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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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학이란 무엇인가

  1. 신학이란 무엇인가신학은 하나님에 대해 생각하고 말하는 일, 곧 믿음으로 하나님을 더 깊이 알기를 구하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생각하는 모든 신자가 이미 신학을 하고 있으니 문제는 그것을 참되게 하느냐이며, 바른 신학은 겸손을 배우고 예배로 끝납니다.
  2. 신학의 원천: 성경, 전통, 이성, 경험신학은 성경과 교회의 전통과 이성과 경험에서 배우지만, 넷의 무게는 같지 않습니다. 복음주의 신학은 성경을 다른 모든 것을 판단하는 최종 규범으로 삼고, 전통과 이성과 경험을 그 아래에서 귀한 도움으로 씁니다.
  3. 성경을 해석하는 길교회는 처음부터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를 읽었고, 교부들과 중세는 문자 너머의 영적인 뜻을 찾았으며, 종교개혁자들은 본문의 평이한 뜻과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길을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문맥과 장르와 성경 전체를 살피며, 교회와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읽습니다.

신학의 갈래

  1. 성경신학과 조직신학조직신학은 성경 전체가 가르치는 것을 하나님, 그리스도, 성령, 교회, 마지막 일 같은 주제별로 모아 정리하고, 성경신학은 하나님의 계시가 성경의 역사와 언약을 따라 차츰 펼쳐지는 흐름을 따라갑니다. 두 길은 모두 본문을 바르게 읽는 데서 시작하며 서로를 붙들어 줍니다.
  2. 역사신학과 실천신학역사신학은 교회가 시대마다 믿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고백해 왔는지 살피고, 실천신학은 설교와 예배, 목양과 가르침과 선교 속에서 신학이 어떻게 교회의 삶이 되는지 다룹니다. 성경신학, 조직신학과 함께 이 넷은 한 교회를 위한 한 가지 일입니다.
  3. 신학을 어떻게 공부할 것인가루터는 시편 119편에서 신학 공부의 세 규칙, 곧 기도와 묵상과 시련을 배웠습니다. 신학은 겸손과 사랑으로, 교회 안에서 교회를 위해 공부하며, 성경을 먼저 가장 많이 읽고, 옛 책과 원전을 공정하게 읽고, 배운 것을 기도로 바꾸는 습관 속에서 자랍니다.

초대 교회와 교부 100–500

  1. 사도 이후의 교회: 변증가와 이레나이우스사도들이 떠난 뒤 2세기 교회는 순교 앞에서, 황제 앞에서, 그리고 ‘숨은 지식’을 내세운 가르침 앞에서 사도의 신앙을 지켜야 했습니다. 이그나티우스와 유스티누스와 이레나이우스는 세상을 지으신 한 분 하나님, 참 육신으로 오신 그리스도, 온 교회에 공개된 사도의 신앙을 증언했습니다.
  2. 니케아: 성자는 참 하나님이신가4세기 교회는 아리우스의 가르침 앞에서 아들이 가장 높은 피조물인지, 아버지와 같은 참 하나님이신지를 물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라고 고백했고, 아타나시우스와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긴 싸움 끝에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니케아 신경을 내놓았습니다.
  3. 칼케돈: 한 인격, 두 본성니케아 이후 교회는 참 하나님이신 아들이 사람이 되셨다면 예수 그리스도가 어떻게 한 분이신지를 물었습니다. 아폴리나리스, 네스토리우스, 에우티케스를 둘러싼 긴 논쟁 끝에 451년 칼케돈 공의회는 한 분 그리스도께서 두 본성 안에서 혼합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뉘지 않고 분리되지 않으신다고 고백했습니다.
  4. 교부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었나교부들은 무엇보다 성경을 읽고 설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글자 너머의 영적 의미를 찾았고, 크리소스토무스는 본문의 뜻을 따라 회중에게 설교했으며, 히에로니무스는 히브리어에서 라틴어 구약을 옮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성경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세운다고 가르쳤습니다.
  5. 아우구스티누스: 은혜의 박사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쉼 없는 마음으로 진리를 찾아 헤매다 그리스도께 돌아왔고, 히포의 감독으로서 도나투스파와 펠라기우스에 맞서 교회와 은혜를 가르쳤습니다. 가톨릭 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이 함께 그를 스승으로 삼는 까닭과,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것과 조심할 것을 살펴봅니다.

중세 교회 500–1500

  1. 수도원, 선교, 동서 교회의 분열서로마 제국이 무너진 뒤 1054년까지, 수도원은 기도와 성경과 배움을 지키며 복음을 유럽 끝까지 전했습니다. 동방에서는 이콘을 두고 큰 논쟁이 일어났고, 언어와 로마 감독의 권위와 ‘필리오케’ 문제 속에 동방과 서방의 교회는 점점 멀어졌습니다.
  2. 안셀무스와 스콜라 신학의 시작11–12세기에 신학은 수도원에서 학교로 자리를 넓히며 믿는 것을 이성으로 이해하려 애썼습니다. 안셀무스는 ‘이해를 추구하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존재와 성육신의 이유를 생각했고, 아벨라르의 질문하는 방법과 롬바르두스의 『명제집』은 새로 생긴 대학들의 신학을 낳았습니다.
  3. 토마스 아퀴나스도미니코회 수사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확신으로 이성이 닿는 진리와 계시로만 아는 진리를 『신학대전』에 함께 엮은 스콜라 신학의 가장 큰 스승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그를 ‘공통 박사’로 기리고, 개신교회도 그에게서 배우면서 공로와 타락한 이성과 성례에서는 달리 봅니다.
  4. 중세 말의 위기와 개혁의 선구자들14–15세기 서방 교회는 아비뇽 교황청과 교황청의 대분열, 흑사병으로 깊이 흔들렸습니다. 그 속에서 오컴의 새 신학과 근대적 경건이 자랐고, 위클리프와 후스는 성경을 교황 위에 두었으며, 인문주의자들은 ‘원천으로’ 돌아가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을 내놓아, 16세기 종교개혁의 문을 열었습니다.

종교개혁 1517–1600

  1. 루터: 십자가 신학과 칭의마르틴 루터는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가 죄인을 벌하는 공의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며 주시는 선물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십자가 안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된 그리스도인의 자유, 율법과 복음, 모든 신자의 제사장 됨을 가르쳤고, 그 신앙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과 루터교회로 이어졌습니다.
  2. 츠빙글리, 칼뱅, 개혁파 신학스위스에서 자란 개혁파 신학은 교회의 예배와 삶 전체를 성경으로 다시 세우려 했습니다. 츠빙글리는 취리히에서 성경을 차례로 강해하며 예배를 단순하게 했고 성찬을 두고 루터와 갈라졌으며,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하나님을 아는 지식, 그리스도와의 연합과 칭의와 성화라는 두 겹의 은혜, 하나님의 주권을 가르쳤습니다.
  3. 재세례파와 급진 종교개혁1525년 취리히에서 믿음을 고백한 어른들이 서로 세례를 베풀면서 재세례파가 시작되었습니다. 그들은 회개하고 믿는 이들의 교회, 신자의 세례, 권징, 칼과 맹세를 거부하는 제자의 길을 가르쳤고, 가톨릭과 개신교 양쪽에서 박해를 받으면서도 메노파와 후터파로 이어졌습니다. 루터교회와 개혁교회는 유아세례와 위정자와 맹세에서 그들과 달랐습니다.
  4. 가톨릭 개혁과 영국의 종교개혁16세기에는 루터와 칼뱅의 길 말고도 두 개혁의 길이 더 있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예수회와 트리엔트 공의회(1545–1563)로 스스로를 새롭게 하며 자기 가르침을 분명히 했고, 잉글랜드에서는 왕이 로마와 결별하면서 시작된 개혁이 크랜머의 『공동기도서』와 39개 신조로 자리를 잡았습니다.

종교개혁 이후 1600–1900

  1. 정통주의와 청교도17세기 개신교회는 종교개혁의 가르침을 정밀하게 정리하고 지키는 일에 힘썼습니다. 루터교와 개혁교회의 정통주의 신학자들, 아르미니우스와 도르트 총회의 논쟁, 웨스트민스터 총회와 청교도들은 바른 교리와 거룩한 삶을 함께 붙들려 했고, 그 열매는 요리문답과 가정 예배와 매튜 헨리의 주석으로 오늘까지 이어집니다.
  2. 경건주의와 대각성17세기 말 독일의 경건주의는 바른 교리가 마음과 삶에 뿌리내리기를 구하며 말씀 읽기와 작은 모임, 사랑과 선교를 일으켰습니다. 18세기 대각성 때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는 거듭남을 전했고, 에드워즈는 참된 신앙의 감정을 그 열매로 분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3. 웨슬리와 감리교 운동18세기 잉글랜드에서 존 웨슬리와 찰스 웨슬리 형제는 믿음으로 받는 구원과 성령이 주시는 확신, 사랑으로 온전해지는 거룩한 삶을 들판에서 전하고 작은 모임으로 길렀습니다. 이 운동은 감리교회가 되어 세계로 퍼졌고, 1885년 한국에도 들어왔습니다.
  4. 계몽주의와 근대 신학18세기 계몽주의는 이성을 모든 것의 재판관으로 세웠고, 19세기 신학자들은 그 앞에서 기독교를 다시 설명하려 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에서 하르낙까지의 근대 신학은 정직한 역사와 마음의 신앙을 물었지만,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으면서 복음의 중심을 잃었다고 보았습니다.
  5. 19세기 복음주의와 선교, 그리고 한국1792년 윌리엄 캐리의 호소로 시작된 근대 선교 운동은 19세기에 복음을 온 세계로 실어 날랐습니다. 영국과 미국에서 설교자와 신학자들이 복음과 성경의 권위를 붙드는 동안, 한국에는 선교사보다 한글로 옮긴 성경이 먼저 들어왔고 1885년 부활절에 선교사들이 제물포에 닿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