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림과 천년왕국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눈에 보이게,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시고 만물을 새롭게 하실 것입니다. 그날은 아무도 모르므로 우리는 깨어 일하며 기다리고,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읽는 방식은 교회마다 다르지만 이 소망은 모두 같습니다.
그분이 다시 오십니다
승천의 날, 하늘을 쳐다보며 서 있던 제자들에게 흰 옷 입은 두 사람이 말했습니다.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
행 1:11
다시 오실 분은 제자들과 함께 먹고 걸으시던 바로 그 예수이십니다. 그분의 오심은 사람의 마음속에서만 일어나는 일도, 몇 사람만 아는 비밀스러운 일도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사람들이 "그때에 사람의 아들의 표적이 하늘에 나타나고 그때에 땅의 모든 지파가 애곡하며 사람의 아들이 권능과 큰 영광을 가지고 하늘의 구름들 가운데서 오는 것을 보리라."고 하셨고 (마 24:30), 요한은 "보라, 그분께서 구름들과 함께 오시느니라. 모든 눈이 그분을 보겠고 그분을 찌른 자들도 볼 것이요, 땅의 모든 족속들이 그분으로 인하여 통곡하리니 참으로 그러하리로다. 아멘."라고 씁니다 (계 1:7). 첫 번째 오심에서 그분은 죄를 담당하시려고 자기를 드리셨지만, 두 번째에는 "이와 같이 그리스도께서도 많은 사람의 죄들을 담당하시려고 단 한 번 드려지셨으며 또 자신을 기다리는 자들에게 죄와 상관없이 두 번째 나타나사 구원에 이르게 하시리라." 나타나십니다 (히 9:28). 그래서 바울은 이날을 "저 복된 소망과 위대하신 하나님 곧 우리의 구원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느니라."이라고 부릅니다 (딛 2:13).
신약은 이 오심을 자주 라고 부릅니다 (살전 4:15). 본래 ‘와 있음, 도착’을 뜻하는 말로, 당시에는 왕이나 높은 관리가 한 도시를 공식적으로 찾아오는 일에도 쓰였습니다. 교회는 처음부터 이 소망을 신앙의 중심에 두었습니다. 사도신경은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그리스도께서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고 고백하고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은 그분이 영광 중에 다시 오셔서 산 이와 죽은 이를 심판하실 것이며 그 나라가 끝이 없으리라고 고백합니다 니케아 신경. 동방과 서방의 교회가 이 소망을 함께 고백합니다.
그날은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날과 그 시각은 결코 아무도 알지 못하나니 하늘의 천사들도 알지 못하고 오직 내 아버지만 아시느니라.
마 24:36
부활하신 뒤에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그 때나 그 시기는 아버지께서 자신의 권능 안에 두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요"라고 하셨습니다 (행 1:7). 히에로니무스는 주께서 그날을 알려 주지 않으신 까닭을 이렇게 풉니다. "자기들의 심판주께서 오실 때를 알지 못하는 불확실함 가운데 있어야, 그들이 날마다 바로 그날 심판받을 것처럼 살게 되기 때문입니다" 히에로니무스. 교회의 역사에는 성경의 숫자로 날짜를 계산해 발표했다가 많은 사람을 두려움과 실망에 빠뜨린 일이 여러 번 있었습니다. 그날을 정하는 일은 성경이 허락하지 않습니다.
그 대신 주께서는 "그러므로 깨어 있으라. 어느 시각에 너희 주가 올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니라."고 하십니다 (마 24:42). 깨어 있다는 것은 하늘만 쳐다보는 것이 아니라, 주인이 맡긴 집 사람들에게 "그런즉 자기 주인으로부터 그의 집안사람들을 넘겨받아 다스리며 제 때에 그들에게 양식을 나누어 줄 신실하고 지혜로운 종이 누구냐?" 충성된 종처럼 사는 것입니다 (마 24:45). 베드로는 이 날을 기다리는 이들에게 "그런즉 이 모든 것이 해체될진대 너희가 어떤 사람이 되어야 마땅하겠느냐? 모든 거룩한 행실 속에서 하나님을 따르는 가운데" 살라고 하고 (벧후 3:11), 요한은 "그분 안에서 이 소망을 가진 자마다 그분께서 순결하신 것 같이 자기를 순결하게 하느니라."고 말합니다 (요일 3:3). 매튜 헨리는 데살로니가전서 4장에서 부활과 재림의 가르침이 죽음의 두려움과 지나친 슬픔을 이기는 약이라고 하면서 "우리는 이 교리들에 대해 온전한 확신이 있습니다"라고 덧붙입니다 매튜 헨리.
천 년을 읽는 네 가지 길
요한계시록 20장은 용, 곧 사단이 천 년 동안 결박되고 순교자들이 "또 내가 보니 왕좌들과 그것들 위에 앉은 자들이 있는데 그들에게 심판이 맡겨졌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님의 증언과 하나님의 말씀으로 인하여 목 베인 자들의 혼들이 있는데 그들은 짐승과 그의 형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자기들의 이마 위에나 손 안에 짐승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더라. 그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 년 동안 통치하되" 한다고 말합니다 (계 20:4). 성경에서 천 년의 다스림을 말하는 곳은 이 장뿐이고, 그리스도인들은 이 천년왕국을 크게 네 가지로 읽어 왔습니다.
| 견해 | 천 년은 | 재림은 | 주로 받아들이는 이들 |
|---|---|---|---|
| 무천년설 | 그리스도의 첫 오심부터 재림까지의 지금 시대 | 천 년의 끝에 | 가톨릭 교회, 정교회, 루터교와 개혁교회의 많은 이 |
| 후천년설 | 복음이 온 세상에 퍼진 뒤 오는 평화의 시대 | 천 년 뒤에 | 많은 청교도와 19세기 복음주의자 |
| 역사적 전천년설 | 재림 뒤 땅 위에서 그리스도께서 다스리실 때 | 천 년 전에 | 유스티누스, 이레나이우스 등 2세기 교부들 |
| 세대주의 전천년설 | 재림 뒤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땅 위의 왕국 | 환난 전 휴거, 환난 뒤 재림 | 스코필드 관주 성경 이후 많은 복음주의자 |
무천년설은 ‘천 년이 없다’는 뜻이 아니라 천 년이 지금이라는 견해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자신도 한때 부활 뒤에 성도들이 누릴 천 년의 안식을 기대했다고 밝힌 뒤, 이 천 년을 그리스도의 첫 오심부터 재림까지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시대로 읽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20권. 사단의 결박은 예수께서 "사람이 먼저 강한 자를 결박하지 않고서야 어떻게 강한 자의 집에 들어가 그의 재산을 노략하겠느냐? 결박한 뒤에야 그가 그의 집을 노략하리라."하신 일과 같아서 (마 12:29) 더 이상 복음이 만국에 퍼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뜻이고, 첫째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는 것, 또는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것으로 봅니다. 루터교의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7조도 죽은 자의 부활 전에 경건한 이들이 세상 나라를 차지하리라는 생각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7조.
후천년설은 성령의 능력으로 복음이 퍼져 세상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으로 깊이 바뀌고, 오랜 의와 평화의 시대가 온 뒤에 그리스도께서 오신다고 봅니다. 가루 서 말을 부풀게 하는 누룩의 비유 (마 13:33)와 "그것들이 내 거룩한 산 모든 곳에서 상하게 하거나 멸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물들이 바다를 덮는 것 같이 주를 아는 지식이 땅에 충만할 것이기 때문이니라."이라는 약속 (사 11:9)이 그 근거입니다. 많은 청교도와 19세기 복음주의자들이 이 소망을 품고 선교와 사회 개혁에 힘썼고, 지금도 이 견해를 붙드는 이들이 있습니다.
역사적 전천년설은 그리스도께서 환난 뒤에 오셔서 성도들을 일으키시고 땅 위에서 천 년 동안 다스리신 다음 마지막 심판과 새 창조가 온다고 봅니다. 4절에서 ‘살아서’로 옮긴 헬라어 동사가 5절의 나머지 죽은 자들에게도 똑같이 쓰이므로, 첫째 부활도 몸의 부활로 읽습니다. 이레나이우스는 의인들이 새롭게 된 땅에서 다스릴 것이라고 가르쳤고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5권, 유스티누스는 『트리포와의 대화』에서 이 견해를 따르면서도 순전하고 경건한 믿음을 가진 많은 그리스도인이 달리 생각한다는 것을 인정했습니다 유스티누스, 트리포와의 대화 80장.
세대주의 전천년설은 19세기의 존 넬슨 다비가 체계화하고 스코필드 관주 성경(1909)이 널리 퍼뜨린 견해로, 한국 교회에도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스코필드 관주 성경.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교회를 구별하여 다루신다고 보고, 그리스도께서 먼저 교회를 공중으로 끌어올리시고(휴거) 다니엘 9장의 마지막 한 이레로 읽는 칠 년 환난 뒤에 성도들과 함께 땅에 오셔서 이스라엘에게 하신 약속을 이루는 천 년 왕국을 세우신다고 가르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진노에 이르도록 정하지 아니하시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구원을 얻도록 정하셨느니라."라는 말씀 (살전 5:9)과, 주께서 언제라도 오실 수 있다는 기대를 중요하게 여깁니다.
모두가 함께 바라는 것
이 견해들은 서로 다르지만 같은 소망을 고백합니다. 그리스도께서 몸으로, 눈에 보이게, 영광 중에 오셔서 죽은 자를 일으키시고 심판하시며 만물을 새롭게 하신다는 것, 그리고 그날을 계산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에큐메니컬 신경들은 천 년을 어떻게 읽을지 정하지 않았으므로, 다르게 읽는 그리스도인을 의심할 까닭이 없습니다. 이 주제는 예수는 다시 오시는가?, 휴거와 천년왕국은 무엇인가?, 세상의 끝은 언제 오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성경에 기록된 주님의 마지막 말씀은 "내가 진실로 속히 오리라"이고, 교회는 그 말씀에 "이것들을 증언하시는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라고 응답합니다 (계 22:20). 그분이 오실 때 일어날 부활과 심판과 새 창조는 다음 과에서 봅니다.
연습
- 연습 1 / 7
사도행전 1:11에 따르면 예수께서는 어떻게 다시 오십니까?
- 연습 2 / 7
신약이 그리스도의 오심을 부를 때 자주 쓰는 헬라어 파루시아는 본래 무슨 뜻입니까?
- 연습 3 / 7
마태복음 24:36에 따르면 그날과 그때를 아시는 분은 누구입니까?
- 연습 4 / 7
무천년설이 말하는 천 년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7
그리스도께서 환난 전에 교회를 끌어올리시고, 칠 년 환난 뒤에 오셔서 이스라엘이 회복되는 천 년 왕국을 세우신다고 가르치는 견해는 무엇입니까?
- 연습 6 / 7
다음 중 견해와 그 견해를 따른 이들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7 / 7
천 년에 대한 네 견해가 모두 함께 고백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읽기
-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 413–426년. 두 도성, 곧 하나님의 도성과 땅의 도성의 역사를 창조에서 종말까지 다룬다. 20권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교회의 시대로 읽고, 21권은 영원한 형벌을 다룬다. 읽기
-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 루터교의 기본 신앙고백.
-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 180년경. 영지주의에 맞서 창조주 하나님과 성육신을 변호하고, 그리스도께서 인류를 새롭게 하신다(총괄갱신)고 가르친다. 5권은 의인들이 새로워진 창조 안에서 다스린다는 소망을 말한다. 읽기
- 유스티누스, 트리포와의 대화 80 — 160년경. 예루살렘이 다시 세워져 성도들이 천 년 동안 다스린다고 믿으면서도, 경건한 그리스도인 가운데 달리 생각하는 이가 많다고 인정한다.
- C. I. 스코필드, 스코필드 관주 성경 1909 — 세대주의와 환난 전 휴거 및 전천년설을 널리 퍼뜨린 관주 성경.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