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가
Imputation
전가는 한 사람의 것을 다른 사람에게 돌려 그의 것으로 여기시는 하나님의 일입니다. 성경은 우리 죄가 그리스도께 돌려지고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이에게 돌려진다고 말합니다. 전가는 사람 안의 변화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을 정하는 판결이며, 칭의의 근거를 설명하는 말입니다.
여겨 주시는 하나님
‘전가’(轉嫁)는 ‘옮겨 돌림’이라는 뜻입니다. 성경은 이 일을 ‘여기다’라는 말로 말합니다. 구약의 하샤브(חָשַׁב)와 신약의 로기조마이(λογίζομαι)는 장부에 적듯 계산하여 누구의 몫으로 치는 말이고, 로기조마이는 로마서 4장에만 열한 번 나옵니다. 개역한글은 이 말을 ‘여기다’, ‘인정하다’, ‘돌리다’로 옮겼습니다.
이것은 또한 다윗이 행위가 없어도 하나님께서 의를 인정하시는 사람의 복된 일을 묘사하여 이르되, 자기 불법들을 용서받고 자기 죄들이 가려진 자들은 복이 있으며 주께서 죄를 인정하지 아니하실 사람은 복이 있도다, 함과 같으니라.
롬 4:6-8
바울은 빌레몬에게 도망친 종 오네시모를 두고 "만일 그가 네게 잘못을 했거나 조금이라도 빚을 졌거든 그것을 내 회계장부에 넣으라."고 썼습니다 (몬 1:18). 남의 빚을 내 장부로 옮기는 것, 그것이 전가의 모습입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신과 화해하게 하시며 그들의 범법을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해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맡기셨느니라." (고후 5:19), 그 죄를 그리스도께 돌리셨습니다.
개혁 신학은 성경이 말하는 전가를 셋으로 정리합니다. 첫째, 아담의 죄가 그 후손에게 돌려집니다.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 (롬 5:19). 둘째, 우리 죄가 그리스도께 돌려집니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길을 잃고 각각 자기 길로 갔거늘 주께서는 우리 모두의 불법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사 53:6). 셋째, 그리스도의 의가 믿는 이에게 돌려집니다. 하나님이 죄를 모르신 그리스도를 우리 대신 죄로 삼으신 것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그래서 바울은 율법에서 난 자기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말미암는 의를 바랐습니다 (빌 3:9). 첫째 전가에 대해서는 죄책 항목을, 셋째에 대해서는 하나님의 의 항목을 보십시오.
교회가 고백해 온 말
종교개혁자들은 칭의를 설명하며 이 말을 중심에 두었습니다. 마르틴 루터는 갈라디아서 강해에서 그리스도인의 의가 마음의 믿음과,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보시고 의로 여겨 주심의 두 가지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쳤습니다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장 칼뱅은 칭의가 죄 사함과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로 이루어진다고 말했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3권 11장.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이 위로를 1인칭으로 고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나의 공로가 전혀 없이 순전한 은혜로 그리스도의 완전한 만족과 의와 거룩을 나에게 주시고 전가하시되, 마치 내가 아무 죄도 범한 적이 없고 죄가 있었던 적도 없으며, 그리스도께서 나를 위하여 이루신 모든 순종을 내가 친히 다 이룬 것처럼 하십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0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하나님이 의를 사람 안에 주입하심으로가 아니라 죄를 용서하시고 그리스도의 순종과 만족을 전가하심으로 의롭다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1.
전통들이 다르게 말하는 곳
가톨릭 교회는 칭의가 죄의 용서일 뿐 아니라 은혜가 부어져 속사람이 실제로 의롭게 되는 것이라고 가르치며, 트리엔트 공의회는 그리스도의 의의 전가만으로 의롭게 된다는 주장을 정죄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정교회는 구원을 주로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것으로 설명하여 이 법정의 언어를 중심에 두지 않고, 아담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죄책이 아니라 죽음과 부패라고 봅니다 로마니데스, 조상의 죄. 종교개혁 교회들도 속사람의 새로워짐을 가르치지만, 그것을 칭의의 근거가 아니라 칭의와 늘 함께 가는 성화로 봅니다.
복음주의 안에서도 설명이 조금씩 다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믿음 자체나 믿는 행위를 의로 여기시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합니다. 존 웨슬리는 그리스도께서 행하시고 고난받으신 일만이 우리가 받아들여지는 공로의 원인이지만, 믿음은 받아들여지는 유일한 조건이므로 믿음이 우리에게 의로 여겨진다고 말할 수 있다고 풀고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여기서 용서와, 죄를 인정하지 않으심과, 의를 의로 여기심이 모두 하나임을 볼 수 있습니다" 웨슬리. 두 견해 모두 우리가 오직 그리스도 때문에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는 데 섭니다. 칭의란 무엇인가?도 읽어 보십시오.
출처
- 마르틴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1535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읽기
-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요한네스 로마니데스, 조상의 죄 19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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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