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23과

계몽주의와 근대 신학

18세기 계몽주의는 이성을 모든 것의 재판관으로 세웠고, 19세기 신학자들은 그 앞에서 기독교를 다시 설명하려 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에서 하르낙까지의 근대 신학은 정직한 역사와 마음의 신앙을 물었지만,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이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지 않으면서 복음의 중심을 잃었다고 보았습니다.

연표에서 보기

이성이 재판관이 되다

종교개혁 뒤 유럽은 신앙의 차이가 얽힌 긴 전쟁들에 지쳐 있었고, 뉴턴의 물리학은 우주가 정확한 법칙을 따라 움직인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18세기의 계몽주의는 이런 경험에서 자랐습니다. 사람은 교회나 전통의 권위에 기대지 말고 자기 이성으로 생각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칸트는 1784년의 짧은 글에서 계몽을 사람이 스스로 짊어진 미성숙에서 벗어나는 일이라 부르고, ‘감히 알려고 하라’(sapere aude)를 그 표어로 삼았습니다. 이성은 이제 성경과 교리까지 심판하는 재판관이 되었습니다.

교양인 가운데 많은 이가 하나님을 버리지는 않았지만, 그들이 받아들인 것은 흔히 이신론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세상을 시계처럼 지으시고 그 법칙대로 돌아가게 두셨을 뿐 역사에 끼어들지 않으신다는 생각입니다. 이신론자들은 하나님과 덕과 영혼 불멸을 믿는 ‘자연 종교’는 누구나 이성으로 알 수 있다고 보고, 계시와 기적과 예언은 의심했습니다. 그들이 바란 것은 피를 부른 교리 다툼 없이 모든 사람이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인 신앙이었습니다.

스코틀랜드의 철학자 데이비드 흄(1711–1776)은 1748년 기적에 관한 고전적인 논증을 내놓았습니다 흄,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 10장. 그는 지혜로운 사람은 증거에 비례해 믿는다는 원칙에서 출발합니다. 자연법칙은 한결같은 경험으로 세워졌고 기적은 그 법칙을 깨뜨리는 일이니, 기적에 맞서는 증거는 경험이 줄 수 있는 가장 강한 증거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증언이 거짓일 가능성이 그 기적보다 더 믿기 어려운 경우가 아니라면 어떤 증언도 기적을 세우지 못한다고 했습니다. 또 기적 이야기에는 믿을 만한 교양 있는 증인이 넉넉하지 않고, 놀라운 일을 좋아하는 마음이 이야기를 키우며, 여러 종교의 기적 이야기가 서로를 지운다고 덧붙였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당시부터 이렇게 답해 왔습니다. 기적을 보았다는 증언을 미리 다 빼놓고 경험이 ‘한결같다’고 하면, 증명하려는 결론을 이미 전제하는 셈입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면 자연법칙은 자연이 보통 움직이는 방식을 적은 것이지 창조주가 하실 수 있는 일의 울타리가 아닙니다. 그리고 부활은 되풀이되는 일이 아니라 한 번 일어난 역사적 사건이므로, 그 증언을 하나하나 따져 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기적은 가능한가?).

독일 쾨니히스베르크의 이마누엘 칸트(1724–1804)는 더 깊은 물음을 던졌습니다. 1781년의 『순수이성비판』에서 그는 우리가 사물을 그 자체로가 아니라 우리 마음의 틀을 거쳐 나타나는 대로만 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경험 너머의 하나님은 이론 이성으로 증명할 수도 반박할 수도 없습니다. 칸트는 이렇게 지식을 제한해 신앙의 자리를 남긴다고 말했고, 하나님과 자유와 영혼 불멸은 우리 안의 도덕 법칙이 요청하는 것이라고 보았습니다. 1793년의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에서는 사람의 본성에 뿌리 깊은 악이 있음을 인정하면서도, 참된 종교는 우리의 의무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알고 도덕적으로 사는 데 있다고 했습니다 칸트,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예수는 도덕적으로 완전한 인간의 본이 되고, 교회의 예식과 교리는 그 도덕 종교를 실어 나르는 수레가 되었습니다.

슐라이어마허: 경건한 마음의 신학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1768–1834)는 흔히 ‘근대 신학의 아버지’로 불립니다. 개혁교회 군목의 아들로 태어나 모라비아 형제단의 학교에서 자랐고, 그곳에서 교리에 대한 의심을 품고 떠났습니다. 그러나 훗날 자기가 ‘더 높은 차원의’ 모라비아 형제단원이 되었다고 말했을 만큼, 그곳에서 배운 그리스도와의 살아 있는 사귐을 평생 간직했습니다. 그는 베를린의 한 교회에서 오랫동안 설교자로 섬기며 베를린 대학에서 가르쳤습니다.

1799년 그는 베를린의 낭만주의자 벗들을 향해 『종교론: 종교를 경멸하는 교양인들에게』를 썼습니다 슐라이어마허, 종교론. 그들은 종교를 낡은 교리나 도덕 규칙쯤으로 여겼습니다. 슐라이어마허는 종교의 본질이 그런 앎이나 행위가 아니라 무한한 것에 대한 직관과 감정이라고 변호했습니다. 이성의 시대가 종교를 형이상학이나 도덕으로 줄이려 할 때, 그는 종교가 사람의 마음 깊은 곳에 고유한 자리를 가진다고 말한 것입니다.

훗날의 교의학 『기독교 신앙』에서 그는 경건의 본질을 ‘절대 의존의 감정’이라고 정의했습니다 슐라이어마허, 기독교 신앙. 우리는 세상의 많은 것에 조금씩 기대고 조금씩 영향을 주지만, 우리 존재 전체가 전적으로 의존하고 있다는 의식이 곧 하나님과의 관계라는 것입니다. 교리는 이 경건한 의식, 특히 나사렛 예수께서 이루신 구속을 경험한 교회의 의식을 말로 풀어 놓은 것입니다. 그에게 그리스도는 하나님 의식이 온전하셨던 구속자이고, 교회는 그 의식을 나누어 받는 공동체입니다. 그는 교양인들이 알아들을 말로 그리스도를 전하려 했습니다. 다만 이 방법에서는 교리의 근거가 하나님이 성경에서 하신 말씀보다 믿는 이들의 의식이 되었고, 그는 그리스도의 부활과 승천을 사도들의 증언으로 받아들이면서도 그리스도의 인격에 관한 교리의 본질적 부분으로 여기지 않았습니다.

역사 비평과 자유주의 신학

1835년 스물일곱 살의 다비트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1808–1874)가 펴낸 『예수의 생애』는 큰 소란을 일으켰습니다 슈트라우스, 예수의 생애. 그는 기적이 그대로 일어났다는 전통의 읽기도, 기적을 자연스러운 일로 풀어 버리는 합리주의자들의 읽기도 버렸습니다. 대신 복음서의 기적 이야기는 메시아를 기다리던 초대 교회가 구약의 본을 따라 저도 모르게 빚어낸 ‘신화’라고 했습니다. 그는 튀빙겐의 자리를 잃었고, 몇 해 뒤 취리히 대학에 임명되었을 때는 반발이 거세어 끝내 부임하지 못했습니다.

그 뒤 많은 학자가 복음서 뒤에 있다는 ‘역사적 예수’를 찾아 나섰습니다. 교회의 고백을 벗겨 내면 참 예수가 드러나리라 기대한 것입니다. 1906년 알베르트 슈바이처는 이 탐구가 저마다 자기 시대의 이상을 닮은 예수를 그려 냈다고 평가했습니다.

19세기 후반 독일에서는 자유주의 신학이 꽃피었습니다. 알브레히트 리츨(1822–1889)은 신학이 형이상학 대신 예수 안에서 드러난 하나님이 우리에게 지니는 가치를 말해야 하고, 하나님 나라는 사랑으로 사는 도덕 공동체라고 가르친 것으로 흔히 요약됩니다. 아돌프 폰 하르낙(1851–1930)은 1899–1900년 겨울 베를린 대학에서 모든 학부의 학생들에게 강의했고, 이 강의가 1900년 『기독교의 본질』로 나왔습니다 하르낙, 기독교의 본질. 그는 시대마다 바뀌는 교리와 제도라는 껍질을 벗기면 예수의 단순한 가르침이라는 알맹이가 남는다고 했습니다. 그 알맹이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사람 영혼의 무한한 가치, 사랑의 계명이었고, 흔히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과 사람의 형제 됨으로 요약되었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전하신 복음은 아들이 아니라 아버지에 관한 것이라고까지 말했습니다.

같은 세기 덴마크의 쇠렌 키르케고르(1813–1855)는 전혀 다른 목소리를 냈습니다. 그는 모든 것을 설명하는 철학 체계도, 태어나면 누구나 그리스도인이 되는 편안한 국교회 기독교도 비판했습니다. 신앙은 역사 연구나 사변의 결론이 아니라, 한 사람이 하나님 앞에 홀로 서서 내리는 열정적인 결단이라는 것입니다. 그의 글은 20세기에 와서야 널리 읽혔습니다.

성경으로 달아 보기

이 사상가들이 물은 것 가운데는 귀한 것이 있습니다. 기독교는 역사 위에 서 있으니 정직한 역사 연구를 두려워할 까닭이 없습니다. 누가도 "모든 일을 맨 처음부터 완전히 이해한 나도 데오빌로 각하 당신에게 차례대로 써서 알리는 것을 좋게 생각하였으니" 뒤 복음서를 썼습니다 (눅 1:3). 슐라이어마허와 키르케고르는 신앙이 머리만이 아니라 마음 전체의 일임을 일깨웠고, 칸트와 하르낙은 사랑과 의무의 삶을 진지하게 여겼습니다.

그러나 복음주의자들은 그들이 복음의 중심을 잃었다고 보았습니다. 첫째, 성경을 사람의 종교 경험이나 도덕 의식을 적은 책으로만 읽었습니다. 베드로는 성경의 예언이 어디서 왔는지 이렇게 말합니다.

먼저 이것을 알라. 성경 기록의 대언은 결코 어떤 사적인 해석에서 나지 아니하였나니 대언은 옛적에 사람의 뜻으로 말미암아 나오지 아니하였고 오직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들은 성령님께서 자기들을 움직이시는 대로 말하였느니라.

벧후 1:20-21

바울도 "모든 성경 기록은 하나님의 영감으로 주신 것으로 교리와 책망과 바로잡음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라고 말합니다 (딤후 3:16). 매튜 헨리는 베드로의 말씀을 풀며 "성령께서 거룩한 사람들을 감동시켜 말하고 쓰게 하셨습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성경은 우리가 하나님에 대해 느낀 것의 기록이기 전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성경은 믿을 만한가?).

둘째, 죄와 은혜가 흐려졌습니다. 예수가 무엇보다 도덕의 스승이나 하나님 의식의 본이라면, 사람에게 필요한 것은 그분을 본받는 노력입니다. 셋째, 부활이 신화나 제자들의 체험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다시 사시지 않았다면 사도들의 전파도 헛되고 그들은 하나님의 거짓 증인이 된다고 말하며 (고전 15:14-17), "또 그리스도께서 일으켜지지 아니하셨으면 너희의 믿음이 헛되고 너희가 여전히 너희 죄들 가운데 있으며"라고 덧붙입니다 (고전 15:17). 슈트라우스보다 훨씬 앞서 웨슬리는 이 절에 "따라서 그들이 죄책에서 건짐을 받기 위해서는 (분명히 이루어진) 개혁 이상의 무엇이 필요하였으니, 곧 속죄입니다"라고 주해했습니다 웨슬리. 여기서 개혁은 삶을 고치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더 나은 도덕이 아니라 죄를 씻는 속죄이고, 하나님은 예수를 무덤에서 일으키심으로 그 속죄가 넉넉함을 증언하셨습니다 (예수는 정말 부활했는가?).

이 도전 앞에서 성경의 영감을 힘써 변호한 이들도 있었습니다. 프린스턴의 신학자들이 그러했고, 그들의 이야기는 이 과정의 19세기 복음주의와 선교, 그리고 한국 과에서 이어집니다. 이성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지만 말씀의 재판관이 아니라 말씀을 섬기는 종입니다. 근대 신학과 그에 대한 응답의 이야기는 20세기에도 이어집니다.

연습

  1. 연습 1 / 8

    이신론이 말하는 하나님은 어떤 분입니까?

  2. 연습 2 / 8

    흄이 기적에 대한 증언을 믿을 수 없다고 본 중심 논거는 무엇입니까?

  3. 연습 3 / 8

    슐라이어마허는 경건(종교)의 본질을 무엇이라고 했습니까?

  4. 연습 4 / 8

    슈트라우스는 『예수의 생애』에서 복음서의 기적 이야기를 어떻게 읽었습니까?

  5. 연습 5 / 8

    하르낙의 『기독교의 본질』(1900)이 예수의 가르침의 알맹이로 본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키르케고르는 신앙을 무엇이라고 보았습니까?

  7. 연습 7 / 8

    부활이 사실이 아니라면 어떻게 된다고 바울은 말합니까?

  8. 연습 8 / 8

    복음주의의 평가로 이 과의 내용에 맞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1. 데이비드 흄, 인간 지성에 관한 탐구 10장 / Section 10 (1748) — 기적에 대한 증언을 믿을 수 없다는 고전적 논증.
  2. 이마누엘 칸트, 이성의 한계 안에서의 종교 1793 — 종교를 도덕의 관점에서 다시 해석한다. 참 종교는 도덕적 삶에 있다고 본다.
  3.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종교론: 종교를 경멸하는 교양인들에게 1799 — 종교의 본질은 지식이나 도덕이 아니라 우주(무한자)에 대한 직관과 감정이라고 변호한다.
  4. 프리드리히 슐라이어마허, 기독교 신앙 1821–1822 — 경건을 ‘절대 의존의 감정’으로 보고, 교리를 그 의식을 서술한 것으로 정리한 교의학.
  5. 다비트 프리드리히 슈트라우스, 예수의 생애 1835 — 복음서의 기적 이야기를 초대 교회가 지어낸 신화로 읽어 큰 논쟁을 일으켰다.
  6. 아돌프 폰 하르낙, 기독교의 본질 1900 — 예수의 가르침을 하나님의 아버지 되심, 사람의 형제 됨, 영혼의 무한한 가치로 요약한 자유주의 신학의 대표 강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