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조와 신앙고백

아타나시우스 신경

서방 교회

해설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5–6세기 무렵 서방 교회에서 라틴어로 쓰인 신조로,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고대 신조 가운데 가장 자세히 고백합니다. 한 하나님을 삼위로, 삼위를 한 하나님으로 예배하며,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 한 분 그리스도를 지키는 말로 오늘도 여러 교회가 받아 고백합니다.

아타나시우스가 쓰지 않은 신경

이 신경은 라틴어 첫 두 낱말을 따라 ‘퀴쿤퀘 불트’(Quicunque vult), 곧 ‘누구든지 … 하고자 하는 사람은’이라고도 불립니다. 첫 문장이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보편적 신앙을 붙잡아야 합니다’이기 때문입니다 1항. 이름은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감독 아타나시우스(373년 죽음)에게서 왔지만, 그가 쓴 글은 아닙니다. 아타나시우스는 헬라어로 썼는데 이 신경은 처음부터 라틴어 문장이고, 그가 죽은 뒤 431년 에베소 공의회와 451년 칼케돈 공의회가 다룬 그리스도에 관한 물음에 답하며, 성령이 ‘성부와 성자에게서’ 나오신다는 서방 교회의 표현을 씁니다. 남아 있는 4–5세기의 글 가운데 이 신경을 인용한 것은 없고, 동방 교회는 오랫동안 이 신경을 알지 못했습니다. 17세기 중엽 네덜란드의 학자 포시우스가 이를 자세히 논증한 뒤로, 학자들은 이 신경을 아타나시우스의 작품으로 보지 않습니다.

많은 학자는 이 신경이 5세기 후반에서 6세기 사이 갈리아 남부, 곧 오늘의 프랑스 남부에서 쓰였다고 봅니다. 그 흔적이 처음 분명하게 나타나는 곳으로는 흔히 6세기 아를의 감독 카이사리우스와 관련된 설교 모음이 꼽힙니다. 저자로는 아를의 힐라리우스, 레랭의 빈켄티우스, 카이사리우스 등이 거론되었지만 누구도 확정되지 않았습니다. 빈켄티우스는 434년에 ‘어디서나, 언제나, 모든 사람이 믿어 온 것’을 보편 신앙의 기준으로 내놓았는데 레랭의 빈켄티우스, 비망록, 이 신경이 말하는 ‘보편적 신앙’도 그런 뜻입니다. 한 교파의 신앙이 아니라 온 교회가 사도들에게서 받은 신앙이라는 말로, 사도신경의 ‘공회’의 ‘공’과 같은 말입니다 사도신경.

왜 아타나시우스의 이름이 붙었는지는 분명하지 않습니다. 아리우스에 맞서 니케아 신앙을 지키다 다섯 번이나 유배를 당한 그가 이 신앙을 대표하는 이름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라는 설명이 흔합니다. 문장의 틀은 아우구스티누스에게서 왔습니다. 그는 아버지도 크시고 아들도 크시고 성령도 크시지만, 세 큰 분이 아니라 한 큰 분이시라고 풀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5권. 이 신경은 세례 때 고백하던 사도신경이나 공의회가 정한 니케아 신경과 달리, 성직자와 신자가 바른 신앙을 배우고 기억하도록 지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8–9세기 카롤루스 왕조 시대에는 여러 주교와 교회회의가 성직자들에게 이 신경을 외우게 했고, 시편집에 실려 시편과 함께 노래되면서 서방 교회 전체로 퍼졌습니다.

신경은 두 부분으로 되어 있습니다. 3항부터 26항까지는 삼위일체를, 27항부터 37항까지는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고백하고, 처음과 가운데와 끝에 경고의 말이 놓여 있습니다.

삼위 안의 한 하나님

삼위일체에 관한 부분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보편적 신앙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삼위 안에 계신 한 분 하나님과 일체 안에 계신 삼위를 예배하며, 위격들을 혼동하지 않고 본질을 나누지 않습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 3항

신경이 ‘나는 믿습니다’가 아니라 ‘우리는 … 예배하며’라고 말하는 것은 눈여겨볼 만합니다. 삼위일체는 풀어야 할 수수께끼이기 전에 예배받으실 하나님이십니다. 이 문장은 양쪽의 낭떠러지를 막습니다. ‘위격들을 혼동하지 않고’는 한 분이 때에 따라 아버지로, 아들로, 성령으로 나타나신다는 사벨리우스의 양태론을 막습니다. ‘본질을 나누지 않습니다’는 세 분을 서로 다른 세 신으로 보는 삼신론과, 아들과 성령을 아버지보다 낮은 존재로 떼어 놓는 아리우스의 길을 막습니다. 성경은 두 가지를 다 말합니다. 이스라엘은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라고 고백했고 (신 6:4), 예수께서는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세 이름이 아니라 한 이름으로 세례를 주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마 28:19

세 위격은 서로 구별되시지만 신성은 하나이며, ‘영광은 동등하고 위엄은 함께 영원합니다’ 5항. 하나님은 "나는 주니라. 그것은 내 이름이니라. 나는 내 영광을 다른 자에게 주지 아니하며 내 찬양을 새긴 형상들에게 주지 아니하리라."고 하셨는데 (사 42:8), 아들은 "오 아버지여, 세상이 있기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그 영광으로 이제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를 말씀하십니다 (요 17:5). 아들은 그 영광을 나누어 받은 다른 자가 아니라 같은 영광을 영원히 함께 지니신 분입니다.

이어서 신경은 ‘성부께서 어떠하시면 성자께서도 그러하시고, 성령께서도 그러하십니다’라고 말한 뒤 6항, 같은 꼴의 문장을 거듭합니다. 세 분은 모두 창조되지 않으셨고, 한이 없으시고, 영원하시고, 전능하시고, 하나님이시고, 주님이십니다 7–17항. 성경에서 아들은 지어진 것들 쪽이 아니라 지으신 분 쪽에 서십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 (요 1:3). ‘한이 없으시다’는 라틴어 원문에서 ‘잴 수 없다’는 말로, 어떤 공간에도 갇히지 않으신다는 고백입니다. 시편 기자는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리이까? 혹은 내가 주의 앞을 떠나 어디로 피하리이까?"라고 묻습니다 (시 139:7). 히브리서는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을 통해 자신을 점 없이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는 죽은 행위로부터 너희 양심을 얼마나 더 많이 깨끗하게 하여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하겠느냐?"을 말하고 (히 9:14), 아들이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분 자체의 정확한 형상이시며 자신의 권능의 말씀으로 모든 것을 떠받치시는 이 아들께서는 친히 우리의 죄들을 정결하게 하신 뒤에 높은 곳에 계신 존엄하신 분의 오른편에 앉으셨느니라."라고 합니다 (히 1:3).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께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매"라고 고백했고 (요 20:28), 베드로는 성령을 속인 아나니아에게 "땅이 남아 있었을 때에 네 것이 아니었느냐? 그것을 판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속에 품었느냐? 네가 사람들에게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였도다, 하니"라고 말했습니다 (행 5:4).

그런데 문장마다 후렴이 붙습니다. 영원한 분이 셋이 아니라 한 분이시고, ‘하나님이 셋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15항. 영원하심과 전능하심은 세 분이 하나씩 나누어 가진 세 가지 성질이 아니라, 세 위격이 저마다 온전히 지니신 하나의 신적 본질이기 때문입니다. 아버지는 하나님의 3분의 1이 아니고, 아들과 성령도 그렇습니다. 18항은 우리를 양쪽에서 붙드는 이 두 가지를 함께 말합니다. 기독교의 진리는 각 위격을 하나님이요 주님으로 인정하게 하고, 보편적 신앙은 하나님이 셋이라고 말하지 못하게 합니다. 성경은 각 위격을 하나님이요 주님이라고 고백하게 하는 동시에, "나는 주니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으며 나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내가 네게 띠를 띠어 주었으니"고 말합니다 (사 45:5). 신경은 이 긴장을 어느 한쪽을 버려서 풀지 않습니다. 아들을 피조물로 본 아리우스도, 4세기에 성령을 피조물로 본 이들도 이 문장들 앞에 설 자리가 없습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구별

그러면 세 위격은 무엇으로 구별되십니까? 신경은 한 가지로 답합니다. 누가 누구에게서 계시는가, 곧 서로의 관계입니다 19–21항. ‘성부께서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창조되지도 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아버지는 근원이 없으신 근원이십니다. ‘성자께서는 오직 성부에게서 계시니,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않으셨고 나셨습니다.’ 요한은 그분을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고 부르는데 (요 1:14), ‘독생자’는 유일한 아들이라는 뜻의 모노게네스(μονογενής)입니다. 아들은 아버지와 같은 생명을 받아 지니십니다. "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는 것 같이 아들에게도 주사 그 속에 생명이 있게 하셨고" (요 5:26). 이 나심은 시간 속의 시작이 아니라 영원한 관계여서, 아우구스티누스의 말대로 아들은 "자라서가 아니라 나심으로 아버지와 동등하십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계시니,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나시지도 않으셨고 나오십니다.’ 예수께서는 성령을 "그러나 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요"이라 하셨고 (요 15:26), 바울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게 하셨느니라."이라고 부릅니다 (갈 4:6). 이 신경은 서방 교회의 신조답게 성령이 아들에게서도 나오신다고 고백합니다. 정교회는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가 고백한 원래 문구대로 성령이 아버지에게서 나오신다고만 고백하며 이 구절을 받지 않습니다. 이 앱의 니케아 신경 본문도 ‘아버지와 아들에게서’가 들어간 서방 교회의 문구입니다. 두 전통은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받으시는 하나님이시라는 데 한마음이고, 이 차이는 삼위일체 과에서 다룹니다.

그러므로 아버지는 한 분이시고 아들도 한 분, 성령도 한 분이십니다 22항. 아버지 되심과 아들 되심과 나오심은 각 위격에게만 있어 서로 바뀌거나 나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는 말씀을 (요 10:30) 풀며 아들의 말로 이렇게 씁니다. "그분이 어떠하신지 나도 그러합니다. 이는 본질에 관한 것이지 관계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본질로는 하나이시고, 관계로는 셋이십니다.

또 ‘어느 분도 다른 분보다 앞서거나 뒤서지 않고, 어느 분도 다른 분보다 크거나 작지 않습니다’ 23항. ‘나셨다’와 ‘나오신다’는 아버지가 먼저 계시고 아들과 성령이 나중에 생기셨다는 말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아들과 성령을 아버지 아래의 단계로 놓는 종속론을 막습니다. 그렇다면 예수께서 하신 "내가 너희에게 말한 것 즉, 내가 갔다가 너희에게 다시 오리라, 한 것을 너희가 들었나니 너희가 나를 사랑하였다면, 내가 아버지께로 가노라, 하고 말하였으므로 기뻐하였으리라. 이는 내 아버지께서 나보다 크시기 때문이니라."는 말씀은 (요 14:28) 어떻게 읽어야 할까요? 신경은 둘째 부분에서 이 물음에 답합니다.

개혁교회의 고백도 이 말을 따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 3항은 성부는 누구에게서도 나지 않으셨고 성자는 성부에게서 영원히 나시며 성령은 성부와 성자에게서 영원히 나오신다고 고백하고, 소요리문답 6문은 세 위격이 ‘본질이 같으시고 능력과 영광이 동등하십니다’라고 가르칩니다.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이신 한 그리스도

둘째 부분은 성육신을 믿는 것도 영원한 구원에 필요하다는 말로 시작합니다 27항. 바른 신앙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시라는 것이며, 그분께는 두 나심이 있습니다. ‘하나님으로서는 아버지의 본질에서 세상 이전에 나셨고, 사람으로서는 어머니의 본질에서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28항. 바울은 이 두 가지를 한 문장에 담습니다.

조상들도 그들의 것이요, 육체에 관한 한 그리스도께서도 그들에게서 나셨으니 그분은 모든 것 위에 계시며 영원토록 찬송 받으실 하나님이시니라. 아멘.

롬 9:5

‘어머니의 본질에서’는 그리스도께서 마리아에게서 참된 사람의 몸을 받으셨다는 고백입니다. 이레나이우스는 어떤 영지주의자들이 그리스도께서 관을 지나는 물처럼 마리아를 거쳐 가셨을 뿐이라고 가르쳤다고 전합니다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1권. 성경은 하나님이 아들을 "그러나 충만한 때가 이르매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을 보내사 여자에게서 나게 하시고 율법 아래 있게 하셨나니"라고 말합니다 (갈 4:4).

그분은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이성적인 영혼과 인간의 육신으로 존재하시는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29항. 4세기의 아폴리나리스는 그리스도께 사람의 몸은 있지만 사람의 정신은 없고 말씀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가르쳤습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는 취하지 않은 것은 치유되지 않는다고 답했습니다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클레도니우스에게 보낸 첫째 편지. 우리의 정신과 마음까지 구원하시려고 그분은 그것을 취하셨습니다. 겟세마네에서 그분은 "이에 그분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혼이 심히 슬퍼 죽을 지경이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나와 함께 깨어 있으라, 하시고"라고 하셨고 (마 26:38), 히브리서는 그분이 "그러므로 모든 일에서 그분께서 자기 형제들과 같게 될 필요가 있었으니 이것은 그분께서 하나님께 속한 일들에서 긍휼 많고 신실하신 대제사장이 되사 백성의 죄들로 인해 화해를 이루려 하심이라."라고 말합니다 (히 2:17).

그래서 그분은 ‘신성에 관해서는 아버지와 동등하시고, 인성에 관해서는 아버지보다 낮으십니다’ 30항. 앞에서 남겨 둔 물음의 답이 여기 있습니다. 아들은 "그분은 하나님의 형체로 계시므로 하나님과 동등함을 강탈로 여기지 아니하셨으나 스스로 무명한 자가 되사 자기 위에 종의 형체를 취하시고 사람들의 모습이 되셨으며" 사람이 되셨습니다 (빌 2:6-7).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14:28을 풀며 이렇게 결론짓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두 본질, 곧 아버지와 동등한 신적 본질과 낮은 인간적 본질을 인정합시다" 아우구스티누스.

이어지는 세 항은 이 두 본성을 지니신 분이 어떻게 한 분이신지를 말합니다.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시지만 둘이 아니라 한 분 그리스도이십니다’ 31항. ‘한 분이시니, 신성이 육신으로 바뀌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32항. ‘전적으로 한 분이시니, 본질이 혼합되어서가 아니라 위격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33항.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분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하신 분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라는 말씀은 (요 1:14) 하나님이 사람으로 변하셨다는 뜻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나는 주라 변치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너희 야곱의 아들들이 소멸되지 아니하였느니라."라고 하십니다 (말 3:6). 아우구스티누스는 사람의 말이 소리를 입어 밖으로 나오는 것에 견주어 "우리의 말이 소리가 되지만 소리로 바뀌지는 않듯이, 하나님의 말씀도 육신이 되셨으나 육신으로 바뀌지는 않으셨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라틴어 원문은 인성이 ‘하나님 안으로’ 취해졌다고 말합니다. 하나님이 작아지신 것이 아니라 우리의 인성이 하나님께로 들어 올려졌습니다.

항고백막는 생각
28항어머니의 본질에서 세상에 태어나심그리스도는 사람처럼 보이기만 했다 (가현설)
29항이성적인 영혼과 육신을 지닌 완전한 사람그리스도께는 사람의 정신이 없다 (아폴리나리스)
30항신성으로는 아버지와 동등하심아들은 아버지보다 낮은 존재다 (아리우스)
31항둘이 아니라 한 분 그리스도하나님의 아들과 사람 예수를 두 주체로 나눈다
32항신성이 바뀐 것이 아니라 인성을 취하심말씀이 육신으로 변했다
33항본질의 혼합이 아니라 위격의 하나됨두 본성이 섞여 한 본성이 되었다 (에우티케스)

넷째 줄은 431년 에베소 공의회가 네스토리우스의 가르침으로 보고 물리친 생각이고, 여섯째 줄은 451년 칼케돈 공의회가 물리친 생각입니다. 칼케돈은 두 본성이 섞이지도 바뀌지도 나뉘지도 갈라지지도 않은 채 한 위격 안에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칼케돈 신앙정의. 이 공의회들의 이야기는 참 하나님, 참 사람 과에서 더 다룹니다.

신경은 비유 하나를 듭니다. ‘이성적인 영혼과 육신이 한 사람이듯이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 분은 한 분 그리스도이십니다’ 34항. 알퀴누스도 같은 비유로 "말씀이 육신으로 바뀌지 않고 육신이 말씀으로 바뀌지도 않으니, 이는 영혼이 몸으로 바뀌지 않고 몸이 영혼으로 바뀌지 않는 것과 같습니다"라고 풉니다 알퀴누스. 다만 이 비유에도 한계가 있습니다. 영혼과 몸은 함께 하나의 사람 본성을 이루지만, 그리스도의 두 본성은 섞여 제3의 본성이 되지 않습니다.

신경은 이어서 사도신경의 순서대로 그분의 고난과 부활과 승천과 다시 오심을 고백합니다 34–35항. 이 페이지의 한국어 본문에는 한국 교회의 전통 사도신경에 없는 ‘음부에 내려가셨으며’가 들어 있는데, 이 구절의 여러 풀이는 사도신경 해설에서 다룹니다. 그분이 오실 때 모든 사람은 몸으로 다시 살아나 ‘자기 행위에 대하여 셈을 바칠 것입니다’ 36항. 37항은 예수님의 말씀을 거의 그대로 옮깁니다.

선을 행한 자들은 생명의 부활로, 악을 행한 자들은 정죄의 부활로 나오리라.

요 5:29

이것은 행위로 구원받는다는 말일까요?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가르친 종교개혁 교회들은 이 신경을 받으면서 이 구절을 그런 뜻으로 읽지 않았습니다. 바울은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라고 말한 바로 뒤에 (엡 2:8), 우리가 "우리는 그분의 작품이요 그리스도 예수님 안에서 선한 행위를 하도록 창조된 자들이니라. 하나님께서 그 선한 행위를 미리 정하신 것은 우리가 그 행위 가운데서 걷게 하려 하심이니라."라고 덧붙입니다 (엡 2:10). 심판 날에 드러나는 선한 일은 구원의 값이 아니라 참된 믿음의 열매입니다. 영원한 형벌에 대한 교회들의 견해는 부활, 심판, 새 하늘과 새 땅 과에서 다룹니다.

경고의 말을 어떻게 읽을까

이 신경을 처음 읽는 사람이 가장 놀라는 곳은 처음과 끝입니다. 이 신앙을 ‘온전하고 흠 없이 지키지 않으면, 의심할 것 없이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2항. 끝에서도 ‘이것을 참되고 확고하게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합니다 38항. 가운데의 두 항도 같은 말로 두 부분을 잇습니다 26–27항.

먼저 이 말이 무엇을 말하는지 보아야 합니다. 신경은 여기서 고백한 하나님, 곧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이 우리를 구원하시는 바로 그 하나님이시며, 그분을 떠나서는 생명이 없다고 말합니다. 성경도 같은 무게로 말합니다.

영생은 이것이니 곧 그들이 유일하신 참 하나님인 아버지와 아버지께서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요 17:3

요한은 "누구든지 아들을 부인하는 자에게는 곧 그에게는 아버지가 없되 아들을 인정하는 자에게는 아버지도 있느니라."라고 쓰고 (요일 2:23), "누구든지 죄를 지으며 그리스도의 교리에 거하지 아니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이 없고 그리스도의 교리 안에 거하는 자에게는 아버지와 아들이 둘 다 있느니라."라고 경고합니다 (요이 1:9). 신경의 경고는 이 말씀들을 이어받은 것입니다.

다음으로 이 말이 무엇을 말하지 않는지도 보아야 합니다. 사람은 신학 용어를 정확히 외워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이 신경이 고백하는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받습니다. 신경 자신도 이 신비를 다 안다고 하지 않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세 위격’이라는 말조차 그것으로 신비를 다 말할 수 있어서가 아니라 잠잠히 있을 수 없어서 쓰는 말이라고 고백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5권. 그래서 많은 교회는 ‘온전하고 흠 없이’ 지키라는 말을, 받은 신앙을 알고도 일부러 버리거나 고쳐 가르치는 일을 경계하는 말로 읽어 왔습니다. 존 웨슬리는 한때 이 구절 때문에 신경에 서명하기를 망설였으나, 이 말이 진리를 알 길이 있는데도 고집스럽게 거부하는 사람에게 해당하고, 설명 방식이 아니라 교리의 실질에 관한 것이라고 이해한 뒤에 받아들였다고 썼습니다. 잉글랜드 성공회의 캔터베리 성직자 회의도 1870년대의 긴 논쟁 끝에, 이 경고는 성경에 있는 비슷한 경고와 같은 뜻으로 받아야 하며 교회가 어떤 특정한 사람을 심판하는 말이 아니고 심판하실 분은 하나님 한 분뿐이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런데도 이 말을 불편하게 여긴 교회들이 있습니다. 공중 예배에서 회중이 영원한 멸망을 소리 내어 선언하는 것이 지나치다는 염려, 구원이 그리스도가 아니라 교리의 정확한 문구에 달린 것처럼 들릴 수 있다는 염려 때문입니다. 미국 성공회는 1789년 기도서에서 이 신경을 뺐고, 1979년 기도서에는 교회의 역사적 문서로만 실었습니다. 웨슬리는 미국 감리교인들을 위해 39개 신조를 줄일 때 세 신경을 다룬 조항을 넣지 않았고, 아일랜드 성공회는 국교회에서 분리된 뒤 이 신경을 예배에서 꼭 읽게 하던 규정을 없앴습니다. 반대로 이 신경을 즐겨 고백하는 이들은, 낭떠러지 앞의 경고판이 사람을 겁주려는 것이 아니라 지키려는 것이듯 이 말도 교회의 사랑이라고 답합니다.

매튜 헨리는 요한이서의 경고를 풀며 균형을 잡아 줍니다. "그러나 이 명령에 순종하면서도 우리는 덜 중요한 문제에서 우리와 다르지만 그리스도의 위격과 속죄와 거룩한 구원이라는 가장 중요한 교리를 굳게 붙드는 사람들에게 친절과 선한 마음을 보여야 합니다" 매튜 헨리. 이 신경의 경고도 모든 문제에 대한 것이 아니라 바로 그 한가운데, 하나님이 누구시고 그리스도가 누구신가에 대한 것입니다.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에 관한 물음은 복음을 듣지 못한 사람은 어떻게 되는가?에서 더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오늘 교회가 이 신경을 쓰는 자리

종교개혁 교회들은 이 신경을 고대 교회의 공동 유산으로 받았습니다. 벨직 신앙고백 9조는 삼위일체에 대한 성경의 증언을 모은 뒤 사도신경과 니케아 신경과 아타나시우스 신경을 기꺼이 받는다고 고백하고, 프랑스 신앙고백(1559)도 세 신경이 하나님의 말씀에 맞기에 받는다고 말합니다. 성공회의 39개 신조는 세 신경이 성경의 가장 확실한 근거로 증명될 수 있으므로 온전히 받아 믿어야 한다고 가르칩니다 39개 신조 8조. 1662년 공동기도서는 성탄절과 부활절과 성령강림절과 삼위일체 주일을 비롯한 열세 번의 축일에 아침 기도에서 사도신경 대신 이 신경을 노래하거나 읽게 했습니다.

루터교회의 신앙고백 모음인 일치서(1580)는 사도신경, 니케아 신경과 함께 이 신경을 맨 앞에 싣고, 많은 루터교회는 지금도 성령강림절 다음 주일인 삼위일체 주일에 이 신경을 함께 고백합니다. 가톨릭 교회에서는 오랫동안 주일 아침 기도 시간에 이 신경을 바쳤는데, 20세기 중엽의 전례 개혁으로 그 자리가 줄었다가 정규 기도에서 빠졌습니다. 그래도 가톨릭 교회는 이 신경을 교회가 받은 신앙고백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정교회는 이 신경을 예배에서 쓰지 않습니다.

한국의 장로교회는 주일 예배에서 이 신경을 고백하는 일이 드물지만, 그 가르침은 앞에서 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장과 소요리문답 6문을 통해 이미 배우고 있습니다.

이 신경은 길고 같은 말을 되풀이합니다. 그러나 그 되풀이는 지루한 반복이 아니라 찬송의 후렴처럼, 하나님을 나누지도 섞지도 않고 바르게 부르는 법을 몸에 익히게 합니다. 천천히 소리 내어 읽으면 이것이 따지는 글이 아니라 예배의 노래라는 것이 드러납니다. 바울도 하나님의 깊은 지혜 앞에서 논증을 멈추고 이렇게 찬양했습니다.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나오고 그분으로 말미암으며 그분께로 돌아가나니 영광이 그분께 영원토록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롬 11:36). 삼위일체에 관한 더 쉬운 설명은 삼위일체란 무엇인가?에서 볼 수 있습니다.

출처

  1. 레랭의 빈켄티우스, 비망록 434 읽기
  2.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3. 이레나이우스, 이단 반박 읽기
  4. 나지안주스의 그레고리우스, 클레도니우스에게 보낸 첫째 편지 서신 101 / Epistle 101
  5. 잉글랜드 교회, 39개 신조 1571
  6.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2

본문

1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 먼저 보편적 신앙을 붙잡아야 합니다.

영어 원문

Whosoever will be saved, before all things it is necessary that he hold the catholic faith.

2

이 신앙을 누구든지 온전하고 흠 없이 지키지 않으면, 의심할 것 없이 영원히 멸망할 것입니다.

영어 원문

Which faith unless every one do keep whole and undefiled, without doubt he shall perish everlastingly.

3

보편적 신앙은 이것입니다. 우리는 삼위 안에 계신 한 분 하나님과 일체 안에 계신 삼위를 예배하며, 위격들을 혼동하지 않고 본질을 나누지 않습니다.

영어 원문

And the catholic faith is this: that we worship one God in Trinity, and Trinity in Unity; neither confounding the Persons, nor dividing the Essence.

4

성부의 위격이 하나이고, 성자의 위격이 다른 하나이며, 성령의 위격이 또 다른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영어 원문

For there is one Person of the Father; another of the Son; and another of the Holy Ghost.

5

그러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신성은 하나이며, 영광은 동등하고 위엄은 함께 영원합니다.

영어 원문

But the Godhead of the Father, of the Son, and of the Holy Ghost, is all one; the Glory equal, the Majesty coeternal.

6

성부께서 어떠하시면 성자께서도 그러하시고, 성령께서도 그러하십니다.

영어 원문

Such as the Father is; such is the Son; and such is the Holy Ghost.

7

성부께서는 창조되지 않으셨고, 성자께서도 창조되지 않으셨고, 성령께서도 창조되지 않으셨습니다.

영어 원문

The Father uncreated; the Son uncreated; and the Holy Ghost uncreated.

8

성부께서는 한이 없으시고, 성자께서도 한이 없으시고, 성령께서도 한이 없으십니다.

영어 원문

The Father unlimited; the Son unlimited; and the Holy Ghost unlimited.

9

성부께서는 영원하시고, 성자께서도 영원하시고, 성령께서도 영원하십니다.

영어 원문

The Father eternal; the Son eternal; and the Holy Ghost eternal.

10

그러나 영원한 분이 셋이 아니라 영원한 분은 한 분이십니다.

영어 원문

And yet they are not three eternals; but one eternal.

11

창조되지 않은 분이 셋이 아니고 무한한 분이 셋이 아니라, 창조되지 않은 분은 한 분이시고 무한한 분은 한 분이십니다.

영어 원문

As also there are not three uncreated; nor three infinites, but one uncreated; and one infinite.

12

이와 같이 성부께서는 전능하시고, 성자께서도 전능하시고, 성령께서도 전능하십니다.

영어 원문

So likewise the Father is Almighty; the Son Almighty; and the Holy Ghost Almighty.

13

그러나 전능한 분이 셋이 아니라 전능한 분은 한 분이십니다.

영어 원문

And yet they are not three Almighties; but one Almighty.

14

이와 같이 성부께서는 하나님이시고, 성자께서도 하나님이시고, 성령께서도 하나님이십니다.

영어 원문

So the Father is God; the Son is God; and the Holy Ghost is God.

15

그러나 하나님이 셋이 아니라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영어 원문

And yet they are not three Gods; but one God.

16

이와 같이 성부께서는 주님이시고, 성자께서도 주님이시고, 성령께서도 주님이십니다.

영어 원문

So likewise the Father is Lord; the Son Lord; and the Holy Ghost Lord.

17

그러나 주님이 셋이 아니라 주님은 한 분이십니다.

영어 원문

And yet not three Lords; but one Lord.

18

기독교의 진리가 우리로 하여금 각 위격을 그 자체로 하나님이시요 주님이시라고 인정하지 않을 수 없게 하듯이, 보편적 신앙은 우리에게 하나님이 셋이라거나 주님이 셋이라고 말하는 것을 금하기 때문입니다.

영어 원문

For like as we are compelled by the Christian verity; to acknowledge every Person by himself to be God and Lord; So are we forbidden by the catholic religion; to say, There are three Gods, or three Lords.

19

성부께서는 어느 누구에게서도 만들어지지 않으셨고, 창조되지도 나시지도 않으셨습니다.

영어 원문

The Father is made of none; neither created, nor begotten.

20

성자께서는 오직 성부에게서 계시니,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않으셨고 나셨습니다.

영어 원문

The Son is of the Father alone; not made, nor created; but begotten.

21

성령께서는 성부와 성자에게서 계시니, 만들어지지도 창조되지도 나시지도 않으셨고 나오십니다.

영어 원문

The Holy Ghost is of the Father and of the Son; neither made, nor created, nor begotten; but proceeding.

22

그러므로 아버지는 한 분이시고 아버지가 셋이 아니며, 아들은 한 분이시고 아들이 셋이 아니며, 성령은 한 분이시고 성령이 셋이 아닙니다.

영어 원문

So there is one Father, not three Fathers; one Son, not three Sons; one Holy Ghost, not three Holy Ghosts.

23

그리고 이 삼위 안에서는 어느 분도 다른 분보다 앞서거나 뒤서지 않고, 어느 분도 다른 분보다 크거나 작지 않습니다.

영어 원문

And in this Trinity none is before, or after another; none is greater, or less than another.

24

세 위격 모두가 함께 영원하시고 동등하십니다.

영어 원문

But the whole three Persons are coeternal, and coequal.

25

그리하여 앞서 말한 대로 모든 면에서 삼위 안의 일체와 일체 안의 삼위를 예배해야 합니다.

영어 원문

So that in all things, as aforesaid; the Unity in Trinity, and the Trinity in Unity, is to be worshipped.

26

그러므로 구원을 받고자 하는 사람은 삼위일체에 관하여 이와 같이 생각해야 합니다.

영어 원문

He therefore that will be saved, let him thus think of the Trinity.

27

더 나아가 영원한 구원을 위해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또한 신실하게 믿는 것이 필요합니다.

영어 원문

Furthermore it is necessary to everlasting salvation; that he also believe faithfully the Incarnation of our Lord Jesus Christ.

28

바른 신앙은 우리가 믿고 고백하는 것이니, 곧 하나님의 아들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서는 아버지의 본질에서 세상 이전에 나셨고, 사람으로서는 어머니의 본질에서 세상에 태어나셨습니다.

영어 원문

For the right Faith is, that we believe and confess; that our Lord Jesus Christ, the Son of God, is God and Man; God, of the Essence of the Father; begotten before the worlds; and Man, of the Essence of his Mother, born in the world.

29

완전한 하나님이시며, 이성적인 영혼과 인간의 육신으로 존재하시는 완전한 사람이십니다.

영어 원문

Perfect God; and perfect Man, of a reasonable soul and human flesh subsisting.

30

신성에 관해서는 아버지와 동등하시고, 인성에 관해서는 아버지보다 낮으십니다.

영어 원문

Equal to the Father, as touching his Godhead; and inferior to the Father as touching his Manhood.

31

그분은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시지만 둘이 아니라 한 분 그리스도이십니다.

영어 원문

Who although he is God and Man; yet he is not two, but one Christ.

32

한 분이시니, 신성이 육신으로 바뀌어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성을 취하셨기 때문입니다.

영어 원문

One; not by conversion of the Godhead into flesh; but by assumption of the Manhood by God.

33

전적으로 한 분이시니, 본질이 혼합되어서가 아니라 위격이 하나이기 때문입니다.

영어 원문

One altogether; not by confusion of Essence; but by unity of Person.

34

이성적인 영혼과 육신이 한 사람이듯이 하나님이시요 사람이신 분은 한 분 그리스도이십니다. 그분은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고난을 받으셨고, 음부에 내려가셨으며, 사흘째 되는 날에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영어 원문

For as the reasonable soul and flesh is one man; so God and Man is one Christ; Who suffered for our salvation; descended into hell; rose again the third day from the dead.

35

그분은 하늘에 오르사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우편에 앉아 계시고, 거기서 산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오실 것입니다.

영어 원문

He ascended into heaven, he sitteth on the right hand of the Father God Almighty, from whence he will come to judge the living and the dead.

36

그분이 오실 때에 모든 사람이 자기 몸으로 다시 살아날 것이며, 자기 행위에 대하여 셈을 바칠 것입니다.

영어 원문

At whose coming all men will rise again with their bodies; And shall give account for their own works.

37

선을 행한 사람들은 영원한 생명으로 들어가고, 악을 행한 사람들은 영원한 불 속으로 들어갈 것입니다.

영어 원문

And they that have done good shall go into life everlasting; and they that have done evil, into everlasting fire.

38

이것이 보편적 신앙입니다. 이것을 참되고 확고하게 믿지 않는 사람은 구원을 받을 수 없습니다.

영어 원문

This is the catholic faith; which except a man believe truly and firmly, he cannot be saved.

본문: 공개 저작물(Creeds.json; 필립 샤프, 『기독교 신조집』, 1877). 사도신경은 전해 내려온 우리말 고백문.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