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학 사전

하나님의 형상

The image of God

하나님의 형상은 하나님이 사람을 자신을 닮게 지으시고, 이 세상에서 자신을 비추며 자신을 대신해 피조물을 돌보도록 세우신 사람만의 자리입니다. 죄로 일그러졌으나 사라지지 않았기에 모든 사람은 존귀하며, 이 형상은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새롭게 됩니다.

하나님을 비추도록 지음 받은 사람

창조 이야기의 정점에서 하나님은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우리가 우리의 형상으로 우리의 모양에 따라 사람을 만들고 그들이 바다의 물고기와 공중의 날짐승과 가축과 온 땅과 땅에서 기는 모든 기는 것을 지배하게 하자, 하시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창 1:26).

이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하나님의 형상으로 그를 창조하시고 그들을 남성과 여성으로 창조하시니라.

창 1:27

‘형상’으로 옮긴 히브리어 첼렘(צֶלֶם)은 흔히 눈에 보이는 상을 가리키고, ‘모양’ 데무트(דְּמוּת)는 닮음을 뜻합니다. 몸이 없으신 하나님을 겉모습이 닮았다는 뜻은 아닙니다. 고대의 왕들이 다스리는 땅에 자기 상을 세웠듯이, 하나님은 사람을 자신의 살아 있는 형상으로 세상에 두시고 그분 아래에서 피조물을 돌보며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창조 참고). 이 형상은 남자와 여자에게 똑같이 주어졌습니다.

타락 뒤에도 성경은 사람을 여전히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이로 말합니다. 홍수 뒤 하나님은 살인을 금하시며 "누구든지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사람에 의해 자기 피를 흘리리니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니라."고 하셨고 (창 9:6), 야고보는 같은 혀로 하나님을 찬송하면서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 곧 아버지를 찬송하며 또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모양대로 만들어진 사람들을 저주하느니라."하는 일을 꾸짖습니다 (약 3:9). 그래서 태어나지 않은 아이도, 늙고 병들고 가난한 사람도 같은 존엄을 지닙니다. 그러나 원죄로 이 형상은 깊이 일그러졌습니다. 매튜 헨리는 이렇게 탄식합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있는 이 하나님의 형상이 얼마나 훼손되었습니까!" 매튜 헨리

참 형상이신 그리스도

신약은 형상의 원본을 보여 줍니다. 그리스도는 "그분께서는 보이지 아니하는 하나님의 형상이시요 모든 창조물의 처음 난 자이시니"이십니다 (골 1:15). 여기서 ‘형상’은 헬라어 에이콘(εἰκών)입니다. 사람이 하나님을 비추도록 지음 받았다면, 그리스도는 하나님을 완전히 비추시는 분이고, 구원은 일그러진 형상을 이 원본을 따라 다시 빚는 일입니다. 새 사람은 "새 사람을 입었는데 이 새 사람은 그를 창조하신 분의 형상을 따라 지식에서 새로워진 자니라."이며 (골 3:10), "또 너희가 하나님을 따라 의와 참된 거룩함으로 창조된 새 사람을 입을 것을 가르침을 받았으니" 사람입니다 (엡 4:24).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께서는 자신이 미리 아신 자들을 또한 예정하사 자신의 아들의 형상과 같은 모습이 되게 하셨나니 이것은 그분이 많은 형제들 가운데서 처음 난 자가 되게 하려 하심이니라." 미리 정하셨고 (롬 8:29), 성령은 지금도 우리를 "그러나 우리는 다 가리지 않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바라보며 같은 형상으로 변화되어 영광에서 영광에 이르렀나니 이것은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은 것이니라." 이르게 하십니다 (고후 3:18).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은 이 말씀들을 따라 처음 지음 받은 사람을 이렇게 요약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남자와 여자로, 자신의 형상을 따라 지식과 의와 거룩으로 창조하시고, 피조물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소요리문답 10문

형상을 이해하는 여러 길

성경은 형상을 한 문장으로 정의하지 않기에, 교회는 여러 측면을 보아 왔고 이를 함께 붙드는 경우가 많습니다. 많은 교부와 중세 신학자는 이성과 의지와 도덕적 본성에서 형상을 보았고, 아우구스티누스는 정신이 하나님을 기억하고 알고 사랑할 때 형상이 가장 밝게 빛난다고 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카를 바르트 같은 이들은 하나님이 사람에게 말을 거시고 남자와 여자가 서로 마주하는 관계에서 형상을 보았고 바르트, 교회 교의학, 많은 구약 학자는 세상을 맡아 다스리는 왕 같은 소명을 강조합니다.

‘형상’과 ‘모양’의 관계도 전통마다 다르게 설명합니다. 이레나이우스는 둘을 구별했고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다마스쿠스의 요한은 형상을 정신과 자유의지에, 모양을 덕에서 하나님을 닮아 가는 데 두었습니다 다마스쿠스의 요한, 정통 신앙에 대한 정확한 해설. 정교회는 이를 따라, 형상은 모든 사람에게 남아 있고 모양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의 생명에 참여하는 ‘신화’(테오시스)의 길로 이루어진다고 가르칩니다. 가톨릭 교회는 죄로 일그러진 사람도 하나님의 형상 안에 있으나 하나님의 영광, 곧 그 모양을 잃었고, 그리스도께서 성령을 다시 주셔서 이를 회복하신다고 가르칩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칼뱅은 두 말을 같은 뜻을 거듭 말하는 히브리어 표현으로 보았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1.15. 많은 개혁파 신학자는 넓은 뜻의 형상, 곧 이성과 양심을 지닌 사람됨은 부패했으나 남아 있고, 좁은 뜻의 형상, 곧 지식과 의와 거룩함은 잃었다가 그리스도 안에서 회복된다고 설명합니다. 루터교 신앙고백은 형상을 주로 처음의 의로움이라는 좁은 뜻으로 써서 그것을 잃었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어느 전통이든 타락한 사람도 여전히 하나님이 지으시고 귀히 여기시는 존재라는 데 뜻을 같이합니다. 교리 과정의 하나님의 형상 과와 인간이란 무엇인가?도 읽어 보십시오.

출처

  1.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2. 카를 바르트, 교회 교의학 1932–1967
  3.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읽기
  4. 다마스쿠스의 요한, 정통 신앙에 대한 정확한 해설
  5.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2
  6.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읽기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