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케아: 성자는 참 하나님이신가
4세기 교회는 아리우스의 가르침 앞에서 아들이 가장 높은 피조물인지, 아버지와 같은 참 하나님이신지를 물었습니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라고 고백했고, 아타나시우스와 카파도키아 교부들의 긴 싸움 끝에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오늘 우리가 고백하는 니케아 신경을 내놓았습니다.
알렉산드리아에서 시작된 질문
교회는 처음부터 예수께 기도하고 그분을 찬송했습니다. 112년 무렵 소 플리니우스도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송한다고 황제에게 보고했습니다 소 플리니우스, 서간집 10.96. 그러나 아들이 아버지와 어떤 관계이신지를 두고 4세기 초 교회 전체가 흔들렸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참 하나님이신가, 아니면 하나님이 지으신 가장 높은 피조물인가?
318년 무렵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는 뒤의 답을 내놓았습니다. 그가 무엇보다 지키려 한 것은 하나님이 한 분이시라는 고백이었습니다. 오직 아버지만이 나지 않으시고 시작이 없으신 참 하나님이시며, 아들이 아버지와 본질이 같다면 하나님이 둘이 되거나 하나님의 본질이 물질처럼 나뉜다고 그는 염려했습니다. 그래서 그는 아들이 모든 시대 이전에 아버지의 뜻으로 무로부터 지음을 받은, 다른 피조물들과 같지 않은 ‘완전한 피조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하나님이 아들을 통해 만물을 지으셨지만 아들에게는 시작이 있다는 것이고, 반대자들은 이를 ‘그분이 계시지 않은 때가 있었다’는 한마디로 요약해 전했습니다.
아리우스는 성경에서 근거를 찾았습니다. 교회는 오래전부터 잠언 8장의 지혜를 그리스도로 읽어 왔는데, 개역한글이 "여호와께서 … 나를 가지셨으며"라고 옮긴 구절을 (잠 8:22) 당시 교회가 읽던 헬라어 구약은 ‘주께서 나를 지으셨다’로 옮겼습니다. 히브리어 동사는 ‘가지다, 얻다’로도 ‘짓다’로도 읽힐 수 있지만, 아리우스는 이 구절을 아들이 지음을 받았다는 증거로 읽었습니다.
그는 바울이 아들을 부른 "그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라는 말에서 (골 1:15) ‘먼저 나신 자’, 곧 를 첫 피조물로 읽었습니다. 예수께서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 즉,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나니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고 말하였으므로 기뻐하였으리라. 이는 내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기 때문이니라."고 하신 말씀도 (요 14:28), 배고프고 피곤하시며 아버지께 기도하시는 복음서의 예수도, 아리우스와 그를 따른 이들에게는 아들이 아버지와 같을 수 없다는 증거로 보였습니다.
그의 가르침은 성경을 가볍게 여긴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하나 되심과 아버지의 유일하심을 진지하게 붙들고 성경으로 뒷받침한 설명이었습니다. 그래서 많은 이에게 설득력이 있었고,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알렉산드로스가 그를 정죄한 뒤에도 논쟁은 동방 교회 전체로 번졌습니다.
니케아 공의회
324년 로마 제국의 유일한 황제가 된 콘스탄티누스는 교회가 하나 되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325년 소아시아의 니케아(오늘날 튀르키예의 이즈니크)로 감독들을 불러 모았습니다. 전해지는 수는 318명이지만, 학자들은 대개 250–300명쯤으로 봅니다. 교회는 이 회의를 첫 번째 보편 공의회로 기억합니다.
아타나시우스가 훗날 전한 바에 따르면, 공의회는 처음에 아들을 하나님에게서 나신 분, 아버지의 형상이라 부르는 성경의 말로 고백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아리우스 편은 그 말들을 모두 받아들이면서 자기 뜻으로 풀었습니다. 그래서 공의회는 성경에 없는 한 낱말을 골랐습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동일 본질’, 곧 ‘호모우시오스’(homoousios)이시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성경에 새 내용을 더한 것이 아니라, 아들이 아버지와 같은 하나님이시라는 성경의 뜻을 달리 풀 수 없게 둘러친 울타리였습니다.
325년의 신경은 아들이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셨으며 지음을 받지 않으셨다고 고백하고, ‘그분이 계시지 않은 때가 있었다’고 말하는 이들을 정죄했습니다. 성령에 관해서는 ‘그리고 성령을 믿습니다’라는 한 줄뿐이었습니다.
아리우스는 이미 ‘호모우시오스’를 아들을 아버지의 한 조각으로 만드는 말이라며 거부했고, 동방의 많은 감독도 이 말이 아버지와 아들을 한 위격으로 섞는 것처럼 들릴까 걱정했습니다. 이 걱정이 긴 싸움으로 이어집니다.
니케아를 둘러싼 이야기 가운데는 근거가 약한 것도 있습니다. 산타클로스 이야기의 뿌리가 된 미라의 니콜라우스가 회의 중에 아리우스의 뺨을 때렸다는 이야기는 이른 기록에 없는 후대의 전설입니다. 공의회가 성경의 책들을 정했다는 말도 흔히 들리지만, 공의회의 결정 가운데 정경에 관한 것은 없습니다 (교리 과정의 정경 과 참고).
아타나시우스: 오직 하나님만 구원하신다
니케아 신앙을 가장 굳게 지킨 사람은 아타나시우스(약 296–373년)였습니다. 그는 젊은 부제로 알렉산드로스 감독을 따라 공의회에 갔고, 328년 알렉산드리아의 감독이 되었습니다. 그의 확신은 구원에 뿌리를 두었습니다. 죄로 썩어 가는 사람을 새롭게 하는 일은 처음에 사람을 지으신 하나님의 말씀만이 하실 수 있습니다. 지워진 초상화를 다시 그리려면 그 얼굴의 주인이 다시 와서 앉아야 하듯, 아버지의 참 형상이신 아들이 몸소 오셔야 했다는 것입니다 아타나시우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아리우스파 반박』에서 그는 더 나아갑니다. 피조물은 다른 피조물을 하나님께 이어 줄 수 없습니다. 본래 아들이신 분이 사람이 되셔서 자기 영을 주시기에 우리가 은혜로 하나님의 자녀가 된다는 것입니다 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파 반박. 요한도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 "그분을 받아들인 자들 곧 그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는 권능을 그분께서 주셨으니"라고 말합니다 (요 1:12).
아타나시우스가 거듭 붙든 말씀은 요한복음의 첫머리였습니다.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 바로 그분께서 처음에 하나님과 함께 계셨고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요 1:1-3
요한은 말씀이 태초에 ‘생겨났다’고 하지 않고 ‘계셨다’고 하며, 지은 것이 하나도 그분 없이 된 것이 없다고 하니 그분 자신은 지은 것들 가운데 들 수 없습니다. 아리우스파의 표어에 대한 답이 이 첫 절에 이미 들어 있는 셈입니다.
그는 다른 말씀들도 함께 읽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고 (요 10:30),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빌립아, 내가 이렇게 오랫동안 너희와 함께 있었으되 네가 아직도 나를 알지 못하느냐? 나를 본 자는 아버지를 보았거늘 어찌 네가 말하기를, 우리에게 아버지를 보여 주소서, 하느냐?"이라고 하셨습니다 (요 14:9). 히브리서는 아들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 아들께서는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뒤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이라 부르고 (히 1:3), 바울은 그분이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라고 말합니다 (빌 2:6). 빛이 있으면 그 광채가 늘 함께 있듯, 아버지께서 아들 없이 계신 때는 없었다고 아타나시우스는 말합니다.
아리우스 편은 요한복음 10:30을 두 분의 뜻이 같다는 말로 풀었습니다. 니케아 신앙 때문에 유배되었던 푸아티에의 힐라리우스는 이렇게 답합니다. "이 하나됨은 창조가 아니라 나심이, 뜻이 아니라 능력이, 일치가 아니라 본성이 이루는 것입니다" 힐라리우스.
교회는 아리우스가 든 구절들도 피하지 않았습니다. ‘먼저 나신 자’는 맨 처음 지음 받았다는 뜻보다 으뜸이자 상속자의 자리를 가리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두고 "나 또한 그를 나의 처음 난 자로 삼아 땅의 왕들보다 높게 하며"라고 하셨고 (시 89:27), 골로새서는 바로 다음 절에서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라고 말합니다 (골 1:16). 아타나시우스는 잠언 8:22를 아들이 사람이 되신 일에 관한 말씀으로 읽었고, 오늘날 많은 해석자는 이 장을 지혜를 의인화한 시로 읽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 즉,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나니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고 말하였으므로 기뻐하였으리라. 이는 내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기 때문이니라."는 말씀은 (요 14:28) 여러 교부가 아버지께서 아들을 낳으신 근원이시라는 뜻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종의 형체를 입으신 그리스도에 관한 말씀으로 읽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교회가 아리우스의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까닭은 성경 전체가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분명한 선을 긋고 아들을 창조주 쪽에 두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서는 모든 사람이 "이것은 모든 사람이 아버지를 공경하는 것 같이 아들을 공경하게 하려 하심이라. 아들을 공경하지 아니하는 자는 그를 보내신 아버지를 공경하지 아니하느니라." 하려 하십니다 (요 5:23). 그런데 하나님은 "나는 주니라. 그것은 내 이름이니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며 내 찬양을 새긴 형상들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셨으니 (사 42:8), 예배받는 피조물은 한 분 하나님 곁의 둘째 신이 되고 맙니다. 하나님의 하나 되심을 지키려던 설명이 도리어 그것을 흐리게 하고, 구원의 소식까지 흔든 셈입니다.
381년까지, 그리고 우리
니케아는 논쟁을 끝내지 못했습니다. 몇 해 뒤 콘스탄티누스가 아리우스를 다시 받아들이라고 했으나 아타나시우스는 거절했고, 335년 여러 고발 끝에 처음 유배되었습니다. 뒤를 이은 콘스탄티우스 2세 같은 황제들은 니케아의 말을 피하는 신조들을 밀어붙였습니다. 아타나시우스는 모두 다섯 번 유배되었습니다.
359년에는 동방과 서방의 회의들이 아들이 아버지와 ‘닮았다’고만 하는 신조에 서명했습니다. 히에로니무스는 훗날 이때를 두고, 온 세상이 탄식하며 자기가 아리우스파가 된 것에 놀랐다는 취지의 말을 남겼습니다. 니케아에 맞선 이들이 모두 아리우스를 따른 것은 아니었고 ‘아리우스파’는 반대편이 붙인 이름이었지만, 니케아의 신앙은 한동안 밀렸습니다.
그러는 사이 니케아의 뜻을 분명한 말로 다듬은 이들이 나타났습니다. 카파도키아 교부들, 곧 카파도키아 가이사랴의 감독 대 바실리우스와 그의 아우 니사의 그레고리우스, 그들의 벗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입니다. 니케아 때만 해도 ‘우시아’(ousia)와 ‘휘포스타시스’(hypostasis)가 거의 같은 뜻으로 쓰여, 세 휘포스타시스라고 하면 세 신처럼 들렸습니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은 두 말을 나누어, 하나님은 본질(우시아)로는 하나이시고 위격(휘포스타시스)으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셋이시라고 가르쳤습니다 (교리 과정의 삼위일체 과 참고).
그 무렵 아들의 신성은 받아들이면서도 성령은 피조물이라고 보는 이들이 나타나자, 바실리우스는 『성령론』에서 우리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성령께도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영광을 돌려야 한다고 변호했습니다 바실리우스, 성령론. 바실리우스가 세상을 떠난 뒤인 381년, 테오도시우스 황제가 콘스탄티노플에 공의회를 소집했습니다. 동방의 감독 150명쯤이 모여 니케아의 신앙을 다시 확인했습니다. 이 공의회의 신경으로 전해지는 본문이 오늘 우리가 ‘니케아 신경’이라 부르는, 정확히는 니케아·콘스탄티노플 신경입니다. 그 둘째 단락이 니케아 고백의 중심을 담고 있습니다.
또 우리는 한 분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의 독생자이시며, 모든 세상 이전에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니,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 빛에서 나신 빛, 참 하나님에게서 나신 참 하나님이시요, 나셨으나 지음을 받지 않으셨고,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며,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지음을 받았습니다.
니케아 신경 둘째 단락
니케아가 ‘그리고 성령을 믿습니다’라고만 했던 자리에서, 381년의 신경은 성령을 ‘주님이시요 생명을 주시는 분’이시며 아버지와 아들과 더불어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분으로 고백했습니다 니케아 신경 넷째 단락. 성령을 ‘하나님’이라는 낱말로 부르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만 드리는 이름과 예배를 성령께 드린 것입니다.
이 긴 이야기가 우리에게 남긴 것은 예배입니다. 부활하신 예수 앞에서 도마는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매"라고 고백했습니다 (요 20:28). 공의회가 투표로 예수를 처음 하나님으로 만들었다는 말도 들리지만, 사실은 거꾸로입니다. 교회는 그 전부터 그리스도를 예배했고, 니케아는 그 예배가 옳다는 것을 성경으로 지켜 냈습니다.
또 니케아는 성경에 없는 말도 성경 위가 아니라 아래에 서서 성경의 뜻을 지키는 데 쓰일 수 있음을 보여 줍니다. 진리는 황제의 뜻이나 그때의 다수로 정해지지 않았습니다. 다만 양편 모두 황제의 힘을 빌려 상대를 유배 보내기도 한 것은 이 시대의 아픈 대목입니다.
오늘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와 대부분의 개신교회가 이 신경을 고백하거나 그 신앙을 받아들입니다. 이 질문은 예수는 하나님인가?와 삼위일체란 무엇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교부들의 말은 토마스 아퀴나스가 엮은 카테나 아우레아에서 옮겼습니다.
연습
- 연습 1 / 8
아리우스는 아들에 대해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 연습 2 / 8
아리우스가 아들이 지음을 받았다는 증거로 읽은 잠언 8:22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8
니케아 공의회가 성경에 없는 ‘호모우시오스’(동일 본질)라는 말을 고른 까닭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8
아타나시우스가 아들이 참 하나님이셔야 한다고 본 가장 큰 까닭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8
힐라리우스는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요 10:30)라는 말씀을 어떻게 풀었습니까?
- 연습 6 / 8
카파도키아 교부들이 구별한 두 말을 바르게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8
다음 사건들을 일어난 순서대로 바르게 놓은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니케아 공의회에 관한 말 가운데 사실과 다른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소(小) 플리니우스, 서간집 10.96 — 112년경.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를 신처럼' 찬송한다고 트라야누스 황제에게 보고한다.
- 아타나시우스, 말씀의 성육신에 관하여 4세기 / 4th century — 말씀이 사람이 되신 이유를 다룬 고전. 읽기
- 아타나시우스, 아리우스파 반박 — 성자가 피조물이 아니라 아버지와 같은 본질의 참 하나님이심을 성경으로 변호한다.
- 바실리우스, 성령론 — 375년경. 성령이 아버지, 아들과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하나님이심을 변호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