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직 은혜, 오직 믿음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의 값없는 선물이며, 우리는 그 선물을 오직 믿음으로 받습니다. 개혁교회는 하나님이 우리 안의 무엇 때문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의를 우리에게 여겨 주심으로 우리를 의롭다 하시며, 그 믿음은 결코 홀로 있지 않고 사랑으로 일한다고 고백합니다.
은혜가 은혜 되려면
지난 과에서 본 오직 성경이 종교개혁의 기준이라면, 개혁자들이 그 성경에서 다시 들은 복음의 내용은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입니다. 바울은 이 복음을 한 문장에 담습니다.
너희가 믿음을 통해 은혜로 구원을 받았나니 그것은 너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니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것은 아무도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함이라.
엡 2:8-9
하나님의 은혜는 받을 자격이 없는 이에게 베푸시는 값없는 호의입니다. 바울은 은혜와 공로가 섞일 수 없다고 말합니다. "만일 은혜로 된 것이면 그것이 더 이상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은혜가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라. 그러나 만일 그것이 행위에서 난 것이면 더 이상 은혜가 아니니 그렇지 않으면 행위가 더 이상 행위가 아니니라." (롬 11:6). 매튜 헨리는 이 구절에서 "구원은 처음부터 끝까지 은혜로 말미암든지 빚으로 말미암든지 둘 중 하나여야 합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디도서도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신 것은 "그분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되 우리가 행한 의로운 행위로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자신의 긍휼에 따라 다시 태어남의 씻음과 성령님의 새롭게 하심으로 하셨고" 하신 일이라고 말합니다 (딛 3:5).
오직 은혜는 은혜가 우리의 노력을 조금 거들어 준다는 뜻이 아닙니다. 죄로 죽은 사람을 살리시는 일 전체가 은혜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개혁교회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믿음까지도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은 칭의를 다루는 11장 1항을, 이 믿음은 우리 자신에게서 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말로 맺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1. 이것은 개혁교회만의 고백이 아닙니다. 529년 오랑주 공의회도 선한 뜻과 믿음의 시작까지 은혜에서 온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랑주 공의회.
빈 그릇 같은 믿음
그 은혜를 우리는 어떻게 받습니까? 바울은 "그러므로 우리가 결론을 내리노니 사람은 율법의 행위와 상관없이 믿음으로 의롭게 되느니라."고 말하고 (롬 3:28), 갈라디아서에서도 자기가 그리스도를 믿은 것은 "사람이 율법의 행위로 의롭게 되지 아니하고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되는 줄 알므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를 믿었나니 이것은 우리가 율법의 행위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믿음으로 의롭게 되고자 함이라. 율법의 행위로는 어떤 육체도 의롭게 될 수 없느니라."고 말합니다 (갈 2:16). 그리고 일꾼의 삯과 선물을 견줍니다.
이제 일하는 자는 품삯을 은혜로 여기지 아니하고 빚으로 여기거니와 일을 하지 아니할지라도 경건치 아니한 자를 의롭다 하시는 이를 믿는 자에게는 그의 믿음을 의로 여기시느니라.
롬 4:4-5
‘여기다’는 헬라어 로, 셈하여 누구의 몫으로 돌린다는 말입니다. 로마서 4장에 거듭 나오는 이 말이 칭의의 중심을 보여 줍니다. 하나님은 경건치 않은 자를 그의 행위 때문이 아니라 그가 믿는 분 때문에 의롭다고 셈하십니다.
그렇다면 믿음 자체가 공로가 되는 것은 아닐까요? 개혁교회는 아니라고 답합니다. 칼뱅은 믿음을 그릇에 견주었습니다. 우리가 빈 채로, 영혼의 입을 벌리고 그리스도의 은혜를 구하며 나아오지 않으면 그리스도를 받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믿음은 그 자체로 값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담아 오기 때문에 우리를 의롭게 합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3.11.7.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1문도 내가 믿음으로만 의롭다 함을 받는 것은 내 믿음이 훌륭해서가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의 속죄와 의와 거룩함만이 하나님 앞에서 나의 의이고 나는 그것을 믿음으로만 받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답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1문.
그 의는 누구의 것입니까? 바울은 이렇게 답합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알지 못한 그분을 우리를 위하여 죄가 되게 하신 것은 우리가 그분 안에서 하나님의 의가 되게 하려 하심이라.
고후 5:21
매튜 헨리는 그리스도께서 "죄인이 아니라 죄, 곧 속죄제물, 죄를 위한 희생제물이 되셨습니다"라고 풉니다 매튜 헨리. 우리 죄가 그리스도께 돌려지고 그리스도의 의가 우리에게 돌려집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장 1항은 이것을 정확히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우리 안에 의를 주입하심으로써가 아니라, 우리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를 의롭다고 여기고 받아 주심으로써 의롭다 하십니다. 우리 안에 이루어진 무엇이나 우리가 한 무엇 때문이 아니라 오직 그리스도 때문이며, 믿음 자체를 우리의 의로 여기시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순종과 속죄를 우리에게 여겨 주시고, 우리는 믿음으로 그분과 그분의 의를 받아 그 위에 쉽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1.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0문은 이 고백을 한 사람의 양심의 말로 옮깁니다. 내 양심이, 내가 하나님의 계명을 크게 어겼고 하나도 지키지 못했으며 여전히 악으로 기운다고 고발해도, 하나님은 내 공로 없이 순전한 은혜로 그리스도의 온전한 속죄와 의와 거룩함을 내게 주시고 여기셔서, 마치 내가 죄를 지은 적이 없고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순종을 내가 다 이룬 것처럼 보아 주신다는 것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60문.
홀로 있지 않은 믿음
‘믿음으로만’이라는 말이 신약에 그대로 나오는 곳은 뜻밖에도 야고보서이고, 거기서는 부정문입니다. "그런즉 너희가 보거니와 사람이 행위로 의롭게 되고 단지 믿음만으로 되지 아니하느니라." (약 2:24). 루터는 독일어 신약(1522)에서 로마서 3:28을 옮기며 ‘오직’을 넣었고, 그것이 바울의 뜻이라고 변호했습니다. 개혁교회는 바울과 야고보가 서로 다른 질문에 답한다고 읽습니다. 바울은 무엇이 우리를 하나님 앞에 의롭게 세우는가를 말하고, 야고보는 어떤 믿음이 참 믿음인가를 말합니다. 야고보는 "네가 한 하나님이 계시는 줄 믿으니 잘하는도다. 마귀들도 믿고 떠느니라."고 하며 (약 2:19), 아브라함의 믿음은 "네가 보거니와 믿음이 그의 행위와 함께 일하고 행위로 믿음이 완전하게 되지 아니하였느냐?"고 말합니다 (약 2:22).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장 2항은 둘을 함께 붙듭니다. 그리스도와 그분의 의를 받아 그 위에 쉬는 믿음은 칭의의 유일한 도구이지만, 의롭다 하심을 받은 사람 안에 홀로 있지 않고 언제나 다른 구원의 은혜들과 함께 있으며, 죽은 믿음이 아니라 사랑으로 일하는 믿음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2. 흔히 ‘오직 믿음, 그러나 홀로 있는 믿음은 아니다’라고 요약되는 고백입니다. 칼뱅도 트리엔트 공의회에 답하며, 오직 믿음이 의롭게 하지만 의롭게 하는 믿음은 홀로 있지 않다고 썼습니다 칼뱅, 트리엔트 공의회에 대한 해독제. 그는 또 그리스도와 연합한 사람이 칭의와 성화라는 ‘두 겹의 은혜’를 함께 받으며, 그리스도께서는 거룩하게 하지 않으시는 사람을 의롭다 하지 않으신다고 가르쳤습니다 칼뱅, 기독교 강요 3.11.1, 3.16.1. 매튜 헨리의 말처럼 "구원받은 사람에게는 행위가 있어야 하나, 행위는 그들의 구원의 원인 가운데 있지 않습니다" 매튜 헨리.
다른 전통들도 은혜가 먼저라는 데 동의하지만, 칭의를 설명하는 방식은 다릅니다. 가톨릭 교회는 칭의를 ‘의화’라고 부르며, 죄의 용서와 함께 은혜로 속사람이 새로워지고 거룩해지는 일로 가르칩니다. 트리엔트 공의회(1547)는 이 은혜가 세례로 주어지고 의롭게 된 이는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 안에서 자라 간다고 가르쳤습니다. 의화에 앞서는 믿음이나 행위가 그 은혜를 공로로 얻지 못한다고 하면서도, 의화를 받는 데 믿음 외에 아무것도 협력할 필요가 없다는 뜻의 ‘오직 믿음’은 거부했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999년 루터교세계연맹과 가톨릭 교회는 우리가 공로 때문이 아니라 오직 은혜로,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을 믿는 믿음 안에서 하나님께 받아들여진다고 함께 고백했고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세계개혁교회커뮤니언은 2017년 이 선언에 함께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차이는 남아 있지만, 서로의 말을 들으려는 걸음이었습니다. 여러 전통의 견해는 교리 과정의 ‘믿음과 칭의’ 과에서 자세히 다룹니다.
누가 송사하리요
이 고백은 무엇보다 위로입니다.
누가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자들을 무슨 일로 고소하리요? 의롭다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니 누가 정죄하리요? 죽으신 분은 그리스도시요, 참으로 다시 일어나신 분도 그리스도시니 그분께서는 바로 하나님의 오른편에 계시며 또한 우리를 위해 중보하시느니라.
롬 8:33-34
구원이 우리 믿음의 크기나 오늘의 성적에 달려 있다면 우리는 늘 불안할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의는 하나님 우편에 계신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 의는 흔들리지 않습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고발하는 양심을 정직하게 마주하게 하는 것도 그 때문입니다. 정죄의 두려움에서 놓인 사람은 공로를 쌓으려는 수고 대신 감사로 하나님을 섬기기 시작합니다. 그 감사의 삶은 죄, 은혜, 감사 과에서 다시 만납니다. 은혜란 무엇인가?와 칭의란 무엇인가?도 함께 읽어 보십시오. 다음 과에서는 이 모든 은혜가 오직 그리스도 안에 있고, 그래서 모든 영광이 하나님께 돌아감을 봅니다.
연습
- 연습 1 / 8
로마서 11:6에 따르면 구원이 은혜로 된 것이라면 무엇이 따릅니까?
- 연습 2 / 8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1장 1항에 따르면 하나님은 어떻게 죄인을 의롭다 하십니까?
- 연습 3 / 8
칼뱅이 믿음을 그릇에 견준 까닭은 무엇입니까?
- 연습 4 / 8
고린도후서 5:21이 말하는 교환은 무엇입니까?
- 연습 5 / 8
‘오직 믿음, 그러나 홀로 있는 믿음은 아니다’라는 말의 뜻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6 / 8
개혁교회는 야고보서 2장을 바울의 가르침과 어떻게 함께 읽습니까?
- 연습 7 / 8
트리엔트 공의회(1547)의 가르침으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 연습 8 / 8
1999년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과 개혁교회의 관계로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 제2차 오랑주 공의회, 오랑주 공의회 결정 529 —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시작이 은혜에서 온다고 고백하고, 악으로 예정되었다는 가르침을 거부한다.
- 장 칼뱅, 기독교 강요 1559 — 개혁파 신학의 대표 저작. 읽기
-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129문).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죄와 구원과 감사의 세 부분으로 신경, 성례, 십계명, 주기도문을 가르친다. 읽기
- 장 칼뱅, 트리엔트 공의회에 대한 해독제 1547 — 트리엔트의 칭의 교령에 답한 글. 오직 믿음이 의롭게 하지만, 의롭게 하는 믿음은 홀로 있지 않다고 말한다.
-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칭의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 가르침.
- 루터교 세계연맹·가톨릭교회, 의화 교리에 관한 공동 선언 1999 — 칭의에 대한 기본 진리에 함께 동의한 문서.
성경과 개혁교회의 신앙고백(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과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벨직 신앙고백, 도르트 신경)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개혁주의 신앙을 가르치되, 다른 전통의 견해도 공정하게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