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11과

아우구스티누스: 은혜의 박사

아우구스티누스(354–430년)는 쉼 없는 마음으로 진리를 찾아 헤매다 그리스도께 돌아왔고, 히포의 감독으로서 도나투스파와 펠라기우스에 맞서 교회와 은혜를 가르쳤습니다. 가톨릭 교회와 종교개혁자들이 함께 그를 스승으로 삼는 까닭과, 우리가 그에게서 배울 것과 조심할 것을 살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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쉼 없는 마음

아우구스티누스는 354년 북아프리카의 타가스테(오늘날 알제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어머니 모니카는 독실한 그리스도인이었고, 아버지는 오래 이교도로 지냈습니다. 서방 교회의 신학에 그보다 깊은 자국을 남긴 교부는 없습니다. 그의 젊은 날은 397년 무렵부터 쓴 『고백록』에 그 자신의 말로 남아 있는데, 이 책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입니다. 첫머리에서 그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당신을 향하도록 지으셨기에 우리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 쉬기까지 쉼을 얻지 못한다고 고백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이 ‘쉼 없는 마음’이 책 전체를 꿰는 실입니다.

카르타고에서 공부한 그는 출세를 꿈꾸는 수사학 교사가 되었고, 결혼하지 않은 채 한 여인과 오래 살며 아들 아데오다투스를 두었습니다. 열아홉 살 무렵 키케로의 책을 읽고 지혜를 사랑하게 되었지만, 성경은 키케로의 문장에 비하면 투박해 보였습니다. 그 뒤 아홉 해 동안 그는 마니교를 따랐습니다. 마니교는 악을 빛과 싸우는 어둠의 실체로 설명했기에, 죄가 온전히 내 탓은 아니라는 위안을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 가르침은 끝내 그의 물음에 답하지 못했습니다.

384년 밀라노의 수사학 교수가 된 그는 말솜씨를 들으려고 감독 암브로시우스의 설교를 찾아갔다가 그 내용에 붙들렸습니다. 암브로시우스가 구약을 영적으로 풀자 성경에 대한 걸림돌이 걷혔고, 플라톤주의자들의 책은 하나님을 영으로, 악을 선의 결핍으로 생각하도록 도왔습니다. 그래도 그의 의지는 옛 습관을 끊지 못했습니다. 386년 여름, 이집트의 수도사 안토니우스 이야기를 듣고 괴로워하던 그는 한 정원에서 울다가, 그가 전하는 바로는 이웃집에서 ‘집어서 읽어라’ 하고 되풀이하는 아이의 노랫소리를 들었습니다. 그는 바울 서신을 펴서 처음 눈에 들어온 구절을 읽었습니다.

낮에 하듯이 우리가 정직하게 걸으며 흥청거리거나 술 취하지 말고 침실을 더럽히거나 방탕하지 말며 다투거나 시기하지 말자. 오직 너희는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 입고 육신의 정욕을 채우기 위해 육신에게 기회를 주지 말라.

롬 13:13-14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고, 확신의 빛이 비쳐 의심의 어둠이 모두 물러갔다고 그는 회고합니다. 387년 부활절에 그는 아들과 함께 암브로시우스에게 세례를 받았고, 어머니는 얼마 뒤 오스티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프리카로 돌아온 그는 391년 항구 도시 히포에서 회중의 간청에 못 이겨 장로가 되었고, 390년대 중반 히포의 감독이 되어 430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곳에서 설교하고 글을 썼습니다.

도나투스파: 교회는 누구 때문에 거룩한가

감독 아우구스티누스가 마주한 첫 큰 싸움은 아프리카 교회의 분열이었습니다. 303년에 시작된 대박해 때 성경을 내어 준 성직자들이 있었습니다. 311년 무렵 그런 ‘배신자’에게서 안수를 받았다고 의심받은 카이킬리아누스가 카르타고의 감독이 되자, 많은 이가 그를 거부하고 다른 감독을 세웠습니다. 그 지도자 도나투스의 이름을 따서 이들을 도나투스파라 부릅니다. 그들은 순교자들을 깊이 기렸고, 교회는 거룩해야 하며 배교한 성직자가 베푼 성례는 효력이 없다고 믿었습니다. 교회 밖의 세례는 세례가 아니라고 한 3세기의 순교자 키프리아누스를 따라, 보편 교회, 곧 공교회에서 넘어온 이들에게 다시 세례를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시대에 그들은 아프리카에서 공교회만큼 세력이 컸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가 거룩한 것은 교인이나 성직자가 깨끗해서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이 세상의 교회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고, 주님은 "둘 다 수확 때까지 같이 자라게 두어라. 수확하는 때에 내가 거두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먼저 가라지를 함께 모아 불태우게 단으로 묶되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마 13:30). 세례를 베푸시는 참 주인도 그리스도이십니다. 요한복음 1:33을 풀며 그는 묻습니다. "주께서 선하신데 집행자의 악함이 무슨 방해가 되겠습니까?" 아우구스티누스 성례는 집례자의 죄 때문에 무효가 되지 않는다는 이 원칙을 오늘 대부분의 교회가 받아들입니다.

이 싸움에는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도나투스파의 과격한 무리는 공교회 성직자들을 습격했고, 405년부터 황제의 법이 도나투스파를 억눌렀으며, 411년 카르타고 회의에서 황제의 관리는 공교회의 손을 들어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한 편지에서 이렇게 털어놓습니다. "처음에는 내 의견도 아무도 강제로 그리스도의 하나 됨 안으로 몰아넣어서는 안 되며, 담론으로 이끌고 논쟁으로 다투고 논증으로 이겨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러나 법의 압박 속에 돌아온 이들을 보고 생각을 바꾸어, 잔치 비유에서 주인이 사람들을 ‘강권하여’ 데려오라고 한 말씀을 (눅 14:23) 강제의 근거로 읽었습니다. 밖의 압박이 사람을 진리 앞에 세우면 거기서 참된 뜻이 생겨나리라고 본 것입니다. 그러나 훗날 교회는 이 논리를 이단 박해에 끌어다 썼습니다. 요한복음 6:44를 풀며 그 자신이 이렇게 말했는데도 말입니다. "사람이 비자발적으로 교회에 들어올 수는 있어도 비자발적으로 믿을 수는 없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펠라기우스: 은혜가 먼저인가

400년 무렵 로마에서는 브리타니아 출신으로 알려진 수도사 펠라기우스가 존경받는 교사였습니다. 그는 세례를 받고도 느슨하게 사는 그리스도인들을 보며 마음 아파했습니다. 413년 귀족 처녀 데메트리아스에게 보낸 편지에서 그는, 하나님이 선한 본성을 주셨으니 사람은 계명을 지킬 수 있으며 할 수 없다는 핑계는 하나님이 불가능한 일을 명하셨다고 탓하는 것이라고 권면합니다 펠라기우스, 데메트리아스에게 보낸 편지. 그에게 은혜란 하나님이 주신 본성과 자유 의지, 율법, 그리스도의 가르침과 본보기, 그리고 지난 죄의 용서였습니다. 아담의 죄는 나쁜 본보기로 후손을 해쳤을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거룩한 삶을 향한 그의 열심은 진지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고백록』에서 하나님께 ‘명하시는 것을 주시고, 원하시는 것을 명하소서’라고 기도했는데, 그의 회고에 따르면 펠라기우스는 로마에서 이 기도를 듣고 몹시 언짢아하며 반박했다고 합니다. 두 사람의 차이가 여기 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본성과 은총』(415년)에서, 아담 이후 모든 사람은 죄로 병든 본성을 지니고 태어나며 의지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묶여 있어서, 은혜가 고치고 풀어 주기 전에는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다고 논증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본성과 은총 (교리 과정의 원죄와 그 결과 과 참고). 은혜는 본보기가 아니라 앞서가며 의지를 새롭게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는 포도나무 비유를 이렇게 읽습니다. "어떤 사람이 가지가 스스로 적은 열매는 맺을 수 있다고 생각할까 하여 그분은 덧붙이십니다.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적게 할 수 있다고 하지 않으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바울은 "누가 너를 다른 사람과 구별되게 하느냐? 네가 가진 것 중에 받지 아니한 것이 무엇이냐? 이제 네가 그것을 받았을진대 어찌하여 그것을 받지 아니한 것 같이 자랑하느냐?"라고 묻습니다 (고전 4:7). 믿음만은 우리에게서 난다고 여기던 자기 생각을 바로 이 구절이 바꾸어 놓았다고 아우구스티누스는 회고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바울은 또 하나님께서 "너희 안에서 일하사 자기가 참으로 기뻐하는 것을 원하게도 하시고 행하게도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라."라고 하고 (빌 2:13), 구원이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고 말합니다 (엡 2:8). 그래서 그는 말합니다. "아무도 내가 믿었으므로 그분이 나를 부르셨다고 말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선행하는 긍휼이 그를 불러 믿게 한 것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정죄하고,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미치며 은혜는 지난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죄짓지 않도록 실제로 돕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카르타고 공의회(418). 그 뒤 남부 갈리아에는 믿음의 시작은 사람의 의지에서 나올 수 있다고 보는 수도사들이 있었는데, 529년 오랑주 공의회는 선한 뜻과 믿음의 시작까지 은혜에서 온다고 고백하면서도 누구도 악으로 예정되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오랑주 공의회. 교회는 펠라기우스가 죄의 병을 너무 가볍게 보았다고 판단했습니다. 성경은 우리를 "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자라고 부르는데 (엡 2:1), 본보기는 죽은 사람을 살리지 못합니다.

두 도성, 그리고 그가 남긴 것

410년 알라리크가 이끄는 서고트족이 로마를 약탈했습니다. 이교도들은 로마가 옛 신들을 버린 탓이라며 그리스도인들을 비난했고, 그리스도인들도 흔들렸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413년부터 426년까지 『하나님의 도성』을 써서 답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하나님을 업신여기기까지 하는 자기 사랑이 땅의 도성을, 자기를 업신여기기까지 하는 하나님 사랑이 하늘의 도성을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두 도성은 끝날까지 역사 속에 뒤섞여 있고, 로마든 어느 나라든 땅의 나라가 곧 하나님의 도성은 아닙니다. 그리스도인은 이 땅에서 나그네로 살며 "여기에서는 우리에게 영구한 도시가 없고 우리가 다가오는 도시를 찾나니"라는 말씀처럼 (히 13:14) 오는 도성을 바라봅니다. 430년 반달족이 히포를 에워싸고 있을 때 그는 세상을 떠났습니다.

천 년 뒤 종교개혁 때 갈라선 양편은 모두 그를 스승으로 불렀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그를 교회 박사로 기리며 교회와 성례에 관한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았습니다. 루터는 아우구스티누스 수도회의 수사였고, 칼뱅은 『기독교 강요』에서 그를 끊임없이 인용합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개신교는 은혜가 먼저라는 그의 가르침에서 ‘오직 은혜’의 뿌리를 보았습니다 (개혁주의 신앙 과정의 오직 은혜, 오직 믿음 과 참고). 정교회도 그를 성인으로 기리지만, 원죄를 설명하는 방식에서는 그와 강조점이 다릅니다.

복음주의자들이 그를 읽는 방식도 갈립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이 값없이 택하신 이들을 은혜가 반드시 믿음에 이르게 한다는 그의 가르침을 이어받고, 웨슬리 전통은 은혜가 언제나 먼저라는 데 동의하면서도 그 은혜가 모든 사람에게 주어지며 거절될 수 있다고 가르칩니다 (교리 과정의 은혜와 선택 과 참고). 또 많은 복음주의자는 세례가 원죄의 죄책을 씻는다는 그의 성례관이나 도나투스파를 강제한 일에서는 그를 따르지 않습니다. 위대한 교부도 성경 아래 선 사람입니다.

그가 남긴 가장 큰 선물은 은혜 앞의 겸손입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간 것조차 그분이 먼저 이끄셨기 때문이라면, 남는 것은 자랑이 아니라 감사와 기도입니다. 그리고 쉼 없는 마음은 하나님 안에서만 쉼을 얻습니다. 이 주제는 은혜란 무엇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연습

  1. 연습 1 / 8

    아우구스티누스가 386년 밀라노의 정원에서 읽고 회심에 이른 말씀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8

    도나투스파에 맞서 아우구스티누스가 가르친 것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8

    도나투스파를 법으로 강제한 일에 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바르게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아우구스티누스는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니라. 사람이 내 안에 거하고 내가 그 안에 거하면 바로 그 사람은 많은 열매를 맺나니 나 없이는 너희가 아무것도 할 수 없느니라."는 말씀을 (요 15:5) 어떻게 읽었습니까?

  6. 연습 6 / 8

    『하나님의 도성』에 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은혜에 관해 개혁 전통과 웨슬리 전통이 함께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이어받은 것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아우구스티누스의 유산에 관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1. 아우구스티누스, 고백록 읽기
  2. 펠라기우스, 데메트리아스에게 보낸 편지 413 — 하나님이 주신 본성으로 사람이 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권면한다. 펠라기우스 자신의 글로 남은 대표 문서.
  3. 아우구스티누스, 본성과 은총 415 — 펠라기우스에 맞서, 타락한 본성은 하나님의 은혜로만 고침받는다고 논증한다.
  4. 아우구스티누스, 성도의 예정 — 428–429년경. 믿음의 시작까지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이며, 예정은 그 은혜를 미리 준비하심이라고 가르친다.
  5. 카르타고 공의회, 펠라기우스주의에 관한 결정 418 —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미치며 은혜 없이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고백하고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정죄했다.
  6. 제2차 오랑주 공의회, 오랑주 공의회 결정 529 —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시작이 은혜에서 온다고 고백하고, 악으로 예정되었다는 가르침을 거부한다.
  7.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 413–426년. 두 도성, 곧 하나님의 도성과 땅의 도성의 역사를 창조에서 종말까지 다룬다. 20권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교회의 시대로 읽고, 21권은 영원한 형벌을 다룬다. 읽기
  8.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