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선행 은총

Prevenient grace

선행 은총은 사람이 하나님을 찾거나 믿기 전에 먼저 와서 죄를 깨닫게 하고 하나님께 응답할 수 있게 하는 은혜입니다.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은 이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사람은 그 은혜에 힘입어 복음을 받아들일 수도 거부할 수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먼저 오는 은혜

‘선행’(先行)은 착한 행실이 아니라 ‘앞서 간다’는 뜻입니다. 라틴어 ‘그라티아 프라이베니엔스’(gratia praeveniens)를 옮긴 말로, 사람이 하나님께 나아가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와 있다는 고백입니다. 죄로 기울어진 사람은 제 힘으로 하나님께 돌아설 수 없습니다. 예수께서는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며 내게 오는 그를 마지막 날에 내가 일으키리라."라고 하셨습니다 (요 6:44). 그러면서 또 "나 곧 내가 땅에서 들리면 모든 사람을 내게로 이끌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요 12:32).

그 빛은 참 빛으로 세상에 들어오는 모든 사람을 비추느니라.

요 1:9

존 웨슬리는 각 사람에게 비취는 이 빛을 "흔히 자연적 양심이라 불리는 것으로, 적어도 선악의 대략적인 윤곽을 가리켜 줍니다"라고 풀었고 웨슬리, 사람이 막지 않으면 그 빛이 점점 밝아진다고 덧붙였습니다. 바울은 "구원을 가져다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나타나"라고 말하고 (딛 2:11), 요한은 "우리가 그분을 사랑함은 그분께서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요일 4:19).

교회가 말해 온 길

이 가르침의 뿌리는 아우구스티누스에게 있습니다. 그는 펠라기우스파와의 논쟁 끝에 믿음의 시작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라고 가르쳤고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529년 오랑주 공의회도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시작이 은혜에서 온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랑주 공의회. 트리엔트 공의회는 어른의 칭의가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선행 은총, 곧 아무 공로 없는 이들을 부르시는 은혜에서 시작되며, 사람은 그 은혜에 자유로이 동의하고 협력할 수도 거부할 수도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5장. 성공회의 39개 신조 10조도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은혜가 앞서 와서 선한 뜻을 갖게 하고 그 뜻과 함께 일하지 않으면, 우리에게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선을 행할 힘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39개 신조 10조.

이 은혜를 구원론의 중심에 둔 이들은 아르미니우스를 따른 항론파와 존 웨슬리였습니다. 1610년 항론서는 사람이 은혜 없이는 참으로 선한 것을 생각하지도 원하지도 행하지도 못하며 은혜가 모든 선의 시작이요 지속이요 완성이지만, 그 은혜는 거스를 수 없는 것이 아니라고 고백했습니다 항론서 3–4조. 그들은 "너희가 항상 성령을 거스려"라는 스데반의 말을 근거로 들었습니다 (행 7:51). 웨슬리는 선행 은총이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는 첫 소원과 그분의 뜻에 대한 첫 빛과 죄를 지었다는 첫 가책을 일으킨다고 가르쳤습니다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웨슬리 전통은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해 죽으셨으므로 이 은혜도 모든 사람에게 미친다고 봅니다. 아무도 스스로 믿을 수 없지만, 누구도 은혜 밖에 버려져 있지 않다는 것입니다.

전통들이 다르게 말하는 곳

은혜가 사람의 모든 응답보다 먼저라는 데는 모든 전통이 동의합니다. 차이는 그 은혜가 누구에게 주어지며 거부될 수 있느냐에 있습니다. 감리교회와 성결교회, 많은 오순절 교회 같은 웨슬리·아르미니우스 전통은 이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져 응답할 자유를 회복시키며, 사람은 그 은혜에 힘입어 믿을 수도 끝내 거부할 수도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들은 "그분은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고 진리를 아는 데 이르기를 원하시느니라."는 말씀을 (딤전 2:4) 하나님의 진심으로 읽습니다. 가톨릭 교회도 자신의 칭의 이해 안에서 선행 은총과 사람의 자유로운 협력을 가르칩니다.

개혁교회도 은혜가 앞선다는 데 섭니다. 도르트 신경은 회심의 시작에서 은혜가 의지의 움직임보다 앞서지 않는다는 가르침을 펠라기우스의 오류로 배척하면서 도르트 신경 셋째·넷째 교리 오류 배척 9, 하나님이 택하신 이들을 부르실 때 그 의지를 새롭게 하시어 반드시 믿음에 이르게 하신다고 고백합니다 (효과적 부르심). 그래서 개혁교회는 모든 사람에게 믿을 능력을 똑같이 주는 은혜를 따로 말하지 않고, 모든 사람에게 미치는 선하심은 일반 은총으로 설명합니다. 루터교는 회심이 오직 하나님의 일이며 타고난 의지는 아무것도 보탤 수 없다고 고백하면서도, 말씀으로 오는 은혜를 사람이 거스를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이 차이는 자유의지와 아르미니우스주의 항목, 교리 과정의 은혜와 선택 과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어느 견해에 서든, 신자는 하나님을 찾던 첫 마음조차 그분이 먼저 주신 것임을 감사할 수 있습니다.

출처

  1.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2. 제2차 오랑주 공의회, 오랑주 공의회 결정 529
  3.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4. 잉글랜드 교회, 39개 신조 1571
  5. 항론파, 항론서(다섯 조항) 1610
  6. 존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설교 43 / Sermon 43 (1765) 읽기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