루터: 십자가 신학과 칭의
마르틴 루터는 로마서에서 하나님의 의가 죄인을 벌하는 공의만이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시며 주시는 선물임을 발견했습니다. 그는 십자가 안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시는 하나님, 믿음으로 그리스도와 하나 된 그리스도인의 자유, 율법과 복음, 모든 신자의 제사장 됨을 가르쳤고, 그 신앙은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과 루터교회로 이어졌습니다.
의로운 하나님 앞에 선 수도사
종교개혁의 사건들은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종교개혁 이야기 과에서 다룹니다. 이 과에서는 마르틴 루터(1483–1546)가 무엇을 가르쳤고 왜 그렇게 가르쳤는지를 따라갑니다. 그의 신학은 한 물음에서 시작되었습니다. 거룩하신 하나님 앞에서 죄인이 어떻게 설 수 있는가?
1505년 에르푸르트의 아우구스티누스회 수도원에 들어간 루터는 기도와 금식과 고해에 누구보다 힘썼습니다. 그러나 그는 훗날, 흠 없는 수도사로 살았는데도 하나님 앞에서는 양심이 몹시 괴로운 죄인으로 느껴졌다고 회고합니다. 비텐베르크 대학의 성경 교수가 된 뒤에도 그를 가장 괴롭힌 말은 로마서의 ‘하나님의 의’였습니다. 그는 이 말을 하나님이 의로우셔서 죄인을 벌하시는 공의로만 배웠고, 그런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었습니다.
그는 이 구절의 앞뒤를 밤낮으로 곱씹었습니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믿음에서 믿음까지 계시되어 있나니 이것은 기록된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롬 1:17
마침내 그는 복음에 나타난 하나님의 의가 하나님이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의가 아니라, 자비로우신 하나님이 믿음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며 주시는 선물임을 깨달았습니다. 1545년 라틴어 저작 전집 서문에서 그는, 그때 완전히 다시 태어나 열린 문으로 낙원에 들어간 것 같았다고 썼습니다. 뒤에 아우구스티누스의 『영과 문자에 관하여』를 읽고 그도 하나님의 의를 같은 뜻으로 풀었음을 발견했다고 덧붙입니다 루터, 라틴어 저작 전집 서문. 다만 이 깨달음이 언제였는지, 한순간의 일이었는지 여러 해에 걸친 것이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쟁이 있습니다.
존 웨슬리도 이 구절을 같은 뜻으로 풀었습니다. "성 바울이 칭의를 다룰 때에는 이로써 믿음의 의를 뜻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의라고 불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고안하시고 예비하시고, 나타내시고 주시며, 인정하시고 면류관을 씌우시기 때문입니다" 웨슬리. 웨슬리는 루터의 로마서 서문이 읽히는 모임에서 마음이 이상하게 뜨거워지는 체험을 한 사람이기도 합니다 (이 과정의 웨슬리 과). 칭의의 가르침 자체는 교리 과정의 믿음과 칭의 과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영광의 신학과 십자가의 신학
1517년 10월 루터는 면벌부의 효력을 토론하자며 95개 논제를 내놓았습니다 루터, 95개 논제. 첫 논제는 주께서 회개하라 하셨을 때 신자의 삶 전체가 회개이기를 바라셨다고 말하고, 62번째 논제는 교회의 참된 보화가 하나님의 영광과 은혜의 거룩한 복음이라고 말합니다. 그가 이 논제를 비텐베르크 성 교회 문에 못 박았다는 이야기는 주로 그가 죽은 뒤 멜란히톤이 남긴 기록에 기대고 있고 루터 자신은 이 일을 말한 적이 없어서, 실제로 그랬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확실한 것은 그가 10월 31일 마인츠의 대주교에게 편지와 함께 논제를 보냈다는 것입니다.
이듬해 4월 하이델베르크에서 열린 아우구스티누스회 모임에서 루터는 자기 신학의 중심을 논제로 내놓았습니다 루터, 하이델베르크 논제. 그는 두 종류의 신학자를 대비했습니다. ‘영광의 신학자’는 지음 받은 것들과 사람의 행위를 통해 하나님의 보이지 않는 능력과 지혜를 꿰뚫어 보려 하며, 고난보다 행위를, 십자가보다 영광을, 약함보다 힘을 더 좋아합니다. ‘십자가의 신학자’는 하나님이 고난과 십자가 안에 숨어 계시면서 자신을 드러내신다는 것을 압니다. 루터는 영광의 신학자가 악을 선이라 하고 선을 악이라 하지만, 십자가의 신학자는 있는 것을 있는 그대로 부른다고 썼습니다.
그가 이 신학을 배운 곳은 바울이었습니다.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선포하노니 그분은 유대인들에게는 걸려 넘어지게 하는 것이요 그리스인들에게는 어리석은 것이로되 부르심을 받은 자들에게는 유대인들에게나 그리스인들에게나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권능이시요 하나님의 지혜이시니라.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들보다 지혜롭고 하나님의 약함이 사람들보다 강하니라.
고전 1:23-25
십자가의 신학은 고난을 좋아하라는 가르침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기대하는 곳, 곧 능력과 성공과 공로에서 찾지 말고 그분이 자신을 내주신 곳,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에게서 찾으라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신학은 하나님 앞에 내세울 것 없는 죄인과 고난 가운데 있는 신자에게 위로가 됩니다. 하이델베르크 논제 가운데 신학 논제의 마지막인 28번째 논제가 이를 요약합니다. 사람의 사랑은 사랑할 만한 것을 만나야 생기지만, 하나님의 사랑은 사랑할 만한 것을 찾지 않고 만들어 냅니다.
믿음이 주는 자유와 섬김
1520년 루터는 여러 글을 잇달아 썼습니다. 그 가운데 『그리스도인의 자유』는 두 명제로 시작합니다. 그리스도인은 모든 것 위에 있는 자유로운 주인이어서 아무에게도 매이지 않고, 또한 모든 이를 섬기는 종이어서 모든 사람에게 매인다는 것입니다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그는 이 역설을 바울에게서 배웠습니다. 바울은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자유로우나 스스로 모든 사람에게 종이 된 것은 더 많은 사람을 얻고자 함이라."이라고 말합니다 (고전 9:19).
그리스도인을 자유롭게 하는 것은 행위가 아니라 믿음입니다. 루터에 따르면 율법의 계명은 무엇이 선한지 가르치지만 그것을 행할 힘은 주지 못하므로, 사람에게 자기의 무능을 깨닫게 합니다.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그분의 눈앞에서 의롭게 될 수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알게 되느니라."는 말씀 그대로입니다 (롬 3:20). 복음의 약속은 계명이 요구하는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줍니다. 율법과 복음을 구별하는 일이 루터 신학의 기둥입니다.
믿음은 영혼을 그리스도와 하나 되게 합니다. 루터는 이를 혼인에 견주었습니다. 혼인하면 둘의 소유가 하나가 되듯, 신부인 영혼의 죄와 죽음은 신랑이신 그리스도의 것이 되고 그리스도의 의와 생명은 영혼의 것이 됩니다. 이것을 흔히 ‘즐거운 교환’이라고 부릅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고 말합니다 (고후 5:21).
그래서 신자는 ‘의인이면서 동시에 죄인’입니다. 그리스도의 의로 하나님 앞에서 온전히 의로우면서도, 자기 안에서는 여전히 죄와 싸우는 사람이라는 뜻입니다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이것은 죄를 가볍게 여기라는 말이 아닙니다. 루터는 믿음으로 자유로워진 사람이 이웃에게 한 사람의 그리스도가 되어 거저 섬긴다고 가르쳤습니다. 매튜 헨리는 이 가르침에 늘 따라다니는 오해를 두고 이렇게 씁니다. "오직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의 교리가 사람들로 하여금 죄에 머물도록 부추기는 경향이 있다는 것은, 지극히 부당하기는 하지만 새로운 편견이 아닙니다" 매튜 헨리.
믿음으로 자유로워진 사람이 이웃을 섬기는 자리는 일상입니다. 1520년의 또 다른 글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에서 루터는 세례받은 모든 그리스도인이 제사장이라고 가르쳤습니다 루터,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 베드로는 신자들을 "그러나 너희는 선정된 세대요 왕가의 제사장이요 거룩한 민족이요 특별한 백성이니 이것은 너희를 어둠에서 불러내어 자신의 놀라운 빛으로 들어가게 하신 분께 대한 찬양을 너희가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이라고 부릅니다 (벧전 2:9). 목사와 다른 신자의 차이는 신분이 아니라 맡은 직분의 차이일 뿐이고, 구두장이와 대장장이와 농부도 저마다 자기 일로 이웃을 섬기라는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수도원만 높이던 생각이 무너지고, 부엌과 밭과 일터도 하나님을 섬기는 자리가 되었습니다.
논쟁과 고백, 그리고 남은 것
1521년 보름스 제국 의회에서 루터는 성경의 증언과 분명한 이성으로 설득되지 않는 한, 자기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혀 있어 취소할 수 없다고 답했습니다. 흔히 전해지는 ‘내가 여기 섰습니다’라는 말은 초기 인쇄본에 실려 있지만, 그가 실제로 그렇게 말했는지는 확실하지 않습니다. 법의 보호 밖에 놓인 그는 바르트부르크 성에 숨어 지내며 신약성경을 독일어로 옮겼습니다.
1524년 인문주의자 에라스무스는 『자유의지론』에서, 성경이 그토록 많이 명령하고 권면하는 것은 사람에게 은혜와 함께 응답할 작은 힘이 남아 있다는 뜻이라고 보았습니다. 풀리지 않는 물음에서는 겸손하게 말을 아끼자고도 했습니다. 도덕적 책임과 교회의 평화를 아끼는 진지한 신앙이었습니다. 이듬해 루터는 『노예 의지론』에서, 구원에 관해서는 사람의 의지가 죄에 매여 있어 하나님의 은혜만이 그것을 풀 수 있다고 답했습니다 루터, 노예 의지론. 그는 에라스무스가 교황권이나 면벌부 같은 곁가지가 아니라 문제의 핵심을 짚었다고 인정했습니다. 은혜와 의지에 관한 이 물음은 뒤에 개혁파와 웨슬리 전통에서도 서로 다르게 이어집니다.
1530년 아우크스부르크 제국 의회에서 황제 카를 5세에게 제출된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은 루터의 동료 필리프 멜란히톤이 썼습니다. 그 4조는 사람이 자기 힘이나 공로가 아니라 그리스도 때문에 믿음으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고백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이 고백과 루터의 소교리문답(1529)은 독일과 북유럽에서 시작해 온 세계로 퍼진 루터교회의 기준이 되었습니다.
루터의 허물도 정직하게 말해야 합니다. 그는 반대자들에게 거칠고 모욕적인 말을 자주 썼고, 1525년 농민 전쟁 때에는 봉기한 농민들을 무력으로 누르라고 제후들에게 촉구했습니다. 무엇보다 말년인 1543년의 글들에서 그는 유대인의 회당을 불태우고 그들을 쫓아내라고 했습니다. 20년 전에는 유대인을 친절히 대하라고 썼던 그였지만, 이 글들은 훗날 반유대주의에 이용되었고, 오늘날 여러 루터교회는 이를 공식적으로 거부했습니다. 루터를 높이는 것이 아니라 그가 가리킨 그리스도를 높이는 것이 그의 신학에도 맞는 일입니다.
이 이야기는 20세기에도 이어집니다. 1999년 루터교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는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에서, 우리가 공로가 아니라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는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했습니다. 그리고 이 선언이 밝힌 서로의 가르침에는 16세기의 정죄가 해당하지 않는다고 말했습니다. 차이는 아직 남아 있습니다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루터가 남긴 것은 무엇보다 위로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업적이나 영광이 아니라 십자가에 달리신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을 보이시고,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 분입니다 (롬 4:5). 이 질문은 칭의란 무엇인가?에서, 개혁교회가 이 고백을 어떻게 이었는지는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과에서 더 볼 수 있습니다.
연습
- 연습 1 / 8
루터가 로마서 1:17에서 새로 깨달은 ‘하나님의 의’는 무엇입니까?
- 연습 2 / 8
1517년의 95개 논제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8
하이델베르크 논제(1518)에서 루터가 말한 ‘십자가의 신학자’는 어떤 사람입니까?
- 연습 4 / 8
『그리스도인의 자유』(1520)가 시작하는 두 명제는 무엇입니까?
- 연습 5 / 8
루터가 말한 ‘즐거운 교환’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8
루터는 에라스무스에게 답한 『노예 의지론』(1525)에서 무엇을 주장했습니까?
- 연습 7 / 8
루터가 모든 신자의 제사장 됨을 가르치며 내세운 생각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1530)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마르틴 루터, 라틴어 저작 전집 서문 1545 — 로마서 1:17의 ‘하나님의 의’를 믿음으로 주시는 의로 깨달은 일을 돌아본다.
- 마르틴 루터, 95개 논제 1517 — 면벌부의 효력에 대한 토론을 제안한 논제. 종교개혁의 시작으로 기억된다. 읽기
- 마르틴 루터, 하이델베르크 논제 1518 — ‘영광의 신학자’와 ‘십자가의 신학자’를 대비하며, 하나님은 고난과 십자가 안에 숨어 자신을 드러내신다고 말한다.
- 마르틴 루터, 그리스도인의 자유 1520 — 그리스도인은 믿음으로 모든 것에 자유로운 주인이며, 사랑으로 모든 이를 섬기는 종이라고 말한다. 읽기
- 마르틴 루터, 갈라디아서 강해 1535 — 율법과 복음, 믿음으로 말미암는 칭의를 다룬 루터의 대표 저작.
- 마르틴 루터, 독일 귀족에게 보내는 글 1520 — 세례받은 모든 신자가 제사장이며, 저마다 자기 일과 직분으로 이웃을 섬긴다고 가르친다.
- 마르틴 루터, 노예 의지론 1525 — 에라스무스의 『자유의지론』에 답하여, 구원에 관해서는 사람의 의지가 죄에 매여 있다고 논증한다.
-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 루터교의 기본 신앙고백.
- 루터교 세계연맹·가톨릭교회,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1999 — 칭의에 대한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한 문서.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