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30과

부활,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마지막 날 모든 죽은 자가 몸으로 다시 살아나고,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공의로 심판하십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그분의 영광스러운 몸을 닮은 몸으로 살아나, 하나님이 친히 함께 계시는 새 하늘과 새 땅에서 그분의 얼굴을 뵐 것입니다.

몸이 다시 사는 것

사도신경은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는다는 고백으로 끝납니다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도 죽은 자의 부활과 오는 세상의 생명을 기다린다는 고백으로 마무리됩니다 니케아 신경. 그리스도인의 마지막 소망은 영혼이 몸을 벗고 영원히 떠도는 것이 아니라, 사람 전체가 다시 사는 것입니다.

성경은 모든 죽은 자가 살아난다고 말합니다. 바울은 "또 그들도 스스로 인정하는바 하나님을 향한 소망을 내가 가졌으니 그것은 곧 죽은 자들의 부활 즉 의로운 자들의 부활과 불의한 자들의 부활이 있으리라는 것이니이다."고 고백했고 (행 24:15), 예수께서도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에 놀라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모든 자들이 그의 음성을 듣고 나올 때가 오고 있나니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8-29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말씀을 두고 "이보다 더 분명한 것이 있겠습니까? 무덤 속에 있는 것은 사람의 몸이지 영혼이 아닙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러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이들은 어떤 몸으로 살아날까요? 바울은 씨앗에 빗대어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 일으켜지며"라고 답합니다 (고전 15:42). 땅에 심은 씨와 자라난 밀이 같은 생명이듯, 부활의 몸은 지금의 몸과 이어져 있으면서도 썩지 않고 영광스럽게 변합니다. ‘신령한 몸’ (고전 15:44)은 몸이 없는 영이 아니라 성령께서 온전히 다스리시는 몸이라고 많은 해석자는 이해합니다. 그 본은 부활하신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우리의 생활 방식은 하늘에 있으며 거기로부터 또한 우리가 구원자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분께서는 모든 것을 자기에게 복종시킬 때 사용하는 능력을 발휘하사 우리의 천한 몸을 변화시켜 자신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게 만드시리라.

빌 3:20-21

그리스도의 심판

부활 뒤에는 심판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정하신 사람으로 하여금 천하를 공의로 심판할 날을 작정하시고"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셨습니다 (행 17:31). 우리는 "다 반드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드러나" 몸으로 행한 것을 따라 받게 됩니다 (고후 5:10). 인자가 영광으로 오셔서 모든 민족을 양과 염소처럼 나누실 때, 그분은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일을 "왕이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가 이들 내 형제들 중에서 가장 작은 자 하나에게 그것을 하였은즉 내게 하였느니라, 하고"이라고 하십니다 (마 25:40). 하나님은 외모로 사람을 취하지 않으시고 "그분께서 각 사람에게 그의 행위대로 갚으시되"는 의로운 재판장이십니다 (롬 2:6).

그렇다면 누가 설 수 있을까요? 같은 성경이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자들에게는 정죄함이 없나니 그들은 육신을 따라 걷지 아니하고 성령을 따라 걷느니라."라고 말합니다 (롬 8:1). 예수께서는 믿는 자가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를 보내신 분을 믿는 자는 영존하는 생명이 있고 또 정죄에 이르지 아니하리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졌느니라."고 하셨습니다 (요 5:24). 그날 드러나는 행위는 그리스도의 은혜 안에서 살아 있는 믿음이 맺은 열매입니다. 믿음과 행위의 관계를 전통마다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믿음과 칭의 과에서 보았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그날 "재판관 앞에 서셨던 분이 재판관으로 앉으실 것"이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우리를 심판하실 분은 우리를 위해 재판을 받으신 분입니다.

지옥에 대한 세 견해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을 가장 깊이 보여 주신 분이면서 지옥을 가장 엄중하게 경고하신 분이기도 합니다. 그분은 "몸은 죽여도 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혼과 몸을 다 능히 지옥에서 멸하시는 분을 두려워하라."고 하셨고 (마 10:28), 그곳을 "거기서는 그들의 벌레도 죽지 아니하고 불도 꺼지지 아니하느니라."는 곳이라 하셨으며 (막 9:48), "그리하여 이들은 영존하는 형벌에 들어가되 의로운 자들은 영원한 생명에 들어가리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마 25:46). 지옥의 본질에 대해 그리스도인들은 세 견해를 말해 왔습니다.

첫째는 영원한 의식적 형벌로, 동방과 서방 교회의 대다수가 받아 온 견해입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그리스도께서 오실 때 모든 사람이 몸으로 다시 살아나 자기 행위를 고하고, 선을 행한 이들은 영생으로, 악을 행한 이들은 영원한 불로 들어간다고 고백합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 아우구스티누스는 마태복음 25:46에서 같은 ‘영원’이 형벌과 생명에 함께 쓰였으니 하나는 끝이 없고 다른 하나는 끝난다고 말할 수 없다고 했고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21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3장도 이 견해를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3장.

둘째는 조건적 불멸 또는 소멸설입니다. 영혼은 본래 죽지 않는 것이 아니라 불멸이 하나님의 선물이므로, 구원받지 못한 이들은 공의로운 형벌을 받은 뒤 마침내 멸망하여 없어진다고 봅니다. "그들은 주의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으리로다." (살후 1:9)과 "둘째 사망" (계 20:14)을 문자 그대로 소멸로 읽습니다. 재림교회와 일부 복음주의자가 이 견해를 따르며, 영국의 존 스토트도 조심스럽게 이 견해에 기울었다고 밝혔습니다 존 스토트, 복음주의의 핵심.

셋째는 결국 모든 이가 구원받으리라는 소망입니다. 3세기의 오리게네스가 『원리론』에서 만물이 마침내 하나님께로 회복되리라고 사색했고 오리게네스, 원리론, 오늘날 일부 신학자도 이 소망을 말합니다. 하나님이 "모든 것이 그분께 굴복 당할 때에는 아들도 모든 것을 자기 아래 두시는 분께 친히 복종하시리니 이것은 하나님께서 모든 것 안에서 모든 것이 되려 하심이라." 하신다는 말씀 (고전 15:28)과 모든 사람이 구원받기를 원하신다는 말씀 (딤전 2:4)을 근거로 듭니다. 그러나 역사적 신경들과 교회의 대부분은 만인 구원을 받아들이지 않았고, 6세기에는 오리게네스를 따르던 이들의 이 가르침이 정죄되었습니다.

세 견해 모두 지옥이 실재하며 그것이 "그들은 주의 앞과 그분의 권능의 영광에서 떠나 영존하는 파멸로 형벌을 받으리로다." 있는 것이라는 데 동의합니다 (살후 1:9). 또 심판이 하나님께 속한다는 데 동의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누구의 마지막도 함부로 단정하지 않고, 두려움으로 사람을 몰아붙이지 않으며, "아무도 멸망치 않고 다 회개하기에 이르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으로 이 경고를 듣습니다 (벧후 3:9). 더 깊은 질문은 천국과 지옥은 실재하는가?와 최후의 심판이란 무엇인가?에서 다룹니다.

새 하늘과 새 땅

성경의 마지막 소망은 이 세상을 버리고 떠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지으신 세상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피조물도 "이는 창조물 자신도 썩음의 속박에서 해방되어 하나님의 자녀들의 영광스러운 자유에 이를 것이기 때문이라."을 바라며 탄식합니다 (롬 8:21). 이사야가 예언하고 (사 65:17) 베드로가 기다린 것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그분의 약속에 따라 의가 거하는 새 하늘들과 새 땅을 기다리는도다."이었습니다 (벧후 3:13). 요한은 그 성취를 이렇게 봅니다.

내가 하늘에서 나는 큰 음성을 들으니 이르되, 보라, 하나님의 성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고 그분께서 그들과 함께 거하시리라. 그들은 그분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께서는 친히 그들과 함께 계셔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리라. 또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시리라. 다시는 사망이 없고 슬픔도 울부짖음도 없으며 또 아픔도 다시는 없으리니 이는 이전 것들이 지나갔기 때문이라, 하더라.

계 21:3-4

매튜 헨리는 이 구절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죄와 고난 때문에 자주 울었으나 "이전 슬픔의 아무 표적도 아무 기억도 남지 않을 것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하나님과 어린 양의 보좌에서 생명수의 강이 흐르고, 에덴에서 잃었던 생명나무가 그 강가에 서며, 다시 저주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종들은 그분을 뵙습니다. "그분의 얼굴을 볼 것이요 그분의 이름이 그들의 이마 안에 있으리라." (계 22:4).

이 과정의 첫 과는 "아무도 어느 때나 하나님을 보지 못하였으되 아버지 품속에 계신 독생자께서 그분을 밝히 드러내셨느니라."라는 말씀으로 시작했습니다 (요 1:18). 아들 안에서 자신을 알리신 하나님은 마침내 얼굴과 얼굴을 마주하여 자기 백성과 함께 사실 것입니다. 이것이 영생이고 소망입니다.

그래서 교회는 기다리며 기도합니다. 초대 교회는 아람어로 라고 기도했고, 개역한글은 이 말을 "주께서 임하시느니라"로 옮겼습니다 (고전 16:22). 100년경의 디다케는 성찬 기도를 이 말로 맺고 디다케 10장,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심판의 날을 다룬 장을 늘 깨어 주 예수께 속히 오시라고 말할 준비를 하라는 권면으로 맺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33장. 그리고 성경도 끝자락에서 같은 기도를 드립니다. 우리도 이 기도로 이 과정을 마칩니다.

이것들을 증언하시는 분께서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속히 오리라, 하시는도다. 아멘. 주 예수님이여, 과연 그와 같이 오시옵소서.

계 22:20

연습

  1. 연습 1 / 8

    사도신경의 마지막 고백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8

    요한복음 5:28-29에 따르면 마지막 날 누가 무덤에서 나옵니까?

  3. 연습 3 / 8

    고린도전서 15:42-44는 부활의 몸을 어떻게 설명합니까?

  4. 연습 4 / 8

    사도행전 17:31과 고린도후서 5:10에 따르면 세상을 심판하실 분은 누구입니까?

  5. 연습 5 / 8

    다음 중 지옥에 대한 견해와 그 견해를 따르는 이들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6. 연습 6 / 8

    역사적 신경들과 교회의 대부분은 모든 이가 마침내 구원받는다는 만인 구원을 어떻게 다루었습니까?

  7. 연습 7 / 8

    로마서 8:21에 따르면 피조물이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초대 교회의 아람어 기도 ‘마라나타’는 무슨 뜻입니까?

출처

  1. 고대 교회, 사도신경 — 로마 교회의 세례 신앙고백에서 자란 서방 교회의 기본 신조. 읽기
  2.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3. 서방 교회, 아타나시우스 신경 — 5–6세기.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정밀하게 고백하는 라틴어 신조로, 아타나시우스의 이름이 붙었으나 후대의 문서다. 읽기
  4.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 413–426년. 두 도성, 곧 하나님의 도성과 땅의 도성의 역사를 창조에서 종말까지 다룬다. 20권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교회의 시대로 읽고, 21권은 영원한 형벌을 다룬다. 읽기
  5.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6. 존 스토트, 복음주의의 핵심 1988 — 데이비드 에드워즈와의 대화에서 악인의 최종 소멸 가능성을 조심스럽게 제시했다.
  7. 오리게네스, 원리론 — 220–230년경. 만물의 회복에 대한 사색이 담겨 있으며, 후대 교회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8. 초대 교회, 디다케(열두 사도의 가르침) — 100년경. 7장은 삼위의 이름으로 주는 세례를, 9–10장은 성찬의 기도를 전한다.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