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천년설
Amillennialism
무천년설은 요한계시록 20장의 천 년을 그리스도의 첫 오심부터 재림까지의 지금 시대로 읽는 견해입니다. 이 시대에 사단은 결박되어 복음을 막지 못하고 그리스도께서 성도들과 함께 다스리시며, 재림 때 한 번의 부활과 심판 뒤에 새 하늘과 새 땅이 온다고 봅니다.
지금이 천 년입니다
‘무천년’이라는 이름은 천 년이 없다는 뜻처럼 들리지만, 이 견해는 천년왕국을 부정하지 않습니다. 재림 뒤 땅 위에 따로 있을 천 년의 통치를 기대하지 않고, 천 년이 바로 지금이라고 보는 것입니다. 그래서 ‘실현된 천년설’이라는 이름을 더 좋아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이 견해는 요한계시록이 같은 시대를 여러 환상으로 되풀이해 보여 준다고 읽고, 20장도 그리스도의 첫 오심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한다고 봅니다. 사단의 결박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강한 자의 결박과 같습니다 (마 12:29). 예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이제 이 세상에 대한 심판이 있으니 이제 이 세상의 통치자가 쫓겨나리라."고 하셨습니다 (요 12:31). 요한계시록은 사단이 결박되어 "바닥없는 구덩이에 던져 넣어 가두고 그 위에 봉인을 하여 천 년이 찰 때까지는 그가 더 이상 민족들을 속이지 못하게 하니라. 그 뒤에는 그가 반드시 잠시 동안 풀려나리라." 되었다고 하니 (계 20:3), 이는 사단이 더 이상 복음이 만국에 퍼지는 것을 막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강한 자의 결박을 이렇게 풉니다. "그분이 강한 자를 결박하셨다 함은, 믿는 자들이 그리스도를 따르고 천국을 얻는 것을 막을 그의 모든 힘을 그에게서 빼앗으셨다는 뜻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첫째 부활은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는 것, 또는 죽은 성도들의 영혼이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것으로 읽습니다. 요한도 순교자들의 "영혼들"이 다스리는 것을 보았습니다 (계 20:4). 요한복음 5장에서 예수께서는 지금 일어나는 영적 부활과 마지막 날의 몸의 부활을 나란히 말씀하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고 있는데 곧 지금이라. 듣는 자들은 살리라.
요 5:25
그리고 몇 절 뒤에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나올 때를 말씀하십니다 (요 5:28-29). 그래서 무천년설은 재림 때 의인과 악인이 함께 일어나는 한 번의 부활과 한 번의 최후 심판, 그리고 새 하늘과 새 땅을 기다립니다.
교회의 오랜 읽기
이 이름은 비교적 근래에 붙었지만, 그 읽기는 아우구스티누스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는 한때 부활 뒤의 천 년 안식을 기대했다가, 천 년을 교회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스리는 지금의 시대로 읽게 되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20권. 이 읽기는 중세 교회를 거쳐 종교개혁자들에게 이어졌고, 오늘날 가톨릭 교회와 정교회, 대부분의 루터교회와 많은 개혁교회가 이렇게 읽습니다.
다른 견해들과의 대화
전천년설을 따르는 이들은 4절과 5절의 ‘살아서’가 같은 동사이니 둘 다 몸의 부활이어야 하고, 마귀가 지금도 "정신을 차리라. 깨어 있으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울부짖는 사자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삼킬 자를 찾는다고 묻습니다 (벧전 5:8). 무천년설은 요한복음 5장이 한 대목에서 지금 일어나는 영적 살아남과 마지막 날의 몸의 부활을 함께 말하므로 같은 말이 두 뜻을 지닐 수 있다는 점, 그리고 결박이 만국을 미혹하는 일에 한정되어 있다는 점을 들어 답합니다. 후천년설은 천 년을 재림 전에 두는 점에서 무천년설과 같지만, 재림 전에 복음이 세상을 더 눈에 띄게 바꾸리라고 기대합니다. 이는 복음주의 안의 견해 차이이며, 세 견해는 교리 과정의 재림과 천년왕국 과와 휴거와 천년왕국은 무엇인가?에서 나란히 다룹니다.
출처
- 아우구스티누스, 하나님의 도성 읽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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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