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나투스주의
Donatism
도나투스주의는 4–5세기 북아프리카의 분리 운동으로, 교회는 거룩한 사람들만의 모임이어야 하며 박해 때 신앙을 저버린 성직자가 베푼 성례는 효력이 없다고 가르쳤습니다. 교회는 성례의 참 주인이 그리스도이시므로 집례자의 죄가 성례를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고 보아 이 가르침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순교자의 교회가 던진 물음
303년에 시작된 대박해 때 북아프리카의 일부 성직자는 목숨을 건지려고 성경을 당국에 내주었습니다. 박해가 끝난 뒤 311년 무렵 카르타고의 감독이 된 카이킬리아누스가 그런 ‘배신자’에게서 안수를 받았다는 의심을 받자, 많은 이가 그를 거부하고 다른 감독을 세웠습니다. 이 무리를 이끈 도나투스의 이름을 따 이들을 도나투스파라 부릅니다.
그들의 물음은 진지했습니다. 순교자들의 피로 지켜 온 교회가 어떻게 배신자들을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들은 그리스도께서 교회를 "또 그것을 점이나 주름이나 그런 것이 없는 영광스러운 교회로 자기를 위해 제시하려 하심이며 교회가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려 하심이라." 하신다는 말씀을 (엡 5:27) 지금 이 땅의 교회가 드러내야 한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큰 죄를 지은 성직자가 베푼 세례와 안수는 효력이 없다고 가르쳤고, 교회 밖의 세례는 세례가 아니라고 한 3세기의 순교자 키프리아누스를 따라 공교회에서 넘어온 이들에게 다시 세례를 주었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의 대답
313년 로마와 314년 아를의 회의는 카이킬리아누스의 손을 들어 주었지만 분열은 그 뒤로도 오래 이어졌습니다. 히포의 감독 아우구스티누스는 교회가 거룩한 것은 교인이나 성직자가 깨끗해서가 아니라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거룩하시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티 없는 교회는 그리스도께서 마지막 날에 이루실 모습이고, 이 세상의 교회에는 곡식과 가라지가 섞여 있다는 것입니다. 그는 가라지 비유를 교회에 적용해 읽었습니다.
둘 다 수확 때까지 같이 자라게 두어라. 수확하는 때에 내가 거두는 자들에게 말하기를, 너희는 먼저 가라지를 함께 모아 불태우게 단으로 묶되 곡식은 모아 내 곳간에 넣으라, 하리라, 하시니라.
마 13:30
성례도 마찬가지입니다. 세례를 베푸시는 참 주인은 그리스도이시고 집례자는 그분의 일꾼일 뿐입니다. 바울도 "그런즉 이와 같이 심는 자나 물 주는 자는 아무것도 아니며 자라나게 하시는 이는 오직 하나님이시니라."고 했습니다 (고전 3:7). 아우구스티누스는 "주께서 선하신데 집행자의 악함이 무슨 방해가 되겠습니까?"라고 묻고 아우구스티누스, 그리스도의 세례는 "살인자의 집행조차 더럽힐 수 없는 그토록 거룩한 성례"라고 말합니다 아우구스티누스. 그래서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베푼 세례는 다시 베풀지 않되, 그 세례는 교회의 사랑과 하나 됨 안에서 열매를 맺는다고 가르쳤습니다.
이 싸움에는 어두운 면도 있습니다. 도나투스파의 과격한 무리는 공교회 성직자들을 습격했고, 황제의 법은 도나투스파를 억눌렀으며, 411년 카르타고 회의 뒤에는 압박이 더 거세졌습니다. 아우구스티누스도 끝내 이 강제를 옹호했고, 훗날 교회는 그의 논리를 이단 박해에 끌어다 썼습니다.
교회들이 이어받은 것
집례자의 죄가 성례를 무효로 만들지 않는다는 원칙은 오늘 대부분의 교회가 받아들입니다. 가톨릭 교회는 이를 성사가 ‘행해진 일 자체로’(ex opere operato) 효력을 낸다는 말로 가르칩니다.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8조는 악한 이의 직무를 쓰는 것을 부정한 도나투스파를 이름을 들어 정죄했고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8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도 이렇게 고백합니다.
성례의 효력은 그것을 집행하는 사람의 경건이나 의도에 달려 있지 않고, 성령의 역사와 제정의 말씀에 달려 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27.3
그렇다고 도나투스파의 걱정이 헛된 것은 아닙니다. 교회는 거룩해야 하고, 그래서 여러 개혁교회 신앙고백은 권징을 참 교회의 표지 가운데 하나로 꼽습니다. 다만 교회의 거룩함을 사람이 완성할 수는 없으며, 누가 참 신자인지는 마지막 날에 드러납니다. 이 생각은 훗날 보이는 교회와 보이지 않는 교회의 구별로 이어졌습니다. 종교개혁 때 반대자들은 재세례파를 새 도나투스파라 부르기도 했지만, 재세례파가 물은 것은 집례자의 자격이 아니라 세례받는 이의 믿음이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아우구스티누스: 은혜의 박사 과에서 더 자세히 다룹니다.
출처
- 루터교, 아우크스부르크 신앙고백 15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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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인용: 개역한글.