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10과

교부들은 성경을 어떻게 읽었나

교부들은 무엇보다 성경을 읽고 설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리게네스는 글자 너머의 영적 의미를 찾았고, 크리소스토무스는 본문의 뜻을 따라 회중에게 설교했으며, 히에로니무스는 히브리어에서 라틴어 구약을 옮겼고, 아우구스티누스는 모든 성경이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세운다고 가르쳤습니다.

연표에서 보기

성경의 사람들

이 앱의 복음서 주석에서 만나는 교부들, 곧 오리게네스와 크리소스토무스, 히에로니무스와 아우구스티누스는 무엇보다 성경을 읽고 설교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의 말은 13세기에 토마스 아퀴나스가 네 복음서의 구절마다 교부들의 풀이를 사슬처럼 엮은 『카테나 아우레아』, 곧 ‘황금 사슬’을 통해 우리에게 왔습니다 (카테나 아우레아 안내와 이 과정의 토마스 아퀴나스 과 참고).

교부들이 성경을 읽은 출발점은 예수 자신의 말씀이었습니다.

성경 기록들을 탐구하라. 너희가 그것들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얻는 줄로 생각하거니와 그것들은 곧 나에 대하여 증언하는 것들이니라.

요 5:39

부활하신 주께서도 엠마오로 가는 제자들에게 "모세와 모든 대언자들의 글에서 시작하여 모든 성경 기록들에서 자기에 관한 것들을 그들에게 풀어 설명해 주시니라." (눅 24:27). 그래서 교부들은 구약을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책으로, 성경 전체를 그리스도께 이르는 길로 읽었습니다. 크리소스토무스는 요한복음 5:39를 이렇게 풉니다. "그분이 그들을 성경으로 보내신 것은 단순히 읽으라는 것이 아니라 주의 깊게 살피라는 것이니, 성경은 언제나 자기 뜻 위에 그늘을 드리워 겉으로 드러내지 않기 때문입니다" 크리소스토무스.

교부들은 신약이 구약을 읽는 방식에서 실마리를 얻었습니다. 바울은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 곧 라 부르고 (롬 5:14), 광야의 일들이 우리를 경계하려고 기록되었다고 말합니다 (고전 10:11). 역사 속의 사람과 사건이 뒤에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다는 이 읽기를 ‘예표’라고 부릅니다. 크리소스토무스도 엠마오 이야기를 풀며, 아브라함이 이삭 대신 숫양을 드린 일이 그리스도의 희생을 미리 나타냈다고 말합니다 크리소스토무스.

알렉산드리아의 오리게네스

185년 무렵 알렉산드리아에서 태어난 오리게네스는 초대 교회에서 가장 부지런한 성경 학자였습니다. 박해 때 아버지를 잃은 그는 젊어서 알렉산드리아 교회의 교리 교사가 되었고, 뒤에 팔레스타인의 가이사랴로 옮겨 가르쳤습니다. 히브리어 구약과 여러 헬라어 번역을 여섯 단으로 나란히 놓은 『헥사플라』를 만들어 본문을 견주었고, 성경 거의 모든 책에 주석과 설교를 남겼습니다. 250년 데키우스 황제의 박해 때 모진 고문을 받았고 254년 무렵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230년 무렵의 『원리론』에서 성경을 사람에 견주었습니다. 사람에게 몸과 혼과 영이 있듯, 성경에도 글자 그대로의 뜻과 삶을 바로잡는 도덕적 뜻과 그리스도와 하늘의 일을 가리키는 영적 뜻이 있다는 것입니다. 글자대로는 말이 되지 않는 대목은 더 깊은 뜻을 찾으라는 표지라고도 했습니다 오리게네스, 원리론. 바울도 하갈과 사라의 이야기를 두 언약에 빗대어 읽었으니 (갈 4:24), 그는 자기 읽기가 사도의 길을 따른 것이라고 믿었습니다.

그는 낱말 하나에도 주의를 기울였습니다. 선지자들에게는 말씀이 ‘임하였다’고 하는데 요한복음 1:1은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고 한다는 데 주목하며, 그는 이렇게 씁니다. "말씀이 늘 그분과 함께 계셨으므로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라고 말하는 것입니다" 오리게네스.

그러나 영적 의미를 찾는 그의 읽기는 때로 본문에서 멀리 떠났고, 영혼이 몸보다 먼저 있었다거나 마침내 모든 것이 회복되리라는 사색도 남겼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나고 300년 가까이 지난 6세기에 그의 이름과 묶인 몇몇 생각이 정죄되었는데, 그것이 얼마나 그 자신의 생각이었는지는 학자들 사이에 논의가 있습니다. 그래도 그의 본문 연구와 주석은 그 뒤 거의 모든 교부의 읽기에 스며들었습니다.

안디옥의 설교자와 베들레헴의 번역자

안디옥의 교사들, 곧 다소의 디오도루스와 그의 제자 몹수에스티아의 테오도루스는 알렉산드리아의 풍유가 본문의 역사를 가볍게 여긴다고 보았습니다. 그들은 먼저 글이 쓰인 때와 사람과 문맥에서 뜻을 찾고, 더 높은 뜻은 그 역사 위에서만 읽어야 한다고 했습니다. 그래서 테오도루스는 시편 가운데 그리스도를 곧바로 예언한 시는 몇 편뿐이라고 보았습니다. 그는 뒷날 그리스도론 논쟁에 얽혀 6세기에 정죄되었지만, 본문의 역사적 뜻을 존중한 안디옥의 읽기는 오래 남았습니다.

이 전통이 낳은 가장 큰 설교자가 크리소스토무스(약 349–407년)입니다. 디오도루스에게 배운 그는 안디옥에서 10년 넘게 설교했고, 398년 콘스탄티노플의 감독이 되었다가 궁정의 미움을 사 유배되었고, 407년 더 먼 유배지로 끌려가던 길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마태복음과 요한복음과 바울 서신을 한 절 한 절 풀어 상인과 장인과 종들에게 설교했고, 부자들에게는 가난한 이웃을 돌보라고 거침없이 말했습니다. ‘황금의 입’이라는 뜻의 크리소스토무스라는 이름은 후대에 붙은 것이며, 『카테나 아우레아』에는 그의 마태복음과 요한복음 설교가 많이 실려 있습니다.

히에로니무스(약 347–420년)는 다른 길로 성경을 섬겼습니다. 로마에서 감독 다마수스의 부탁으로 라틴어 복음서를 손질한 그는 386년 베들레헴에 자리 잡고, 유대인 교사들에게 배운 히브리어로 구약을 직접 옮겼습니다. 라틴 교회는 그때까지 헬라어 구약을 다시 옮긴 번역을 읽었는데, 그는 ‘히브리어 진리’로 돌아가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처음에 교회들이 익숙한 본문에서 멀어질까 걱정했지만, 405년 무렵 끝난 그의 번역을 중심으로 한 라틴어 성경은 뒤에 불가타라 불리며 천 년 넘게 서방 교회의 성경이 되었습니다.

그는 이사야서 주석에서 성경을 모르는 것은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라고 썼습니다. 마태복음 13:44의 밭에 감추인 보화를 두고도 그 보화는 "그리스도의 육신 안에 감추어진 것처럼 보이는 하나님의 말씀이거나, 구주에 대한 지식이 쌓여 있는 성경입니다"라고 풉니다 히에로니무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고 우리의 읽기

히포의 감독 아우구스티누스는 396년 무렵 쓰기 시작해 426년 무렵 마친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성경을 읽고 가르치는 법을 정리했습니다. 그 중심은 예수께서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라 하신 두 계명입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너는 네 마음을 다하고 혼을 다하고 생각을 다하여 주 네 하나님을 사랑하라. 이것이 첫째가는 큰 명령이요, 둘째 명령은 그것과 같은 것으로서, 너는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이니라. 모든 율법과 대언자들의 글이 이 두 명령에 매달려 있느니라, 하시니라.

마 22:37-40

아우구스티누스는 성경을 안다고 생각하면서도 그 이해로 이 두 사랑을 세우지 못한다면 아직 깨닫지 못한 것이라고 했습니다. 또 분명한 대목으로 어두운 대목을 풀고, 글자대로 읽으면 바른 삶이나 바른 믿음과 어긋나는 대목은 비유로 읽으라고 했으며, 설교자는 가르치고 즐겁게 하고 마음을 움직여야 한다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 그 자신도 낱말을 신중히 저울질했습니다. 요한복음 1:1의 ‘로고스’를 두고 그는 "이 구절에서는 말씀으로 해석하는 편이 더 낫습니다. 이는 아버지만이 아니라 말씀의 활동하는 능력으로 말미암은 만물의 창조까지 가리키기 때문입니다"라고 씁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교부들의 읽기에서 조심할 것도 보입니다. 카테나는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데나리온 둘을 암브로시우스는 두 언약으로,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랑의 두 계명으로, 오리게네스는 또 다른 뜻으로 읽은 풀이를 나란히 싣습니다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교부 풀이. 교부들 자신도 이 비유로 이웃 사랑을 설교했고 이런 풀이는 경건한 묵상이지만, 본문에 닻을 내리지 않은 풍유는 읽는 사람마다 다른 뜻을 낳고 "그가 이르되, 그에게 긍휼을 베푼 자니이다, 하매 이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가서 너도 그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는 말씀의 힘을 흐릴 수 있습니다 (눅 10:37).

중세 교회는 글자의 뜻 위에 영적 뜻을 셋으로 나누어 읽었고, 오늘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도 문자적 의미와 영적 의미를 함께 말합니다. 종교개혁자들은 문법과 역사에 따른 본문의 평이한 뜻을 먼저 세우고 성경으로 성경을 풀되, 신약이 보여 준 예표는 그대로 받았습니다. 복음주의 안에서도 구약의 어느 대목까지 그리스도를 읽을지에 대해서는 강조가 다릅니다 (이 과정의 성경을 해석하는 길 과 참고).

그래도 교부들에게서 배울 것은 분명합니다. 그들은 기도하며, 교회 안에서, 그리스도를 찾으며 성경을 읽었습니다. 낱말 하나에 주의를 기울였고, 평범한 사람들이 알아듣도록 설교했으며, 모든 읽기가 하나님과 이웃 사랑으로 열매 맺어야 한다고 믿었습니다. 8세기의 베다는 엠마오 이야기를 두고, 이 성경들이 그리스도와 어떤 관계인지 찾지 않는 사람이 어찌 자기가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하겠느냐고 묻습니다 베다.

연습

  1. 연습 1 / 8

    오리게네스의 『헥사플라』는 어떤 책이었습니까?

  2. 연습 2 / 8

    오리게네스가 『원리론』에서 성경의 뜻을 사람의 몸과 혼과 영에 견준 것은 무엇을 말하려는 것이었습니까?

  3. 연습 3 / 8

    안디옥의 교사들(디오도루스, 테오도루스)의 성경 읽기를 바르게 설명한 것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크리소스토무스는 예수께서 사람들을 성경으로 보내신 뜻을 무엇이라고 풀었습니까?

  5. 연습 5 / 8

    히에로니무스가 서방 교회에 남긴 가장 큰 일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아우구스티누스가 『그리스도교 교양』에서 말한 성경 읽기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바울이 아담을 오실 자의 ‘표상’이라 부른 것처럼, 역사 속의 사람과 사건이 뒤에 오실 그리스도를 미리 보여 준다고 읽는 것을 무엇이라고 합니까?

  8. 연습 8 / 8

    카테나가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의 데나리온 둘에 대한 교부들의 여러 풀이를 나란히 싣는 것이 보여 주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1. 오리게네스, 원리론 — 220–230년경. 만물의 회복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으며, 후대 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2.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교 교양 — 성경을 이해하고 가르치는 법. 모든 성경은 하나님과 이웃을 사랑하게 하려고 주어졌다고 한다.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신학자들의 글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복음주의 신앙에 서서, 각 전통과 신학자를 먼저 그들 자신의 말로 공정하게 소개한 뒤 성경에 비추어 살핍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