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14과

토마스 아퀴나스

도미니코회 수사 토마스 아퀴나스(1225–1274)는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는 확신으로 이성이 닿는 진리와 계시로만 아는 진리를 『신학대전』에 함께 엮은 스콜라 신학의 가장 큰 스승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그를 ‘공통 박사’로 기리고, 개신교회도 그에게서 배우면서 공로와 타락한 이성과 성례에서는 달리 봅니다.

연표에서 보기

설교자 수도회의 학자

토마스는 1225년 무렵 이탈리아 남부 아퀴노 근처의 로카세카에서 귀족 집안의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려서 몬테카시노 수도원에 맡겨졌고, 나폴리에서 공부하던 1244년에 설교와 가르침을 위해 새로 생긴 도미니코회에 들어갔습니다. 집안이 이를 반대해 그를 한동안 집에 붙잡아 두었다고 전해지지만, 그는 뜻을 굽히지 않았습니다. 그 뒤 대 알베르투스에게 배웠고, 1256년 파리 대학교의 신학 교수가 되어 평생 파리와 이탈리아에서 가르쳤습니다.

중세 신학 교수의 첫째 교과서는 성경이었고, 토마스도 여러 성경을 강의했습니다. 1260년대에 그는 교황 우르바노 4세의 청으로 네 복음서를 절마다 따라가며 동방과 서방 교부들의 해석을 사슬처럼 엮었습니다. 훗날 ‘황금 사슬’이라 불린 이 카테나 아우레아가 이 앱에서 읽는 교부들의 주석입니다. 스콜라 신학의 가장 큰 스승이 먼저 교부들의 성경 읽기에 깊이 뿌리내린 사람이었다는 뜻입니다 (이 과정의 교부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었나 과).

1273년 12월, 나폴리에서 미사를 드리다 무언가를 겪은 뒤 그는 글쓰기를 멈추었습니다. 곁에 있던 동료에게, 자기가 쓴 모든 것이 지푸라기처럼 보인다고 말했다고 전해집니다. 무엇을 보았는지는 말하지 않았습니다. 이듬해 3월 그는 리옹 공의회로 가던 길에 포사노바 수도원에서 쉰이 채 안 된 나이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신학대전』과 질문의 방법

『신학대전』은 1265년 무렵 로마에서 쓰기 시작해 끝내 마치지 못한 책입니다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서문에서 그는 이 책이 초보자를 가르치려는 것이라고 밝힙니다. 첫째 부는 하나님과 창조를, 둘째 부는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사람의 길, 곧 덕과 법과 은혜를, 셋째 부는 우리가 하나님께 가는 길이신 그리스도와 성례를 다루는데, 셋째 부는 참회의 성례를 다루다가 멈추었습니다.

책은 수많은 ‘항’으로 이루어지고, 항마다 같은 순서를 따릅니다. 먼저 ‘…인가?’ 하고 질문을 세운 뒤, 자기가 내릴 답과 반대쪽의 논거들을 듭니다. 이어 ‘그러나 반대로’ 성경이나 교부의 말을 하나 놓고, ‘나는 이렇게 답한다’로 자기 답을 펼친 다음, 처음의 반론에 하나하나 답합니다. ‘하나님은 존재하시는가’라는 항에서 그가 첫 반론으로 든 것은 악의 문제입니다. 무한히 선하신 하나님이 계시다면 악이 있을 수 없을 텐데 세상에는 악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반대편의 가장 강한 논거를 먼저 정직하게 듣고,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라 하나님은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실 만큼 선하시고 전능하시다고 답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엔키리디온 11.

은혜는 자연을 완성한다

토마스가 평생 붙든 물음은 믿음과 이성의 관계였습니다. 그의 답은 『신학대전』 첫 문제에 나오는 한마디에 담겨 있습니다. ‘은혜는 자연을 파괴하지 않고 완성한다.’ 하나님이 지으신 이성은 은혜의 원수가 아니며, 은혜는 이성을 고치고 높여 그 본래의 목적으로 이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두 종류의 진리를 나누었습니다. 하나님이 계시다는 것, 한 분이시라는 것 같은 진리에는 이성도 닿을 수 있습니다. 그는 움직임, 원인, 우연과 필연, 완전함의 정도, 세계의 질서에서 출발해 하나님께 이르는 ‘다섯 길’을 내놓았습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와 성육신은 이성이 스스로 찾아낼 수 없고 하나님이 계시하셔야 아는 진리입니다. 그는 이성으로 알 수 있는 진리조차 계시되어야 했다고 말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소수만이, 오랜 시간 뒤에, 많은 오류와 섞인 채 알게 되었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성의 길을 말할 때 그가 기댄 말씀은 로마서입니다.

그분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그분의 영원하신 권능과 신격은 세상의 창조 이후로 분명히 보이며 만들어진 것들을 통해 깨달아 알 수 있나니 그러므로 그들이 변명할 수 없느니라.

롬 1:20

바울은 아덴의 아레오바고에서도 알지 못하는 신에게 바친 제단에서 이야기를 시작해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전하고, 그 백성의 시인들의 말을 인용했습니다 (행 17:22-28). 토마스는 바로 이 장면을 들어, 철학자들이 자연적 이성으로 참된 것을 안 곳에서는 신학도 그들의 말을 쓸 수 있다고 말합니다. 그가 엮은 카테나에서 1100년 무렵 비잔틴의 대주교였던 테오필락투스도 요한복음 1:9의 참 빛을 두고 이렇게 씁니다. "우리 안에 우리를 인도하도록 주어져 있고 자연적 이성이라 불리는 지성이 여기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빛이라고 말해집니다. 그러나 어떤 이들은 자기 이성을 잘못 사용함으로써 스스로를 어둡게 하였습니다" 테오필락투스.

토마스는 12–13세기에 라틴어로 새로 옮겨진 아리스토텔레스의 저작을 깊이 읽고 그를 ‘철학자’라고 불렀습니다. 그러나 아리스토텔레스는 그의 신학의 주인이 아니라 도구였고, 세상이 시작 없이 영원하다는 생각처럼 믿음과 어긋나는 곳에서는 그를 따르지 않았습니다. 그 시대에는 이교 철학자를 이렇게 끌어들이는 것을 위험하게 여긴 이들도 많았습니다.

그의 법 이해도 같은 확신에서 나옵니다. 이성을 가진 피조물이 하나님의 영원한 법에 참여하는 것이 자연법이며, 그 첫 원리는 선은 행하고 추구하며 악은 피하라는 것입니다. 바울은 율법 없는 이방인도 "이런 사람들은 또한 자기 양심이 증언하며 자기 생각들이 서로 고소하고 변명하는 가운데 자기 마음속에 기록된 율법의 행위를 보이느니라.)"고 말합니다 (롬 2:15). 웨슬리도 로마서 2:14에서 "십계명은 자연법의 본질일 뿐이기 때문입니다"라고 씁니다 웨슬리. 다만 그는 이방인이 본성으로 율법의 일을 하는 것도 엄밀히는 ‘선행하는 은혜’로 말미암는다고 덧붙입니다.

공통 박사, 그리고 공정한 평가

토마스는 성례를 사람을 거룩하게 하는 거룩한 것의 표징이라 정의하고, 새 언약의 성례는 그리스도께서 쓰시는 도구로서 은혜를 실제로 일으킨다고 가르쳤습니다. 롬바르두스를 따라 일곱 성례를 꼽았고, 성찬에서는 빵과 포도주의 겉모양은 남지만 그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는 화체를 아리스토텔레스의 개념으로 설명했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트리엔트 공의회에서 이 가르침을 확인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 여러 전통의 성례 이해는 교리 과정의 세례와 성찬 과에서 다룹니다.

가톨릭 교회는 토마스를 성인이자 교회 학자로, 온 교회의 스승이라는 뜻에서 ‘공통 박사’로 기립니다. 1879년 교황 레오 13세는 그의 철학을 가톨릭 교육의 중심에 두도록 권했습니다. 개신교회의 평가는 엇갈립니다. 루터는 신학에 아리스토텔레스를 끌어들인 스콜라 신학을 거세게 비판했습니다. 그러나 16–17세기의 개혁파 신학자들은 지롤라모 잔키처럼 토마스를 즐겨 읽었고, 하나님의 속성과 섭리와 자연법을 가르칠 때 그의 구별과 용어를 썼습니다. 그의 다섯 길은 지금도 하나님의 존재를 논하는 이들이 다루며 (하나님은 존재하는가?), 믿음과 이성이 원수가 아니라는 그의 확신은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의 물음에도 빛을 줍니다.

차이도 분명합니다. 첫째는 공로입니다. 토마스는 처음 은혜는 누구도 공로로 얻을 수 없다고 가르쳤지만, 은혜 안에서 성령으로 행한 선행은 영생을 공로로 얻는다고 보았습니다. 개신교회는 영생을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거저 주시는 선물로 보고 (롬 6:23) 선행을 구원의 열매로 이해합니다. 둘째는 타락한 이성입니다. 토마스도 죄가 본성에 상처를 냈다고 보았지만, 종교개혁자들은 사람이 불의로 진리를 막는다는 바울의 말을 더 무겁게 받아들였습니다 (롬 1:18). 칼뱅은 흐려진 눈에 안경이 필요하듯 하나님을 바로 알려면 성경이 필요하다고 말했고 칼뱅, 기독교 강요 1.6, 매튜 헨리도 이방 세계의 우상 숭배를 두고 이렇게 씁니다. "신적 진리와 도덕적 의무를 발견하고 실천을 바르게 다스리는 데 사람의 이성이 충분하다고 아무리 주장하더라도 사실을 부인할 수는 없습니다" 매튜 헨리. 셋째는 성례입니다. 개신교회는 대개 그리스도께서 정하신 세례와 성찬만을 성례로 보고, 성례의 은혜가 믿음으로 받는 약속의 말씀과 함께 온다고 가르칩니다.

지푸라기에 관한 토마스의 말이 전해지는 그대로라면, 그것은 신학을 버린 말이 아니라 그 모든 생각이 가리키던 분 앞에서 말을 잃은 고백이었을 것입니다. 바울도 "우리가 지금은 거울을 통하여 희미하게 보나 그때에는 얼굴을 마주 대하여 보며 내가 지금은 부분적으로 아나 그때에는 주께서 나를 아시는 것 같이 나도 알리라."라고 말합니다 (고전 13:12). 토마스에게 신학의 끝은 하나님을 뵙는 것이었습니다.

연습

  1. 연습 1 / 7

    토마스 아퀴나스가 믿음과 이성의 관계를 요약한 말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7

    토마스가 이성만으로는 알 수 없고 계시로만 안다고 본 진리는 무엇입니까?

  3. 연습 3 / 7

    토마스가 이성으로 하나님을 알 수 있다는 근거로 든 대표적인 말씀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7

    『신학대전』의 각 항은 어떤 순서로 이루어져 있습니까?

  5. 연습 5 / 7

    이 앱에서 읽는 카테나 아우레아에 대한 설명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7

    웨슬리가 로마서 2:14에서 자연법에 대해 한 말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7

    개신교회가 토마스와 달리 보는 점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1. 토마스 아퀴나스, 신학대전 — 1265–1274년. 중세 신학을 집대성한 저작. 하나님과 창조와 섭리, 인간과 은혜, 그리스도와 성례를 두루 다루며, 하나님은 이성으로도 알려지시나 구원의 진리는 계시로 주어진다고 가르친다. 읽기
  2. 아우구스티누스, 신앙 핸드북(엔키리디온) 11 — 악은 선의 결핍이며, 하나님은 악에서도 선을 이끌어 내신다.
  3. 트리엔트 공의회, 성체성사에 관한 교령 1551 — 빵과 포도주의 실체가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바뀐다(화체)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4.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