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리 11과

원죄와 그 결과

죄는 우리가 저지르는 행위이기 전에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놓인 상태입니다. 아담의 죄로 모든 사람이 죄와 죽음 아래 있고 스스로 벗어날 수 없지만, 둘째 아담이신 그리스도 안에서 은혜가 죄보다 더 넘칩니다.

태어날 때부터

지난 과에서 첫 사람이 하나님을 떠난 이야기를 보았습니다. 그 일이 오늘의 우리와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성경은 죄가 이따금 저지르는 잘못에 그치지 않고, 우리가 태어나면서부터 놓인 상태라고 말합니다. 다윗은 자기 죄를 회개하며 이렇게 고백합니다.

보소서, 내가 불법 가운데서 형성되었으며 내 어머니가 죄 가운데서 나를 수태하였나이다.

시 51:5

다윗은 어머니를 탓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 죄가 얼마나 깊은지 고백하고 있습니다. 매튜 헨리는 "참으로 회개하는 사람은 언제나 실제로 지은 죄의 물줄기를 거슬러 올라가 원죄의 부패라는 샘에까지 이를 것입니다"라고 씁니다 매튜 헨리. 바울도 같은 진단을 내립니다.

지나간 때에는 우리도 다 그들 가운데서 우리 육신의 욕심 안에서 생활하며 육신과 생각의 욕망을 이루어 다른 사람들과 같이 본래 진노의 자녀들이었으나

엡 2:3

성경은 이 상태를 여러 모습으로 그립니다. 우리는 "또 그분께서 범법과 죄들 가운데서 죽었던 너희를 살리셨도다." 자들이었고 (엡 2:1), 마음은 "마음은 모든 것보다 거짓되고 극도로 사악하니 누가 그것을 알 수 있으리요?" 것입니다 (렘 17:9). 예수께서는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죄를 짓는 자는 죄의 종이니라."고 하셨고 (요 8:34), 크리소스토무스는 이것이 "가장 가혹한 종살이이며 오직 하나님만이 건지실 수 있는 종살이"라고 풉니다 크리소스토무스. 바울은 육신의 생각이 하나님의 법에 굴복하지 않을 뿐 아니라 "육신적인 생각은 하나님의 법에 복종하지 아니할 뿐 아니라 참으로 그리할 수도 없으므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고 말합니다 (롬 8:7). 죄인은 제힘으로 빠져나올 수 없습니다.

아담 안에서, 그리스도 안에서

왜 모든 사람이 이렇게 태어날까요? 바울은 그 뿌리를 아담에게서 찾습니다.

그러므로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심판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정죄에 이른 것 같이 한 사람의 의로 말미암아 이 거저 주시는 선물이 모든 사람에게 임하여 생명의 칭의에 이르렀나니 한 사람의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죄인이 된 것 같이 한 사람의 순종으로 말미암아 많은 사람이 의로운 자가 되리라.

롬 5:18-19

아담의 범죄는 아담에게서 그치지 않았습니다.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죽는 것 같이 그리스도 안에서 모든 사람이 살게 되리라." 우리는 그와 함께 넘어졌습니다 (고전 15:22). 교회는 이것을 원죄라고 부릅니다. 겉으로 드러난 잘못만이 아니라 인간 존재의 근원에 자리 잡은 죄라는 뜻입니다. 그 연결을 어떻게 설명하는지는 아래에서 보듯 전통마다 다르지만, 그것이 실제라는 데에는 모두 동의합니다.

종교개혁 전통은 인간 본성의 이 부패를 흔히 ‘전적 타락’이라고 부릅니다. 모든 사람이 할 수 있는 한 가장 악하다는 뜻이 아닙니다. 생각과 의지와 감정과 몸 어느 부분도 죄의 영향을 벗어나지 못하여, 우리 안의 무엇으로도 하나님 앞에 의로워질 수 없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의 형상도 지워지지 않았습니다. 홍수 뒤에 하나님은 사람의 피 흘리는 것을 엄히 금하시며 "누구든지 사람의 피를 흘리는 자는 사람에 의해 자기 피를 흘리리니 이는 하나님이 자신의 형상으로 사람을 만들었기 때문이니라."고 하셨습니다 (창 9:6). 죄인도 여전히 사랑하고 일하고 아름다운 것을 지을 수 있습니다. 다만 스스로 하나님께 돌아갈 수는 없습니다.

바울의 비교는 아담에서 끝나지 않습니다. 아담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법과 같은 종류의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 위에도 사망이 군림하였는데 아담은 오셔야 할 분의 모형이니라."이었고 (롬 5:14), 한 사람으로 시작된 죽음의 통치를 한 분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뒤집습니다. "또한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가 넘치게 하려 함이거니와 죄가 넘친 곳에 은혜가 더욱더 넘쳤나니"(롬 5:20).

펠라기우스와 아우구스티누스

5세기 초, 이 가르침을 두고 큰 논쟁이 일어났습니다. 브리타니아 출신으로 알려진 수도사 펠라기우스는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나쁜 본을 남겼을 뿐이라고 보았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본성과 자유 의지, 율법과 그리스도의 본보기가 은혜이며, 사람은 그것으로 계명을 지킬 수 있다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는 이에 맞서, 사람이 자유 의지를 악하게 써서 자기 자신과 자유를 함께 잃었으므로 하나님의 은혜가 먼저 의지를 새롭게 하지 않으면 누구도 선을 원할 수조차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 신앙 핸드북.

418년 카르타고 공의회는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정죄하고,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미치며 은혜가 지난 죄를 용서할 뿐 아니라 죄를 짓지 않도록 실제로 돕는다고 고백했습니다 카르타고 공의회(418). 529년 오랑주 공의회는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시작까지도 은혜에서 온다고 고백했습니다 오랑주 공의회. 교회는 펠라기우스가 진지한 도덕적 열심에도 불구하고 병을 너무 가볍게 진단했다고 판단했습니다. 본보기만으로는 죽은 자를 살릴 수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물려받는가

아담의 죄가 온 인류를 상하게 했다는 데에는 역사적 교회들이 모두 동의하지만, 우리가 정확히 무엇을 물려받는지는 다르게 설명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를 따르는 루터교와 개혁교회·장로교회는 죄책과 부패를 함께 물려받는다고 가르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2조는 사람이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신뢰하지 않으며 악한 욕망을 지닌 채 태어나고, 이 타고난 병이 참으로 죄라고 고백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2조.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8문은 우리가 모두 죄 중에 잉태되고 태어나며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으면 선을 행할 수 없다고 말하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7–8문,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장은 아담의 죄책이 후손에게 전가되고 부패한 본성이 전해진다고 고백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6장.

가톨릭 교회도 원죄를 고백하되, 그것을 우리가 저지른 죄가 아니라 물려받은 상태로 설명합니다. 첫 사람이 받았던 본래의 거룩함과 의로움을 잃었고, 인간 본성은 완전히 부패하지는 않았으나 상처를 입어 죄로 기웁니다 가톨릭 교회 교리서 404–405항. 트리엔트 공의회는 세례로 원죄의 죄책이 사해지며, 그 뒤에도 남는 이 기울어짐, 곧 가톨릭 교회가 ‘사욕’이라 부르는 것은 죄로 기울게 하지만 그 자체로 참된 의미의 죄는 아니라고 가르쳤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원죄에 관한 교령. 같은 공의회는 의화 교령에서 타락 뒤에도 자유 의지가 없어지지 않고 약해졌을 뿐이라고 가르쳤습니다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 교령.

정교회는 흔히 ‘조상의 죄’라는 말을 씁니다. 우리는 아담에게서 죽음과 썩어짐, 그리고 죄로 기우는 연약함을 물려받지만 아담 개인의 죄책을 물려받지는 않는다는 것입니다 요한네스 로마니데스, 조상의 죄. 아우구스티누스는 로마서 5:12의 끝부분을 모든 사람이 아담 ‘안에서’ 죄를 지었다고 옮긴 라틴어 번역으로 읽었지만, 많은 정교회 신학자는 이 구절을 죽음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고 죽을 존재가 된 모두가 죄를 짓는다는 뜻으로 읽습니다.

웨슬리 전통은 원죄와 전적 타락을 분명히 가르치면서, 하나님이 모든 사람에게 ‘선행 은총’을 주신다고 함께 강조합니다. 구원보다 먼저 와서 양심을 깨우고 복음에 응답할 수 있게 하는 은혜입니다 존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이 설명들은 다르지만, 누구도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고 모든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필요하며 은혜가 언제나 먼저 온다는 데에는 함께 섭니다. 이 물음은 은혜와 선택에서 이어집니다.

원죄의 교리는 어둡게 들리지만 정직한 진단입니다. 좋은 의사는 병을 정확히 말해 줍니다. 우리 힘으로 고칠 수 없는 병이기에 고치시는 분의 은혜가 얼마나 큰지 보입니다. 어려서 죽은 아이들에 대한 물음은 어려서 죽은 아이는 어떻게 되는가?에서, 죄 자체는 죄란 무엇인가?에서 더 다룹니다.

연습

  1. 연습 1 / 8

    시편 51:5에서 다윗은 무엇을 고백합니까?

  2. 연습 2 / 8

    에베소서 2:3은 믿기 전의 우리가 본질상 무엇이었다고 말합니까?

  3. 연습 3 / 8

    ‘전적 타락’이라는 말의 바른 뜻은 무엇입니까?

  4. 연습 4 / 8

    로마서 5장에서 아담의 범죄에 대한 바울의 답은 무엇입니까?

  5. 연습 5 / 8

    펠라기우스는 무엇을 가르쳤습니까?

  6. 연습 6 / 8

    529년 오랑주 공의회가 고백한 것은 무엇입니까?

  7. 연습 7 / 8

    다음 중 전통과 그 가르침의 연결이 바른 것은 무엇입니까?

  8. 연습 8 / 8

    웨슬리 전통이 원죄와 전적 타락과 함께 강조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출처

  1. 아우구스티누스, 신앙 핸드북(엔키리디온) 30 — 사람은 자유의지를 잘못 써서 자신과 자유의지를 함께 잃었으며, 은혜만이 의지를 새롭게 한다.
  2. 카르타고 공의회, 펠라기우스주의에 관한 결정 418 — 아담의 죄가 후손에게 미치며 은혜 없이는 계명을 지킬 수 없다고 고백하고 펠라기우스의 가르침을 정죄했다.
  3. 제2차 오랑주 공의회, 오랑주 공의회 결정 529 — 모든 선한 뜻과 믿음의 시작이 은혜에서 온다고 고백하고, 악으로 예정되었다는 가르침을 거부한다.
  4.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 루터교의 기본 신앙고백.
  5.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563 — 독일 개혁교회의 요리문답(129문). 제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유일한 위로는 무엇인가. 죄와 구원과 감사의 세 부분으로 신경, 성례, 십계명, 주기도문을 가르친다. 읽기
  6. 웨스트민스터 총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646 — 장로교회의 신앙고백. 성경, 하나님과 작정, 언약, 구원, 교회와 성례, 종말을 33장에 걸쳐 고백한다. 읽기
  7. 가톨릭교회, 가톨릭 교회 교리서 1992 —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전체를 정리한 교리서.
  8. 트리엔트 공의회, 원죄에 관한 교령 1546 — 아담의 죄가 모든 이에게 미치며 세례로 원죄의 죄책이 사해지고, 사욕은 남되 그 자체로 죄는 아니라는 가톨릭 교회의 가르침.
  9. 트리엔트 공의회, 의화에 관한 교령 1547 — 칭의에 대한 가톨릭 교회의 공식 가르침.
  10. 요한네스 로마니데스, 조상의 죄 1957 — 아담에게서 물려받는 것은 죄책이 아니라 죽음과 부패라는 정교회의 이해를 대표하는 현대 저작.
  11. 존 웨슬리, 성경적 구원의 길 설교 43 / Sermon 43 (1765) — 선행 은총, 믿음으로 받는 칭의와 성화를 설명하는 설교. 읽기

성경과 교회의 신경, 교부와 고전 주석을 바탕으로 한 강의입니다. 공교회의 신경(사도신경, 니케아 신경, 칼케돈 신앙정의)을 기준으로 삼았고, 그리스도인 사이에 견해가 갈리는 문제는 여러 견해를 함께 소개합니다. 성경 인용: 개역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