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와 신앙고백

사도신경

고대 교회

해설

사도신경은 옛 로마 교회의 세례 고백에서 자라나 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해 온 신조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차례로 믿는다는 짧은 고백 안에 복음의 뼈대가 담겨 있어, 오늘도 예배와 세례와 신앙 교육에서 쓰입니다.

세례 받는 이들의 고백

교회는 처음부터 짧은 말로 믿음을 고백했습니다. 바울은 "네가 만일 네 입으로 주 예수님을 시인하고 하나님께서 그분을 죽은 자들로부터 살리신 것을 네 마음속으로 믿으면 구원을 받으리니"라고 썼습니다 (롬 10:9). 그리고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보내시며 이렇게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마 28:19

2세기 후반 이레나이우스는 온 세상의 교회가 사도들에게서 받은 믿음을, 천지를 지으신 전능하신 아버지와 우리를 위해 육신이 되신 아들 그리스도 예수와 성령을 믿는 믿음으로 요약했습니다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1권. 많은 학자가 3세기 초 로마의 것으로 보는 한 교회 규범서에는, 세례 받는 사람에게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믿느냐고 차례로 묻고 믿는다고 대답할 때마다 물에 잠기게 하는 순서가 남아 있습니다. 사도신경이 세 부분으로 되어 있고 ‘나’의 고백으로 시작하는 것은 이 때문입니다.

학자들은 이 고백을 ‘옛 로마 신경’이라고 부릅니다. 400년 무렵 아퀼레이아의 루피누스가 남긴 해설로 그 본문을 알 수 있는데, 거기에는 아직 ‘천지를 만드신’, 교회 앞의 ‘공’(catholic),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구절이 없습니다. 이런 말은 여러 지역 교회에서 조금씩 더해졌고, 지금의 꼴은 8세기 초 피르미니우스라는 수도사의 글에서 처음 온전히 나타나 서방 교회의 표준 본문이 되었습니다. 동방 교회는 이 신경 대신 같은 믿음을 담은 니케아 신경을 고백합니다.

‘사도신경’이라는 이름은 390년 무렵 밀라노 교회회의의 편지에 처음 보입니다. 그 무렵에는 열두 사도가 흩어지기 전에 한 구절씩 보태어 이 신경을 지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졌고, 루피누스도 이를 옛 전승으로 소개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전설이며, 15세기 이후 학자들이 밝혔듯 이 신경은 여러 세기에 걸쳐 다듬어졌습니다. 그래도 이름이 헛되지 않은 것은, 여기 담긴 것이 사도들이 전한 믿음, 곧 "사랑하는 자들아, 공통의 구원에 관하여 내가 너희에게 쓰려고 모든 열심을 내던 차에 성도들에게 단 한 번 전달된 믿음을 위해 너희가 힘써 싸우라고 너희에게 써서 권면할 필요를 느꼈노니"이기 때문입니다 (유 1:3).

아버지와 그 외아들

신경은 ‘내가 믿사오며’로 시작합니다. 믿는다는 것은 어떤 내용을 사실로 여기는 데서 그치지 않고 그분께 나를 맡긴다는 뜻입니다. 첫 조항은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먼저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이시고, 그 아들 때문에 우리의 아버지가 되십니다. 바울은 우리가 "너희는 다시 두려움에 이르는 속박의 영을 받지 아니하고 양자 삼으시는 영을 받았느니라. 그분을 힘입어 우리가,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느니라."고 말합니다 (롬 8:1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6문은 하나님이 전능하시므로 우리에게 필요한 모든 것을 주실 수 있고, 신실한 아버지이시므로 기꺼이 그렇게 하신다고 풉니다.

‘천지를 만드신’은 성경의 첫 문장을 되울립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니라.

창 1:1

2세기에 마르키온과 영지주의 교사들은 세상을 지은 신과 예수의 아버지를 서로 다른 신으로 나누었습니다. 신경은 예수의 아버지가 바로 창조주이시며 그분이 지으신 세상이 선하다고 고백합니다.

둘째 부분은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고백합니다. ‘예수’는 그가 "그녀가 아들을 낳으리니 너는 그의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그들의 죄들에서 구원할 것이기 때문이라, 하니라."이시기에 받은 이름이고 (마 1:21), ‘그리스도’는 기름 부음을 받은 이, 곧 메시아입니다. ‘외아들’은 그분만이 본래 하나님의 영원한 아들이시고 우리는 은혜로 입양된 자녀라는 고백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3문. ‘우리 주’는 그분이 우리를 값 주고 사서 자기 것으로 삼으신 주인이시라는 뜻입니다 34문.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는 하나님의 아들이 참 사람이 되신 성육신을 고백합니다. 천사는 마리아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천사가 그녀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성령님께서 네게 임하시고 가장 높으신 이의 권능이 너를 덮으시리니 그런즉 또한 네게서 태어날 그 거룩한 것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불리리라.

눅 1:35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 하나님이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 참 사람이십니다 (갈 4:4). 이 구절은 그리스도가 사람처럼 보이기만 했다는 가현설도, 보통 사람이 나중에 하나님의 아들로 입양되었다는 생각도 물리칩니다. 참 하나님, 참 사람 과에서 더 다룹니다.

고난과 죽음, 그리고 음부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에서 신경은 마리아 다음으로 로마 총독의 이름을 부릅니다. 첫째, 이 이름은 복음이 역사 속의 일임을 못 박습니다. 누가는 세례 요한이 일어난 때를 "이제 카이사르 티베리우스의 통치 제십오년에 본디오 빌라도가 유대의 총독으로, 헤롯이 갈릴리의 사분영주로, 그의 동생 빌립이 이두래와 드라고닛 지방의 사분영주로, 루사니아가 아빌레네의 사분영주로" 있던 때라고 적고 (눅 3:1), 로마의 역사가 타키투스도 그리스도가 빌라도 치하에서 처형되었다고 기록합니다 타키투스, 연대기 15.44. 둘째, 죄 없는 분이 세상의 재판관에게 정죄를 받으셨습니다. 빌라도 자신이 "이에 빌라도가 수제사장들과 사람들에게 이르되, 나는 이 사람에게서 아무 잘못도 찾지 못하노라, 하매"라고 말했습니다 (눅 23:4).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분이 땅의 재판관에게 정죄를 받으심으로 우리를 하나님의 엄한 심판에서 건지셨다고 풉니다 38문. 아우구스티누스는 빌라도 앞에서 하신 침묵이 "죄책의 침묵이 아니라 무죄의 침묵"이었다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렇다고 빌라도 한 사람만 탓하는 것은 아닙니다. 초대 교회는 "진실로 헤롯과 본디오 빌라도가 이방인들과 이스라엘 백성과 더불어 함께 모여 주께서 기름 부으신 주의 거룩한 아이 예수님을 대적하며" 예수를 거슬렀다고 기도합니다 (행 4:27).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는 그분의 죽음이 어떤 죽음이었는지 말합니다. 율법은 나무에 달린 자를 저주받은 자로 여겼기에,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저주가 되사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구속하셨으니 기록된바, 나무에 달리는 모든 자는 저주 받았느니라, 하였느니라."라고 씁니다 (갈 3:13). 장사는 그분이 참으로 죽으셨다는 증거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1문. 이 순서는 바울이 전한 가장 오래된 복음의 요약 그대로입니다.

내가 또한 받은 것을 무엇보다 먼저 너희에게 전하였노니 그것은 곧 성경 기록대로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죄들로 인하여 죽으시고 묻히셨다가 성경 기록대로 셋째 날에 다시 살아나시고

고전 15:3-4

라틴어 표준 본문에는 장사와 사흘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음부에 내려가셨다’는 구절이 하나 더 있습니다. 이 구절은 옛 로마 신경에는 없었고 4세기 무렵부터 서방의 신경에 나타나며, 루피누스는 그 뜻이 ‘장사되셨다’와 같아 보인다고 풀이했습니다. 사도행전은 그리스도가 "또 이것을 미리 보았으므로 그리스도의 부활에 대하여 말하기를, 그의 혼이 지옥에 남겨지지 아니하였고 그의 육체도 썩음을 보지 아니하였느니라, 하였느니라."라고 말합니다 (행 2:31). ‘음부’는 죽은 자들의 자리를 가리키는 하데스(ᾍδης)입니다.

이 구절은 여러 갈래로 읽혀 왔습니다. 많은 교부와 오늘의 정교회와 가톨릭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죽으신 뒤 영혼으로 죽은 자들의 자리에 가셔서 앞서 죽은 의인들에게 구원을 알리고 그들을 풀어 주셨다고 가르칩니다. "그분께서 또한 성령으로 말미암아 감옥에 있는 영들에게 가사 선포하셨는데"는 말씀이 그 바탕입니다 (벧전 3:19). 루터교회의 일치신조는 하나님이시며 사람이신 그리스도께서 지옥에 내려가 마귀를 이기고 지옥의 권세를 깨뜨리셨다고 고백합니다.

칼뱅은 이 구절이 구원에 작지 않은 뜻을 지닌다며, 그리스도께서 몸으로만 죽으신 것이 아니라 영혼으로 하나님의 심판과 버림받음을 우리 대신 겪으셨다는 고백으로 풀었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2권 16장. 그리스도께서 "아홉 시쯤에 예수님께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것은 곧, 나의 하나님이여, 나의 하나님이여,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라는 말이라."라고 부르짖으셨을 때 (마 27:46), 그분은 지옥의 고통을 겪고 계셨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4문도 그리스도께서 특히 십자가에서 말할 수 없는 괴로움을 겪으심으로 나를 지옥의 고통에서 건지셨으니, 가장 큰 시련 속에서도 이것으로 위로를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요리문답 50문은 이 구절을, 그리스도께서 장사되어 셋째 날까지 죽은 자의 상태로 죽음의 권세 아래 머무르신 일로 풉니다.

개혁교회는 이 두 풀이를 자기 고백으로 받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께 버림받는 지옥의 고통을 겪으셨고, 참으로 죽어 사흘 동안 죽음의 권세 아래 계셨습니다. 그러므로 그분께 속한 사람은 지옥을 두려워할 까닭이 없고 죽음의 길도 홀로 걷지 않습니다. 부활하신 주께서 "나는 살아 있는 자라. 전에 죽었으나, 보라, 내가 영원무궁토록 살아 있노라. 아멘. 또한 내가 지옥과 사망의 열쇠들을 가지고 있노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계 1:18).

한국 교회가 예배에서 고백해 온 전통 번역에는 이 구절이 없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로 곧바로 이어집니다. 이 페이지의 한국어 본문도 그 문구를 따르기에, 영어 본문의 ‘he descended into hell’이 한국어에는 없습니다. 초기 번역에서 이 구절이 빠진 까닭은 기록으로 분명히 남아 있지 않고, 가톨릭 교회의 한국어 사도신경에는 ‘저승에 가시어’가 있습니다. 어느 문구든 그리스도께서 참으로 죽으셨다가 사흘 만에 살아나셨다는 고백은 같습니다. 예수는 죽으신 뒤 사흘 동안 어디 계셨는가?에서 더 다룹니다.

살아나시고 다시 오실 주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는 그분이 몸으로 무덤에서 살아나셨다는 고백입니다. 바울은 "그러나 이제 그리스도께서 죽은 자들로부터 일어나사 잠든 자들의 첫 열매가 되셨도다."라고 말합니다 (고전 15:20). 첫 열매는 뒤따를 추수를 약속하니, 그분의 부활은 우리 부활의 확실한 보증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5문. 매튜 헨리의 말대로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부활의 교리는 기독교의 기초입니다" 매튜 헨리.

‘하늘에 오르사’는 부활하신 주께서 제자들이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오르신 일입니다. 천사들은 "또 그들이 이르되, 너희 갈릴리 사람들아, 너희가 어찌하여 서서 하늘을 바라보느냐? 너희를 떠나 하늘로 들려 올라가신 이 동일한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그분께서 하늘로 들어가심을 본 그대로 오시리라, 하니라."고 말했습니다 (행 1:11). 그분은 아버지 앞에서 우리의 대언자가 되시고, 우리 육신을 입고 하늘에 계심으로 우리도 그곳으로 데려가시리라는 보증이 되십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9문.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는 신약이 가장 자주 인용하는 구약 말씀 가운데 하나를 따릅니다.

주께서 내 주께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을 네 발받침으로 삼을 때까지 너는 내 오른편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

시 110:1

‘우편’은 하늘의 어느 자리가 아니라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으로 다스리신다는 뜻입니다. 그분은 지금 만물 위에 교회의 머리로 계시고 (엡 1:22),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이십니다 (롬 8:34).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에서 ‘저리로서’는 ‘거기로부터’라는 옛말입니다. 베드로는 예수께서 "또 그분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사 백성에게 선포하게 하시고 하나님께서 산 자와 죽은 자의 심판자로 정하신 이가 바로 그분이심을 증언하게 하셨으니"라고 전했습니다 (행 10:42).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전에 나를 위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신 바로 그분을 심판자로 기다리기에 슬픔과 박해 가운데서도 머리를 든다고 고백합니다 52문.

성령과 교회와 영원한 생명

셋째 부분은 ‘성령을 믿사오며’로 시작합니다. 아버지와 아들을 믿듯 성령을 믿는다는 이 고백은, 성령이 어떤 힘이 아니라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참되고 영원한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3문. 381년의 니케아 신경은 성령을 생명을 주시는 주님으로 고백하며 이 조항을 풀었습니다. 이 신경을 고백하는 일부터가 성령의 일입니다. "그러므로 내가 너희에게 깨닫게 하노니 하나님의 영으로 말미암아 말하는 자는 아무도 예수님을 저주받은 자라 하지 아니하고 또 성령님으로 말미암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님을 주라고 말할 수 없느니라." (고전 12:3).

‘거룩한 공회’의 ‘공회’는 개역한글 복음서에서 유대인의 의회를 가리키는 공회도 (마 26:59), 교회의 공의회도 아닙니다. ‘공(公)’은 ‘두루 모두에게 속한’이라는 뜻으로, 헬라어 ‘전체에 따른’에서 나온 catholic을 옮긴 말입니다. 그래서 요즘은 흔히 ‘공교회’라고 풀어 씁니다. 남은 문헌 가운데 이 말을 교회에 처음 쓴 사람은 110년 무렵의 이그나티우스로, 그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에 보편 교회가 있다고 썼습니다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8장. 예루살렘의 키릴루스는 교회가 온 세상에 퍼져 있고, 가르침을 빠짐없이 전하며, 모든 사람을 받아들이고, 모든 죄를 고치기에 이렇게 불린다고 했습니다 예루살렘의 키릴루스, 교리 강의 18강. 그러니 이 말은 한 교파의 이름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이 온 인류 가운데서 모으시는 모든 시대와 모든 곳의 교회가 하나라는 고백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4문. 교회가 ‘거룩한’ 것은 흠이 없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자신을 주어 거룩하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엡 5:25-26).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에서 ‘성도’는 그리스도께 속한 모든 신자이고, ‘교통’은 사귐과 나눔을 뜻하는 옛말입니다. 바울의 축도에 나오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둘째 서신을 마케도니아의 도시 빌립보에서 써서 디도와 누가 편에 보내다."과 같은 말입니다 (고후 13:13). 헬라어로는 코이노니아(κοινωνία)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신자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분의 모든 보화와 은사에 참여하고, 받은 은사를 다른 지체의 유익을 위해 기꺼이 써야 한다고 풉니다 55문.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는 이 사귐이 하늘의 성도들에게 이어져 그들의 기도를 청할 수 있다고 가르치고, 개신교회는 하늘과 땅의 교회가 한 몸임을 고백하면서도 기도는 하나님께만 드립니다.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은 그리스도의 피로 얻은 선물입니다. "그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가 그분의 풍성한 은혜에 따라 그분의 피를 통해 구속 곧 죄들의 용서를 받았도다." (엡 1:7).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그리스도께서 값을 치르셨기에 하나님이 내 죄와, 평생 싸워야 할 죄의 본성까지 다시는 기억하지 않으신다고 고백합니다 56문.

‘몸이 다시 사는 것’은 영혼만이 아니라 사람 전체가 다시 산다는 소망입니다. 이레나이우스는 육체를 구원에서 빼려는 영지주의자들에 맞서 하나님이 지으신 몸도 구원에 참여한다고 변호했습니다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5권.

죽은 자들의 부활도 이와 같으니라. 그것은 썩는 것 가운데 뿌려지고 썩지 않는 것 가운데 일으켜지며 수치 가운데 뿌려지고 영광 가운데 일으켜지며 연약함 가운데 뿌려지고 권능 가운데 일으켜지며

고전 15:42-43

‘영원히 사는 것’은 끝없는 시간만이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누리는 생명입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그래서 신자는 지금 이미 마음에 영원한 기쁨의 시작을 느낍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8문. 신경은 ‘아멘’, 참으로 그러하다는 온 마음의 동의로 끝납니다.

오늘 교회가 사도신경을 쓰는 자리

종교개혁자들은 사도신경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벨직 신앙고백 9조는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기꺼이 받는다고 고백하고, 성공회의 39개 신조도 세 신경을 온전히 받아 믿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39개 신조 8조. 지금도 교회는 세 자리에서 이 신경을 씁니다.

첫째는 예배입니다. 많은 한국 교회에서는 주일 예배 때 온 회중이 함께 사도신경을 고백하고, 성공회는 아침 기도와 저녁 기도에서 이를 고백합니다. ‘내가 믿사오며’를 함께 말할 때 우리는 모든 시대의 교회와 한 믿음을 나눕니다.

둘째는 세례입니다. 가톨릭 교회와 성공회와 루터교회의 세례 예식은 지금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믿느냐고 신경의 말로 묻고, 개혁교회와 장로교회도 세례 예식에서 이 신경을 함께 고백하는 일이 많습니다.

셋째는 가르침입니다. 루터의 소교리문답은 십계명, 주기도문과 함께 사도신경을 가정에서 가르치게 했고 루터, 소교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23문부터 58문까지 이 신경을 한 구절씩 풉니다. 웨스트민스터 총회도 소요리문답 끝에 사도신경을 붙이며, 사도들이 지은 글이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맞는 신앙의 요약이기 때문이라고 밝혔습니다.

사도신경은 성경을 대신하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복음의 뼈대를 손에 쥐여 줍니다. 천천히 고백하면 우리를 지으신 아버지와 우리를 위해 죽고 살아나신 아들과 우리를 교회로 모으시는 성령의 이야기가 내 이야기가 됩니다.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 있는 믿음과 사랑 안에서 네가 내게 들은 건전한 말씀들의 틀을 굳게 붙들고" (딤후 1:13). 이 신경 위에 세운 개혁교회의 고백들은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1.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읽기
  2. 타키투스, 연대기 15.44
  3.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읽기
  4. 안디옥의 이그나티우스, 서머나 교회에 보낸 편지
  5. 예루살렘의 키릴루스, 교리 강의
  6. 잉글랜드 교회, 39개 신조 1571
  7. 마르틴 루터, 소교리문답 1529

본문

1

전능하사 천지를 만드신 하나님 아버지를 내가 믿사오며,

영어 원문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Maker of heaven and earth.

2

그 외아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사오니, 이는 성령으로 잉태하사 동정녀 마리아에게 나시고, 본디오 빌라도에게 고난을 받으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시고, 장사한 지 사흘 만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시며,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다가, 저리로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시리라.

영어 원문

And in Jesus Christ his only Son our Lord; who was conceived by the Holy Ghost, born of the Virgin Mary; suffered under Pontius Pilate, was crucified, dead, and buried; he descended into hell; the third day he rose from the dead; he ascended into heaven; and sitteth at the right hand of God the Father Almighty; from thence he shall come to judge the quick and the dead.

3

성령을 믿사오며, 거룩한 공회와, 성도가 서로 교통하는 것과, 죄를 사하여 주시는 것과, 몸이 다시 사는 것과, 영원히 사는 것을 믿사옵나이다. 아멘.

영어 원문

I believe in the Holy Ghost; the holy catholic Church; the communion of saints; the forgiveness of sins; the resurrection of the body; and the life everlasting. Amen.

본문: 공개 저작물(Creeds.json; 필립 샤프, 『기독교 신조집』, 1877). 사도신경은 전해 내려온 우리말 고백문.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