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조
하나님은 아무것도 없는 데서 말씀으로 하늘과 땅과 그 안의 모든 것을 지으셨습니다. 성부께서 성자와 성령으로 지으신 이 세계는 선하며, 하나님의 일부가 아니라 하나님께 기대어 존재하고, 그분의 영광과 사랑을 위해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세상은 어디에서 왔을까요? 별과 바다와 우리 자신은 왜 없지 않고 있을까요? 성경은 첫 문장에서 이 물음에 답합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 1:1
천지, 곧 하늘과 땅은 온 세상을 가리키는 표현입니다. ‘창조하다’로 옮긴 는 구약에서 기본형으로 쓰일 때 언제나 하나님만을 주어로 삼습니다. 사람도 무엇인가를 만들고 빚지만, 이 일은 하나님만 하십니다. 이 과에서는 성경과 교회가 가르치는 창조를 살펴봅니다.
하나님은 이미 있던 재료로 세상을 빚으신 장인이 아닙니다.
믿음을 통해 우리는 세상들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진 줄을 깨닫나니 그런즉 보이는 것들은 나타나 보이는 것들로 만들어지지 아니하였느니라.
히 11:3
바울은 하나님을 "(이것은 기록된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들의 조상으로 삼았느니라,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하나님은 죽은 자들을 살리시며 없는 그것들을 마치 있었던 것처럼 부르시는 이시니라."라고 부릅니다 (롬 4:17). 교회는 이 가르침을 ‘무로부터의 창조’라고 불러 왔습니다. 하나님 곁에 영원히 함께 있던 재료나 경쟁자는 없습니다. 하나님만 영원하시고, 다른 모든 것은 그분이 있게 하셨기에 있습니다. 매튜 헨리는 창세기 첫 구절을 두고 "겸손한 그리스도인의 믿음은 가장 박학한 사람들의 상상보다 이것을 더 잘 이해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히브리서의 말처럼 창조는 믿음으로 아는 진리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지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매 빛이 있었고"라고 창세기는 말합니다 (창 1:3).
주의 말씀으로 하늘들이 만들어지고 하늘들의 온 군대가 그분의 입의 숨에 의해 만들어졌도다.
시 33:6
시편은 이어서 "그분께서 말씀하시매 그것이 이루어졌으며 그분께서 명령하시매 그것이 굳게 섰도다."라고 노래합니다 (시 33:9). 하나님께는 싸움도 수고도 필요 없었습니다. 그분이 원하셨고 말씀하셨고 그대로 되었습니다. 하늘의 장로들이 "오 주여, 주는 영광과 존귀와 권능을 받기에 합당하시오니 주께서 모든 것을 창조하셨고 또 그것들이 주를 기쁘게 하려고 존재하며 창조되었나이다, 하더라."라고 찬양하는 까닭입니다 (계 4:11).
삼위 하나님의 일
창조는 성부, 성자, 성령께서 함께 하신 일입니다. 요한은 영원한 말씀이신 성자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요 1:3
바울도 "이는 그분에 의해 모든 것이 창조되었기 때문이라. 하늘에 있는 것들과 땅에 있는 것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왕좌들이나 통치들이나 정사들이나 권능들이나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창조되고 그분을 위하여 창조되었노라."라고 씁니다 (골 1:16). 성령께서도 첫 장면에 계십니다. 땅이 혼돈하고 공허할 때 "땅은 형태가 없고 비어 있으며 어둠은 깊음의 표면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들의 표면 위에서 움직이시니라."고 하였습니다 (창 1:2).
교회는 이것을 신경으로 고백했습니다. 사도신경은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다는 고백으로 시작합니다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은 하나님을 하늘과 땅과 ‘보이는 것과 보이지 않는 모든 것’을 지으신 분으로 고백하고, 성자에 대해서도 만물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지음을 받았다고 덧붙입니다 니케아 신경.
2세기의 이레나이우스는 물질세계를 낮은 신이나 천사들이 만들었다고 가르친 영지주의자들에게 맞섰습니다. 그는 한 분 하나님이 누구의 도움도 필요 없이, 스스로 원하셔서 자유롭게 만물을 지으셨다고 가르쳤습니다. 그분 곁에는 언제나 말씀과 지혜, 곧 성자와 성령이 계셨고, 이레나이우스는 두 분을 하나님의 ‘손’이라고 불렀습니다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1:3을 풀며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 이렇게 선을 긋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모든 실체는 피조물이며, 피조물이 아닌 것은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선하고, 하나님께 기대어 있는 세계
여섯째 날이 저물 때 하나님은 지으신 것을 돌아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자신이 만든 모든 것을 보시니, 보라, 매우 좋았더라. 그 저녁과 아침이 여섯째 날이더라.
창 1:31
이 말씀은 물질과 몸을 악하거나 천하게 여기는 생각을 물리칩니다. 바울은 혼인을 금하고 음식을 멀리하라는 가르침에 맞서 "하나님의 모든 창조물은 선하고 감사함으로 받으면 거부할 것이 하나도 없나니"라고 말합니다 (딤전 4:4). 몸도, 음식도, 땅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그러나 세상은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에게서 흘러나온 그분의 일부도 아니고, 영원 전부터 하나님과 맞서 온 또 하나의 원리도 아닙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은 해와 산과 강을 섬기지도 두려워하지도 않습니다. 세상은 순간마다 하나님께 기대어 있습니다. 바울은 하나님이 "무엇이 부족한 것처럼" 섬김을 받으시는 분이 아니라 "또 무엇인가를 필요로 하시는 것처럼 사람들의 손을 통해 경배를 받지 아니하시나니 이는 그분께서 모든 사람에게 생명과 숨과 모든 것을 주시기 때문이라."라고 말합니다 (행 17:25).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를 지금도 붙드시고 다스리시는 일은 섭리 과에서 다룹니다.
하나님은 부족해서가 아니라 넘치는 선하심으로 세상을 지으셨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는 찬양처럼 (롬 11:36), 세상은 그분의 영광을 위해 있습니다. 칼뱅은 이 세계를 하나님의 영광이 펼쳐지는 아름다운 극장에 빗대었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1.14.20. 이 무대에서 하나님은 피조물을 사랑하시고 언약을 맺으시며, 마침내 아들을 사람으로 보내셨습니다. 그 이야기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완성됩니다.
창조 이야기는 일이 아니라 쉼으로 끝납니다.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을 복 주시고 거룩히 구별하셨으니 이는 그 날에 하나님께서 친히 창조하며 만든 자신의 모든 일에서 떠나 안식하셨기 때문이더라.
창 2:3
매튜 헨리는 "하나님은 피곤한 사람처럼 쉬신 것이 아니라 만족하신 분으로서 쉬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매튜 헨리. 세상은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쉼을 향해 지어졌습니다. 쉼의 뜻은 왜 쉬어야 하는가?에서, 안식일과 주일은 예배와 기도 과에서 다룹니다.
창세기 1장의 엿새
여기까지는 그리스도인이 함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1장의 날을 어떻게 읽고, 과학이 말하는 우주와 지구의 긴 나이를 어떻게 이해할지에 대해서는 신실한 그리스도인들의 견해가 갈립니다. 이 차이는 교파를 따라 나뉘지 않고 대부분의 교회 안에 함께 있습니다.
젊은 지구 창조론은 엿새를 보통의 하루로, 세상의 역사를 수천 년 정도로 봅니다. 날마다 붙은 숫자와 "저녁이 되며 아침이 되니"라는 후렴이 보통의 하루를 가리키고, 십계명도 안식일을 "엿새 동안에 나 여호와가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가운데 모든 것을 만들고"라는 말씀에 근거 짓는다는 것입니다 (출 20:11). 바실리우스와 루터와 칼뱅도 날을 보통의 하루로 읽었고, 오늘 많은 복음주의자가 이 견해를 따르며 한국 교회에도 널리 퍼져 있습니다.
오랜 지구 창조론, 흔히 날-시대 이론은 날을 긴 시대로 읽습니다. 히브리어 ‘날’(욤)은 한 시기를 뜻하기도 합니다. "땅과 하늘들이 창조된 때 곧 주 하나님께서 그것들을 만들고"라는 말씀도 (창 2:4) 히브리어로는 창조 전체를 한 ‘날’로 부르고, 일곱째 날에는 저녁과 아침의 마무리가 없습니다. 이 견해를 따르는 이들은 하나님이 긴 세월에 걸쳐 단계마다 일하셨다고 보며, 많은 이가 사람은 하나님이 특별히 지으셨다고 믿습니다.
틀 해석은 엿새를 시간표가 아니라 문학의 틀로 봅니다. 첫 사흘에는 빛, 하늘과 바다, 땅이라는 영역이 마련되고, 다음 사흘에는 해와 달과 별, 새와 물고기, 짐승과 사람이 그 영역을 채웁니다. 이 짜임새는 창세기가 창조에 걸린 시간보다 누가 무엇을 왜 지으셨는지를 가르친다는 표시라는 것입니다. 일찍이 아우구스티누스도 하나님이 만물을 한꺼번에 지으셨다고 보아, 엿새를 시간표가 아니라 순서로 읽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 오늘의 틀 해석은 20세기 개혁파 학자들 사이에서 다듬어져 여러 교파의 학자가 지지합니다.
진화적 창조론은 하나님이 긴 진화의 과정을 통해 생명을 지으셨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하나님께서 이르시되, 땅은 살아 있는 창조물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되 가축과 기는 것과 땅의 짐승을 그것의 종류대로 내라, 하시니 그대로 되니라."라고 명하신 것처럼 (창 1:24), 자연의 질서를 통해 일하시는 것도 그분의 창조라고 믿습니다. 가톨릭 교회는 1950년 비오 12세의 회칙 이래,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다고 가르치면서 사람 몸의 기원에 관한 진화론의 탐구를 허용해 왔고 비오 12세, 인류, 복음주의자를 포함한 많은 개신교인도 이 견해를 따릅니다. 아담과 타락에 관한 물음은 타락 과에서 다룹니다.
네 견해는 다르지만, 모두 하나님이 만물의 창조주이시고 세상은 선하며 사람은 하나님의 형상이고 창세기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고백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에서, 그리스도인이 성경을 내세워 자연에 대해 터무니없는 말을 하면 믿지 않는 이들이 성경 자체를 비웃게 된다고 경고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 1.19. 그러면서 자연에 대해 확실히 증명된 것은 성경과 어긋나지 않음을 보이고, 성경에 반하는 주장은 거짓으로 여기라고 했습니다. 겸손히 배우되 말씀을 붙들라는 이 권면은 어느 견해에 서든 귀합니다. 이 물음은 창세기는 역사인가?와 과학과 신앙은 충돌하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창조를 믿는다는 것은 세상을 선물로 받는다는 뜻입니다. 아침 햇살과 밥 한 끼를 감사로 받고, 하나님이 좋다 하신 세계를 아끼며, 모든 것을 지으신 분 앞에서 쉼을 누리는 것입니다.
연습
- 연습 1 / 8
히브리서 11:3은 세계가 어떻게 지어졌다고 말합니까?
- 연습 2 / 8
창조에서 성자께서 하신 일을 분명하게 말하는 구절은 무엇입니까?
- 연습 3 / 8
디모데전서 4:4는 하나님이 지으신 것들에 대해 무엇이라고 가르칩니까?
- 연습 4 / 8
다음 중 창조에 대한 그리스도인의 고백과 맞지 않는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8
2세기에 영지주의자들에게 맞서, 한 분 하나님이 말씀과 지혜, 곧 성자와 성령으로 만물을 자유롭게 지으셨다고 가르친 교부는 누구입니까?
- 연습 6 / 8
다음 중 견해와 그 설명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8
사람의 영혼은 하나님이 직접 지으신다고 가르치면서, 1950년 이래 사람 몸의 기원에 관한 진화론의 탐구를 허용해 온 교회는 어디입니까?
- 연습 8 / 8
아우구스티누스가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에서 경고한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읽기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 180년경. 영지주의에 맞서 창조주 하나님과 성육신을 변호하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새롭게 하신다(총괄갱신)고 가르친다. 5권은 의인들이 새로워진 창조 안에서 다스린다는 소망을 말한다. 읽기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 아우구스티누스, 창세기의 문자적 의미 — 401–415년경. 창세기 1–3장의 풀이. 창조의 엿새를 문자 그대로의 날로만 읽지 않았고, 그리스도인이 자연에 대해 모르는 말을 하여 성경을 우습게 보이게 해서는 안 된다고 경고한다(1.19).
- 교황 비오 12세, 인류(후마니 제네리스) 1950 — 몸의 기원에 대한 진화 연구는 허용하되 하나님이 각 사람의 영혼을 직접 창조하신다고 가르친 회칙.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