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신학과 실천신학
역사신학은 교회가 시대마다 믿음을 어떻게 이해하고 고백해 왔는지 살피고, 실천신학은 설교와 예배, 목양과 가르침과 선교 속에서 신학이 어떻게 교회의 삶이 되는지 다룹니다. 성경신학, 조직신학과 함께 이 넷은 한 교회를 위한 한 가지 일입니다.
교회의 기억: 역사신학
하나님은 자기 백성에게 기억하라고 거듭 명하셨습니다. 시편 78편의 시인은 조상들에게서 들은 것을 다음 세대에 전하겠다고 다짐합니다.
우리가 그것들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숨기지 아니하고 주를 찬양함과 그분의 능력과 그분께서 행하신 놀라운 일들을 다가올 세대에게 보이리로다. 그분께서 한 증언을 야곱 안에 굳게 세우시며 한 법을 이스라엘 안에 지정하시고 우리 조상들에게 명령하사 그들이 그것들을 그들의 자손들에게 알리게 하셨으니 이것은 다가올 세대 곧 태어날 자손들이 그것들을 알게 하려 하심이라. 그들이 일어나서 자기 자손들에게 그것들을 밝히 알리리니 이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소망을 하나님 안에 두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들을 잊지 아니하며 그분의 명령들을 지켜서
시 78:4-7
신약도 같은 말을 합니다. 히브리서는 "하나님의 말씀을 너희에게 일러 주고 너희를 다스리는 자들을 기억하며 그들의 행실의 결말을 깊이 살펴보고 그들의 믿음을 따르라."고 하고 (히 13:7), 매튜 헨리는 이 구절에서 "영예롭고 위안이 되게 증언을 마친 목회자들의 가르침과 본은 남은 사람들이 특별히 기억해야 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우리는 "그러므로 증인들이 이렇게 큰 구름을 이루며 또한 우리를 둘러싸고 있으니 모든 무거운 것과 너무 쉽게 우리를 얽어매는 죄를 우리가 떨쳐 버리고 인내로 우리 앞에 놓인 경주를 달리며" 가운데서 달려갑니다 (히 12:1).
역사신학은 이 기억을 공부합니다. 교회가 시대마다 무엇을 믿었는지뿐 아니라, 어떤 물음 앞에서 왜 그렇게 고백했는지, 어떤 성경 본문을 들어 논증했는지를 살핍니다. 그래서 역사신학은 지나간 이야기를 모으는 일이 아니라, 앞서 성경을 읽은 형제자매들의 말을 귀 기울여 듣는 일입니다.
자라지만 바뀌지 않는 믿음
교회의 고백은 대개 도전 앞에서 더 분명해졌습니다. 4세기에 아리우스가 아들을 가장 높은 피조물이라고 가르치자, 교회는 니케아에서 아들이 아버지와 ‘동일 본질’이시라고 고백했습니다 (이 과정의 니케아 과). 5세기에 그리스도의 신성과 인성을 어떻게 말할지를 두고 논쟁이 일자, 칼케돈 공의회는 한 인격 안의 두 본성을 고백했습니다 (이 과정의 칼케돈 과). 공의회들은 새 믿음을 만든 것이 아니라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를 느꼈노니"를 (유 1:3) 더 분명한 말로 지켰습니다.
434년 무렵 남부 갈리아의 레랭 섬에 살던 수도사 빈켄티우스는 이 일을 잘 설명했습니다. 그는 교회 안에 신앙의 진보가 있느냐고 묻고, 분명히 있지만 그것은 다른 것으로 바뀌는 변질이 아니라 자라는 진보여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아이의 몸은 자라 어른이 되면서 팔다리가 커지지만 여전히 같은 사람이듯, 교리도 세월과 함께 굳어지고 넓어지고 다듬어지되 본래의 모습은 그대로 지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레랭의 빈켄티우스, 비망록 23장.
이 공부에는 두 가지 위험이 있습니다. 하나는 전통을 성경 곁에, 나아가 성경 위에 세우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인들을 두고 "너희가 하나님의 명령을 버리고 단지나 잔을 씻는 것과 같은 사람들의 전통을 지키며 또 그와 같은 다른 많은 일들을 행하느니라."고 꾸짖으셨습니다 (막 7:8). 복음주의 신앙은 교회의 고백을 귀히 여기되 그것을 늘 성경으로 시험합니다.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전통을 사람의 관습이 아니라 사도들의 믿음이 교회의 삶 속에서 전해지는 길로 이해하는데, 그 차이는 이 과정의 신학의 원천 과에서 다룹니다.
다른 하나는 반대쪽 위험입니다. 마치 우리 전에 아무도 성경을 읽지 않은 것처럼 교회의 지혜를 무시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교회가 오래전에 성경으로 물리친 잘못을 새것인 양 되풀이하기 쉽습니다. 역사신학은 우리를 겸손하게 하고, 같은 그리스도를 믿은 앞선 이들과 함께 성경을 읽게 합니다.
삶을 위한 신학: 실천신학
실천신학은 신학이 교회의 삶이 되는 자리를 다룹니다. 설교, 예배, 목양, 가르침, 선교입니다. 하나의 분과로 정리된 것은 근대의 일이지만, 그 일은 교회만큼 오래되었습니다.
먼저 설교입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씀을 선포하라. 때에 맞든지 맞지 아니하든지 긴급히 하라. 모든 오래 참음과 교리로 책망하고 꾸짖고 권면하라."고 명했습니다 (딤후 4:2). 매튜 헨리는 "영혼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항상 깨어 있어야 하고, 자기 충성의 모든 고통스러운 결과를 무릅쓰고 감당해야 하며, 순전한 복음을 알릴 모든 기회를 붙잡아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예배도 실천신학이 묻는 일입니다. 교회가 함께 기도하고 찬송하며, 말씀을 읽고 듣고, 세례와 성찬을 행하는 일이 성경이 가르치는 하나님께 합당한지 묻습니다. 예배의 형식은 전통마다 다르지만, 누가는 처음 교회가 "그들이 흔들리지 아니하며 사도들의 교리와 교제 안에 머물고 빵을 떼며 기도하더라."고 전하는데 (행 2:42), 이 모습은 모든 교회의 본입니다.
목양의 지혜도 오래 이어져 왔습니다. 590년 로마의 감독이 된 대 그레고리우스는 『목회 규칙』에서 영혼을 돌보는 일을 ‘기술 중의 기술’이라 부르며 목자의 부르심과 삶을 다루고, 같은 약이 모든 병에 맞지 않듯 가난한 이와 부유한 이, 기뻐하는 이와 슬퍼하는 이에게 말씀을 각각 맞게 전하라고 가르쳤습니다 대 그레고리우스, 목회 규칙. 1656년 잉글랜드 키더민스터의 목사 리처드 백스터는 "그러므로 너희 자신과 온 양 떼에게 주의를 기울이라. 성령님께서 너희를 그들의 감독자로 삼으사 하나님의 교회 곧 그분께서 자신의 피로 사신 교회를 먹이게 하셨느니라."는 말씀을 (행 20:28) 풀어 『참 목자상』을 썼습니다. 목사는 먼저 자기 영혼을 살피고, 교인들을 한 집씩 찾아가 가르쳐야 한다는 것입니다 리처드 백스터, 참 목자상.
가르침과 선교도 실천신학의 일입니다. 주님은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무엇이든지 내가 너희에게 명령한 모든 것을 그들에게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보라, 내가 세상의 끝까지 항상 너희와 함께 있느니라, 하시니라. 아멘."고 명하셨습니다 (마 28:19-20). 복음을 전하는 일과 가르쳐 지키게 하는 일은 하나입니다.
실천신학의 마지막 물음은 신학이 삶이 되는가입니다. 야고보는 "오직 너희는 말씀을 행하는 자가 되고 듣기만 하여 너희 자신을 속이는 자가 되지 말라."고 말합니다 (약 1:22). 존 웨슬리는 말씀을 받으라는 앞 절의 권면을 "여러분의 귀와 마음과 삶 속으로 받으라는 것입니다"라고 풉니다 웨슬리. 바울도 디도에게 "오직 너는 건전한 교리에 합당한 것들을 말하여"라고 한 뒤 (딛 2:1) 늙은이와 젊은이와 종들의 삶을 차례로 가르치며, 종들에게도 그들의 신실한 삶이 "훔치지 말고 전적으로 선하게 충성하는 것을 보이게 하라. 이것은 그들이 모든 일에서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의 교리를 빛내게 하려 함이니라." 하리라고 말합니다 (딛 2:10). 바른 교리는 그에 맞는 삶으로 빛납니다.
한 교회를 위한 네 갈래
이제 신학의 네 갈래가 모였습니다. 성경신학은 성경의 이야기를 따라가고, 조직신학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을 주제별로 모으며 (이 과정의 성경신학과 조직신학 과), 역사신학은 교회의 기억을 듣고, 실천신학은 그 모든 것이 교회의 삶이 되게 합니다. 이렇게 넷으로 나누는 것은 근대 교실의 구분이고, 옛 교사들은 이름도 없이 넷을 함께 했습니다.
요한복음 1장을 설교하는 목사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는 본문을 주해하고 요한복음 전체의 흐름 속에서 읽습니다. 성육신의 교리를 성경 전체에서 살피고, 니케아의 교부들이 이 본문을 어떻게 읽었는지 듣습니다. 그리고 그 모든 것을 오늘 앞에 앉은 교인들의 슬픔과 기쁨에 맞게 전합니다. 네 갈래는 한 교회를 섬기는 한 가지 일입니다. 교회가 왜 필요한지는 교회는 왜 필요한가?에서 더 다룹니다.
연습
- 연습 1 / 7
역사신학이 하는 일을 가장 잘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2 / 7
레랭의 빈켄티우스는 교리가 자라는 모습을 무엇에 빗대었습니까?
- 연습 3 / 7
니케아와 칼케돈 공의회가 한 일을 바르게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7
예수께서 마가복음 7:8에서 꾸짖으신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7
대 그레고리우스의 『목회 규칙』이 특히 가르친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리처드 백스터가 『참 목자상』에서 풀어 쓴 말씀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야고보서 1:22와 디도서 2장이 실천신학에 주는 가르침은 무엇입니까?
출처
- 레랭의 빈켄티우스, 비망록 434 — ‘어디서나, 언제나, 모든 사람이 믿어 온 것’을 보편 신앙의 기준으로 제시한다. 읽기
- 대 그레고리우스, 목회 규칙 — 목자의 부르심과 삶, 듣는 사람에 따라 말씀을 다르게 전하는 법을 가르친 중세 목회의 교본.
- 리처드 백스터, 참 목자상 1656 — 목사가 먼저 자신을 살피고, 교인을 한 집 한 집 찾아가 가르치라고 권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