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본성
The two natures of Christ
두 본성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한 분 안에 완전한 신성과 완전한 인성을 함께 지니신다는 고백입니다. 그분은 아버지와 같은 본질이신 참 하나님이시고 죄 외에는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은 참 사람이시며, 두 본성은 섞이지도 나뉘지도 않습니다.
참 하나님이시요 참 사람
복음서의 예수께서는 하나님만 하실 수 있는 일을 하셨습니다. 중풍병자에게 죄 사함을 선언하시자 서기관들은 "이 사람이 어찌하여 이렇게 신성모독하는 말을 하느냐? 오직 하나님 외에 누가 능히 죄들을 용서하겠느냐? 하더라."고 생각했고 (막 2:7), 도마는 부활하신 그분께 "도마가 그분께 응답하여 이르되, 나의 주시며 나의 하나님이시니이다, 하매"라고 고백했습니다 (요 20:28). 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그분 안에는 하나님의 신격의 모든 충만이 몸으로 거하고
골 2:9
같은 예수께서 참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길을 걷다 곤하여 우물가에 앉으셨고 (요 4:6), 나사로의 무덤 앞에서는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요 11:35). 그분은 모든 일에 우리와 같이 시험을 받으셨으나 죄는 없으셨습니다 (히 4:15).
교회는 이것을 두 본성이라는 말로 고백합니다. ‘본성’은 헬라어 퓌시스(φύσις)를 옮긴 신학 용어로, 어떤 존재가 ‘무엇’인지를 가리킵니다. 그리스도의 신성은 아버지와 성령과 함께 지니신 하나님의 본질 전부이고, 인성은 참된 몸과 생각하고 뜻을 정하는 영혼을 지닌 사람됨 전부입니다. 그러나 이 둘은 두 사람의 것이 아니라 ‘누구’이신 한 분, 곧 하나님의 아들의 것입니다. 겟세마네에서 예수께서는 "조금 멀리 가사 얼굴을 대고 엎드려 기도하여 이르시되, 오 내 아버지여, 가능하시거든 이 잔을 내게서 지나가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내 뜻대로 하지 마옵시고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하시고는"라고 기도하셨습니다 (마 26:39). 아우구스티누스는 이 기도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사람으로서 어떤 개별적인 인간의 뜻을 보이시며"라고 읽었고 아우구스티누스, 그 사람의 뜻이 하나님의 뜻을 따랐다고 설명합니다.
칼케돈의 울타리
초대 교회는 이 신비를 쉽게 풀려다 한쪽을 잘라 내는 설명들과 씨름했습니다. 니케아 공의회(325)는 아들이 피조물이라는 아리우스에 맞서 참 하나님이심을, 콘스탄티노플 공의회(381)는 그리스도께 사람의 정신이 없다는 아폴리나리스에 맞서 온전한 사람이심을 지켰습니다. 에베소 공의회(431)는 그리스도를 둘로 나누는 듯한 네스토리우스주의에 맞서 한 분 그리스도를 지켰고, 결합 뒤에는 한 본성뿐이라는 에우티케스의 말이 문제가 되자 451년 칼케돈 공의회가 이렇게 고백했습니다.
한 분이시며 동일하신 그리스도, 아들, 주, 독생자께서는 두 본성 안에서 혼합되지 않고, 변하지 않고, 나뉘지 않고, 분리되지 않고 인정되십니다.
칼케돈 신앙정의
앞의 두 말은 두 본성이 섞여 제3의 것이 된다는 생각을, 뒤의 두 말은 그리스도를 두 주체로 나누는 생각을 막는 울타리입니다. 공의회는 레오의 교서를 받아들였는데, 레오는 두 본성이 한 위격 안에서 저마다의 고유함을 지니며 서로 함께 일한다고 가르쳤습니다 레오 1세, 레오의 교서. 두 본성이 어떻게 한 위격 안에 하나인지는 위격적 연합에서 더 다룹니다.
7세기에는 그리스도께 뜻이 하나뿐이라는 주장이 일어났습니다. 680–681년 제3차 콘스탄티노플 공의회는 그리스도께 신적 뜻과 인간의 뜻, 두 뜻이 있으며 인간의 뜻은 신적 뜻을 거스르지 않고 따른다고 고백했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사람의 뜻까지 취하셔야 우리의 뜻도 고치실 수 있다고 본 것입니다.
칼케돈을 받지 않은 교회들
콥트, 아르메니아, 에티오피아, 시리아 교회 등 오리엔트 정교회는 칼케돈 공의회를 받지 않았습니다. 이 교회들은 ‘두 본성 안에서’라는 말이 그리스도를 나누는 길을 열까 염려하여, 알렉산드리아의 키릴루스의 말을 따라 말씀이신 하나님의 성육하신 ‘한 본성’을 고백합니다. 이들이 말하는 한 본성은 신성과 인성이 섞인 것이 아니라 섞임도 변화도 없이 하나가 되신 말씀 한 분을 뜻하며, 그들도 에우티케스를 거부하고 단성론이라는 이름을 받아들이지 않습니다. 칼케돈을 받아들인 정교회, 가톨릭 교회, 개신교회는 ‘두 본성 안에서’를 지켜 왔습니다. 20세기 후반부터 양쪽은 대화를 통해 표현은 달라도 그리스도에 대한 신앙의 실질은 많은 부분 같다는 데 뜻을 모았지만, 완전한 교제는 아직 회복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는 "한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한 중재자가 계시니 곧 사람이신 그리스도 예수님이시라."이십니다 (딤전 2:5). 그분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를 구원하실 수 있고, 사람이시기에 우리 곁에 서실 수 있습니다. 교리 과정의 참 하나님, 참 사람 과와 예수는 누구인가?도 읽어 보십시오.
출처
- 레오 1세, 플라비아누스에게 보낸 서신(레오의 교서) 4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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