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건주의와 대각성
17세기 말 독일의 경건주의는 바른 교리가 마음과 삶에 뿌리내리기를 구하며 말씀 읽기와 작은 모임, 사랑과 선교를 일으켰습니다. 18세기 대각성 때 조나단 에드워즈와 조지 휫필드는 거듭남을 전했고, 에드워즈는 참된 신앙의 감정을 그 열매로 분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마음의 신앙을 찾아서
30년 전쟁(1618–1648)이 지나간 독일의 루터교회는 바른 신앙고백과 학식 있는 신학자들을 갖추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프랑크푸르트의 루터교 목사 필리프 야코프 슈페너(1635–1705)가 보기에, 많은 목사와 신자에게 신앙은 바른 교리를 아는 것과 예배에 참석하는 것에 머물러 있었고, 그는 이것을 아파했습니다. 그는 1670년 무렵부터 자기 집에서 신자들이 함께 성경을 읽고 나누는 ‘경건 모임’을 열었고, 1675년 『경건한 소원』을 펴냈습니다 슈페너, 경건한 소원. 그는 이런 모임을 교회를 떠나는 길이 아니라 교회를 안에서 새롭게 하는 ‘교회 안의 작은 교회’로 여겼습니다.
이 작은 책은 교회를 새롭게 할 길을 몇 가지 제안했습니다. 설교만이 아니라 신자들이 집과 모임에서 성경 전체를 더 널리 읽을 것,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루터의 가르침을 서로 가르치고 권면하며 실제로 살 것, 기독교는 아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사랑으로 행하는 것임을 가르칠 것, 다른 교회와의 논쟁에서도 이기려 하기보다 기도와 사랑으로 대할 것, 목사가 될 이들을 학문과 함께 경건으로 기를 것, 설교가 듣는 이의 속사람을 세우게 할 것입니다.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라는 가르침은 온 교회를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이라 부른 말씀에 (벧전 2:9) 뿌리를 둡니다.
슈페너의 뜻을 이어받은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1663–1727)는 새로 세워진 할레 대학의 교수이자 목사로서 1690년대에 고아원을 열었습니다. 그 일은 학교와 성경을 찍어 내는 일로 커졌고, 할레에서 배운 이들 가운데에는 1706년 인도 남부로 건너간 선교사들도 있었다고 전해집니다. 경건주의는 이렇게 고아와 가난한 이를 돌보는 일과 먼 나라 선교를 함께 일으켰습니다. 경건주의 학자 요한 알브레히트 벵겔의 신약 주해는 훗날 존 웨슬리의 주해에도 많이 옮겨졌습니다 (웨슬리 주해).
프랑케의 학교에서 배운 니콜라우스 루트비히 폰 친첸도르프 백작(1700–1760)은 박해를 피해 온 모라비아 형제단, 곧 얀 후스의 신앙을 이어 온 이들을 자기 영지에 받아들였고, 그들은 그곳을 ‘주님의 지키심’이라는 뜻의 헤른후트라고 불렀습니다. 1727년 이 공동체는 성찬 가운데 깊은 화해와 새로워짐을 경험했고, 그해부터 하루 스물네 시간 돌아가며 기도하는 일을 시작해, 전해지기로 백 년 가까이 이어 갔습니다. 1732년에는 서인도 제도의 노예들에게 첫 선교사를 보냈습니다.
경건주의는 많은 선물을 남겼습니다. 성경이 다시 신자들의 손에 들렸고, 작은 모임에서 서로 돌보는 교회가 되살아났으며, 개신교 선교가 본격적으로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위험도 있었습니다. 마음을 강조하다가 교리와 진리를 가볍게 여기거나, 자기 체험을 기준으로 남의 신앙을 판단하거나, 경건한 이들끼리 교회에서 떨어져 나가는 일이 생겼습니다.
정통 루터교 신학자들이 걱정한 것도 이 점이었습니다. 모라비아 형제단의 학교에서 자란 슐라이어마허가 훗날 종교의 자리를 무엇보다 마음의 감정에서 찾은 이야기는 이 과정의 계몽주의와 근대 신학 과에서 이어집니다.
대각성: 에드워즈와 휫필드
1730–40년대에는 대서양 양쪽에서 큰 부흥이 일어났습니다. 아메리카 식민지에서는 이를 ‘대각성’이라 부르고, 영국에서는 ‘복음주의 부흥’이라 부릅니다. 매사추세츠 노샘프턴의 회중교회 목사 조나단 에드워즈(1703–1758)는 1734–35년 자기 교회에 일어난 부흥을 기록해 널리 알렸습니다. 그는 칼뱅주의 신학자였고, 하나님의 아름다움과 거룩함을 깊이 묵상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무엇보다 1741년 엔필드(오늘날 코네티컷주)에서 한 설교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로 기억됩니다 에드워즈,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 사람이 거미를 불 위에 들고 있듯 하나님이 죄인을 멸망 위에 붙들고 계시며, 그분의 손이 놓지 않으시는 것만이 죄인을 지키고 있다고 경고한 설교입니다. 그러나 이 설교는 위협으로 끝나지 않고, 지금 자비의 문이 활짝 열려 있으니 그리스도께 피하라는 부름으로 끝납니다. 목격자의 기록에 따르면 설교가 끝나기도 전에 사람들이 울부짖어 설교를 멈추어야 했다고 합니다.
같은 시기에 잉글랜드 국교회의 젊은 사제 조지 휫필드(1714–1770)는 교회 강단이 닫히자 1739년부터 들판과 광장에서 설교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는 대서양을 여러 번 건너 영국과 아메리카에서 수많은 사람에게 설교했고, 벤저민 프랭클린은 그의 목소리가 수만 명에게 들릴 만했다고 회고했습니다. 휫필드가 거듭 전한 말씀은 니고데모에게 하신 예수의 말씀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응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다시 태어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왕국을 볼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요 3:3). 예수께서는 이 일이 사람의 힘이 아니라 성령으로 되는 일임을 말씀하시고 "내가 네게 이르기를, 너희가 반드시 다시 태어나야 하리라, 한 것에 놀라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요 3:7).
이 부흥에 함께한 존 웨슬리는 이 구절을 풀며, 메시야 나라의 복을 받으려면 "삶뿐 아니라 마음 전체의 변화가 필요"하다고 씁니다 웨슬리. 거듭남이 삶을 고치는 것만을 뜻한다면, 주님은 새로운 것을 알려 주신 것이 아니라 이미 분명하던 것을 도리어 흐리게 하신 셈이 된다는 것입니다. 칼뱅주의자 휫필드와 아르미니우스주의자 웨슬리는 예정을 두고 생각이 달랐지만, 거듭남을 전하는 일에서는 한목소리였습니다. 웨슬리의 이야기는 웨슬리와 감리교 운동 과에서 이어지고, 거듭남의 가르침은 교리 과정의 거듭남과 성령의 내주 과에서 다룹니다.
참된 신앙의 감정
부흥에는 그늘도 따랐습니다. 어떤 순회 설교자들은 회심 체험을 말하지 못하는 목사들을 거듭나지 않은 자라고 비난했고, 소리 지르고 쓰러지는 일을 성령의 표징으로 내세우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보스턴의 목사 찰스 촌시 같은 이들은 부흥 전체를 들뜬 열광이라고 비판했고, 교회들은 부흥을 지지하는 쪽과 반대하는 쪽으로 갈라졌습니다. 에드워즈 자신도 1750년 성찬 참여 자격을 두고 교인들과 갈등하다 노샘프턴 교회에서 해임되었습니다. 그 뒤 그는 변경의 스톡브리지에서 원주민들에게 설교했고, 1758년 뉴저지 대학(오늘날의 프린스턴 대학)의 총장이 된 지 얼마 되지 않아 천연두 예방 접종의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에드워즈는 부흥을 버리지도, 모든 것을 감싸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1746년 『신앙 감정론』에서 참된 신앙은 상당 부분 거룩한 감정에 있다고 말했습니다 에드워즈, 신앙 감정론. 그가 말한 감정은 잠깐 끓어오르는 기분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랑하고 죄를 미워하며 그리스도를 기뻐하는 마음의 깊은 기울어짐입니다. 그는 이 책의 본문으로 베드로의 말씀을 골랐습니다.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였으나 사랑하는도다. 지금도 너희가 그분을 보지 못하나 믿으며 이루 말할 수 없고 영광이 가득한 기쁨으로 기뻐하나니
벧전 1:8
에드워즈는 감정이 얼마나 강한지, 몸에 어떤 현상이 나타나는지, 신앙에 대해 얼마나 많이 말하는지는 그 감정이 참된지 거짓인지를 증명하지 못한다고 분별했습니다. 참된 감정의 가장 분명한 표지는 삶의 열매, 곧 그리스도인다운 행실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도 "너희가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리니 사람들이 가시나무에서 포도를 또는 엉겅퀴에서 무화과를 거두겠느냐?"라고 하셨고 (마 7:16-20), 바울은 "그러나 성령의 열매는 사랑과 기쁨과 화평과 오래 참음과 부드러움과 선함과 믿음과 온유와 절제니 이 같은 것을 대적할 법이 없느니라."라고 말합니다 (갈 5:22-23).
경건주의와 대각성은 신앙이 머리에만 머물 수 없고, 사람은 거듭나야 하며, 참된 은혜는 마음을 움직이고 삶으로 열매 맺는다는 것을 교회에 다시 일깨웠습니다. 동시에 감정과 체험이 성경의 진리에서 떨어져 나갈 때 무엇이 생기는지도 보여 주었습니다. 에드워즈가 마음의 신앙을 가장 힘써 옹호하면서 가장 엄격하게 분별한 사람이었다는 것이 이 시대의 교훈입니다. 회개와 돌이킴에 대해서는 회개란 무엇인가?도 함께 읽어 보십시오.
연습
- 연습 1 / 8
슈페너가 『경건한 소원』(1675)에서 제안한 것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8
할레의 아우구스트 헤르만 프랑케가 한 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8
헤른후트의 모라비아 형제단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8
에드워즈의 설교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1741)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8
에드워즈는 『신앙 감정론』(1746)에서 참된 신앙의 감정을 무엇으로 분별하라고 했습니까?
- 연습 6 / 8
조지 휫필드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8
웨슬리는 요한복음 3:3을 풀며 거듭남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 연습 8 / 8
경건주의와 대각성을 공정하게 평가한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필리프 야코프 슈페너, 경건한 소원 1675 — 말씀을 더 널리 읽기, 만인 제사장의 실천, 논쟁보다 사랑, 경건한 목회자 양성을 제안한 경건주의의 선언.
- 조나단 에드워즈, 진노하신 하나님의 손에 있는 죄인들 1741 — 엔필드에서 한 설교. 하나님의 손, 곧 그분의 기뻐하심만이 죄인을 멸망에서 붙들고 있다고 경고하며 그리스도께 피하라고 부른다.
- 조나단 에드워즈, 신앙 감정론 1746 — 참된 신앙은 거룩한 감정에 크게 있으며, 그 참됨은 삶의 열매로 드러난다고 분별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