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3과

성경을 해석하는 길

교회는 처음부터 성경 전체에서 그리스도를 읽었고, 교부들과 중세는 문자 너머의 영적인 뜻을 찾았으며, 종교개혁자들은 본문의 평이한 뜻과 성경으로 성경을 푸는 길을 세웠습니다. 오늘 우리는 문맥과 장르와 성경 전체를 살피며, 교회와 함께 기도하는 마음으로 그리스도를 중심에 두고 읽습니다.

예수께서 풀어 주신 성경

예수께서 부활하신 그날, 엠마오로 가던 두 제자는 십자가 앞에서 소망을 잃은 채 걷고 있었습니다. 그들 곁에 오신 예수께서 성경을 풀어 주셨습니다. 누가는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고 전합니다 (눅 24:27). 그날 밤 예루살렘에 모인 제자들에게도 같은 일을 하셨습니다.

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여전히 너희와 함께 있었을 때에 너희에게 말한 말들 곧 모세의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과 시편에 나에 관하여 기록된 모든 것이 반드시 성취되어야 하리라 한 말들이 이것들이라, 하시고 그때에 그들의 지각을 여사 그들이 성경 기록들을 깨닫게 하시며

눅 24:44-45

교회의 성경 해석은 여기서 시작합니다. 매튜 헨리는 이 장면을 두고 "그리스도는 성경의 가장 훌륭한 해설자이십니다"라고 하며 매튜 헨리, 성경 어디를 읽든 멀리 가지 않아 그리스도에 관한 예언이나 약속이나 모형을 만난다고 말합니다. "복음 은혜의 금실이 구약의 온 직물을 관통하여 흐르고 있습니다" 매튜 헨리.

사도들도 그렇게 읽었습니다. 바울은 광야의 이스라엘이 겪은 일을 두고, 개역한글로 "저희에게 당한 이런 일이 거울이 되고 또한 말세를 만난 우리의 경계로 기록하였느니라"고 말합니다 (고전 10:11). 여기서 ‘거울’로 옮긴 말은 헬라어 (6절)와 그 부사형(11절)이고, 이 말에서 ‘모형’이라는 해석 용어가 나왔습니다. 실제로 있었던 사람과 사건이 뒤에 올 그리스도와 구원을 미리 보여 준다는 읽기입니다. 갈라디아서에서 바울은 하갈과 사라 이야기를 두고 "그것들은 풍유니라. 이들은 두 언약인데 하나는 시내 산에서 나와 속박 당하게 하는 자니 곧 하갈이라."라고 하는데 (갈 4:24), 여기 쓰인 동사가 , ‘다른 것을 빗대어 말하다’입니다. 웨슬리는 이 말을 "한 가지를 말하면서 다른 것을 의도하는 비유적인 말"이라고 풉니다 웨슬리. 그러니 성경 안에서 이미 문자 너머의 뜻을 읽는 길이 열려 있었던 셈입니다. 물음은 그 길을 어디까지 걸어도 되느냐였습니다.

문자와 영: 교부들과 중세

230년 무렵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는 『원리론』 4권에서 성경 해석의 길을 말했는데, 흔히 이것이 성경 해석을 체계 있게 다룬 첫 그리스도교 글로 꼽힙니다. 사람에게 몸과 혼과 영이 있듯 성경에도 세 겹의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단순한 사람은 성경의 ‘몸’, 곧 글자 그대로의 이야기에서 덕을 세우고, 조금 나아간 사람은 ‘혼’, 곧 삶을 위한 교훈에서, 온전한 사람은 ‘영’, 곧 그리스도와 하늘의 일을 가리키는 뜻에서 배운다고 했습니다 오리게네스, 원리론 4권. 그는 성경의 한 글자도 헛되지 않다고 믿었기에 깊은 뜻을 찾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 전통은 이 영적인 뜻을 사랑했고, 크리소스토무스로 대표되는 안디옥 전통은 본문의 평이한 역사적 뜻을 더 무겁게 여겼습니다. 이 두 흐름은 이 과정의 교부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었나 과에서 더 다룹니다.

교부들이 비유를 어떻게 읽었는지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에서 잘 보입니다 (눅 10:30-37). 앱의 카테나에서 아우구스티누스는 강도 만난 사람을 아담으로, 예루살렘을 하늘의 본향으로 읽고 "여리고는 달이라고 해석되며 우리의 죽을 운명을 나타내니"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이 읽기에서 사마리아인은 그리스도이시고 주막은 교회입니다. 데나리온 둘은 암브로시우스에게는 두 언약, 아우구스티누스에게는 사랑의 두 계명, 오리게네스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의 신비를 아는 지식입니다. 그러면서도 교부들은 예수께서 비유 끝에 하신 "그가 이르되, 그에게 긍휼을 베푼 자니이다, 하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눅 10:37) 놓치지 않았습니다. 같은 카테나에서 크리소스토무스는 이 말씀을 이렇게 풉니다. "이방인이든 유대인이든 도움이 필요하면 따지지 말라" 크리소스토무스. 암브로시우스도 "이웃을 만드는 것은 혈연이 아니라 긍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암브로시우스.

중세 교회는 이런 읽기를 네 가지 뜻으로 정리했습니다. 5세기의 수도사 요한 카시아누스가 든 예로 널리 알려진 것이 예루살렘입니다. 문자적으로 예루살렘은 유대 땅의 성읍이고, 알레고리로는 그리스도의 교회이며, 도덕적으로는 사람의 영혼이고, 아나고기로는 장차 올 하늘의 도성입니다. 중세 후기에는 문자는 일어난 일을, 알레고리는 믿을 것을, 도덕적 뜻은 행할 것을, 아나고기는 향해 갈 곳을 가르친다는 짧은 라틴어 시가 널리 쓰였습니다.

13세기의 토마스 아퀴나스는 이 네 뜻을 받아들이면서도 중요한 한계를 그었습니다. 모든 영적인 뜻은 문자적 뜻 위에 서 있고, 논증은 문자적 뜻에서만 끌어낼 수 있으며, 믿음에 꼭 필요한 것 가운데 성경이 다른 곳에서 문자적으로 말하지 않는 것은 영적인 뜻에도 없다는 것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1부 1문 10항.

종교개혁: 평이한 뜻과 그리스도

종교개혁자들은 아퀴나스가 그은 선을 더 굵게 그었습니다. 루터는 젊은 시절 네 가지 뜻을 따라 성경을 풀었지만, 차츰 본문의 문법적이고 역사적인 뜻, 곧 저자가 실제로 말한 뜻이 성경의 참뜻이라고 가르쳤습니다. 칼뱅도 갈라디아서의 하갈과 사라를 풀며, 성경의 참뜻은 자연스럽고 분명한 뜻이니 그것을 굳게 붙들라고 했습니다. 개혁자들은 원어로 성경을 읽었고, 루터는 사람들이 자기 말로 읽도록 성경을 독일어로 옮겼습니다.

이 길은 두 원칙으로 정리되었습니다. 하나는 성경이 성경을 푼다는 것입니다. 1646년의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경 해석의 무오한 규칙은 성경 자체이다. 그러므로 어느 성경 구절의 참되고 온전한 뜻(그것은 여러 가지가 아니고 하나이다)에 관하여 의문이 있을 때에는, 더 분명하게 말하는 다른 구절들로 그것을 찾아 알아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9항

한 구절의 참뜻이 여러 가지가 아니라 하나라는 고백에는 네 가지 뜻에 대한 응답이 담겨 있습니다. 다른 하나는 그리스도가 성경의 중심이시라는 것입니다. 개혁자들은 알레고리를 경계했지만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읽기를 그만두지 않았습니다. 예수께서 친히 그렇게 읽으셨기 때문입니다.

오늘 성경을 읽는 길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먼저 문맥을 봅니다. 한 구절은 그 단락과 그 책 안에서 뜻을 얻습니다. 다음으로 장르를 봅니다. 시와 역사와 율법과 비유와 편지와 묵시는 저마다 다른 방식으로 진리를 말합니다. 그리고 성경 전체를 봅니다. 창세기에서 요한계시록까지 한 이야기가 흐르고, 그 이야기는 그리스도께 모입니다. 어려운 본문은 더 분명한 본문으로 풀고, 교회가 신경으로 고백해 온 ‘신앙의 규칙’ 안에서 읽습니다 (이 과정의 신학의 원천 과).

교부들과 중세의 영적인 읽기에서 배울 것도 있습니다. 그들은 성경 전체가 그리스도를 증거하며, 성경이 머리만이 아니라 믿음과 사랑과 소망을 위해 주어졌다는 것을 바로 보았습니다. 사마리아인에게서 우리를 찾아오신 그리스도를 본 것은 복음과 어긋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문맥과 저자의 뜻에 매이지 않은 알레고리는 길을 잃기 쉬웠습니다. 데나리온 둘이 해석자마다 다른 것을 뜻했듯, 본문이 말하지 않는 것을 본문에 넣어 읽게 되고, 그러면 성경이 우리를 고치는 대신 우리가 성경을 우리 생각에 맞추게 됩니다. 성경 자체가 보여 주는 모형론과 해석자의 상상은 구별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성경은 교회 안에서, 기도하며 읽습니다. 엠마오의 제자들처럼 우리에게도 마음을 열어 주실 분이 필요합니다.

주께서 내 눈을 여사 주의 법에서 나오는 놀라운 것들을 내가 보게 하소서.

시 119:18

주석을 읽는 법은 주석이란 무엇이며 어떻게 읽는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성경 읽기는 성경은 어떻게 읽어야 하는가?에서, 어려운 본문들은 성경에는 모순이 있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연습

  1. 연습 1 / 7

    누가복음 24장에서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7

    오리게네스가 『원리론』에서 사람의 몸과 혼과 영에 견준 것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7

    중세의 네 가지 뜻으로 예루살렘을 읽을 때, 알레고리적 뜻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7

    토마스 아퀴나스가 성경의 여러 뜻에 관해 가르친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7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장 9항이 말하는 성경 해석의 무오한 규칙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7

    카테나에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데나리온 둘을 두고 교부들의 풀이가 서로 다르다는 사실이 보여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7

    갈라디아서 4:24에서 바울이 하갈과 사라 이야기에 쓴 동사 알레고레오는 무슨 뜻입니까?

출처

  1. 오리게네스, 원리론 — 220–230년경. 만물의 회복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으며, 후대 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 1265–1274년. 중세 신학을 집대성한 저작. 하나님과 창조와 섭리, 인간과 은혜, 그리스도와 성례를 두루 다루며, 하나님은 이성으로도 알려지시나 구원의 진리는 계시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