 고발하는 일을 앞세웁니다. 이 물음은 구약의 율법은 지금도 지켜야 하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2권 16장은 사도신경을 따라 그리스도께서 구속주의 일을 어떻게 이루셨는지 풉니다. 칼뱅은 먼저, 우리를 앞서 사랑하신 하나님이 어떻게 우리의 원수셨다고 할 수 있는지 묻습니다. 성경이 진노를 말하는 것은 그리스도 없는 우리 처지가 얼마나 비참한지 알게 하려고 우리 눈높이에 맞춘 말이지만 거짓은 아니며, 하나님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에 우리를 자기와 화목하게 하셨다는 것입니다 2.16.3. 그리스도께서는 종의 형체를 입으신 때부터 평생의 순종으로 구속의 값을 치르기 시작하셨고 2.16.5, 빌라도 앞에서 죄인으로 정죄받으시고 율법이 저주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 받았느니라, 하였느니라.

갈 3:13

칼뱅은 이렇게 우리 대신 형벌을 지신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면서도, 같은 대목에서 수치의 표인 십자가가 개선 수레로 바뀌었다고 승리를 노래합니다 2.16.6. 사도신경 표준 본문에 있는, 그리스도께서 지옥(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고백(우리말 개신교 번역에는 흔히 빠져 있습니다)을, 칼뱅은 그리스도께서 정죄받은 사람이 받을 하나님의 심판을 영혼으로 겪으신 일로 풀고 2.16.10,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4문도 이 풀이를 따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4문.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와 루터교회는 이 조항을 대개 그리스도께서 죽은 이들에게 내려가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신 일로 읽는데, 칼뱅도 그리스도의 죽으심이 죽은 이들에게까지 알려졌다는 것은 인정합니다 2.16.9. 이 물음은 예수는 죽으신 뒤 사흘 동안 어디 계셨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장의 끝은 구속은 그분의 고난에, 무죄 선언은 그분의 정죄에, 저주에서 풀려남은 그분의 십자가에 있으니 구원의 어느 조각도 다른 데서 찾지 말라는 말로 모든 것을 그리스도께 모읍니다 2.16.19.

믿음과 칭의, 선택, 그리고 교회

3권은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이 어떻게 우리 것이 되는가를 묻고, 그 답의 한가운데에 믿음을 둡니다. 칼뱅은 믿음을 그리스도 안에서 값없이 주신 약속의 진실에 기초하여 성령으로 우리 생각에 계시되고 우리 마음에 인 쳐진,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호의에 대한 확고하고 분명한 지식이라고 정의합니다 3.2.7. 그것은 다 이해하는 앎이라기보다 확신이며 3.2.14, 교회가 믿는 것을 내용도 모른 채 그대로 믿는다는 ‘함축적 믿음’과는 다르다고 그는 말합니다 3.2.2. 그렇다고 의심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 칼뱅은 다윗의 탄식 시편들을 들어 신자가 평생 자기 안의 불신과 싸운다고 인정하면서도 3.2.17, 그리스도께서 우리 밖에 계시지 않고 우리 안에 거하시므로 믿음은 결국 이긴다고 말합니다 3.2.24.

칼뱅은 칭의를 다루기 전에 회개와 그리스도인의 삶(3–10장)을 먼저 다룹니다. 오직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할 때 그 믿음이 선행 없는 믿음이 아님을 먼저 보이려 했다고 그는 밝힙니다 3.11.1. 같은 절에서 그는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붙잡을 때 얻는 이중 은혜를 말합니다. 그리스도의 의로 화목하게 되어 하나님이 재판장 대신 자비로운 아버지가 되시는 것, 그리고 그분의 영으로 거룩하게 되어 온전하고 정결한 삶을 힘써 추구하는 것입니다. 그는 칭의를 종교를 떠받치는 으뜸가는 근거라고 부르고, 하나님이 우리를 의인처럼 받아들이시는 일이며 죄의 용서와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이루어진다고 정의합니다 3.11.2.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칭의와 성화는 나뉘지 않지만 섞이지도 않습니다. 해의 빛과 열은 떼어 놓을 수 없지만, 땅이 빛으로 데워지고 열로 밝아진다고 말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3.11.6. 믿음도 그 자체로 의롭게 하는 힘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받는 그릇이며, 금이 담긴 질그릇이 사람을 부하게 하듯 그리스도를 가져다주기에 의롭게 합니다 3.11.7.

이 장의 긴 논쟁 상대는 뜻밖에도 루터파 신학자 안드레아스 오시안더입니다. 그는 그리스도의 신적 본질이 우리 안에 들어와 우리를 실제로 의롭게 한다는 ‘본질적 의’를 가르쳤는데, 칼뱅은 그리스도와의 연합을 가장 높은 자리에 두면서도 그 연합은 본질이 섞이는 것이 아니라 성령의 은밀한 역사라고 답합니다 3.11.10. 루터교회도 뒤에 일치신조 3조에서 오시안더의 가르침을 물리쳤습니다.

루터교회는 칼뱅과 함께 사람이 그리스도 때문에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고백하며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4조, 루터도 믿음이 신부를 신랑과 하나 되게 하듯 영혼을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1547)에서 칭의(가톨릭 교회는 ‘의화’라고 부릅니다)를 죄의 용서일 뿐 아니라 은혜로 속사람이 거룩해지고 새로워지는 일로 가르쳤고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칼뱅은 이 교령에 답하는 글을 썼습니다 칼뱅, 트리엔트 공의회에 대한 해독제. 1999년 루터교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는 우리가 공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고 함께 고백했고,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도 2017년 이 선언에 함께했습니다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아르미니우스는 칭의에 관해서는 칼뱅이 3권에 쓴 것에 기꺼이 서명하겠다고 했고 아르미니우스, 소신 선언, 웨슬리도 칭의를 죄의 용서와 하나님께 받아들여짐으로 가르쳤고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그리스도의 의가 전가된다는 말이 거룩한 삶을 게을리하는 핑계가 되지 않도록 경계했습니다. 정교회는 구원을 무엇보다 은혜로 "그것들로 말미암아 지극히 크고 보배로운 약속들이 우리에게 주어졌나니 이것은 너희가 이 약속들을 힘입어 정욕으로 인해 세상에 있게 된 썩을 것을 피하여 하나님의 본성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함이니라." 신화(테오시스)로 말하며 (벧후 1:4), 칼뱅이 이 구절을 장차 이루어질 일로 읽은 것과 달리 3.11.10, 그 일이 지금 성례와 기도의 삶에서 시작된다고 봅니다.

선택을 다루는 21장은 3권에서 믿음과 칭의와 기도 뒤에 놓여 있습니다. 칼뱅은 영원한 작정이 아니라 우리 눈앞의 사실에서 시작합니다. 생명의 언약은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전해지지 않고, 전해진 곳에서도 똑같이 받아들여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3.21.1. 그는 이 가르침이 구원이 하나님의 값없는 긍휼에서 흘러나온다는 것을 알게 하고, 우리를 겸손하게 하며, 두려움 속에서 확신을 준다고 말합니다. 바울도 "그런즉 이와 같이 이 현 시대에도 은혜의 선택에 따라 남은 자가 있느니라."고 말합니다 (롬 11:5).

그러면서도 칼뱅은 두 갈래의 잘못을 경계합니다. 하나는 하나님이 감추신 것까지 캐려는 호기심으로, 그것은 출구 없는 미궁으로 들어가는 일이니 이 일에서는 모르는 것이 곧 배움이라고 그는 말합니다 3.21.2. 다른 하나는 이 가르침을 아예 입에 올리지 않으려는 지나친 조심입니다. 성경은 성령의 학교이므로, 성경이 가르치는 데까지는 배우고 성경이 입을 닫는 데서 멈추라는 것입니다 3.21.3. 그 근거로 그는 모세의 말씀을 듭니다.

은밀한 일들은 주 우리 하나님께 속하거니와 계시된 그 일들은 영원토록 우리와 우리 자손들에게 속하나니 이것은 우리가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려 하심이니라.

신 29:29

칼뱅의 정의는 단호합니다. 예정은 하나님이 각 사람에게 일어나기를 원하시는 것을 스스로 정하신 영원한 작정이며, 모든 사람이 같은 처지로 지음받지 않아 어떤 이는 영생으로, 어떤 이는 영원한 멸망으로 미리 정해졌다는 것입니다 3.21.5. 그는 아브라함의 자손을 택하신 일에서 이삭과 야곱을 가리신 일로, 다시 그리스도 안에 접붙여진 개인들로 논의를 좁혀 갑니다. 택하심은 사람의 값어치와 상관없이 값없는 긍휼에 근거하고, 버려진 이들(개혁교회는 이를 ‘유기’라고 부릅니다)은 의롭고 흠 없되 헤아릴 수 없는 심판으로 생명에서 막히며, 부르심과 칭의는 택하심의 증거라고 그는 말합니다 3.21.7. 개혁교회는 뒤에 도르트 신경(1619)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1646)에서 이 가르침을 이어받아 고백했습니다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작정과 예정 과).

이 장은 전통마다 다르게 받아들여졌습니다. 루터교회의 일치신조(1577) 11조는 선택이 오직 은혜이며 믿는 이들의 구원의 원인이라고 고백하면서도, 하나님은 누구도 멸망으로 예정하지 않으셨고 멸망의 원인은 사람의 불신앙에 있다고 말하며 택하심을 숨겨진 뜻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그분의 말씀에서 찾으라고 권합니다 일치신조 11조. 가톨릭 교회는 529년 오랑주 공의회에서 믿음의 시작조차 은혜의 선물이며 누구도 악으로 예정되지 않았다고 고백했고 오랑주 공의회, 그 테두리 안에서 은혜와 자유를 다르게 설명하는 토마스주의자들과 몰리나주의자들이 함께 가르치도록 허락해 왔습니다. 아르미니우스를 따른 항론파(1610)는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의 은혜로 믿고 끝까지 믿음에 머물 이들을 구원하기로 정하셨다고 고백했고 항론서 1조, 웨슬리는 모든 사람에게 앞서 다가가는 선행 은총이 응답할 힘을 준다고 가르쳤습니다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정교회는 다마스쿠스의 요한을 따라 하나님은 모든 것을 미리 아시지만 모든 것을 미리 정하지는 않으신다고 말합니다 다마스쿠스의 요한, 정통 신앙에 대한 정확한 해설.

그러나 모든 전통이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이고, 하나님은 죄의 조성자가 아니시며, 복음은 모든 사람에게 진실하게 전해져야 한다고 함께 고백합니다. 이 견해들은 교리 과정의 은혜와 선택 과에서 나란히 볼 수 있습니다.

4권 1장은 교회를 어머니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무지와 게으름을 아시고 믿음을 낳고 자라게 할 외적 방편으로 교회와 목사와 성례를 주셨으며,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시는 이들에게 교회는 어머니가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4.1.1. 3세기 카르타고의 감독 키프리아누스 이래의 이 오랜 말을 따라, 칼뱅은 교회의 품을 떠나서는 죄 용서도 구원도 바랄 수 없다고까지 말합니다 4.1.4. 그는 하나님만 아시는 택함 받은 이들의 교회와, 위선자도 섞여 있는 보이는 교회를 구별하고 4.1.7, 보이는 교회의 표지를 둘로 듭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들리며 성례가 그리스도의 제정대로 집행되는 곳에는 하나님의 교회가 있다는 것이며 4.1.9, 그 근거는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함께 모인 곳에 나도 거기에 그들의 한가운데 있느니라, 하시니라."는 주님의 약속입니다 (마 18:20).

이 표지는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7조가 말한 교회와 같은 줄기이고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7조,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여기에 사도들에게서 이어 온 감독들의 계승과 친교를 더해 교회를 말합니다. 칼뱅은 꼭 붙들어야 할 교리와 의견이 갈려도 일치를 깨지 않는 교리를 구별하고 4.1.12, 그물에 온갖 물고기가 섞이고 밭에 가라지가 섞인다는 비유를 들어 말씀과 성례가 있는 한 흠 많은 교회라도 떠나지 말라고 권합니다 4.1.13. 그는 여기서 재세례파 일부를 완전한 거룩을 내세우는 이들로 비판하지만, 재세례파 자신은 믿음을 고백하고 세례받은 이들이 서로 권면하며 거룩하게 사는 교회를 세우려 했습니다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 장의 뒷부분은 죄 용서가 처음 한 번만이 아니라 평생 날마다 교회 안에서 베풀어진다는 위로를 길게 풉니다 4.1.21.

이 책을 잘 읽으려면

먼저 성경을 펴고 읽으십시오. 칼뱅은 이 책을 성경 읽기를 돕는 안내서로 썼고, 거의 모든 문단에서 성경을 들어 말합니다. 그가 인용한 구절을 찾아 앞뒤를 함께 읽으면 그의 논증이 어디서 힘을 얻는지 보입니다. 또 이 책은 차가운 체계가 아니라 경건을 위한 책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경외와 사랑과 감사로 이어져야 한다는 첫머리의 말을 끝까지 기억하십시오.

순서도 중요합니다. 칭의의 장은 믿음의 장 다음에, 선택의 장은 믿음과 칭의와 기도 다음에 읽도록 놓여 있습니다. 칼뱅은 예정을 구원의 문 앞에서 먼저 풀어야 할 수수께끼가 아니라, 은혜를 받은 이가 겸손히 감사하는 고백으로 가르칩니다. 3권 21장을 읽을 때는 첫 네 절의 경고를 먼저 붙들고, 빠진 24장에서 그가 자기 택하심을 의심하는 이들에게 택하심을 비추는 거울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라고 권한 것도 기억하면 좋습니다.

16세기 논쟁의 말투도 알고 읽어야 합니다. 칼뱅은 교황주의자들과 스콜라 학자들, 오시안더와 재세례파를 거친 말로 몰아세우고, 상대의 생각을 그들 자신은 쓰지 않았을 말로 요약할 때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그가 반박하는 ‘사랑으로 형성된 믿음’을 가톨릭 신학은 바울이 말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는 할례나 무할례나 아무 효력이 없으되 오직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뿐이니라."으로 설명합니다 (갈 5:6). 그러나 같은 칼뱅이 아우구스티누스와 클레르보의 베르나르를 거듭 우군으로 인용하는 데서 보듯, 그는 새 교회가 아니라 옛 교회의 신앙을 되찾으려 했습니다.

그가 끝내 지키려 한 것은 구원 전체가 그리스도 안에 있다는 확신입니다. 칼뱅은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의로움과 거룩함이 되셨으니 칭의와 성화를 둘 다 그분 안에서 받는다는 바울의 말을 이 책에서 여러 번 인용합니다 3.11.6.

그러나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나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고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나사 우리에게 지혜와 의와 성별과 구속이 되셨으니

고전 1:30

출처

  1.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읽기
  2. 제2차 바티칸 공의회, 계시 헌장(하느님의 말씀) 1965
  3. 루터교, 일치신조 6 (1577)
  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읽기
  5.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6. 마르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520 읽기
  7.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8. 장 칼뱅, 트리엔트 공의회에 대한 해독제 1547
  9. 루터교 세계연맹·가톨릭교회,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1999
  10. 야코부스 아르미니우스, 소신 선언 1608
  11. 존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설교 43 / Sermon 43 (1765) 읽기
  12. 루터교, 일치신조 11 (1577)
  13. 제2차 오랑주 공의회, 오랑주 공의회 결정 529
  14. 항론파, 항론서(다섯 조항) 1610
  15. 다마스쿠스의 요한, 정통 신앙에 대한 정확한 해설
  16. 스위스 형제단, 슐라이트하임 신앙고백 1527

차례

싣지 않은 부분: 80장 가운데 하나님과 성경, 율법과 그리스도의 구속, 믿음과 칭의, 선택, 교회를 다룬 11장을 싣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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