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5과

삼위일체

삼위일체는 한 분 하나님이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세 위격으로 영원히 계신다는 고백입니다. 세 신도 아니고 한 분이 세 가지 모습으로 바뀌어 나타나시는 것도 아니며, 이 교리는 성경이 하나님에 대해 말하는 모든 것을 함께 붙드는 요약입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

지난 과에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보았습니다. 이제 그리스도인이 하나님에 대해 하는 가장 독특한 고백을 살펴봅니다. 그 출발점은 이스라엘이 날마다 외운 고백입니다.

오 이스라엘아, 들으라. 주 우리 하나님은 한 주시니

신 6:4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 이사야는 "나는 주니라. 나 외에는 다른 이가 없으며 나 외에는 신이 없느니라. 너는 나를 알지 못하였을지라도 내가 네게 띠를 띠어 주었으니"고 전합니다 (사 45:5). 신약도 이 고백을 결코 거두지 않습니다. 바울은 우상이 아무것도 아니며 하나님은 한 분밖에 없다고 말한 다음 이렇게 이어 갑니다.

우리에게는 오직 한 하나님 곧 아버지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에게서 났고 우리도 그분 안에 있노라. 또 한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나니 모든 것이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고 우리도 그분으로 말미암아 존재하느니라.

고전 8:6

놀라운 문장입니다. 초대 교회가 널리 쓰던 헬라어 구약은 신명기 6:4의 ‘여호와’를 ‘주’로 옮겼습니다. 그래서 많은 해석자는 바울이 여기서 그 고백을 되울리며, 한 ‘하나님’과 한 ‘주’ 안에 아버지와 예수 그리스도를 함께 놓는다고 봅니다. 그리스도를 하나님 곁의 두 번째 신으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한 분 하나님의 고백 안으로 모셔 들이는 것입니다.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

신약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각각 하나님으로 말합니다. 요한복음 첫 절은 "처음에 말씀이 계셨고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며 말씀이 하나님이셨더라."고 말하고 (요 1:1), 도마는 부활하신 예수께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매"라고 고백하며 (요 20:28), 히브리서는 아들에게 "아들에게는 이르시기를, 오 하나님이여, 주의 왕좌는 영원무궁하오며 주의 왕국의 홀(笏)은 의의 홀이니이다."라고 말합니다 (히 1:8). 베드로는 "베드로가 이르되, 아나니야야, 어찌하여 사탄이 네 마음에 가득 차서 네가 성령님께 거짓말을 하고 땅값의 얼마를 감추었느냐?"라고 아나니아를 꾸짖은 뒤 (행 5:3) "땅이 남아 있었을 때에 네 것이 아니었느냐? 그것을 판 뒤에도 네 마음대로 할 수 있지 아니하였느냐? 네가 어찌하여 이 일을 네 마음속에 품었느냐? 네가 사람들에게 거짓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께 하였도다, 하니"라고 말합니다 (행 5:4).

그러면서도 세 분은 서로 구별됩니다.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실 때 성령은 비둘기같이 내려오시고 하늘에서는 아버지의 음성이 들립니다 (마 3:16-17). 아들은 아버지께 구하고, 아버지는 "내가 아버지께 구할 터인즉 그분께서 다른 위로자를 너희에게 주사 그분께서 영원토록 너희와 함께 거하게 하시리니"를 보내십니다 (요 14:16). 그리고 세 분은 함께 불립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들을 가르치고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그들에게 침례를 주며

마 28:19

‘이름들’이 아니라 한 ‘이름’입니다. 바울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님의 교통하심이 너희 모두와 함께 있기를 원하노라. 아멘. 고린도 사람들에게 보내는 둘째 서신을 마케도니아의 도시 빌립보에서 써서 디도와 누가 편에 보내다." 함께하기를 빕니다 (고후 13:13). 아들의 신성은 참 하나님, 참 사람에서, 성령의 인격과 신성은 성령은 누구신가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삼위일체’라는 말은 성경에 없습니다. 3세기 초 테르툴리아누스가 라틴어로 이 말(trinitas)을 쓰며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을 한 본질의 세 위격으로 설명했습니다 테르툴리아누스, 프락세아스 반박. 그러나 말이 새롭다고 내용이 새로운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한 분이시다, 아버지도 아들도 성령도 하나님이시다, 세 분은 서로 구별되신다. 삼위일체 교리는 성경의 이 세 가지 증언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함께 붙든 요약입니다.

교회가 고백하고 거절한 것

이 증언을 한쪽으로만 풀려는 시도들이 있었고, 교회는 그것을 하나씩 거절하며 고백을 다듬었습니다. 3세기의 사벨리우스는 하나님의 하나 되심을 지키려고, 한 분이 때에 따라 아버지로, 아들로, 성령으로 나타나신다고 가르쳤습니다. 한 배우가 가면을 바꿔 쓰는 것과 같다는 이 견해를 양태론이라 합니다. 그러나 그러면 세례 때의 음성과 아들의 기도는 한 분이 자기에게 말하는 것이 되고 맙니다. 4세기 알렉산드리아의 장로 아리우스는 하나님의 유일하심을 지키려고, 아들은 가장 먼저 지어진 가장 높은 피조물이라고 가르쳤습니다. 그러나 성경은 "모든 것이 그분에 의해 만들어졌으니 만들어진 것 중에 그분 없이 만들어진 것은 하나도 없었더라."라고 하여 (요 1:3) 아들을 지어진 것들 바깥에 둡니다. 반대로 세 분을 서로 다른 세 신으로 보는 삼신론은 신명기 6:4와 정면으로 부딪칩니다.

예수께서는 "나와 내 아버지는 하나이니라, 하시니라."고 하셨습니다 (요 10:30). 헬라어 원문의 ‘하나’는 한 인격을 가리키는 남성형이 아니라 중성형 이고, ‘이니라’는 ‘우리가 ~이다’라는 복수형입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두 말에 주목하며 "하나라고 하신 데서 아리우스파가, 우리라고 하신 데서 사벨리우스파가 반박을 받습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325년 니케아 공의회는 아들이 지음 받지 않고 나셨으며 아버지와 ‘본질이 같으신’(호모우시오스) 분이라고 고백했고,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성령을 ‘주님이시며 생명을 주시는 분’,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와 영광을 받으시는 분으로 고백하여 니케아 신경을 완성했습니다 니케아 신경. 아타나시우스 신경은 우리가 삼위 안에서 한 하나님을, 하나 안에서 삼위를 예배하며, 위격들을 혼동하지도 본질을 나누지도 않는다고 고백합니다 아타나시우스 신경.

물과 얼음과 수증기, 달걀의 껍데기와 흰자와 노른자 같은 비유는 쉽게 와닿지만 모두 어딘가에서 무너집니다. 첫째는 한 물질이 모양을 바꾸는 것이니 양태론이 되고, 둘째는 세 부분이 모여 하나가 되니 각 위격이 온전한 하나님이 아니게 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삼위일체론에서 사랑하는 이와 사랑받는 이와 사랑 같은 비유를 찾으면서도, 어떤 비유도 하나님께 미치지 못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이 교리는 이해를 넘어서지만, 모순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본질로는 한 분, 위격으로는 세 분이십니다.

성령은 어디에서 나오시는가

교회들이 지금도 다르게 고백하는 구절이 하나 있습니다. 381년의 신경은 성령이 ‘아버지에게서 나오신다’고 했습니다. 예수께서 하신 "그러나 내가 아버지로부터 너희에게 보낼 위로자 곧 아버지로부터 나오는 진리의 영께서 오실 때에 그분께서 나에 대해 증언하실 것이요"이라는 말씀을 따른 것입니다 (요 15:26). 그런데 6세기 무렵부터 라틴 교회는 여기에 ‘그리고 아들에게서’(필리오케)를 더해 고백하기 시작했고, 이 문구는 점차 서방 교회 전체로 퍼졌습니다.

가톨릭 교회와 그 전통을 이어받은 대부분의 개신교회는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에게서 나오신다고 고백합니다. 성령은 "너희가 아들이므로 하나님께서 자신의 아들의 영을 너희 마음속에 보내사, 아바, 아버지, 하고 부르짖게 하셨느니라."이라 불리고 (갈 4:6), 아들이 성령을 보내시기 때문입니다 (요 16:7). 아우구스티누스는 "성령은 한 분의 영이 아니라 두 분 모두의 영이십니다"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서방은 이 구절로 아들이 아버지와 온전히 동등하심을 지키려 했습니다.

정교회는 381년의 원래 문구를 지킵니다. 아버지께서 아들과 성령의 유일한 근원이시며, 아들이 성령을 세상에 보내시는 일과 성령이 영원히 아버지에게서 나오시는 일은 구별해야 한다고 봅니다. 동방의 테오필락투스는 요한복음 15:26에서 "나오시는 것은 보내심을 받는 것과 같지 않으며, 아버지로부터 오시는 성령의 본질적 본성입니다"라고 씁니다 테오필락투스. 또 공의회가 함께 고백한 신경을 한쪽 교회가 홀로 바꾼 것을 문제 삼습니다.

두 전통은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과 함께 경배받으시는 온전한 하나님이시라는 데 한마음이고, 이 차이는 지금도 교회들의 대화에서 논의되고 있습니다. 동방 교부들 가운데 성령이 아버지에게서 ‘아들을 통하여’ 나오신다고 말한 이들이 있어, 서로를 이해하는 실마리로 거론되기도 합니다.

삼위일체는 머리를 아프게 하는 수수께끼가 아니라 복음의 모양입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서 "아버지여, 원하건대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자들도 내가 있는 곳에 나와 함께 있게 하사 아버지께서 세상의 창건 이전에 나를 사랑하셨으므로 친히 내게 주신 나의 영광을 그들이 보게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요 17:24). 세상이 있기 전에도 하나님 안에는 사랑이 있었으니, "사랑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을 알지 못하나니 이는 하나님이 사랑이시기 때문이라."는 말씀은 영원 전부터 참입니다 (요일 4:8). 구원도 삼위 하나님의 일입니다.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이 "그분을 통하여 우리 둘이 한 성령을 힘입어 아버지께로 나아감을 얻나니"고 말합니다 (엡 2:18). 이 질문은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예수는 하나님인가?, 성령은 누구신가?에서 더 다룹니다.

연습

  1. 연습 1 / 8

    삼위일체 교리가 함께 붙드는 성경의 세 가지 증언은 무엇입니까?

  2. 연습 2 / 8

    마태복음 28:19에서 예수께서 세례를 주라고 하신 이름은 무엇입니까?

  3. 연습 3 / 8

    한 분 하나님이 때에 따라 아버지로, 아들로, 성령으로 나타나신다는 견해를 무엇이라 부르며, 왜 거절되었습니까?

  4. 연습 4 / 8

    아리우스가 가르친 것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아우구스티누스는 요한복음 10:30 "나와 아버지는 하나이니라"가 어떻게 두 오류를 함께 물리친다고 말합니까?

  6. 연습 6 / 8

    물과 얼음과 수증기의 비유가 삼위일체를 설명하기에 부족한 까닭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성령이 아버지와 ‘아들에게서도’(필리오케) 나오신다고 고백하는 교회와, 381년의 원래 문구대로 ‘아버지에게서’ 나오신다고 고백하는 교회를 바르게 짝지은 것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삼위일체 교리가 그리스도인의 삶에 주는 의미로 이 과에서 본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1. 테르툴리아누스, 프락세아스 반박 — 213년경. 하나님을 ‘삼위일체’(trinitas)라는 말로 설명한 가장 이른 라틴어 저작 가운데 하나.
  2. 니케아·콘스탄티노플 공의회, 니케아 신경 325/381 — 동서방 교회가 함께 고백하는 신조. 읽기
  3. 서방 교회, 아타나시우스 신경 — 5–6세기. 삼위일체와 그리스도의 두 본성을 정밀하게 고백하는 라틴어 신조로, 아타나시우스의 이름이 붙었으나 후대의 문서다. 읽기
  4. 아우구스티누스, 삼위일체론 — 400–420년경. 서방 교회의 삼위일체 신학을 대표하는 저작.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